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송 동의보감 내경편 낭송Q 시리즈
허준 지음, 임경아.이민정 풀어 읽음, 고미숙 / 북드라망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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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생을 하노라

 

낭송 동의보감 내경편

허준 지음, 임경아.이민정 풀어 읽음, 고미숙 기획, 북드라망, 2014

 

작년 봄에 한 달 동안 인도를 여행했다. 갠지즈 강을 거닐다가 치렁치렁한 머리칼이 고목나무에서 흘러내린 듯 허리까지 내려와 있는 사두(힌두 탁발승)와 마주쳤다. 얼굴에는 경극 배우처럼 두꺼운 분칠을 했고, 몸에는 갖가지 요상한 악세사리를 두르고 있다.

 

나마스떼!(안녕하세요)” “어디서 왔는가?”

코리아

아니, 네가 어디서 기원했는지를 묻는 것이다

모르겠다

궁금하지 않은가?” “궁금하면 50루피!”

사실은 너는 네가 온 곳을 알고 있다. 단지 그 사실을 네 자신이 모를 뿐이다”“살람 알레이쿰!(당신에게 평화를)”

 

평화는 모르겠고 화가 살짝 나는 게 사기당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미 50루피는 그의 손에 쥐어진 다음이었다. 아이 엠I am을 찾을까 했다가 루피만 날렸다.

 

갠지즈 강에 석양이 지는 것을 보려고 다시 가트로 나갔다가 그 사두를 다시 만났다. 오늘 하루 영업(?)을 결산이라도 하는 듯 가트 옆에서 지긋히 눈을 감고 앉아 명상을 하며 이따금씩 만트라(신성한 주문)를 내뱉는다.

하리 옴! 옴 나마 시바야!”

 

슬그머니 장난기가 발동했다. 그 옆으로 몰래 다가가 결가부좌 자세로 앉아 눈을 감고 <동의보감>을 공부하다 읽은 주역周易64를 입에서 나오는 대로 제멋대로 읊어 댔다.

 

중천건 중지곤 수뢰둔 산수몽

수천수 천수송 지수사 수지비

풍천소축 천택리 지천태 천지비

 

사두가 놀랐는지 눈을 번쩍 뜨고 지금 외는 주문이 뭐냐고 묻는다.

궁금한가?

궁금하면 50루피!”

 

사두는 그제서야 상황을 알아채고 그 턱없이 크고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씩 웃는다. 내친김에 손바닥을 비벼 눈자위를 비비고, 콧등을 문지르고, 이를 부딪치는 고치법 등 <동의보감>에서 배운 몇 가지 양생술을 시범으로 보여줬더니 따라한다. 물론 50루피는 여전히 그의 손에 있는 것이 생업적 사기로 번 돈을 반환할 의사는 없어 보인다. 20134월 어느 봄날 갠지즈 강가에서 우리 둘은 그렇게 한바탕 웃고 헤어졌다.

 

아유르베다는 우주와 인간을 상호 연관 지어 고찰하는 고대 인도의 전통의학이다. 인도와 네팔 등에서 5천년 이상 동안 일상생활에서 활용되어 왔는데, 아유르베다의 핵심을 한 마디로 말하면 균형이다.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영적인 기운의 상호 균형이 깨졌거나, 또는 개인과 자연환경의 균형이 깨졌을 때 질병이 생긴다는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우주의 기운이 우리 신체와 연결되어 있듯이 몸과 마음이 서로 소통한다고 말한다. 희로애락과 오장육부가 연동되어 움직이며, 감정은 삶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화를 자주 내면 간이 상하고, 너무 기뻐하면 심장이 다치며, 두려움이 지속되면 신장에 병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유르베다가 표방하는 인간은 소우주이고 질서는 건강이고 무질서는 병이라는 철학은 한의학과 일부 통하는 지점이 있다. 서양의학도 다르지 않다. 네델란드 출신의 헤르만 부르하페(16881738)라는 의사는 죽어서 의학사상 최고의 비밀이라는 두툼한 노트 한 권을 남겼다. 이후 이 노트는 경매에 붙여졌는데 그 노트를 펼치자 아무것도 없는 백지의 노트 맨 끝 페이지에 다음과 같이 한 줄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머리는 차갑게 하고, 발은 뜨겁게 하며, 몸속에는 찌꺼기를 남겨주지 마라. 그러면 당신은 세상의 모든 의사를 비웃게 될 것이다." 차가운 기운은 위로 올라가게 하고 뜨거운 기운은 아래로 내려가게 하는 것,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편안하게 복부는 따뜻하게 하는 것이 건강의 지름길이라는 것으로, 동의보감에서 말하는 수승하강水昇下降이나 두한족열頭寒足熱과 같은 의미다.

