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나라 도둑 - 김주영 상상우화집
김주영 지음, 박상훈 그림 / 비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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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유년시절의 향기가 나는 책이 있다. [달나라 도둑]은 그 향내가 더 짙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재학 중일 때 처음으로 학교도서관이 생겨 일주일에 2시간 씩 그곳에서 책을 읽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때 봤던 도서들은 물론 어린이용 전래동화나 별자리 이야기, 위인전이 주를 이뤘는데 그 책들은 어떤 미사여구도 없이 상황을 항상 간결하게 설명했었다. 호랑이는 동아줄이 끊겨 죽었다 , 차돌이는 행복하게 잘 살았다. 등등 지금 생각해보면 잔인한 이야기도 유쾌한 이야기도 하나같이 간결하게 설명했지만 난 그 얘기에 웃고 울었던 것 같다.

[달나라 도둑]에서 느낀 것도 그 문체였다. 하지만 깊이가 있었다. 한 이야기 당 2장정도의 짧은 이야기지만 어찌나 많은 것이 담겨있는지 하나의 이야기를 읽고 생각하느라 다른 책보다 읽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소요했을 정도였다. 이야기는 언뜻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코끼리를 든 소년이야기나 마침내 인어가 된 그녀이야기 등등 현실 속엔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지만 우화란 것이 원래 사람을 아닌 것을 의인화하여 교훈을 주거나 작가의 철학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히려 작가의 상상력이 놀라웠고 그 여운을 남기는 맛이 좋았다.

가장 그리운 것은...이나 궁핍한 골목길에 든 햇빛을 볼 때는 내가 자랐던 동네가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어린 시절 쑥을 캐러 작은 몸을 이끌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던 뒷산과 곤충을 잡으러 매일 출근하다시피 한 동네 약수터, 초여름이면 동네 가득 퍼졌던 아카시아 냄새, 주인 몰래 들어가 구경하곤 했던 칠면조 농장, 좁고 지저분했지만 친구들과 신나게 술래잡기, 고무줄놀이를 하며 놀았던 구불구불 엉켜있던 골목들. 지금은 개발되어 그 곳에 아파트가 들어서 살기 좋아졌다 어른들이 말씀하시지만 난 떠난 뒤 한 번도 그 곳을 찾지 않았다. 내 추억이 흐트러질까 무서웠기 때문이다. 작가의 글은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줬고 그 추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항상 내 곁에 있을 것이라는 걸 알게 해줬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번뜩이는 표현력에 깜짝깜짝 놀랐다. 지하철을 잠망경 없는 잠수함이라고 표현한다든가 우화의 형식을 빌린 통렬한 비판까지 정말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작가가 서문에 이 책이 우화적 지혜가 모자라는 자신에겐 무척 힘든 작업이었다고 말했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상의 소재와 속설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내는 힘이 이 책에 있기 때문이다.

책은 5가지 주제로 각각 길, 소년과 소녀, 이야기, 인생, 꿈이란 제목이 붙어있다.

총 62편의 이야기가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흔들어 놓을 지는 읽어봐야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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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표류기 - Castaway on the Moo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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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저녁 8시가 넘은 시간. 30분 째 기다린 친구가 거의 다왔다며 급하게 전화가 왔다.
오후에 갑자기 약속을 잡은 터라 영화를 예매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원래 보기로 한 영화는 너무 늦은 시간에 상영하는 바람에 다음날이 걱정돼 또 다른 친구와 영화상영표를 보며 고민하던 중 『김씨표류기』가 생각났다. 시사회 평점이 꽤 좋았던 걸로 기억해서 보고 싶은 영화 일 순위까지는 아니었어도 극장에서 내리기 전 꼭 보리라 다짐했던 영화이기도 했다. 늦게 표를 끊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사이드 좌석에 앉게 됐지만 영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우리는 즐겁게 영화 관람을 시작했다.

감독 이해준.

