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인의 반란자들 - 노벨문학상 작가들과의 대화
사비 아옌 지음, 정창 옮김, 킴 만레사 사진 / 스테이지팩토리(테이스트팩토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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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홀로코스트, 노예제도, 독재정부, 아파르트헤이

트 같이 보편적인 인간성을 파괴하는 집단적 마취에 순응하지 않았던 작가들이라는 공통점을 어

렴풋이 엿 볼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문학 대가들과의 인터뷰는 너무 단편적이고 그들의 작품

과 세계관, 그리고 현실 생활과의 연결성이 부족하여 모든 코스 요리가 다 나왔는데도 메인 요리

를 기다리는 난감한 심정이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들의 책을 알라딘에서 검색하는 재미가 솔솔하긴 했다. 작가들의 사진, 특히

손 사진은 주름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추가로 바르가스 요사가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물리적 다툼

으로 절교를 했다는 부분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내가 알기에 둘 다 현실 정치에 상당히 발을 담

그고 있었기 때문에 분명히 정치적 견해로 물리적 충돌이 있지 않았나 싶다.

 

결론적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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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전집 6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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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 책은 내 대학시절 인문학을 전공하는 새내기들의 입문서나 다름 없었다. 90년대 대학은 세상

을 정치적으로 옳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집단 이데올로기로 무장 된 세대와 세상의 불확실

성과 우연성으로 상징되는 개인주의적이고 동시에 탈 정치화된 새로운 세대가 공존하는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학교 앞 정문에서 오로지 마스크 하나에 의지하여 공권력과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는  

학생들 옆으로 누군가는 어제 본 TV에 나온 영화배우에 대해 흉을 늘어 놓았고, 또 누군가는 점

심때 먹은 김치찌개 맛이 형편 없었다고 투덜대고 있었다.

 

90년대 이전 대학도 마찬가지였을까? 아니다, 분명 차이점이 존재한다. 70~80년대 대학 교정은

참여 하지 않는 자들을 이유 없이 (사실 이유는 분명했다. 적은 드러나 있었고 바로 그들 옆에 있

었다) 죄책감과 채무감으로 빠지게 하는 시대적 양심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이었지만

90년대 정치적 이념은 선택 사항, 즉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좋으냐 싫으냐는 선호의 문제였다.

 

두서없이 옛 시절에 대한 장광설이 길어진 이유는 바로 90년대 대학 교정이 이 소설의 골자가 되

는 무거움에서 가벼움으로의 이전, 아니 공존하는 광장이었기 때문이다. 무거움은 부정적이며

밀란 쿤테라가 지칭하는 전체주의적인 키치 왕국의 속성이다. 이 곳에서 대답은 미리 주어져 있

으며, 모든 새로운 질문은 배제된다. 따라서 전체주의 키치의 진정한 적대자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인 셈이다 (P411). ‘키치라는 개념이 확실히 잡히지는 않지만 이 책에서 키치는 절대적인 선

이나 정의에 대한 집단적인 동의나 믿음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소설에서 토마시를 선동하는

키 크고 마른 기자가 바로 키치의 전형이며 주범이다.

 

반면 가벼움은 긍정적이면서 동시에 거짓이며 속이는 것이다. 토마시의 연애편력은 가벼움이며

테레사의 집착과 정조 개념은 무거움이다. 토마시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테레사를 옆에 두고 여러

여자들과 몸을 섞는다. 에로티시즘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이며 자신의 바람기는 테레사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레사로 인하여 토마시의 에로틱한 우정의 불문율은

처음으로 금이 가기 시작한다. 반대로 테레사는 토마시의 바람기에 괴로워 하지만 나중에는 그의

바람기를 배우고 싶어 자신을 성적 욕망에 맡겨 버린다.

 

그래서 가벼움과 무거움의 결과는?

사랑, 질투, 욕망, 섹스는 가벼움이며 정치, 윤리, 종교, 사상은 무거움이다. 가벼움과 무거움을 굳

이 비교하자면 작가의 정답은 책 제목에 이미 나와 있다. 운명론적, 결정론적 관점은 인간 존재의

우연성, 불확실성과는 애초부터 맞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이 소설은 다음의 문장으로 요약 될 수 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은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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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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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우선 이름부터 매력적이다. (물론 남미씩 스페니쉬 이름 앞에서 대책없이 무장 해제되는 나의 취향을

감안하더라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호르레 루이스 보르헤스' 이름은 정말 환상적이지 않은가?)

