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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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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는데 다카노 가즈야키가 [13계단]의 작가란다. [제노사이드]도 냉철한 사회적 비판 의식과 진화론의 창의적인 상상력이 빛나는 수작임에 틀림 없지만 그래도 한 권만을 뽑으라면 난 주저없이 [13계단]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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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1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지음, 안영옥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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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 대 실망이다. 일단 원전 완역본인 것 같은데 영문학과 수업시간에나 필요해 보이는 주석 같은 건 정말 내가 가장 싫어하는 지식의 과잉이자 허세다. 거기다가 이야기 자체도 허세와 과잉으로 가득 차 있어 정말 역겹기까지 했다. 2편은 무기한 보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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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L 2019-12-11 12:0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주석빼고 읽음되죠

- 2021-10-04 00:59   좋아요 2 | URL
ㄹㅇ ㅋㅋ 아니 달아줘도 뭐라 하네

dhchanic888 2021-11-02 1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400년전 소설 번역본을 주석없이 읽어도 이해가 막 잘됨? 그때 유럽 정세, 결혼 문화, 속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생긴 표현들을 전부 다 알아서 필요가 없다는거임?

ㅋㅋ 2023-12-28 2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리뷰에 대한 평점 : 별 반개줄 가치도 없음.
400년 전의 소설이라 배경지식 없이 읽으면 반쪽짜리 독서지 않나.
주석 없이 읽으니 쓸 수 있는 후기도 기껏해야 얄팍하고 애처로운 ˝허세와 과잉으로 가득 차 있다˝ 밖에 안 나오지.
무엇보다 책 읽는 자가 ‘지식의 과잉‘이란다. 그 태도가 역겹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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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단편들이 연결되어 있어 때로는 반가웠지만 때로는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소설 제목 처럼 '우리' 모두는 비슷하지만 단 하나의 '나' 가 있듯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고독과 슬픔은 비슷해 보이지만 서로가 느끼는 무게와 정도는 모두 다른 것처럼 말이다.  각 단편들을 내 나름대로 정리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게 없어 보인다. 대게 이럴 경우는 소설이 인상적이지 않아서 마지못해 성의를 표하기 위함이나 소설을 읽고 나서 내 감정과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것을 포기하는 경우 둘 중에 하나인데 은희경의 <눈송이>  는 후자에 해당한다. 은희경은 일정 수준 이상의 소설을 담보하는 몇 안되는 작가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다. 충분히 만족한다.

 

1.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남해안 소도시의 절친 소녀 안나와 루시아는 대학 입시 학원을 다니니 위해 상경한다.

루시아는 어린 시절 서울에서 살았었고 고모도 서울에 살고 있어 서울 생활에 별 어려움이 없었으나 안나는 대도시의 크기에 압도되어 이방인 특유의 고독감과 동시에 마음에 친구 루시아에 대한 질투심과 열등감이 커지고 둘 사이에는 보이지 않지만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쳐지기 시작한다. 특히 자신이 먼저 마음에 두었으나 루시아의 남자가 되어 버린 요한과의 예기치 못하게 찾아온 둘 만의 1976년 크리스마스 이브에서 안나는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자신이 넘을 수 없는, 자신은 미래에도 이방인일 수 밖에 없다는 체념과 두려움에 갑자기 닥쳐오는 요의를 참지 못하고 달아나 버린다. 화장실을 찾아 헤 메이다 어느 빌딩 계단에서 참지 못하고 싸버려 흘러내리는 소변은 이방인의 치욕과 수치로 끝까지 안나가 살아갈 길을 따라올 기색이다. 하지만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그것을 지상에 영원히 닿지 못할 것이다.” (p42)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 나만의 눈송이가 먼저 땅에 닿으면 게임에 진다고 하니 영원히 닿지 않는 것은 긍정적인 미래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설상 그게 아니더라도 난 그렇게 믿고 싶다. 아니 믿어야만 한다.

 

2.     프랑스의 초급과정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공사로 사방에서 흙먼지가 날리는 삭막하고 황량한 신도시 분당이 아닐까? – 에서 여자는 아버지의 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남자와 신혼생활을 시작 하지만 그녀의 삶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낯선 땅에 날아 들어온 외래 식물처럼 흙에 쉽게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녀는 불안정하고 위태로워 보인다. 하지만 그녀가 호프집에서 끝까지 무너져 내리지 않은 이유는 배속의 아가 때문 일 것이다. 프랑스어 공부를 해야 해요라는 뜬금 없이 뱉어 버린 비현실적이고 생뚱 맞은 말 한 마디에서 그녀의 희미하지만 자신의 삶을 결코 방치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느껴진다. 엄마는 - 곧 엄마가 될 테니까 - 자신의 영역만큼만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는 바이올렛을 키움으로써 자신의 새 삶에 대한 적응에 한발짝 더 다가간다. 엄마가 깨달은 것처럼 첫째는 시간이 걸리고 둘째는 혼자 해야 한다는 것만 잊지 말기로 하자.