처음 영화를 보기 전, 감독에 대해 많이 알아보는 편이다. 감독 스타일을 요리조리 살펴보고 전작들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했던 것이다.『김씨표류기』의 감독이 이해준 씨라는 걸 알고 옳거니! 하고 외친 건 나 뿐 만이 아닐 거다. 전작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여자가 되고 싶어 수술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씨름을 하는 남자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우리나라 성장영화의 자존심을 세워준 감독이 아닌가. 비록 『김씨 표류기』가『박쥐』와 『마더』사이에 개봉이 되어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고 있다지만 3년 전에도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와 『괴물』사이에 개봉됐다고 한다. 그래도 두 영화와 전혀 다른 스타일로 지금까지 사람들 사이에 화자 되고 있으니 이만하면 큰 성공이 아닐까?
감독 이해준은 전작에서 남다른 소재로 전 세대가 공감 할 수 있는 따뜻한 영화를 만들어 냈다. 이번 작품『김씨 표류기』도 남다른 소재로 판타지지만 사람사이의 연대감을 강조하는 따뜻한 영화다.


그 남자 김씨 이야기

대출 빚은 산더미처럼 늘어가고 여자 친구는 떠나버렸다. 한강 다리 위에 서있던 남자, 미련 없이 한강에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의 자살시도는 그가 밤섬에 흘러가게 되면서 불발로 끝났다. 처음엔 섬에서 나가기 위해 못하는 수영도 해보고 유람선의 관광객에게 도움을 요청해 보지만 모두 실패하고 휴대폰의 배터리도 나간 상황.

 밖에 나가봤자 좋은 일 하나 없고 남자 김씨는 밤섬에서 살기로 결심한다. 식량? 옷? 식량이야 구하면 되고 어차피 여름이니 옷도 신경 안 써도 되고. 남자 김씨는 아무도 자신을 보지 못할 거란 확신 하에 기세등등하게 외친다. 나 여기 있다고!!

  여자 김씨 이야기

3년 째 방에서 나오지 않는 그녀는 은둔형 외톨이이다. 몇 번의 클릭만으로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인터넷이 여자 김씨의 세상 전부다. 유일한 취미인 달 사진 찍기를 하던 어느 날 밤, 그녀의 눈에 밤섬에 살고 있는 외계생명체가 포착된다. 그리고 변태이며 더러운 걸 좋아하는 외계생명체를 지켜보는 것이 여자 김씨의 은밀한 즐거움이 되어간다.  열심히 살아가는 그를 보며 그녀는 그와 일촌을 맺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에게 말을 걸기 위해 3년 만에 외출을 감행한 그녀. 과연 그녀의 외출은 성공 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상영시간 대부분을 주연배우 두 명이 이끌어 간다. 처음에 원맨쇼처럼 오버스럽다고 느껴진 정재영의 연기도 주인공 여배우라기엔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병색이 완연해 보이는, 정려원의 연기도 영화를 보는 사이에 어느 샌가 영화 속으로 녹아내려갔다.

