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라이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3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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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장편소설만 읽다 보니 뭔가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의 갈증이 있었는데 앨리스 먼로의 [디어 라이프]를 통하여 빈 잔을 가득 채우는 시원한 생수의 밀도성과 응축성을 만끽할 수 있었다.

나는 작가 앨리스 먼로가 2013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사실 노벨 문학상은 어느 특정한 작품에 대한 수상이 아닌 작가의 생애적 문학 업적에 대한 보상적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이 단편집에 큰 기대를 갖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대만족이다. 특히 인간 삶 특히 여성의 삶 - 에 엄연한 현실로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고, 말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은 은밀한 부분을 작가 자시의 가치관이나 관점을 철저히 차단한 채 정답 없는 우리 인생을 소설 속의 주인공을 통하여 보여주고, 말해주고, 행동하게 하는 것이다.

 

첫 단편 [일본에 와 닿기를]에서 체코에서 서유럽으로 망명한 그레타의 시어머니의 그녀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모른 척 버텼다” (P10)는 방식은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여성의 삶을 대표한다. 그레타 역시 관습에 맞서는 사람들에게 마음속으로 냉혹한 시선을 보내” (P29) 는 전통적인 여성상에 갇혀 있는 평범한 부인이자 어머니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레타는 문학적 감수성과 예술적 열정을 가진 시인으로서 우연히 찾아온 두 남자 파티에서의 해리스와 열차에서의 그레그 와의 이성적 감성과 육체적 욕망은 그녀의 봉인을 해체해 버린다.

 

그녀는 케이트의 손을 놓지 않으며 했지만 바로 그 순간 아이는 그녀에게서 떨어지면 손을 놓았다. 그녀는 피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서서 다음에 다가올 일을 기다렸다.

 

-      [일본에 가 닿기를] P41 -

 

[아문센] 주인공 교사 비비안은 의사 레리 앨리스터에게 갑작스럽게 청혼 받고 난데없이 파혼 당한다.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은 토론토 길거리에서 우연히 조우한다. 여기까지는 상투적인 소설이다. 하지만 비비안은 앨리스터의 만남에서 아문센을 떠나올 때와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 도저히 믿기지 않아 여전히 멍한 상태의 나를 기차가 태우고 떠나올 때와 같은 감정을. 사랑에 관한 한 정말로 변하는 것은 없다” (P88). 처럼, 작가는 우리들이 솔직하게 인정하지 못하는 인생의, 아니 사랑의 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잡아낸다.

 

[메이벌리를 떠나며]는 가장 마음에 드는 단편이다. 사랑은 도덕이 아니고 감정이라는 것을, 그래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인생이라는 것을 [메이벌리를 떠나며]는 짧지만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결혼이란 평생 동안 배우자에게 충실하고 죽음의 고통까지도 같이 나눠야 하겠지만 인간은 나약하고 우리 삶은 팍팍하다. 하지만 인간은 자기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서로에게 기만적인 삶을 용인하고 허락한다. 작가는 선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번만이라도 용기 있게 인생의 굴곡 있는 민 낯을 피하지 말고 똑바로 쳐다 보자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뭐 사실 용기까지 필요한 일인지는 나 자신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우기지는 말자는 것이다.

 

처음에 학생과 교사로 만난 레이와 이저벨은 서로 사랑에 빠지고 유부녀였던 이저벨은 이혼하고 레이와 재혼하게 된다. 결혼 후 경찰이 된 레이는 퇴근 후에 매표원 리아를 집까지 바래다 주는 일을 하게 되는 데 리아가 목사 아들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서운함과 놀라운 감정을 느낀다. 세월은 흘러 이저벨은 불치병으로 그녀 주위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남편 레이는 어는 순간 아내의 간호에 지쳐가면서 그녀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 들이게 된다. 레이는 부인의 병원에서 다시 조우한 리아가 새로운 부임 목사와의 스캔들로 결국 이혼하게 되고 현재는 혼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이저벨은 말 그대로 세상을 떠났다”. 독자들은 레이의 첫 번째 감정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이라 예상할 것이다. 당연하다. 작가도 우리와 같이 생각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상실감은 상투적으로 슬픔과 괴로움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레이의 상실감은 리아와의 동질감이면서 동시에 사랑의 도화선이다.

