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프래질 - 불확실성과 충격을 성장으로 이끄는 힘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안세민 옮김 / 와이즈베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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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의 칠면조가 되지 말자

 

안티프래질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 안세민 옮김, 와이즈베리, 2013

 

 

어떤 똑똑하고 과학적인 칠면조가 있었다. 이 칠면조는 농장에서 맞은 처음 아침 9시에 모이를 받아먹었다. 칠면조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따뜻한 날과 추운 날, 비오는 날과 맑은 날 언제나 변함없이 아침 9시가 되면 모이를 들고 꼬박꼬박 나타나는 주인을 반겼다. 칠면조는 1000일째 되는 날 자기를 향한 인간배려의 통계적 유의성이 증가하고 있다는 확신에 이른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날은 추수감사절 이브였다. 그러나 칠면조는 1001번째가 되는 다음날 아침에 먹이를 받아먹는 대신 목이 잘리게 되었다. 칠면조는 자신을 아끼는 주인에 대한 믿음이 최고조에 이르고 자신의 삶에 대해서 아주 편하게 예측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믿음을 바꾸게 된 것이다. 이런 바보 같은 칠면조가 되지 않는 것은 진정한 안정과 인위적인 안정의 차이를 구분하는 데서 시작한다. 레바논 출신의 경제학자이자 투자 전문가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의 근작안티프래질Antifragile에 나오는 버트란트 러셀의 칠면조 이야기를 각색한 비유다. 탈레브는 2009년 포브스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전문가', 금융위기를 예측한 블랙 스완Black swan으로 유명하다. 평생을 운, 불확실성, 확률, 리스크에 몰두해왔는데, 그의 예견대로 2008년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월가의 현자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그는 와튼 스쿨 시절에 확률probability’ 혹은 확률적stochastic’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제목의 책을 거의 모두 사서 읽었다고 한다. 결국 리스크는 탈레브가 가장 잘 아는 주제가 되었다.

 

책에는 블랙 스완현상, 즉 발생 가능성이 낮고 예측하기 힘들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을 가져오는 사건들에 대한 해독제로서 안티프래질을 소개하고 있다. 안티프래질은 사전에 없는 단어다. '취약한'이나 '부서지기 쉬운'이라는 뜻의 'Fragile'에 반대(대응)되는 개념으로 만든 신조어인데, 충격을 받으면 오히려 더욱 단단해진다는 뜻을 담고 있다. 안티프래질은 무작위성과 불확실성을 좋아한다. 우리는 무작위성이란 위험한 것이고, 나쁜 것이기 때문에 제거해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다. 택시운전기사, 매춘부, 목수, 배관공, 재단사, 치과의사는 소득이 일정하지 않다. 대신 소득을 제로로 만들어버리는 블랙 스완 앞에서 하루아침에 허무하게 무너지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기능을 보유한 사람들은 무작위성 덕분에 위험요소를 뚜렷하게 볼 수 있는 일정 수준의 안티프래질을 지니고 있다. 반면 안정적으로 보이는 회사원은 그렇지 못하다. 회사원에게는 위험이 숨어 있다. 그들은 인사팀에서 걸려오는 전화 한 통에 소득이 제로가 되는 끔찍한 상황을 만날 수 있다. 자연 역시 안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자연은 드물게 일어나는 일에 관한 한 가장 뛰어난 전문가이자 최선의 관리자이다. 파기하고 대체하고 선별하고 개조하는데 자연처럼 능숙한 것도 없다. 노자老子는 이를 천지불인天地不仁으로 표현했다. , 천지는 만물을 생성화육生成化育함에 있어 어진 마음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 행한다는 말이다(도덕경 5). 오히려 자연은 작은 실수를 좋아한다. 이런 실수 없이는 유전적인 변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진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측면은 오직 진화의 안티프래질적 특성 때문에 진화가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진화는 스트레스, 무작위성, 불확실성, 무질서를 좋아한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다. 안티프래질을 싫어하는 정신적인 바이어스에 휘둘려 어설픈 합리주의자, 또는 합리화하는 사람이 되기 쉽다.

