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를 신은 마윈 - 알리바바, 마윈이 공식 인정한 단 한 권의 책
왕리펀.리샹 지음, 김태성 옮김 / 36.5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마윈은 신화가 아니다

 

운동화를 신은 마윈

왕리펀·리샹 지, 김태성 옮김, 36.5, 2015

 

지난 5, 조선일보가 주최한 6회 아시안 리더십 콘퍼런스에 난다 긴다 하는 세계적인 석학과 명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었던 인물이 중국 최고의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의 마윈馬雲 회장이었다. 그를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강연장으로 몰려들었고, 언론과 방송은 그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를 퍼 나르느라 분주했다. 마윈은 2014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번 사람이다. 그해 9, 알리바바가 뉴욕 증시에 상장한 첫날 주가가 폭등해 시가총액 242조 원을 기록했을 때 월 스트리트가 떠들썩했다. 이는 페이스북, 삼성전자, 아마존보다 더 큰 규모로, 구글에 이어 세계 인터넷 기업 중 2위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쉰한 살 마윈은 재산이 356억달러(39조원)로 중국 부자 1, 세계 부자 15위로 올라섰다. 마윈의 성공담과 알리바바의 성장비결을 담은 책이 중국에서 백 권도 넘게 나왔을 정도로 마윈 열풍은 대단하다. 특히 알리바바가 뉴욕 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하며 알리바바의 해라 불린 지난해에는 매월 4종 이상의 '마윈 책'이 쏟아져 나왔다. 이중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된 책만도 10여권에 이른다. 그러다보니 그의 성공 스토리가 일반인과는 다소 멀게 느껴지며 신화처럼 비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마윈이 유일하게 공식 인정한 책이라는 선전문구가 달린 운동화를 신은 마윈은 세간의 그런 느낌을 씻어준다. 중국 CCTV에서 프로듀서 겸 진행자로 활동했고 직접 창업한 경험이 있는 왕리펀과, 경제 기자로 수년 동안 알리바바를 취재한 리샹이 함께 쓴 이 책은 마윈이 결코 신화가 아님을 말해준다. 그를 가까이에서 본 경험을 토대로 화려한 외면에 숨겨진 마윈의 깊은 내면을 끄집어내며, 알리바바를 탄생시킨 27가지 결정적 전환점과 성장과정을 조목조목 짚어준다. 책 제목은 마윈이 공식적인 자리를 제외하고는 평소 운동화를 즐겨 신는다는 마윈의 운전기사 말에서 따왔다. 책 출간 후 중국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운동화를 신는 게 유행이 됐을 정도다.

 