 

상실 전문가, 그녀를 그렇게 불러도 좋으리라. 그녀와 비교하면 그는 초보였다. 그녀가 집에 와서 계단을 올라가는데 그녀의 이름이 떠올랐다. 리아 그녀의 이름을 기억해 내는 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안도감이 그를 감쌌다

 

                                                                                                 -   [메이벌리를 떠나며] P118 -

 

[자갈] [메이벌리를 떠나며]와 비슷하다. 하지만 [메이벌리를 떠나며]와 틀린 점은 [메이벌리를 떠나며]가 사랑 당사자들의 솔직한 감정에 관한 것이라면 [자갈]은 사랑 당사자들의 주위 사람 직계 가족, 특히 자식들 들의 상처와 상실에 대한 고백이다. 주인공 어머니는 연하남 닐과 간통하여 이혼하고 딸 둘을 데리고 나오면서 가족은 해체된다. 어머니는 닐과 트레일러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어머니와 닐 사이에 동생 브렌트가 생긴다. 하지만 트레일러 근처 물 웅덩이에서 불의의 사고로 언니 카로와 애완견 블리치는 목숨을 잃는다. 주인공 나는 그 현장에 있었지만 그날의 기억은 파편화 되어 불연속적인 편린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장례식이 끝나고 나서 브렌트는 태어나고 애초부터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에 관심이 없었던 닐은 어머니를 떠난다. 세월이 흘렀지만 과거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주인공 나는 닐을 만나 그날의 기억의 퍼즐을 맞추고 닐의 말처럼 죄의식에서 벗어어 날 수 있었을까?

 

그가 어떤 의미로 그 말을 했는 지 나는 안다. 그러는 것이 정말로 옳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 카로는 여전히 물을 향해 달려가 의기양양 하게 자기 몸을 던지고, 나는 여전히 그것에 붙들려 있다. 그녀가 무슨 말이라도 해주기를 기다리면서, 첨병 소리가 들리기를 기다리면서

 

                                                                                                                 -   [자갈] P142 -

 

답은 밀란 쿤테라의 소설 제목을 연상시킨다. 살아 남은자의 슬픔.

 

기억은 과거 그대로의 복사나 복제를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억은 조작되고 가공된 과거에 대한 기록이다 

카로와 블리치의 불행한 그 날에 대한 기억에 대한 진실은 아무도 복구할 수 없는 것이다. 진실은 하나다. 인생은 동화처럼 단순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기억에 자세한 문학적 경험은 [호수가 보이는 풍경]을 보는 것이 더 좋을 듯 싶다.   

 

그 뒤에 단편들도 역시 훌륭하다. 하지만 다음 독자들의 몫이다. 더 이상의 글은 공간, 시간 낭비라고 생각 되기 때문이다. 끝으로 앨리스 먼로와의 만남은 쓰지만 뱉지 않고, 달지만 역하지 않은, 독하지만 잔을 비우는, 인생이라는 소주 한병을 먹은 것 같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명심하자. 과하면 나 같은 경우 2올라(?) 오거나 다음날 기억이 지워진다는 것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앨리스 먼로 작품 해석의 단초를 그녀가 어머니 장례식장에 가지 않았다는 마지막 한 줄에서 찾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의 진실은 여기서 출발해서 이 글로 마무리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떤 일들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혹은 우리 자신을 결코 용서 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용서한다. 언제난 그런다" 

                                                                                                                                                                             

                                                                                                                                              -   [디어 라이프] P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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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시 아처의 환생 필립 K. 딕 걸작선 8
필립 K. 딕 지음, 이은선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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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 후기에 의하면 작가 필립 K. 딕이 1974년 2~3월에 환각과 환청을 통해 계시를 받고 쓴 3부작 [발리스], [성스러운 침입], [티모시 아처의 침입] 중 마지막 작품이다.

 

주인공 앤첼 아처의 주위 사람들은 모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시아버지 팀의 사인은 모호하지만...). 남편 제프가 죽고, 다음으로 친구이자 시어머니였던 키어스틴,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정으로 사랑헀던 성공회 대주교 티몬 아처가 이스라엘에서 객사한다. 키어스틴의 아들 빌은 정신분열증 환자로 병원을 내집처럼 들락날락 하는데 종국에는 자신이 부활한 팀이라고 자처한다. 빌은 육체적으로는 살아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삶과 죽음을 왔다갔다 하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작가의 3부작 중 [티모시 아처의 침입이] 가장 정상적으로 읽힌다. 하지만 정상적이다라는 의미는 평범하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인물은 평면적이고 신과 인간의 종교적 해석은 의미 없고 장황스럽다.

 

필립 K. 딕 걸작선 12권 중 8권을 읽었지만 [높은 성의 아내]말고는 딱 느낌이 오는 작품이 없다. 이 전집은 서재에 딱 자리 잡고 있는 폼이 인테리어 소품으로는 손색이 없지만 내 교양(?)을 돋보이게 하는 악세사리로는 좀 부족한 느낌이다. 그래도 다 읽으면 마음이 뿌듯할 것 같다. 아니 밀린 방학 숙제 - 특히 일기장 - 를 다 끝낸 것처럼 후련할 것 같다. 그래야 다음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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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년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188
빅토르 위고 지음, 이형식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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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보단 입체적인 인물들인 고뱅, 랑뜨낙, 그리고 씨무르댕의 보수와 진보, 공화파와 왕당파, 관용과 공포, 혁명과 인간이라는 굵직한 갈등이 흥미롭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결론은 실망스럽다. 그들의 싸움은 치열하지도 절싫해 보이지 않는다. 고집불통 왕당파인 랑뜨낙은 갑자기 세아이를 구원하는 천사로 둔갑한다. 그리고 고뱅은 그의 천사적 이면성에 감동하여 그를 풀어주고 자신이 대신 기요틴의 제물이 된다. 마지망 법치주의적 교조주의자 씨무르댕은 고뱅에게 사형을 집행하고 자신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결말은 전혀 감동적이지 않다. 마치 냉장고에 반쯤 남겨진 사이다에서 처음의 청량감을 기대했다가 김 빠진 밍밍함과 단맛만 남은 역겨움으로 기분만 상한 꼴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사건과 개연성 없이 장황하게 늘어 놓는 사람이름과 사건은 책을 읽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방해가 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하나 각주가 필요한지도 잘 모르겠다. 