 

3.     스페인 도둑

 

신도시가 또 배경이다. 이제는 신도시 2세 들이다. 그들한테는 신도시가 고향인 셈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신도시는 여전히 타지와 다를 바가 없다. 9년 동안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완을 기다리는 것은 이혼한 아버지와의 짧은 동거와 입대를 해야 한다는 무미 건조한 현실뿐이다. 2002년 월드컵 스페인과의 8강 시합을 같이 보던 학교 동창 소영은 아직도 완에 대한 감정을 간직하고 있지만 완은 소영의 존재 자체를 어렴풋이 기억할 뿐이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눈이 순간적으로 마주 치지만 택시정류장의 완은 소영을 알아보지 못한 채 버스 정류장으로 가고, 버스를 타고 가던 소영은 완을 알아보고 택시 정류장으로 뛰어 간다. 이렇게 그들의 길은 엇갈리며 앞으로도 둘은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4.    T아일랜드의 여름 잔디밭

 

이제는 신도시가 아닌 타국의 낯선 도시에서의 이방인의 고독과 서글픈 적응을 이야기 한다. 소설 속의 엄마가 타국 생활에서 살아 남기 위해 선택한 방식은 일부러 불행한 기억,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긁어 모으면서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어차피 인생은 고독하니까.” 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달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엄마의 변화가 짜증이 났겠지만 아들도 크고 나서는 길고 아름다웠던 그 여름 날 한 번도 엄마와 같은 편이 되어주지 않아 미안해서 하는 말이다” (p147) 처럼 엄마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5.     독일 아이들만 아는 이야기

 

역시 주인공의 부모는 사이가 좋지 않고 주인공은 고향을 떠나 낯선 도시 여기서는 서울 에서 힘들게 살아 간다. 이 글의 주제는 용기 라 하고 싶다. 잃어 버린 목도리를 찾지 못해 갑작스럽게 배우기 시작 한 목도리 뜨개질에서 이원은 자신이 실패하지 않은 인생이며 아직도 자신에게는 기회가 있음을 믿게 된다. 이제는 태현의 지적처럼 문 손잡이를 완전히 돌리고 자신의 집으로 자신 있게 들어가는 이완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녀에게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가장 밝고 힘이 나는 소설이다.  

 

 

6.     금성녀

 

이 책에 수록된 소설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단편이다. 유리와 마리 할머니는 자매 사이로 동생 마리에게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던 언니 유리가 76세에 갑자기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 진다. 언니의 죽음을 받아 들이는 마리의 첫 반응은 뜨끔하고 부끄럽지만 그게 현실이다.  

 

늙어 갈수록 눈물을 현실에서는 말라버렸고 대신 드라마와 영화를 볼 때면 언제인지도 모르게 흘러 나왔다” (p188)

 

<금성녀>의 완규는 <스페인 도둑>에 등장하는 완과 동일 인물이 아닌가 싶다. 이 둘은 미국 유학 생활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9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 왔고 잠깐 동안 아버지와 살다가 입영통지서를 받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외할아버지가 결혼을 반대 했고 외활아버지의 유산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갈 수 있었고 엄마가 바이올렛을 화분에 키웠다는 기억은 <프랑스어 초급 과정> 의 엄마와 태아를 떠오르게 한다. 마지막으로 마리가 회상하던 오빠 완규 엄마의 아버지 네 이웃집의 대문 앞에서 연신 발을 구르고 있었던 소녀 부분에서는 소름이 돋으면서<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의 안나의 얼굴이 겹쳐지는 것은 나만의 망상일까? 정확한 연결 고리를 꼭 집어 말할 수 는 없지만 각 단편들은 느슨하게나마 서로 연결되어 있고 특히 캐릭터와 플롯을 서로 공유하고 있음에는 틀림 없다.  불친절하고 어렵겠지만 마리의 마지막 생각에서 나만의 정답 들을 찾아 보도록 하자.

 

 

"그동안 많은 시간이 흘러갔고 숱한 비밀들이 밝혀졌다. 밤하늘의 수 많은 별자리는 여전히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들을 품고 있지만 그중에는 아주 먼 곳에서 이미 사라져버린 별도 있을 것이다."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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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포크너 - 에밀리에게 바치는 한 송이 장미 외 11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
윌리엄 포크너 지음, 하창수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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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포크너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동시대를 살아 온 미국의 대문호라고 알고 있다. 백과사전을 찾아 보니 두 작가의 활동한 시기가 거의 정확하게 일치한다. 우연이겠지만 현대문학에서 출판 한 세계문학 단편선에서 헤밍웨이와 포크너를 계속해서 만났다. 