책에는 마윈과 알리바바의 창업과정을 담은 흥미로운 일화가 가득하다. 마윈은 162의 작은 키에 잘 생긴 것도 아니고, 배경도 변변찮고, 젊었을 때는 취업에 서른 번 넘게 미끄러졌다. KFC와 경찰시험에서는 지원자 중 혼자만 떨어졌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7년 동안 세 번이나 망했을 정도로 창업에서도 실패를 거듭했다. 마윈은 1995년에 중국 항저우 정부의 업무를 처리하러 미국 시애틀에 파견됐던 30대 시절에 친구 사무실에서 처음으로 인터넷을 접했다. 당시로서는 최고사양이던 486 컴퓨터를 들고 중국으로 돌아온 마윈이 처음 전자상거래 회사를 세우겠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그를 보고 다들 미쳤다고 했다. 중국은 얼굴을 맞대고 거래하는 '관시關係'로 돌아가는 나라인데 인터넷 거래가 어떻게 가능하냐며 모두가 말렸다. 그러나 마윈은 1999년에 동업자 17명의 주머니를 턴 8800만 원으로 알리바바를 창업했다. 자금이 충분치 않다 보니 오피스텔을 얻지 못하고 호반가든의 150평방미터 남짓한 집에 사무실을 차렸다. 이곳은 지금 실리콘밸리에서 애플이나 구글 같은 기업들의 차고Garage’창업 신화처럼 알리바바의 혁신과 기업가 정신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다. 알리바바는 16년에 걸쳐 쇼핑·B2B(기업간거래결제·금융을 아우르는 세계 최대 종합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성장했다. 직원도 34000명으로 늘어났다. 현재 알리바바는 중국 온라인 쇼핑 시장의 80%를 장악했을 뿐만 아니라, 게임금융물류 등으로 사업 영역을 공격적으로 확장해가고 있다. ‘알리바바라는 회사명 역시 범상치 않다. 마윈은 샌프란시스코로 출장을 갔다가 길거리에서 우연히 그 이름을 보았다. 마윈은 자기 테이블로 커피를 날라다 준 여종업원에게 혹시 알리바바를 아느냐고 물었고, 그녀는 당연히 안다면서 열려라 참깨!’라는 뜻 아니냐며 대답했다. 마윈은 내친 김에 길거리에서 국적이 다른 60여명의 외국인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들 모두는 알리바바의 뜻을 알고 있었으며, 매우 희한하고 재미있는 이름이라고 답변했다. 마윈은 즉석에서 회사 이름을 알리바바로 정했다. 마윈은 이렇게 엉뚱하고 기발한 면 이외에도 탁월한 이야기꾼이자 어록 제조기로도 유명하다. “이베이는 바다에 사는 상어이고 우리는 양쯔강에 사는 악어다. 바다에서 싸웠다면 당연히 우리가 졌겠지만 강에서 붙었기 때문에 우리가 쉽게 이길 수 있었다”. 미국 최대 온라인 쇼핑회사인 이베이를 상대로 경쟁할 때 마윈이 했던 이 말은 지금도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마윈은 못 말리는 진융(金庸·김용) 팬이다. 자신의 상상력의 원천으로 주저하지 않고 진융의 무협지를 꼽는다. 진융은 케임브리지대 역사학 박사이면서 무협작가로서 마윈에겐 셰익스피어 같은 존재다. 그는 20여 년 동안 영웅문을 비롯한 무협소설을 쓰며 무협지를 중국을 대표하는 대중문학 장르로 끌어올렸다. 마윈은 회사의 가치 체계를 그의 소설에서 따서 짓고 화산논검華山論劍을 모방한 인터넷 기업가 모임인 서호논검대회를 개최하는 등 진융 소설을 전략전술과 기업문화에 응용하고 있다. 집무실과 회의실을 무협지에 따서 이름 짓는 등 사무실을 온통 무림의 성지로 꾸몄다. 그밖에도 마윈이 6분 만에 소프트뱅크 창업자 손정의로부터 2000만 달러의 투자를 받아낸 드라마틱한 장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나 마찬가지였던 최강 기업 이베이와의 대전을 승리로 이끈 믿기지 않는 실화 등 눈길을 끄는 대목이 많다.

 

그러나 책에는 마윈과 알리바바의 성공신화만 있는 게 아니다. 예상치 못했던 고난, 사기꾼이라는 뭇매를 맞았을 때의 고통과 난처함, 회사의 사활이 걸렸던 결단의 순간 등 지난 16년의 영욕과 부침이 가감 없이 그려져 있다. 이 책 한 권으로 마윈과 알리바바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마윈은 한국에서 보던 여느 기업가들과는 분명 다르다는 것이다. 알리바바를 102년 역사를 가진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며 마윈은 운동화 끈을 다시 조이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알리바바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경영은 살아 있는 인문학이라는 말에 동의한다면 마윈이 그토록 좋아한다는 진융의 무협소설을 다시 찾아 읽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서재 어딘가에 먼지를 폴폴 날리며 책들이 웅크리고 있을지 모른다. 사람들의 가장 깊숙한 마음 속에 있는 결핍과 욕망을 인문적 관점에서 읽어내는 데는 문학이나 역사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마윈에게서 우리가 훔쳐 와야 할 것은 어쩌면 그것인지 모른다. -- (기획회의 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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