 

<동의보감>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기록유산으로, 동아시아 2,000년의 의학지식을 집대성한 동양의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책이다. 조선조 광해군 2년인 1610년에 허준이 장장 14년에 걸쳐 완성한 책으로, 25권에 달하는 엄청난 스케일로 목차만 무려 100쪽이 넘는다. 특히 중국에선 30여 차례 간행될 정도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일본에서도 한의학의 표준적 모델이 되었다. 의서임에도 보다는 생명활동에 중점을 두고 병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양생법을 강조하고 있다. <동의보감>은 단순한 의학서가 아닌 삶의 비전서, 혹은 양생술의 지혜가 가득한 인생사용설명서라고 할 수 있다. 양생법은 말 그대로 잘 사는 방법인데, 태어날 때 천지로부터 받은 기운을 잘 아끼고 보양하라는 것이다. 계절의 변화에 맞게 잠자고 일어나며, 음식은 담박하고 적당히 먹으라는 등 일상적인 실천지침을 제시한다. 낭송 동의보감 내경편<동의보감> 중 몸 안의 세계를 다룬 내경편에 있는 내용을 가려 뽑아 낭송하기에 알맞게 그 편제를 새롭게 만든 발췌 편역본이다.

 

하루 중의 금기는 저녁에 배부르게 먹지 않는 것이고, 한 달 중의 금기는 그믐에 만취하지 않는 것이고, 인 년의 금기는 겨울에 멀리 여행하지 않는 것이고, 평생의 금기는 밤에 불을 켜고 성생활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다. (89)

 

그런데 왜 낭송인가? 여기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대체 공부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먼저 해야 한다. 교과서를 달달 외고 문제집을 술술 풀고 계산을 척척 해내는 게 공부가 아니라는 것쯤은 다들 안다. 그렇다. 공부는 쿵푸다. 몸과 마음을 새롭게 만드는 것을 넘어 온전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공부의 핵심은 역시 소리요 청각이다. 신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낭송이라는 전통의 공부법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니체는 말한다. “나는 전적으로 신체일 뿐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며, 영혼이란 것도 신체 속에 있는 그 어떤 것에 붙인 말에 불과하다.”비유컨대,‘정신은 몸의 의지를 수행하는 손이라는 것. 그러므로 영혼과 육체는 분리되지도 않고, 분리할 수도 없다. 고로, 나는 신체다!

(고미숙,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 북드라망, 2014, 2021)

 

올 한해 시절인연이 닿아서인지 동의보감을 좀 더 가까이서 공부하게 되었다. 낭송과 산책이 최고의 용신이라는 걸 믿기에 날씨가 좋을 때면 사시사철 화보를 펼쳐 보여주는 남산길을 산책하며 동의보감을 읊조리곤 했다. 몸은 삶의 유일한 현장이자 무대요, 존재와 우주가 교차하는 접점이다. 낭송은 아주 구체적이면서 신체적인 활동이며 몸이 좋아하는 독서법이다. 백미보다 현미가 몸에 좋은 것처럼 묵독보다 낭송이 몸에 더 잘 호응한다. 묵독은 이야기에 담긴 긴장과 갈등, 지혜와 성찰의 호흡을 제거한다. 그런데 낭송하는 순간 책속에 몽글몽글하게 웅크리고 있던 활자들이 그 뜻을 곧게 펴고 책 밖으로 걸어 나온다. 내용을 이해하고 못하고는 부차적인 문제다. 중요한 건 그 파동과 기를 몸이 기억하게 된다는 것이다. 말을 하려면 입과 귀를 써야 한다. 입과 귀가 움직이면 뇌가 충전된다. 그리고 뇌를 자극하면 심장을 거쳐 신장으로, 허벅지와 발바닥까지 그 기운이 전달된다. 그래서 낭송을 일종의 양생비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유일한 부작용은 중독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나쁜 중독이든 좋은 중독이건 중독은 사람을 바꾸는 힘이 있다. 낭송에 빠지면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지 입 밖으로 소리 내서 읽으려고 달려들지 모른다. 비록 그것이 가계부와 애 성적표일지라도. 그러니 일단 신체와 궁합이 잘 맞는 좋은 고전을 고른 다음에 머리로 바짝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낭송을 통해 몸에 새기는 과정이 필요하다.

 

핵심은 외는 것이다. 다 외워야 낭송이 가능하다. 암기와 암송은 다르다. 암기가 음소거 상태에서 의미 단위로 텍스트를 먹어 치우는 것이라면, 암송은 소리로써 텍스트를 몸 안에 새기는 행위다. 그렇다. 뼈에 새기려면 외워야 한다.

(고미숙,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 북드라망, 2014, 115)

 

이 책을 포함한 낭송Q시리즈는 낭송을 위한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은 꼭 소리 내어 읽고, 짧은 구절이라도 암송할 때 더욱 빛을 발한다. 머리와 입이 하나가 되어 책이 없어도 내 몸안에서 소리가 흘러 나오는 것, 그것이 바로 낭송이다. 1신형新形, 내 안의 자연에서는 인간과 우주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생명은 어떻게 탄생하고 살아가는지 소개한다. 세상과 고립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1부를 소리내서 읽어 보자. 또 자괴감에 시달리거나 남 탓을 하고 싶을 때는 꿈에서 똥까지 몸 속 무수히 많은 존재들을 탐구한 6부를 큰 소리로 읽다보면 속이 후련해진다. 내형편에 이어 외형편, 잡병편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어쩐지 을미년乙未年 새해가 든든해지는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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