사실 영화를 보기로 한 결심에는 배우 정재영에 대한 믿음도 있었다. 정재영은 감독이 누구든지 간에 그 영화를 자신만의 영화로 만들어 낸다. 그게 나쁘냐 하면 또 그건 아니다. 전에 장진 감독이 TV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시나리오를 돌리다가 안 되면 최후의 보루로 정재영에게 보낸다고. 농담처럼 얘기 했지만 장진 감독도 정재영이라면 자기영화의 인물을 독보적인 정재영표 캐릭터로 만들어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또 정려원은 여배우라면 선택하기 힘든 캐릭터를 잘 소화했다. 영화를 위해 살을 많이 뺐다고 들었는데 어찌나 말랐던지 영화 보는 내내 안쓰러웠다. 하지만 창백한 피부와 깡마른 몸에서 나오는 연기가 이 역에 정려원이 아니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만큼 잘 어울렸다. 지금 사극 자명고에 나오고 있지만 이 여자 김씨역이 훨씬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좋은 감독과 좋은 시나리오, 그리고 연기에 대한 노력만 있다면 계속 성장 할 수 있는 배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씨표류기』엔 외설적인 장면이라든가 심한 욕설이 나오지 않는다. 온가족이 손잡고 관람 할 수 있는, 모든 연령이 보고 공감 할 수 있는 가족영화다. 입소문이 퍼지면 가족단위로 많이 보러 갈 것 같은데 앞서 말했듯이 시기가 어설프다. 워낙 대작들 사이에 끼어있어서 이대로 묻히진 않을까 걱정이 된다. 한달이나 두달 먼저 개봉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해보지만 영화를 보고 온 사람들이 괜찮은 평을 인터넷에 올리고 있으니 (나를 포함해서) 앞으로 어떤 선전을 해줄지 기대가 된다. 감독 인터뷰에서 이해준 감독이 박찬욱 감독과 봉준호 감독과 작업시기가 3년 단위로 같은가 보다고 다음엔 작업시기를 바꾸겠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걸 듣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도 다음엔 꼭 시기를 잘 선택해 개봉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렇게 잘 만든 영화는 꼭 흥행해줘야 하는 법이니까.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모두 고립된 섬에 표류하는 사람들이다. 희망 없는 세상에서 사는 건 너무 힘들다. 나만의 섬에서 “나는 만족해” 하고 자기위안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지만 누군가 와 이곳에서 꺼내 주기를 바라고 있진 않은가? 영화에 나오는 두 김씨들은 각자의 섬을 표류하는 외로운 사람들이었지만 서로를 알아봤을 때 용기를 내어 다가간다. 그 모습에 행복함을 느낀다는건 우리의 감성이 아직 메마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건 아닐까.

 남자의 빚은 어떻게 될까. 두 남녀는 연인이 될 수 있을까라는 소소한 궁금증이 남았지만  영화는 참 만족스러웠다. 나도 오랜만에 희망의 냄새를 맡은 것 같았으니까. 웃음으로 무장했지만 그 속에 담겨진 희망의 기운을 숨길 수 없는 영화, 많은 분들이 보고 나와 같은 감동을 느꼈으면 좋겠다.


+) 여담이지만 밥을 안 먹고 영화를 봐서 그런지 짜장면이 나오는 장면에서 배가 많이 고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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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프루프
에릭 윌슨 지음, 김진선 옮김, 알렉스 켄드릭.스티븐 켄드릭 원작 / 살림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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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마 전에 종영한 [사랑과 전쟁] 이라는 TV 프로그램을 열심히 시청한 적이 있었다. 매주 다른 이유로 이혼을 신청한 부부들을 보면서 막연하게 결혼이라는 것이 정말 어렵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 당시엔 어려서 TV를 시청하며 막연한 두려움을 키워왔다면 지금은 잘 모르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주위에 결혼한 친구들은 늘어가고 조카들도 태어나지만 아직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과연 내가 어떤 한 남자를 만나 부부로 살 수 있을까란 의문과 함께 내 남편과 아이들로 이루어진 내 가족들을 상상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파이어 프루프는]를 보기 전에도 같은 생각을 했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인 결혼과 종교, 두 가지를 잘 이해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하지만 이게 웬걸, 책은 생각보다 종교색이 강하지 않았고 기대보다 훨씬 재밌어서 그야말로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다.


친구와 부부는 엄연히 다르다. 너무나 가까운 사람이기에 더 조심해야할 말이 있고 행동이 있다. 또 한 지붕아래에서 두 사람의 사이가 멀어져 눈도 마주치지 않거나 만나기만 해도 싸움을 한다면 같이 산다는 것만으로 고역일 것이다. 책에 나오는 부부가 그렇다. 분명 캘럽 홀트와 캐서린 홀트도 처음에는 여느 사랑을 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서로에게 호감을 가졌고 사랑한다는 확신 하에 사람들 앞에서 영원한 사랑의 맹세를 했다. 하지만 7년이 지난 후에 캘럽과 캐서린은 남보다도 못한 부부가 되었다. 둘은 식사를 같이 하지 않고 휴일도 함께 보내지 않는다. 캐서린은 캘럽이 월급을 빼돌려 보트를 구입할 비용을 마련하는 것을 쓸모없는 짓이라고 생각하고 캘럽은 캐서린이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둘의 골은 깊을 대로 깊어져 만날 때 마다 상대방을 빈정거리고 무시하다가 부부는 급기야 이혼까지 생각하게 된다.


