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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필사 - 나를 다시 꿈꾸게 하는 명시 따라 쓰기 ㅣ 손으로 생각하기 1
고두현 지음 / 토트 / 2015년 6월
평점 :
마음이 환해지는 필사 책
『마음필사』
고두현 지음, 토트, 2015
지난주에 나흘 동안 백두산과 연길을 여행했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 환하게 천지를 볼 수 있었다. 천지에 가서도 천지를 못보고 돌아서는 ‘천치’꼴은 면할 수 있었으니 운이 좋았다. 모처럼 책상 앞에 앉아 ‘나를 다시 꿈꾸게 하는 명시 따라 쓰기’라는 부제가 붙은 『마음필사』를 펼친다. 오호라! 필사 책이구나! 좋은 글 따라 쓰는 ‘손으로 생각하기’ 시리즈의 첫 책이라고 한다. 그렇지 필사는 ‘손으로 생각하기’가 맞지. 표지의 만년필 사진의 서늘한 펜촉에서 몸호강을 한 백두산 천지의 청량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듯해서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렀다.
고두현 시인이 저자다. 전에 그의 시집 <늦게 온 소포>와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를 읽고, ‘그러면 그렇지 풍광이 아름답기로 둘째가라면 서운해 할 남해 금산에서 나고 자랐으니 천생 시인일 수밖에 없겠지’ 했던 적이 있었다. 더구나 초등학교 어린 시절 중에 1년을 보리암 아래 작은 절에서 청설모처럼 쪼르르 쪼르르 뛰어 놀았다고 했으니 말 다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좋은 인연으로 시인을 겪어보니 사람이 시를 쓰는 것이지 어찌 태어난 고장의 인연만으로 시가 나올까 하고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다. 시에 대해서 과문한 내게도 고시인의 시를 가리켜 ‘잘 익은 운율과 동양적 정조’가 잘 어울린다고 말하는 것이 들렸는데, 그게 무엇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먼 바다를 백지 삼아 책갈피 속의 명문장들을 옮겨 쓰고, 아름다운 시를 베껴 적으며, 자연으로부터 문학수업을 받았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펜촉의 둥근 질감과 종이의 미끄러움 사이를 반듯하면서도 늘씬하게 왕복하는 세련미와 편안함이 겹쳐진 느낌이 책에서 묻어나는 것이 이와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첫 장을 넘기니 만년필을 쥔 굳고 단단한 손을 찍은 흑백의 단아한 사진이 버티고 서있다. 그 곁에 쓰여 있는 말이 이렇다. “온 몸으로 좋은 시와 명문장을 따라 쓰다 보면 어느 새 우리 몸과 마음도 함께 맑아진다.” 환해지고 불끈해지는 글귀다. 백두산 길목에서 살까말까 망설이다 그만 둔 장뇌삼 뿌리보다 몇 배나 더 기운을 북돋우는 말이다. 수많은 문호들이 고전을 필사하며 습작기를 보냈듯이, 우리도 필사적으로 필사하며 인생의 비수기를 견디어 내면 된다. 이른바 필사필사必死筆寫! 세상에 무엇인가를 매일하는 것처럼 무섭고 힘센 것은 없다. 실천은 늘 간단하고 명료하다. Just do it! 이게 전부다. 그러나 늘 어렵다. 매일하지 않기 때문이고, 하다가 그만두기 때문이다. 의지는 약하고 습관은 강하기 때문에 매일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다. 저자가 매일 한 시간씩 쓰는 것을 권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냥 필사가 아니고 ‘마음필사’다. 마음에 방점을 찍은 책이다. 그러니까 읽는 책만이 아니고 읽고 쓰는 책이다. 청춘, 진짜 나이, 햇살에게, 풀, 낙화, 귀천 같은 저자가 공들여 뽑아낸 동서양 명시를 비롯한 보석 같은 총 91편의 명문장이 마음을 환하게 밝혀 준다. 오른쪽은 우리 손목이 행복하게 머물 수 있도록 적어도 42일간의 여백을 남겨 놓았다. 한양대 유영만 교수의 추천대로라면 필사는 애무다. 그러니 처음에는 너무 힘을 주지 말고, 부드럽게 시작하자.
나는 고두현 시인의 시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한 여름’을 가장 먼저 따라 썼다. (원래는 ‘늦게 온 소포’를 먼저 좋아했는데, 언젠가 문학다방 <봄봄>에서 가수 김현성 형이 곡을 붙여 부르는 노래를 듣고 마음을 바꿨다.)
남녘 장마 진다 소리에
습관처럼 안부 전화 누르다가
아 이젠 안 계시지----
내일부터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고 하는데 장맛비인지도 모르겠다. 저녁에 북코러스 낭독 모임 가는 길에 문방구에 들러 잉크부터 사야지. 한동안 쓰지 않았던 만년필에 잉크 가득 채우고 매일 매일 한 장씩 마음을 눌러야겠다. 그리고 메르스 때문에 걱정하실까봐 백두산 여행도 말씀 못 드리고 다녀왔는데 시골에 계신 엄니한테 전화부터 드려야겠다. 그러고 보니 『마음필사』는 사람을 착하게 만드는 책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