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전집 6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 책은 내 대학시절 인문학을 전공하는 새내기들의 입문서나 다름 없었다. 90년대 대학은 세상

을 정치적으로 옳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집단 이데올로기로 무장 된 세대와 세상의 불확실

성과 우연성으로 상징되는 개인주의적이고 동시에 탈 정치화된 새로운 세대가 공존하는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학교 앞 정문에서 오로지 마스크 하나에 의지하여 공권력과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는  

학생들 옆으로 누군가는 어제 본 TV에 나온 영화배우에 대해 흉을 늘어 놓았고, 또 누군가는 점

심때 먹은 김치찌개 맛이 형편 없었다고 투덜대고 있었다.

 

90년대 이전 대학도 마찬가지였을까? 아니다, 분명 차이점이 존재한다. 70~80년대 대학 교정은

참여 하지 않는 자들을 이유 없이 (사실 이유는 분명했다. 적은 드러나 있었고 바로 그들 옆에 있

었다) 죄책감과 채무감으로 빠지게 하는 시대적 양심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이었지만

90년대 정치적 이념은 선택 사항, 즉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좋으냐 싫으냐는 선호의 문제였다.

 

두서없이 옛 시절에 대한 장광설이 길어진 이유는 바로 90년대 대학 교정이 이 소설의 골자가 되

는 무거움에서 가벼움으로의 이전, 아니 공존하는 광장이었기 때문이다. 무거움은 부정적이며

밀란 쿤테라가 지칭하는 전체주의적인 키치 왕국의 속성이다. 이 곳에서 대답은 미리 주어져 있

으며, 모든 새로운 질문은 배제된다. 따라서 전체주의 키치의 진정한 적대자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인 셈이다 (P411). ‘키치라는 개념이 확실히 잡히지는 않지만 이 책에서 키치는 절대적인 선

이나 정의에 대한 집단적인 동의나 믿음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소설에서 토마시를 선동하는

키 크고 마른 기자가 바로 키치의 전형이며 주범이다.

 

반면 가벼움은 긍정적이면서 동시에 거짓이며 속이는 것이다. 토마시의 연애편력은 가벼움이며

테레사의 집착과 정조 개념은 무거움이다. 토마시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테레사를 옆에 두고 여러

여자들과 몸을 섞는다. 에로티시즘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이며 자신의 바람기는 테레사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레사로 인하여 토마시의 에로틱한 우정의 불문율은

처음으로 금이 가기 시작한다. 반대로 테레사는 토마시의 바람기에 괴로워 하지만 나중에는 그의

바람기를 배우고 싶어 자신을 성적 욕망에 맡겨 버린다.

 

그래서 가벼움과 무거움의 결과는?

사랑, 질투, 욕망, 섹스는 가벼움이며 정치, 윤리, 종교, 사상은 무거움이다. 가벼움과 무거움을 굳

이 비교하자면 작가의 정답은 책 제목에 이미 나와 있다. 운명론적, 결정론적 관점은 인간 존재의

우연성, 불확실성과는 애초부터 맞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이 소설은 다음의 문장으로 요약 될 수 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은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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