“절대 파트너를 홀로 내버려 두지 말라” 의 이중적 의미


책의 결말은 이미 눈치 채고 있었다. 그렇지만 결말로 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분명 난 여자기 때문에 캐서린에게 감정이입 할 거라 생각했었는데 이상하게도 남편과 아내 둘의 입장이 다 이해가 갔다. 장모의 의료기구가 절실한 상황에서 자신의 유희를 위해 월급의 3분의 1을 보트를 구입하기 위해 저축하고, 아내가 뻔히 있는데도 이상한 사이트에 들어가는 남편에게 실망하는 캐서린의 입장, 그리고 집 밖에서는 생과 사를 넘어가며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해 영웅대접 받는 캘럽이 자기 자신을 집 안에서는 아내에게 무시당하고 존중받지 못하는 남편이라고 여겨 그것에 상처입고 화를 내는 입장.

또 절대 파트너를 홀로 내버려 두지 말라는 글도 인상 깊었다. 파트너란 책의 주 무대인 소방서에서 소방 활동을 할 때 짝을 이루는 파트너와 부부에서 상대방을 가리키는 파트너 두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다. 캘럽은 캐서린이 자기의 인생파트너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결국 캘럽은 그의 아버지의 권고에 따라 40일 동안 ‘사랑의 도전’을 하면서 그 사실을 점점 깨달아 가게 된다. 마음을 보여 주는 것, 그리고 진심으로 상대방을 대하는 것은 어떤 관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사랑의 도전’ 을 신앙의 힘으로 시작했다기보다 40일이 넘는 시간동안 그 일들을 하나하나 실천 했다는데 의의를 두고 싶다. )


저자에 따르면 파이어 프루프(Fire Proof)는 말 그대로 방화벽이라는 말이지만 단순히 불을 예방한다는 뜻이 아니라 화재가 났을 때 그것을 견뎌낼 수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모든 결혼은 일종의 ‘화재’를 만나 위기에 처할 경우가 있기 때문에 결혼생활을 굳건히 지켜줄 방화벽이 필요함을 이르는 말일 것이다. 아직 결혼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보지 못했지만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마음이 통하고 언제까지나 함께 있고픈 게 인생파트너라면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책 뒤엔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상세한 후기와 영화의 장면이 몇 장 실려 있다. 모든 등장인물이 책을 보면서 상상했던 인물들과 정말 비슷했다. 영화가 먼저 만들어지고 책이 뒤에 쓰여 그럴지도 모르지만, 책을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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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정치학 - 와인 라벨 이면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 '최고급'와인은 누가 무엇으로 결정하는가
타일러 콜만 지음, 김종돈 옮김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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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난 와인에 대해 잘 모른다. 프랑스가 와인으로 유명하다는 누구나 다 아는 상식만 갖고 살아온 지 오래다. 와인에 대해 잘 알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만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내게 와인은 그냥 술의 일종으로만 보였다. 와인을 마시는 일이 요 몇 년 새 유행하면서 누구나 읊는 와인 이름을 나만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맛있다는 와인이 왜 내 입에만 쓰게 느껴지는지도 궁금했다. 서로가 통해야 진정 서로를 이해하는 법. 난 와인을 정복해 보자는 거창한 포부까지는 아니었지만 어디 가서 와인의 대해 상식을 뽐낼 수는 없을 까라는 다소 불순한 의도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와인의 정치학?!