 

전작인 블랙 스완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우리를 충격으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줬다. 이번 책은 이미 블랙 스완 현상이 사회와 역사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정치, 도시계획, 금융, 경제 시스템, 의학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에 대한 실천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안티프래질의 특성과 안티프래질하기 위한 방법을 소개하며 불확실성, 무작위성, 가변성을 피하지 말고 적극 활용할 것을 주문한다. 전작에 비해 사회전반이나 인간 심리적 측면에서 볼 때 훨씬 유용한 부분이 많다. 저자는 프래질에서 안티프래질로 전환하는 방안으로 바벨(운동기구) 전략을 제시한다. 이원적인 전략으로서 하나는 안전하고 다른 하나는 위험한 두 개의 극단을 조합하는 방식이다. 이는 일원적인 전략보다 더 강건하며, 때로 안티프래질로 가기 위한 필요조건이 되기도 한다. 재산의 90퍼센트는 현금으로 보유하고, 10퍼센트를 가장 위험한 주식에 투자하는 경우다. 운이 좋으면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최악의 경우에도 10퍼센트 이상은 잃지 않는다. 더 좋은 예도 있다. “회계사와 결혼하고 가끔은 록 스타와 바람을 피려는 전략, 작가가 안정적인 한직을 갖고 남는 시간에 직업이 주는 압박에 시달리지 않고서 글을 쓰려는 전략이 이에 해당한다.”(664) 핵심은, 바벨 전략은 생존을 위한 보험이라는 사실이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것이다.

 

우리는 눈을 가린 운전기사가 운전하는 버스에 타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안티프래질 이론을 요약하면, 미래에 닥칠 충격을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므로 현시점에서 추정 가능한 프래질(허약성)을 최대한 제거하고 안티프래질을 강화하라는 것이다. 부족한 정보와 부족한 이해, 즉 부족한 지식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칠면조, 멍청한 인간이 되지 않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기 위해 통계학, 철학, 수학, 문학 등을 종횡무진 넘나든다. 통계나 확률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읽어 내는데 별 지장은 없다. 책에서 저자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유명인사와 투자전문가들에 대한 비판과 독설도 서슴지 않는다. 토머스 프리드먼,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 프래질리스타라고 명명되는 유명 경제학자와 노벨상 수상자들이 탈레브에게 된통 깨지는 것을 보면 딱하다.

 

이 책은 먼저 읽는 사람이 임자다. 기본적으로는 경제경영서나 투자전략서로 분류되지만,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처하고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주는 것이 자기계발서 혹은 인간 본성을 통찰한 인문서적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깨어지지 않기보다, 깨어져도 다시 겹겹이 이어 붙이는 중층의 가변적인 삶을 환하게 내다보게 해준다. 780쪽이 넘는 벽돌책에 가깝지만 짬을 내서 꼭 독파하기를 권하는 책이다. 우물쭈물하다가 자칫 인생이 작파당할까 염려되어 하는 말이다. 일단 읽고 나면 보상이 확실하다.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서점의 자기계발서 매대에 있는 책들을 몽땅 자루에 쓸어 담고, 그 자리에 유일하게 놓아야 할 책이 있다면 바로 이런 책일 것이다. -- (기획회의 397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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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문, 이 시대가 묻는다
김태완 지음 / 현자의마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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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당신이 문제요

 

책문

김태완 지, 현자의마을, 2015

 

