심장박동을 듣는 기술
얀 필립 젠드커 지음, 이은정 옮김 / 박하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보이지 않아도 누군가는 들으리라

 

심장박동을 듣는 기술

얀 필립 젠드커 지음, 이은정 옮김, 박하, 2014

 

심장박동을 듣는 기술은 독일 시사잡지 슈테른의 기자 출신으로 미국과 아시아 특파원을 지낸 얀 필립 젠드커의 첫 장편소설이다.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를 담은 독일소설이라고 소개되고 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아름답기 이전에 진한 슬픔이 배어있기 때문이고 독일 작가이긴 하지만 소설의 배경이 미얀마이어서 그렇다. 2002년 독일에서 출간되어 서점주인과 독자들의 입소문만으로 화제에 오르며 전 유럽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미얀마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성공한 변호사의 삶을 살던 남자가 어느 날 흔적 없이 사라진다. 화자인 20대의 딸 줄리아는 아버지의 유품 속에서 미얀마의 한 여성에게 썼던 50여년 전의 편지를 발견하고 아버지의 행방을 쫒아 미얀마 껄로로 떠난다. 그곳에서 줄리아는 어느 날 갑자기 앞을 볼 수 없게 된 소년(틴 윈)과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하는 소녀(미미) 사이에 있었던 일을 알게 된다. 귀로 세상을 느끼는 틴 윈에게 우 메이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사물의 참된 본질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법이란다. 우리는 오히려 감각 기관 때문에 길을 잃지. 그 중에서도 특히 눈은 우리를 잘 속인다.”(149) 틴 윈은 보지 못하는 대신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더 깊게 들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생겼다. 둘은 서로에게 눈과 발이 되어주며 물리적 거리의 장애와 시간의 부식력을 거스르며 하나의 영혼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완벽하게 보여준다. 이 소설은 어깨를 빌려주고 옆구리를 내주는 사소한 사랑의 방식에도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감동과 매혹을 넘어 닿을 수 없는 경이감까지 불러일으킨다.

 

미얀마로 여행계획을 세워놓고 가이드북보다 먼저 손이 닿은 책이다. “이 도시에서 좋은 시간 보내십쇼. 깔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19) 길을 잃고 두리번거리는 줄리아에게 낯선 미얀마 청년이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주며 하는 말이다. 애초 계획하고 있던 양곤-바간-낭쉐 여행일정에 깔로를 추가하기로 마음먹은 게 아마 이 대목을 읽을 쯤 이었나보다. 틴 윈은 35년 만에 미미 옆으로 돌아왔고, 둘은 그 다음날 함께 세상을 떠났다. 그날이 15일이다. 한 달 후에 나는 미얀마에 있을 것이고, 일정을 짜다보니 공교롭게도 15일 쯤에 깔로에 닿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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