사실 어떤 재화든 정치적 세력은 존재해왔다. 돈이 되는 것엔 사람들이 몰려온다. 당연한 이치지만 이 책은 와인에 대해 다루고 있어 흥미롭다. 요즘 와인의 대중화로 가격이 저렴한 와인들도 더러 있지만 와인이라는 것이 아직까지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컵대를 잡고 우아하게 마시는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또 보관하는 장소나 온도에 따라 크게 변질되는 까다롭고 새침한 술이니 대체 어떤 과정에 정치적 요소가 자리 잡고 있는지 궁금했다.

 책은 우선 ‘와인의 나라’ 로 알려진 프랑스에 대해 다루고 있다. 프랑스 와인의 역사가 긴 만큼 그 명성을 지키기 위해 생산자나 국가 모두가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처음부터 와인이 프랑스에서 보편적이진 않았다고 하는데 와인이 생산되는 지역은 풍부하게 즐겼지만 그렇지 못한 지역은 와인을 그다지 즐기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 철도가 들어오면서 상황은 크게 바뀌게 된다. 교통의 발달과 수요의 팽창으로 와인산업은 황금기를 맞이하게 되고 그 시기가 정점에 다를 때 쯤 13억병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을 수확한다.

 이때 이 와인들을 바다나 육지를 이용해 운반했던 중개인들이 점점 권력을 얻게 된다. 그들은 나폴레옹 3세의 요구에 따라 생산되는 와인을 61개의 서열로 나누게 되면서 과도한 권력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 서열이 와인의 품질이나 생산되는 토양을 대상으로 한다기보다 제조업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고급와인으로 분류된 생산업자가 땅을 계속 매입해 와인을 생산할 경우 새로운 땅에서 난 와인들을 이전의 낮은 가격에서 높은 가격의 라벨을 붙여 팔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에서의 와인의 역사는 프랑스와는 전혀 다른 출발을 한다. 자연적으로 와인을 만들어 왔던 프랑스와는 달리 인공적으로 들여왔고 와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도 싸워야 했다. 포도나무뿌리진디와의 전쟁이라든가 교통발달로 인한 와인산업의 성행, 시장의 안정화 등 대부분이 프랑스와 비슷한 과정을 밟아왔지만 결정적으로 달랐던 건 주정부의 태도였다. 뿌리나무진디로 와인산업이 타격받고 많은 생산업자들이 파산했지만 주정부는 이런 상황에 개입하거나 조사를 하지도 않은 것이다. 철저하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생산업자들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성공을 거두고 30여 년간 미국을 휩쓸었던 금주령에서도 살아남았다.

 1970년 대 들어 와인이 중요산업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미국에서도 원산지표시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떼루아를 중요시 여겼던 프랑스와는 달리 모든 포도가 그 지역에서 날 필요가 없었고, 이 지역에서 재배된 포도로 만들어진 와인은 라벨에 그 사실을 표시 할 수 있었다. 포도품종이나 수확량이나 와인 제조의 독특한 관행보다는 표시된 땅에서 나는 85%의 포도만 사용해도 그 지역의 명칭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 지역이 너무나 광범위 했다는 것에 있었다.

 현대에 들어 와인의 원산지 시스템이 혼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원산지시스템은 여러 단체와 와인제조업자들이 엮이면서 아직 예전의 원산지 시스템만을 고집하고 있었다. 하지만 점차 개혁자들이 나타나면서 프랑스 포도재배문화의 윤리적이고 책임 있는 모습을 요구하고 있다.
 결국 이 시스템을 지탱하고 있었던 것은 개인이나 집단의 최대 이익보다는 집단에 이익이 골고루 돌아가길 바라는 사람들의 바람이었던 것이다.

 여러 흥망성쇠를 겪고 와인의 사업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유럽연합과 미국의 와인명칭과 와인무역에 대한 원만한 협의, 그리고 프랑스에서의 와인제조와 홍보방법에 대한 유연한 규칙 등 느린 변화지만 여러 곳에 거미줄처럼 늘어져 있는 이권을 생각하면 그 시도는 놀라울 만하다.