제목이 책문이다. 처음에는 잘못을 캐묻고 꾸짖는다는 뜻의 문책問責으로 잘못 보았다. ‘책문策問이란 조선시대 고급공무원 선발 시험인 대과의 마지막 관문으로, 최종합격자 33명의 등수를 정하는 시험이다. 단순한 통과의례가 아니라, 국가의 비전에 대해 왕과 젊은 인재들이 나누는 격정토론이고 끝장토론이다. 주제도 정치, 문화, 제도 개혁, 인사, 치안과 국방, 외교, 교육, 조직 혁신 등 한 사회가 마주하는 온갖 현안을 망라한다.책문책문가운데에서 오늘의 산재한 정치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만한 의미 있는 13편을 가려 뽑아서 엮은 책이다. 올바른 정치를 구현하는 방법에서부터 공정한 인재를 등용하는 원칙, 국가 위기 타개책, 지도자의 리더십에 이르기까지 방대하다. 각 편마다 왕의 물음(책문)과 선비들의 대답(대책), 역자의 해설(책문 속으로)로 구성하여, 딱딱한 보고서에서 흥미로운 역사인문교양서로 시원하게 밀고 나갔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조광조, 성삼문, 신숙주, 강희맹 등의 대답을 살펴보면 당시의 시대상황이 한눈에 그려진다. 저자는 율곡 이이의 책문을 텍스트로 삼아 실리사상을 연구하여 철학 박사학위를 받고, 숭실대, 경원대 등에서 동양철학, 한국철학 등을 강의했다. 현재는 광주광역시 소재 지혜학교 철학교육 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국가의 운영이나 인재 등용, 국정 농단에 대한 근본해법은 지금보다 훨씬 더 원칙적이고 간담을 서늘케 하는 대책들로 왕을 곤혹스럽게 까지 하고 있다. 때로는 목숨을 걸고 왕이 잘못한 것을 지적하는 일도 서슴치 않는다. 조선이 선비의 나라였다는 것이 맞다. 지도자의 리더십을 다룬 12장이 그렇다. “지금 가장 시급한 나랏일은 무엇인가라는 광해군의 질문에 임숙영은 나라의 병은 왕, 바로 당신에게 있습니다라고 돌직구를 날린다. 이 사건은 후폭풍을 몰고 왔다. 광해군이 진노하여 과거 역사상 전후후무한 삭과削科파동이 일어날 뻔 했다. 삭과란 규칙을 위반한 사람의 급제를 취소하는 것을 말한다. 이덕형과 이항복 같은 정승들이 삭과는 부당하다고 간절히 변론하는 바람에 광해군도 차후로는 질문의 요지를 벗어난 대책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엄포를 내리며 마지못해 한 발 물러났다. 조선왕조 500년이 그냥 500년이 아니다.

 

책에 담긴 내용들은 500년도 더 지난 시절의 질문들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렇게 오늘날의 현안과 문제의식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는지 놀랍기 그지없다. 대체 이 어이없는현재성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실로 작금의 한국 정치와 사회의 난맥상을 해결할 만한 효과 있고 유효적절한 질문과 대답들이 가감 없이 제시되고 있다. 책문은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과제가 무엇인지를. 그리고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을 다 읽고 나서도 여전히 제목이문책으로 보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던지는 책, 책문이다. 이제는 우리가 답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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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를 신은 마윈 - 알리바바, 마윈이 공식 인정한 단 한 권의 책
왕리펀.리샹 지음, 김태성 옮김 / 36.5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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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윈은 신화가 아니다

 

운동화를 신은 마윈

왕리펀·리샹 지, 김태성 옮김, 36.5, 2015

 

지난 5, 조선일보가 주최한 6회 아시안 리더십 콘퍼런스에 난다 긴다 하는 세계적인 석학과 명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었던 인물이 중국 최고의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의 마윈馬雲 회장이었다. 그를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강연장으로 몰려들었고, 언론과 방송은 그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를 퍼 나르느라 분주했다. 마윈은 2014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번 사람이다. 그해 9, 알리바바가 뉴욕 증시에 상장한 첫날 주가가 폭등해 시가총액 242조 원을 기록했을 때 월 스트리트가 떠들썩했다. 이는 페이스북, 삼성전자, 아마존보다 더 큰 규모로, 구글에 이어 세계 인터넷 기업 중 2위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쉰한 살 마윈은 재산이 356억달러(39조원)로 중국 부자 1, 세계 부자 15위로 올라섰다. 마윈의 성공담과 알리바바의 성장비결을 담은 책이 중국에서 백 권도 넘게 나왔을 정도로 마윈 열풍은 대단하다. 특히 알리바바가 뉴욕 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하며 알리바바의 해라 불린 지난해에는 매월 4종 이상의 '마윈 책'이 쏟아져 나왔다. 이중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된 책만도 10여권에 이른다. 그러다보니 그의 성공 스토리가 일반인과는 다소 멀게 느껴지며 신화처럼 비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마윈이 유일하게 공식 인정한 책이라는 선전문구가 달린 운동화를 신은 마윈은 세간의 그런 느낌을 씻어준다. 중국 CCTV에서 프로듀서 겸 진행자로 활동했고 직접 창업한 경험이 있는 왕리펀과, 경제 기자로 수년 동안 알리바바를 취재한 리샹이 함께 쓴 이 책은 마윈이 결코 신화가 아님을 말해준다. 그를 가까이에서 본 경험을 토대로 화려한 외면에 숨겨진 마윈의 깊은 내면을 끄집어내며, 알리바바를 탄생시킨 27가지 결정적 전환점과 성장과정을 조목조목 짚어준다. 책 제목은 마윈이 공식적인 자리를 제외하고는 평소 운동화를 즐겨 신는다는 마윈의 운전기사 말에서 따왔다. 책 출간 후 중국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운동화를 신는 게 유행이 됐을 정도다.