 

빅토르 위고의 첫 번째 책이였다. 결과는 지루함이다. 나는 과도한 시각적 묘사의 소설은 싫어한다. 소설의 자세한 묘사를 시각화하여 하나의 그림으로 만들어 가기에는 내 감각이 한참이나 모자르기 떄문이다. 

 

[93년]은 [레미제라블] 을 일단 보류해야겠다는 결심에 도움을 준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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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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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동시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수치심과 자괴감, 그리고 한없이 슬픈 분노가 일어난다. 하지만 난 무기력할 뿐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으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자유들, 예를 들면 자유롭게 숨쉬고 살고 있는 것이 누군가의 희생에 빚지고 있다는 것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소설은 조용하지만 귓속을 맴돌고, 아득하지만 눈에더 떠나지 않는다.   

 

1980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지켜내고자 했던 것이 무었인지, 우린 그 것을 누릴 자격이 있는지 한번만이라도 생각해 보자. 더 이상 이 소설에 대한 평가는 의미가 없다. 올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며 작가 한강의 최고의 역작이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는 것 말고는....

 

작가 한강의 글은 언제나 너무나도 아름답다. 떄로는 그 아름다운 문체가 독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는 한글이라는 언어를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작가임에 틀림 없다.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이 책은 무조건 읽자. 물론 인터넷에 아무 댓글이나 올리는 무뇌충 분들은 제외하고... 

이 책은 작금의 사회를 용인한 우리 자신의 못난 민낯을 드러내는 부끄러움과 분노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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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년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87
빅토르 위고 지음, 이형식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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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알라딘 중고 매장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기분좋게 산 책이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을 읽고 프랑스 혁명과 관련된 책을 더 읽고 싶은 생각이었는데 빅토르 위고의 [93년]을 서고에서 보자마자 물건을 훔치는 걸 남들이 보지 않게 하려는 좀 도둑처럼 바구니에 담고서는 묘한 쾌감을 느꼇을 정도 였다.

 

하지만 오늘 상권을 다 읽고 난 느낌은 정보 과잉과 감정 결핍이다. 내가 이 책에서 찾고자 했던 것은 프랑스 혁명에 대한 지식이 아니었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지식을 원했다면 소설 장르를 고르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팩트에 근거한 소설이기 떄문에 프랑스 혁명에 대한 정치적/역사적/사회적 의미에 대한 설명이 불가피했겠지만 1권은 평면적인 연대기적 프랑스 혁명의 서사에만 치중한 것 같아 적잖이 실망한게 사실이다. 1부 [바다에서] 왕당파를 대표하는 노인 (랑뜨낙 후작)의 강렬한 등장과 랑뜨낙 후작이 방데로 도피 후 걸인 뗄마르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고 왕당파 반군의 지도자가 되는 반전은 2부에 대한 기대를 갖기에 충분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크다고 했던가. 2부 [빠리에서]는 지루하고 산만했다. 로베스삐에르, 당통, 마라 등의 과격한 자코뱅당의 인물에 대한 부분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빅토르 위고라는 거장에 대해 나 같은 놈이 왈가불가 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겠지만 2부는 소설이라기 보다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역사적 이론서 같았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시간적 사건 나열은 지루했고 로베스삐에르, 당통, 마라등의 급진적 자코뱅당 공화파 인물들은 기존의 상투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프랑스 혁명].... 듣기만 해도 감정이 동요함과 동시에 이성적 사고가 긴장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 소설속 사건들은 파편적이고 분리되어 있으며 현상에 대한 평면적인 설명으로 문학적 긴장감을 상실하고 있다.

더 이상 이 소설을 평가하는 것은 대문호에 대한 예의도 아닐 뿐 아니라 나의 얕은 지식이 드러날 뿐이므로 여기에서 중단하는 것이 좋을 둣 싶다. 

 

그래도 하권은 기대해 본다. 작가가 빅토르 위고가 아닌가....     

 

P. S. 다른 독자들의 후기를 보니 나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은데 이 책의 각주는 숨이 막힐 정도이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소설이지 역사서는 아니지 않나? 모든 지 과하면 탈이 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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