 책을 읽고 나니 와인을 마시고 싶어졌다. 한 잔의 와인이 유통업자나 생산자, 판매자, 평론가 같은 사람들이 유기적으로 만들어낸 정치적 메커니즘의 결과일터이니 알고 마시는 것과 모르고 마시는 것, 맛의 차이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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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와인정치학'을 통해 맛본 와인의 애달픈 사연
    from 토토의 느낌표뜨락 2009-07-04 13:39 
    와인은 매혹적인 호기심으로 달콤함에 이끌리고... 정치는 권력의 내음이 물씬 풍기는 검은손의 압박에 숨이 막히는... 이 둘의 느낌을 한꺼번에 합쳐놓은『와인정치학』이란 제목이 던지는 상반된 느낌에 이끌리어 딱딱하면서도 꽤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에 위드블로그 도서캠페인에 선뜻 응했는데... 책을 읽는 내내 느낌은 제가 상상한대로였건만 결코 쉽게 읽혀지는 책은 아니었습니다. 뇌로는 눈으로 따라가는 활자에 맞춰 영상을 만들어내고 있었지만, 가슴으로는 좀..
 
 
 
[이벤트]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이벤트 종료)

  

 

 

 

 

 

 

 친구들과 급하게 약속을 잡고 영화를 보러가기로 한 목요일. 

 예매를 안하고 가서 그런지 평일인데도 줄이 꽤 길게 서있었습니다. 줄을 선건 저녁 8시인데 원래 보기로 한 '박쥐'는 9시 25분이나 되서야 상영하더군요. 타협 끝에 선택한 건 '김씨 표류기' 였습니다. 사실 재우 정재영씨 좋아하는 저의 강력한 요구때문이었지만 시사회 평점이 좋아 영화에 대한 기대감도 한껏 높아져 있기도 했습니다.^^  

사실 처음 시작은 예상과 달랐습니다. 상영한지 10 여분이 지나가자 친구들의 눈치가 좀 보였습니다. 빵빵터지는 웃음을 처음부터 기대했거든요. 하지만 점점 시간이 가면서 역시나로 바꼈습니다. 감독님이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든 이해준 감독님인건 알고 있었는데 이 영화도 정말 따뜻한 분위기가 영화 전체를 감싸고 있습니다. 전작에서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아이에 대한, 소수자에게 보내는 따뜻함이 있었다면 이 영화에서는 또 다른 소수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실제 이런 일이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시면 안됩니다..^^

 주인공 중 한 명인 정재영씨. 정재영씨는 어떤 영화를 찍던 정재영표 영화를 만들어 버립니다. 감독이 다 다른데도 말이죠. 이 분은 시나리오를 선택하시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것 같습니다. 뭐랄까.. 엉뚱하지만 희망을 주는 메시지들이 곳곳에 숨어 있어 계속 미소를 띠면서 보게 만듭니다. 또 영화에서 밤섬에 표류하면서 겪는 일들을 어찌나 능청스럽게 연기하는지 정말 감탄스럽습니다.

정려원씨는 지금 나오고 있는 드라마 자명고보다 훨씬 연기를 잘해서 의문이었습니다. 결국 사극과 현대극의 차이였을까요? 모든 우려와 달리 흡족한 연기를 보여주고 여배우로서 이렇게 망가지는 연기를 하기 힘들었을 텐데 그 선택에 박수를 보냅니다. 

지금 보니 두 주연배우 모두 정씨네요~ 영화에서는 두 김씨로 나오던데 우연의 일치일까요?  

영화 광고나 단편적인 내용으론 이 영화의 진가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밤섬에서 주인공이 어떻게 살아남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꼭 보셔야 합니다.  

참, 영화 보시면 짜장면 엄청 드시고 싶을 거예요~ 영화 보고 식사로 짜장면도 꼭 드시길~ ^^  


 

영화 보면서 궁금했던 뾱뾱이 침대 감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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