 

책에는 마윈과 알리바바의 창업과정을 담은 흥미로운 일화가 가득하다. 마윈은 162의 작은 키에 잘 생긴 것도 아니고, 배경도 변변찮고, 젊었을 때는 취업에 서른 번 넘게 미끄러졌다. KFC와 경찰시험에서는 지원자 중 혼자만 떨어졌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7년 동안 세 번이나 망했을 정도로 창업에서도 실패를 거듭했다. 마윈은 1995년에 중국 항저우 정부의 업무를 처리하러 미국 시애틀에 파견됐던 30대 시절에 친구 사무실에서 처음으로 인터넷을 접했다. 당시로서는 최고사양이던 486 컴퓨터를 들고 중국으로 돌아온 마윈이 처음 전자상거래 회사를 세우겠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그를 보고 다들 미쳤다고 했다. 중국은 얼굴을 맞대고 거래하는 '관시關係'로 돌아가는 나라인데 인터넷 거래가 어떻게 가능하냐며 모두가 말렸다. 그러나 마윈은 1999년에 동업자 17명의 주머니를 턴 8800만 원으로 알리바바를 창업했다. 자금이 충분치 않다 보니 오피스텔을 얻지 못하고 호반가든의 150평방미터 남짓한 집에 사무실을 차렸다. 이곳은 지금 실리콘밸리에서 애플이나 구글 같은 기업들의 차고Garage’창업 신화처럼 알리바바의 혁신과 기업가 정신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다. 알리바바는 16년에 걸쳐 쇼핑·B2B(기업간거래결제·금융을 아우르는 세계 최대 종합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성장했다. 직원도 34000명으로 늘어났다. 현재 알리바바는 중국 온라인 쇼핑 시장의 80%를 장악했을 뿐만 아니라, 게임금융물류 등으로 사업 영역을 공격적으로 확장해가고 있다. ‘알리바바라는 회사명 역시 범상치 않다. 마윈은 샌프란시스코로 출장을 갔다가 길거리에서 우연히 그 이름을 보았다. 마윈은 자기 테이블로 커피를 날라다 준 여종업원에게 혹시 알리바바를 아느냐고 물었고, 그녀는 당연히 안다면서 열려라 참깨!’라는 뜻 아니냐며 대답했다. 마윈은 내친 김에 길거리에서 국적이 다른 60여명의 외국인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들 모두는 알리바바의 뜻을 알고 있었으며, 매우 희한하고 재미있는 이름이라고 답변했다. 마윈은 즉석에서 회사 이름을 알리바바로 정했다. 마윈은 이렇게 엉뚱하고 기발한 면 이외에도 탁월한 이야기꾼이자 어록 제조기로도 유명하다. “이베이는 바다에 사는 상어이고 우리는 양쯔강에 사는 악어다. 바다에서 싸웠다면 당연히 우리가 졌겠지만 강에서 붙었기 때문에 우리가 쉽게 이길 수 있었다”. 미국 최대 온라인 쇼핑회사인 이베이를 상대로 경쟁할 때 마윈이 했던 이 말은 지금도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마윈은 못 말리는 진융(金庸·김용) 팬이다. 자신의 상상력의 원천으로 주저하지 않고 진융의 무협지를 꼽는다. 진융은 케임브리지대 역사학 박사이면서 무협작가로서 마윈에겐 셰익스피어 같은 존재다. 그는 20여 년 동안 영웅문을 비롯한 무협소설을 쓰며 무협지를 중국을 대표하는 대중문학 장르로 끌어올렸다. 마윈은 회사의 가치 체계를 그의 소설에서 따서 짓고 화산논검華山論劍을 모방한 인터넷 기업가 모임인 서호논검대회를 개최하는 등 진융 소설을 전략전술과 기업문화에 응용하고 있다. 집무실과 회의실을 무협지에 따서 이름 짓는 등 사무실을 온통 무림의 성지로 꾸몄다. 그밖에도 마윈이 6분 만에 소프트뱅크 창업자 손정의로부터 2000만 달러의 투자를 받아낸 드라마틱한 장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나 마찬가지였던 최강 기업 이베이와의 대전을 승리로 이끈 믿기지 않는 실화 등 눈길을 끄는 대목이 많다.