남미 작가들의 이국적인 이름에서부터 뭔가 신화적이고 마술적인 분위기에 쉽싸여서 그런지, 난 지금까지

모든 남미 소설에서 현실의 부조리를 정면으로 상대하기 보다는 고의적으로 비현실성을 강조하면서 현재를

항상 과거와의 연속적인 연결고리로 해석하려는 순환적인 역사관의 공통점을 발견하였다.

 

물론 이 소설은 전통에서 일정 부분 벗어나 있지만 유머, 장난, 또는 풍자라는 도구로 비현실적인 상황을

빗대어 현재를 능숙하게 조롱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는 정도 남미 소설의 유산을 이어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무지 재미있다. 발상 자체가 말이 안되지만, 바로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페루 군사 정권 시절의 

경직성과 비상식성을 말해주는 좋은 도구가 되는 것이다. 이 소설은 페루 군부가 아마존에 고립된 병사들의

성적 욕구를 해결하고자 판탈레온 대위를 책임자로 창녀들로 구성된 '특별 봉사대'를 창설하여 일반

병사들에게 성적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난 이 소설에서 2가지 점에 주목하고 싶다.

 

첫째, 판탈레온(판토하) 대위라는 인물이다. 이 인물은 소설에서 '바른 생활 사나이'에서 '포주'로까지

타락하는 인간상을 가감없이 보여 준다. 하지만 작가는 주인공 대위를 통해서 욕망/운명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성이나 나약성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작가는 규율과 질서에 묶여 조직의

명령이라면 이성적 판단을 보류한 체 무조건 복종하는 군대와 같은 조직의 경직성과 위험성을 판탈레온

대위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 된다모든 것이 엉망이 되버린 후 이타야 강변 창고를 정리

하는 과정에서 그의 측근들 (젖빨개, 짱꼴라 포리피리오, 추추페) 매춘 사업을 계속 하자는 제안에 판탈레온은

다음과 같이 대꾸한다.

 

"이미 설명했잖아, 추추페. 난 특별 봉사대를 상부의 지시에 따라 조직한 거야. 사업에는 관심 없어.

게다가 나는 윗사람이 필요해. 그들이 없으면 난 뭘 해야 할지 몰라. 그렇게 되면 난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거야"

 

둘째, 소설의 구성과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식이다.

이 소설은 처음에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 사건의 발단을 가져 오지만 그 이후에는

공식 문서(보고서), 라디오 방송, 신분 사설 등을 통해 사건을 전개함으로써, 비합리적이고 모순 덩어리로

가득찬 사건에 진지함과 심각성을 부여하여 블랙 코메디적인 요소를 강조하고 있다. 추가로 대화 중간

중간 중간에 다른 인물, 다른 시간, 다른 공간을 배치하는 형식은 사건을 입체적으로 조명하여 마치 영화의

교차 편집을 연상케 한다.

 

결론적으로 이 소설은 감동을 느끼기에는 좀 부족하다. 하지만 작가도 이를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유머, 장난과 같은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신의 능력을 테스트 하고 싶었을 것이고

이 시도는 성공적이다.   

 

단지 우리는 일본 종군 위안부라는 엄연히 실재했던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소설에 때로는

불편함과 모역감을 느끼는 독자들이 있지 않을 까 걱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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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그네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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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인 언어와 소설을 뛰어 넘는 압도적인 언어 예술이라...

한 마디로 난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이유는 번역이 가지는 태생적인 한계가 아닐까... (이건 역자의 잘못이 아니다) 

 

난 비슷한 상황을 다루는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가 수용소 생활의 참옥함과 극악한 폭력앞에 무너지는 인간 존엄성의 파괴 과정을 더욱 생생하게 구현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레비는 독일의 유태인 강제 수용소를 뮐러는 소련의 독일 강제 수용소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전자는 자선적 성격의 논픽션, 후자는 논픽션에 기본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픽션이라는 사실에서 이 둘을 직접 비교는 힘들 수 도 있지만 말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 책이 좀 지루했고 별 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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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지능 - 공감의 시대를 위한 다윈의 지혜
최재천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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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진화론 관련 책을 선택하였다. 2009년 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 150주년에 맞춰 여러 언론에서 앞다퉈

 

내놓은 특별 기사를 통하여 진화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된 장대익의 [다윈의 식탁]을 계기로

 

리차드 도킨스, 제러드 다이아몬드, 대니얼 데닛, 스티븐 핑커, 마이클 슈머, 제프리 밀러, 메트 리들리 같은 천재들을

 

을 만날 수 있었다. 지금은 서재에 이 책들이 꽂혀 있어도 이 책을 읽었는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읽는 당시에는

 

상당한 집중력을 요하는 노동이면서 동시에 흥미로운 경험이었던 것 같다.

