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프래질 - 불확실성과 충격을 성장으로 이끄는 힘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안세민 옮김 / 와이즈베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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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의 칠면조가 되지 말자

 

안티프래질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 안세민 옮김, 와이즈베리, 2013

 

 

어떤 똑똑하고 과학적인 칠면조가 있었다. 이 칠면조는 농장에서 맞은 처음 아침 9시에 모이를 받아먹었다. 칠면조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따뜻한 날과 추운 날, 비오는 날과 맑은 날 언제나 변함없이 아침 9시가 되면 모이를 들고 꼬박꼬박 나타나는 주인을 반겼다. 칠면조는 1000일째 되는 날 자기를 향한 인간배려의 통계적 유의성이 증가하고 있다는 확신에 이른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날은 추수감사절 이브였다. 그러나 칠면조는 1001번째가 되는 다음날 아침에 먹이를 받아먹는 대신 목이 잘리게 되었다. 칠면조는 자신을 아끼는 주인에 대한 믿음이 최고조에 이르고 자신의 삶에 대해서 아주 편하게 예측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믿음을 바꾸게 된 것이다. 이런 바보 같은 칠면조가 되지 않는 것은 진정한 안정과 인위적인 안정의 차이를 구분하는 데서 시작한다. 레바논 출신의 경제학자이자 투자 전문가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의 근작안티프래질Antifragile에 나오는 버트란트 러셀의 칠면조 이야기를 각색한 비유다. 탈레브는 2009년 포브스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전문가', 금융위기를 예측한 블랙 스완Black swan으로 유명하다. 평생을 운, 불확실성, 확률, 리스크에 몰두해왔는데, 그의 예견대로 2008년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월가의 현자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그는 와튼 스쿨 시절에 확률probability’ 혹은 확률적stochastic’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제목의 책을 거의 모두 사서 읽었다고 한다. 결국 리스크는 탈레브가 가장 잘 아는 주제가 되었다.

 

책에는 블랙 스완현상, 즉 발생 가능성이 낮고 예측하기 힘들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을 가져오는 사건들에 대한 해독제로서 안티프래질을 소개하고 있다. 안티프래질은 사전에 없는 단어다. '취약한'이나 '부서지기 쉬운'이라는 뜻의 'Fragile'에 반대(대응)되는 개념으로 만든 신조어인데, 충격을 받으면 오히려 더욱 단단해진다는 뜻을 담고 있다. 안티프래질은 무작위성과 불확실성을 좋아한다. 우리는 무작위성이란 위험한 것이고, 나쁜 것이기 때문에 제거해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다. 택시운전기사, 매춘부, 목수, 배관공, 재단사, 치과의사는 소득이 일정하지 않다. 대신 소득을 제로로 만들어버리는 블랙 스완 앞에서 하루아침에 허무하게 무너지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기능을 보유한 사람들은 무작위성 덕분에 위험요소를 뚜렷하게 볼 수 있는 일정 수준의 안티프래질을 지니고 있다. 반면 안정적으로 보이는 회사원은 그렇지 못하다. 회사원에게는 위험이 숨어 있다. 그들은 인사팀에서 걸려오는 전화 한 통에 소득이 제로가 되는 끔찍한 상황을 만날 수 있다. 자연 역시 안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자연은 드물게 일어나는 일에 관한 한 가장 뛰어난 전문가이자 최선의 관리자이다. 파기하고 대체하고 선별하고 개조하는데 자연처럼 능숙한 것도 없다. 노자老子는 이를 천지불인天地不仁으로 표현했다. , 천지는 만물을 생성화육生成化育함에 있어 어진 마음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 행한다는 말이다(도덕경 5). 오히려 자연은 작은 실수를 좋아한다. 이런 실수 없이는 유전적인 변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진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측면은 오직 진화의 안티프래질적 특성 때문에 진화가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진화는 스트레스, 무작위성, 불확실성, 무질서를 좋아한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다. 안티프래질을 싫어하는 정신적인 바이어스에 휘둘려 어설픈 합리주의자, 또는 합리화하는 사람이 되기 쉽다.

 

전작인 블랙 스완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우리를 충격으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줬다. 이번 책은 이미 블랙 스완 현상이 사회와 역사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정치, 도시계획, 금융, 경제 시스템, 의학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에 대한 실천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안티프래질의 특성과 안티프래질하기 위한 방법을 소개하며 불확실성, 무작위성, 가변성을 피하지 말고 적극 활용할 것을 주문한다. 전작에 비해 사회전반이나 인간 심리적 측면에서 볼 때 훨씬 유용한 부분이 많다. 저자는 프래질에서 안티프래질로 전환하는 방안으로 바벨(운동기구) 전략을 제시한다. 이원적인 전략으로서 하나는 안전하고 다른 하나는 위험한 두 개의 극단을 조합하는 방식이다. 이는 일원적인 전략보다 더 강건하며, 때로 안티프래질로 가기 위한 필요조건이 되기도 한다. 재산의 90퍼센트는 현금으로 보유하고, 10퍼센트를 가장 위험한 주식에 투자하는 경우다. 운이 좋으면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최악의 경우에도 10퍼센트 이상은 잃지 않는다. 더 좋은 예도 있다. “회계사와 결혼하고 가끔은 록 스타와 바람을 피려는 전략, 작가가 안정적인 한직을 갖고 남는 시간에 직업이 주는 압박에 시달리지 않고서 글을 쓰려는 전략이 이에 해당한다.”(664) 핵심은, 바벨 전략은 생존을 위한 보험이라는 사실이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것이다.

 

우리는 눈을 가린 운전기사가 운전하는 버스에 타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안티프래질 이론을 요약하면, 미래에 닥칠 충격을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므로 현시점에서 추정 가능한 프래질(허약성)을 최대한 제거하고 안티프래질을 강화하라는 것이다. 부족한 정보와 부족한 이해, 즉 부족한 지식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칠면조, 멍청한 인간이 되지 않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기 위해 통계학, 철학, 수학, 문학 등을 종횡무진 넘나든다. 통계나 확률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읽어 내는데 별 지장은 없다. 책에서 저자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유명인사와 투자전문가들에 대한 비판과 독설도 서슴지 않는다. 토머스 프리드먼,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 프래질리스타라고 명명되는 유명 경제학자와 노벨상 수상자들이 탈레브에게 된통 깨지는 것을 보면 딱하다.

 

이 책은 먼저 읽는 사람이 임자다. 기본적으로는 경제경영서나 투자전략서로 분류되지만,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처하고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주는 것이 자기계발서 혹은 인간 본성을 통찰한 인문서적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깨어지지 않기보다, 깨어져도 다시 겹겹이 이어 붙이는 중층의 가변적인 삶을 환하게 내다보게 해준다. 780쪽이 넘는 벽돌책에 가깝지만 짬을 내서 꼭 독파하기를 권하는 책이다. 우물쭈물하다가 자칫 인생이 작파당할까 염려되어 하는 말이다. 일단 읽고 나면 보상이 확실하다.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서점의 자기계발서 매대에 있는 책들을 몽땅 자루에 쓸어 담고, 그 자리에 유일하게 놓아야 할 책이 있다면 바로 이런 책일 것이다. -- (기획회의 397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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