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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전환 -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 ㅣ 코기토 총서 : 세계 사상의 고전 18
칼 폴라니 지음, 홍기빈 옮김 / 길(도서출판) / 2009년 7월
평점 :
경제가 아니고 사회다
『거대한 전환』
칼 폴라니 지음, 홍기빈 옮김, 도서출판 길, 2009
지난 4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칼 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의 아시아 지부가 서울에 문을 열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사회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칼 폴라니(1886-1964)는 생전에 비주류에 머물렀지만 사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 21세기 신자유주의 경제가 위기에 몰리면서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2012년 내로라하는 세계의 경제 엘리트들이 모인 다보스 포럼에서는 ‘폴라니의 유령이 떠돌았다’고 할 정도로 회의 내내 그의 사상을 주제로 토론이 이어졌다. 폴라니의 대표작인 『거대한 전환』(원제, The Great Transfomation)의 부제는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이다. 유럽 문명이 산업혁명 이전의 세계로부터 산업화의 시대로 넘어가는 거대한 전환, 그리고 그에 따르는 여러 사회적·경제적 정책들의 변화를 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한 해 전인 1944년에 출간된 이 책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부와 제3부는 제1차 세계대전, 세계 대공황, 유럽 대륙에서의 파시즘 발흥 등 당시의 세계정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제2부에서는 1815년에서 1914년까지 100년간에 걸쳐 평화와 번영을 누리던 유럽이 왜 갑자기 세계대전에 빠져들고, 경제적 쇠퇴로 이어졌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책에서 폴라니는 자유시장의 신화를 폭로한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평화의 붕괴와 대공황으로 이어진 경제 질서의 몰락 모두가 지구적 경제를 시장 자유주의의 기초에서 조직하려 들었던 것의 직접적 결과라고 말한다. 시장경제를 목적 그 자체로 보지 않으며 훨씬 근본적인 목적들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이 폴라니의 시각이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자기조정 시장경제란 역사상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으며, 전혀 도달할 수 없는 황당한 유토피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640쪽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을 통해 폴라니가 주장하려는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이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아이디어는 한마디로 완전히 유토피아이다. 그런 제도는 아주 잠시도 존재할 수가 없으며, 만에 하나 실현될 경우 사회를 이루는 인간과 자연이라는 내용물은 아예 씨를 말라버리게 되어 있다. 인간은 그야말로 신체적으로 파괴당할 것이며 삶의 환경은 황무지가 될 것이다.”(94쪽) 그는 토지(자연)·노동(인간)·화폐(사회계약)를 허구 상품이라고 정의 했다. 그런데 이를 상품으로 만들어 시장에 맡겨둔다면, 결국 인간의 자유와 이상을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비극만 낳고 모두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 역시 이 책의 발문에서 “오늘날 자기조정 시장경제라는 신화가 실질적으로 사망했다”(21쪽)고 말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경제학과의 장하준 교수 역시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자유시장이라는 것은 환상이라는 이야기이다. 자유시장처럼 보이는 시장이 있다면 이는 단지 그 시장을 지탱하고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규제를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 뿐이다.”(장하준,『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부키, 2010, 22쪽)
폴라니는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하자 영국으로 망명하여 노동자들과 사귀면서 시장 자본주의가 인간을 어디까지 망가뜨릴 수 있는지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경제적 착취’의 문제가 아니었다. 인간이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인간을 단순히 시장에서 상품 취급하며 인간을 파괴하는 모습에 대한 분노였다. 그렇다고 이 책의 핵심논지를 단지 ‘시장경제의 비인간성에 대한 고발’과 이를 막기 위한 ‘적절한 국가 개입과 규제의 필연성’을 설파하는 것으로 오독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의 주장은 시장경제라는 제도가 도덕적 차원의 비판 대상이 아니라 애초부터 현실과 동떨어진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폴라니를 국가에 의한 시장개입을 적극 옹호한 케인지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시장 자유주의에 대한 케인스의 비판에 많이 동의하긴 했지만, 그가 주목한 것은 국가나 시장이 아니다. 폴라니가 남기는 마지막 단어는 바로 ‘사회’다. 그가 강조하고자 하는 핵심은 이제 우리가 사회라는 실체를 발견했다는 것이며, 국가도 시장도 이 사회라는 실체가 필요로 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제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토지·노동·화폐는 상품이 아니고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는 것이 폴라니의 기본 전제다. 이렇게 경제가 사회의 구성 요소에 불과한데도 사회에서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로 말미암아 마치 사회가 경제에 예속된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회 속에 경제가 묻혀 있어야 마땅함에도 오히려 사회가 경제에 매몰돼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경제와 사회를 구성해야 할까. 인간이 철저하게 이기적 동기로만 움직인다는 틀에서 벗어나 ‘나와 나를 둘러싼 관계가 삶을 풍요하게 하는 것’이 곧 ‘경제’라는 폴라니식 사고가 대답이 될 것이다. 또 폴라니를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같은 줄에 세우려는 것도 무리한 시도 중 하나다. 폴라니는 일생 동안 모종의 사회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22세 이후로는 주류 마르크스주의를 포함하여 모든 종류의 경제 결정론의 여러 교조들에 완전히 흥미를 잃었다. 마르크스주의의 사적 유물론이나 노동 가치론을 비판했고, 공산주의적 중앙계획경제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거대한 전환』은 70여년 전에 쓰였지만 21세기의 시점에서 지구적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딜레마를 이해하는 데 있어 그 적실성과 중요성은 오히려 더 커져가고 있다. 자유주의, 집단주의, 개인주의를 뛰어넘어 모든 지적인 이들에게 현재적인 메시지와 함께 깊은 통찰과 자극을 준다. 게다가 지극히 수사학적이며 능숙한 메타포를 구사하는 폴라니의 역동적이고 유려한 문체는 때때로 문학 작품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이 책은 전통적인 경제학에 몇 백년째 절어 있는 기존의 경제학과 경제 사상을 근본적으로 흔들 만한 거대한 명제들을 품고 있다. 그러니 이토록 복잡하고 정교하면서도 난해한 책의 내용을 단선적으로 요약하거나 정리하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폴라니의 전모를 알고 싶다면 하이에크의 가장 유명한 책 『노예의 길』과 비교하며 읽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우연의 일치로 『거대한 전환』과 같은 해에 출판된 이 책은 폴라니의 정반대 쪽에 위치하고 있다. 굳이 비유하자면 폴라니가 신자유주의의 원조 저격수라면 하이에크는 자유주의의 전투적 수호자쯤이 될 수 있겠다. 또 이참에 폴라니를 두루 알고 싶은 독자라면 최근에 나온 『다호메이 왕국과 노예 교역』과 『칼 폴라니, 새로운 문명을 말하다』를 함께 읽어도 좋을 것이다.
-끝- (기획회의 393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