 

그러나 책에는 마윈과 알리바바의 성공신화만 있는 게 아니다. 예상치 못했던 고난, 사기꾼이라는 뭇매를 맞았을 때의 고통과 난처함, 회사의 사활이 걸렸던 결단의 순간 등 지난 16년의 영욕과 부침이 가감 없이 그려져 있다. 이 책 한 권으로 마윈과 알리바바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마윈은 한국에서 보던 여느 기업가들과는 분명 다르다는 것이다. 알리바바를 102년 역사를 가진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며 마윈은 운동화 끈을 다시 조이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알리바바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경영은 살아 있는 인문학이라는 말에 동의한다면 마윈이 그토록 좋아한다는 진융의 무협소설을 다시 찾아 읽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서재 어딘가에 먼지를 폴폴 날리며 책들이 웅크리고 있을지 모른다. 사람들의 가장 깊숙한 마음 속에 있는 결핍과 욕망을 인문적 관점에서 읽어내는 데는 문학이나 역사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마윈에게서 우리가 훔쳐 와야 할 것은 어쩌면 그것인지 모른다. -- (기획회의 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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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필사 - 나를 다시 꿈꾸게 하는 명시 따라 쓰기 손으로 생각하기 1
고두현 지음 / 토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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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환해지는 필사 책

 

마음필사

고두현 지, 토트, 2015

지난주에 나흘 동안 백두산과 연길을 여행했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 환하게 천지를 볼 수 있었다. 천지에 가서도 천지를 못보고 돌아서는 천치꼴은 면할 수 있었으니 운이 좋았다. 모처럼 책상 앞에 앉아 나를 다시 꿈꾸게 하는 명시 따라 쓰기라는 부제가 붙은 마음필사를 펼친다. 오호라! 필사 책이구나! 좋은 글 따라 쓰는 손으로 생각하기시리즈의 첫 책이라고 한다. 그렇지 필사는 손으로 생각하기가 맞지. 표지의 만년필 사진의 서늘한 펜촉에서 몸호강을 한 백두산 천지의 청량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듯해서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렀다.

 

고두현 시인이 저자다. 전에 그의 시집 <늦게 온 소포><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를 읽고, ‘그러면 그렇지 풍광이 아름답기로 둘째가라면 서운해 할 남해 금산에서 나고 자랐으니 천생 시인일 수밖에 없겠지했던 적이 있었다. 더구나 초등학교 어린 시절 중에 1년을 보리암 아래 작은 절에서 청설모처럼 쪼르르 쪼르르 뛰어 놀았다고 했으니 말 다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좋은 인연으로 시인을 겪어보니 사람이 시를 쓰는 것이지 어찌 태어난 고장의 인연만으로 시가 나올까 하고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다. 시에 대해서 과문한 내게도 고시인의 시를 가리켜 잘 익은 운율과 동양적 정조가 잘 어울린다고 말하는 것이 들렸는데, 그게 무엇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먼 바다를 백지 삼아 책갈피 속의 명문장들을 옮겨 쓰고, 아름다운 시를 베껴 적으며, 자연으로부터 문학수업을 받았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펜촉의 둥근 질감과 종이의 미끄러움 사이를 반듯하면서도 늘씬하게 왕복하는 세련미와 편안함이 겹쳐진 느낌이 책에서 묻어나는 것이 이와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첫 장을 넘기니 만년필을 쥔 굳고 단단한 손을 찍은 흑백의 단아한 사진이 버티고 서있다. 그 곁에 쓰여 있는 말이 이렇다. “온 몸으로 좋은 시와 명문장을 따라 쓰다 보면 어느 새 우리 몸과 마음도 함께 맑아진다.” 환해지고 불끈해지는 글귀다. 백두산 길목에서 살까말까 망설이다 그만 둔 장뇌삼 뿌리보다 몇 배나 더 기운을 북돋우는 말이다. 수많은 문호들이 고전을 필사하며 습작기를 보냈듯이, 우리도 필사적으로 필사하며 인생의 비수기를 견디어 내면 된다. 이른바 필사필사必死筆寫! 세상에 무엇인가를 매일하는 것처럼 무섭고 힘센 것은 없다. 실천은 늘 간단하고 명료하다. Just do it! 이게 전부다. 그러나 늘 어렵다. 매일하지 않기 때문이고, 하다가 그만두기 때문이다. 의지는 약하고 습관은 강하기 때문에 매일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다. 저자가 매일 한 시간씩 쓰는 것을 권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냥 필사가 아니고 마음필사. 마음에 방점을 찍은 책이다. 그러니까 읽는 책만이 아니고 읽고 쓰는 책이다. 청춘, 진짜 나이, 햇살에게, , 낙화, 귀천 같은 저자가 공들여 뽑아낸 동서양 명시를 비롯한 보석 같은 총 91편의 명문장이 마음을 환하게 밝혀 준다. 오른쪽은 우리 손목이 행복하게 머물 수 있도록 적어도 42일간의 여백을 남겨 놓았다. 한양대 유영만 교수의 추천대로라면 필사는 애무다. 그러니 처음에는 너무 힘을 주지 말고, 부드럽게 시작하자.