 

 

진화론은 나에게 2가지 단어을 떠오르게 한다. '생존'과 '번식'이며 이 두 단어는 각각 '자연선택'과 '성선택'과 짝을 이룬다.

 

이분법은 사고의 다양한 발전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복잡한 사고를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개체 또는 집단이든 간에 모든 생물은 생존이 본능이며 이는 주위 환경과의 적응에 적합한 형질 또는 형태를

 

통하여 표현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생물은 신화속의 불멸의 존재가 아닌 이상 생명의 빛을 본 그 순간부터

 

유한의 생명 시계를 안고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체가 진화의 단위라면 번식을 설명하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도킨스는 진화의 개체를 서슴없이 유전자, 그것도 자신의 형질을 번식을 통하여 대대로 보전할 수

 

있는 '이기적 유전자'로 명명한 것이 아닐까?

 

 

위 내용은 나의 궤변으로 전혀 과학적인 지식이나 근거에 맞지 않는 나의 느낌을 솔직히 표현한 것이니

 

부디 무식하다고 욕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물론 이도 쓸데 없는 기우에 틀림 없다. 누가 이런 허잡한

 

글을 읽어 주기나 한단 말인가? ㅋㅋㅋ

 

 

진화론이 매력있는 학문임은 지구상의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에 대해 기존과는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요 며칠 전에 EBS에서 우연히 이 책의 저자인 최 재천 교수님을 강의를 보게 되었는데

 

가장 인상이 남았던 부분은 인간이 식량 자원 확보를 위해 인위적으로 식용 작물을 집약적인 농장 형태로

 

농사를 짓게 되면서 병충해 문제가 발생 했는 데 이는 우리 인간 관점에서는 생산성을 저해하는 제거의

 

대상이나 벌레들의 입장에서는 생존의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식물들이 인위적으로

 

집단 번식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벌레 또는 세균 (박테리아)들도 먹이를 찾아 모이게 된 것이며

 

생산성이라는 미명하에 유전자 다양성이 줄어 들면서 특정 해충 - 이 표현도 지극히 인간 중심적이다 - 에

 

취약하게 된 것이다. 이는 이 책 P47의 '도데체 자식을 하루에 하나씩 낳는 동물이 이 세상천지 어디에

 

또 있단 말인가. 닭은 오랜 세월 우리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괴물'이라는 구절에 압축 되어 있다.

 

 

그런데 갑자기 식민지 시절부터 시작 된 남미/아프리카 지역 에서의 커피, 코스타리카의 바나나 농업이

 

저렴한 생산 비용으로 서구 본토 시장 요구와 부가가치를 창출하여 부를 축적한 반면, 정작 식민지 원주민들은

 

생존에 기본적인 식령마저 역으로 수입에 의존하면서 기아와 가난의 악순환에서 허덕이는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극단적인 비약인가?

 

 

하지만 어느 책에서도 진화론이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이 있으니 바로 '동성애'이다.

 

내 생각으로 동성애는 생존과는 상관이 없어 보이며 더군다나 번식의 개념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몇 가지 가설들이 존재하나 억지 또는 단순한 가정 수준 이상은 아닌 것 같다.

 

진화론도 역시 자신이 가장 혐오하는 (특히 도킨스의 경우)는 '종교'처럼 모든 지구적인 현상을

 

진화론이라는 하나의 도구로 설명하려는 만용을 부리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진화론은 여전이 유효기간이 지나지 않은 흥미로운 학문이며 인문학과 사회과학과의 지속적인

 

대화의 문을 열어 놓은 '통섭'의 학문이다.

 

이 번주에는 서재 구석 먼지 속에 처박혀 있는 진화론 서적들을 들춰보면서 흩어져 있는 퍼즐들을

 

하나씩 맞춰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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