 

나는 고두현 시인의 시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한 여름을 가장 먼저 따라 썼다. (원래는 늦게 온 소포를 먼저 좋아했는데, 언젠가 문학다방 <봄봄>에서 가수 김현성 형이 곡을 붙여 부르는 노래를 듣고 마음을 바꿨다.)

 

남녘 장마 진다 소리에

습관처럼 안부 전화 누르다가

아 이젠 안 계시지----

 

내일부터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고 하는데 장맛비인지도 모르겠다. 저녁에 북코러스 낭독 모임 가는 길에 문방구에 들러 잉크부터 사야지. 한동안 쓰지 않았던 만년필에 잉크 가득 채우고 매일 매일 한 장씩 마음을 눌러야겠다. 그리고 메르스 때문에 걱정하실까봐 백두산 여행도 말씀 못 드리고 다녀왔는데 시골에 계신 엄니한테 전화부터 드려야겠다. 그러고 보니 마음필사는 사람을 착하게 만드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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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전환 -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 코기토 총서 : 세계 사상의 고전 18
칼 폴라니 지음, 홍기빈 옮김 / 길(도서출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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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아니고 사회다

 

거대한 전환

칼 폴라니 지, 홍기빈 옮김, 도서출판 길, 2009

 

지난 4,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칼 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의 아시아 지부가 서울에 문을 열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사회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칼 폴라니(1886-1964)는 생전에 비주류에 머물렀지만 사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 21세기 신자유주의 경제가 위기에 몰리면서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2012년 내로라하는 세계의 경제 엘리트들이 모인 다보스 포럼에서는 폴라니의 유령이 떠돌았다고 할 정도로 회의 내내 그의 사상을 주제로 토론이 이어졌다. 폴라니의 대표작인 거대한 전환(원제, The Great Transfomation)의 부제는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이다. 유럽 문명이 산업혁명 이전의 세계로부터 산업화의 시대로 넘어가는 거대한 전환, 그리고 그에 따르는 여러 사회적·경제적 정책들의 변화를 담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한 해 전인 1944년에 출간된 이 책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와 제3부는 제1차 세계대전, 세계 대공황, 유럽 대륙에서의 파시즘 발흥 등 당시의 세계정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제2부에서는 1815년에서 1914년까지 100년간에 걸쳐 평화와 번영을 누리던 유럽이 왜 갑자기 세계대전에 빠져들고, 경제적 쇠퇴로 이어졌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책에서 폴라니는 자유시장의 신화를 폭로한다.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평화의 붕괴와 대공황으로 이어진 경제 질서의 몰락 모두가 지구적 경제를 시장 자유주의의 기초에서 조직하려 들었던 것의 직접적 결과라고 말한다. 시장경제를 목적 그 자체로 보지 않으며 훨씬 근본적인 목적들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이 폴라니의 시각이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자기조정 시장경제란 역사상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으며, 전혀 도달할 수 없는 황당한 유토피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640쪽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을 통해 폴라니가 주장하려는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이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아이디어는 한마디로 완전히 유토피아이다. 그런 제도는 아주 잠시도 존재할 수가 없으며, 만에 하나 실현될 경우 사회를 이루는 인간과 자연이라는 내용물은 아예 씨를 말라버리게 되어 있다. 인간은 그야말로 신체적으로 파괴당할 것이며 삶의 환경은 황무지가 될 것이다.”(94) 그는 토지(자연노동(인간화폐(사회계약)를 허구 상품이라고 정의 했다. 그런데 이를 상품으로 만들어 시장에 맡겨둔다면, 결국 인간의 자유와 이상을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비극만 낳고 모두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 역시 이 책의 발문에서 오늘날 자기조정 시장경제라는 신화가 실질적으로 사망했다”(21)고 말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경제학과의 장하준 교수 역시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자유시장이라는 것은 환상이라는 이야기이다. 자유시장처럼 보이는 시장이 있다면 이는 단지 그 시장을 지탱하고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규제를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 뿐이다.”(장하준,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부키, 2010, 22)

 

폴라니는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하자 영국으로 망명하여 노동자들과 사귀면서 시장 자본주의가 인간을 어디까지 망가뜨릴 수 있는지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경제적 착취의 문제가 아니었다. 인간이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인간을 단순히 시장에서 상품 취급하며 인간을 파괴하는 모습에 대한 분노였다. 그렇다고 이 책의 핵심논지를 단지 시장경제의 비인간성에 대한 고발과 이를 막기 위한 적절한 국가 개입과 규제의 필연성을 설파하는 것으로 오독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의 주장은 시장경제라는 제도가 도덕적 차원의 비판 대상이 아니라 애초부터 현실과 동떨어진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폴라니를 국가에 의한 시장개입을 적극 옹호한 케인지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시장 자유주의에 대한 케인스의 비판에 많이 동의하긴 했지만, 그가 주목한 것은 국가나 시장이 아니다. 폴라니가 남기는 마지막 단어는 바로 사회. 그가 강조하고자 하는 핵심은 이제 우리가 사회라는 실체를 발견했다는 것이며, 국가도 시장도 이 사회라는 실체가 필요로 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제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토지·노동·화폐는 상품이 아니고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는 것이 폴라니의 기본 전제다. 이렇게 경제가 사회의 구성 요소에 불과한데도 사회에서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로 말미암아 마치 사회가 경제에 예속된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회 속에 경제가 묻혀 있어야 마땅함에도 오히려 사회가 경제에 매몰돼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경제와 사회를 구성해야 할까. 인간이 철저하게 이기적 동기로만 움직인다는 틀에서 벗어나 나와 나를 둘러싼 관계가 삶을 풍요하게 하는 것이 곧 경제라는 폴라니식 사고가 대답이 될 것이다. 또 폴라니를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같은 줄에 세우려는 것도 무리한 시도 중 하나다. 폴라니는 일생 동안 모종의 사회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22세 이후로는 주류 마르크스주의를 포함하여 모든 종류의 경제 결정론의 여러 교조들에 완전히 흥미를 잃었다. 마르크스주의의 사적 유물론이나 노동 가치론을 비판했고, 공산주의적 중앙계획경제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거대한 전환70여년 전에 쓰였지만 21세기의 시점에서 지구적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딜레마를 이해하는 데 있어 그 적실성과 중요성은 오히려 더 커져가고 있다. 자유주의, 집단주의, 개인주의를 뛰어넘어 모든 지적인 이들에게 현재적인 메시지와 함께 깊은 통찰과 자극을 준다. 게다가 지극히 수사학적이며 능숙한 메타포를 구사하는 폴라니의 역동적이고 유려한 문체는 때때로 문학 작품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이 책은 전통적인 경제학에 몇 백년째 절어 있는 기존의 경제학과 경제 사상을 근본적으로 흔들 만한 거대한 명제들을 품고 있다. 그러니 이토록 복잡하고 정교하면서도 난해한 책의 내용을 단선적으로 요약하거나 정리하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폴라니의 전모를 알고 싶다면 하이에크의 가장 유명한 책 노예의 길과 비교하며 읽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우연의 일치로 거대한 전환과 같은 해에 출판된 이 책은 폴라니의 정반대 쪽에 위치하고 있다. 굳이 비유하자면 폴라니가 신자유주의의 원조 저격수라면 하이에크는 자유주의의 전투적 수호자쯤이 될 수 있겠다. 또 이참에 폴라니를 두루 알고 싶은 독자라면 최근에 나온 다호메이 왕국과 노예 교역칼 폴라니, 새로운 문명을 말하다를 함께 읽어도 좋을 것이다.

-- (기획회의 393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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