 

두 작가는 노벨문학상을 받을 정도로 대중적으로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은 대 작가들이지만 두 작가 모두 나한테만은 별로 였다. 이유는 두 작가가 너무나 미국적인 소재와 정서에 고정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헤밍웨이가 사냥과 전쟁을 소재로 상대방 (자연일 수도 있고 세상일 수 있다) 도전하고 정복하려는 거칠고 투박한 남성성 - 마초라고 하자 - 이 인간의 태생적인 모든 것인양 거들먹 거리는 것이 거슬렸고 헤밍웨이와는 다르게 이성적이고  겸손한 문체는 마음에 들었지만 노예해방에 반대했던 남부에게 면죄부를 주는 듯한 착한 백인과 우둔한 유색인종 - 흑인과 인디언 - 이라는 이분법은 시대적인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윌리엄 포크너의 딱 그만큼의 그릇만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리고 [곰]은 단편집에 실리기에는 분량이 너무 길다고 생각한다. 앞선 단편을 읽다가 [곰]을 만나고 나서 나의 독서 흐름은 완전히 무너졌고 그 후로는 모든 문장들이 지루하고 실증이 나버렸다. [곰]은 문학동네에서는 독자적인 소설로 출판 된 것으로 아는데 응당 그런 대접을 받아야 했다고 생각한다.

 

위대한 작가들은 내가 살아보지 못했던 시대를 이야기 하더라도 마치 내가 그 시대를 경험 해 본 것처럼 거부감이난 생소함 없이 자연스럽게 캐릭터나 플롯에 몰입하도록 한다. 위대한 작가들에게는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세계관과 이를 표현하는 뛰어난 문장력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단편들만을 보고 평가하자면 헤밍웨이와 포크너는 미국이라는 지리적 조건과 1930~40년대의 시대적 한계를 넘어서는 수준은 아니다.  앞에서 너무 미국적이어서 거슬린다고 이야기 한 것이 바로 이를 두고 말함이었다. 물론 두 거장의 다른 훌륭한 장편들은 읽어 보지도 않고 두 단편선 만을 읽고 내린 성급한 결정이겠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든 두 작가를 다시 만나는 날이 언제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다시 만나지 않아도 크게 아쉬울 것은 없어 보이니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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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내기들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우열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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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의 원전 텍스트가 [풋내기들]이라고 한다. 영화로 치자면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이 극장 상영 편집본이라면 [풋내기들]은 감독판 - 소위 말하는 오리지널 디렉트 컷 - 이 아닌가 싶다.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당시 카버의 편집인이던 고든 리시가 카버의 원착을 과감하게 고치고 쳐내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한다.  단순한 문체 수정이 아니라, 결말에서 주제까지 바꾼 경우가 있다고 하니 이 정도면 같은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좀 무리기 있을 것 같다. 실제로도 두 소설집 작품들을 비교해 보면 같은 작품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라고 하니, 시간이 되면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 수록 된 단편들을 읽어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 싶다. 

 

하여튼 난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읽지 않았으니 - 난 [대성당]만 읽었는데 지금은 중고책으로 팔아버려 기억도 가물가물 하다. - 어떤 편견도 없이 카버의 작품을 오랜만에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제일 기억에 남는 단편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과 [풋내기들]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내 기억이 맞다면 [대성당]에서 읽었던 작품으로 아들의 생일 날 아들의 불의의 교통사고로 잃은 부부의 이야기로 생일 케이크를 주문한 베이커리 사장과의 투박하지만 진심어린 위로와 교감의 마지막 장면이 감동적인 작품이었다. 물론 편집자가 심하게 칼질(?)을 해 놨다고 하니 두 작품의 느낌이 다른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내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대성당]의 [별것 아닌] - 너무 길어서 줄여 표현한다. - 이 메마르고 건조한 문체에 슬품조차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그래도 우리 삶은 살아가야만 한다라는 주제라면 [풋내기들]에서의 [별것 아닌]은 억지로 억제하지도, 그렇다고 과장되지도 않게 꼭 있는 만큼, 느끼는 만큼만 어이없는 사고로 아들을 잃은 슬픔과 분노, 후회가 담겨져 있고 마지막 빵집에서의 대사들이 훨씬 따뜻하고 위로가 된다. 

 

표현을 어떻게 할 지 모르겠지만 편집인이 심하게(?) 손을 댄 [별것 아닌]은 당사자들의 감정이 너무 억제되었기에 오히려 독자들의 가슴을 에이게 하는 뭔가가 있지만 솔직히 작위적이고 비현실적인 면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반면 원본 텍스트는 문제가 장황하고 늘어지는 경향이 좀 있다손 치더라도 자연스럽게 표출 되는 인물들의 날 것 그래도의 감정을 공감하면서 새벽 빵집에서의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빵과 커피 한잔에 그 순간만은 그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어도 떄가 되면 배고파서 밥을 찾는 것이 역겹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풋내기들]은 두 부부의 사랑에 관한 대화를 담은 단펀이다. 주인공 나와 로라 커플과 허브와 테리 커플의 저녁 테이블에서 사랑에 대해 떄로는 심각하게 때로는 농담처럼 풀어가는 이야기로 우리의 사랑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하는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허브가 이야기하는 큰 사고를 당한 노부부 커플 (남편 헨리, 부인 애나)의 상대방을 간절히 원하는 그리움과 보고픔이 절대적인 사랑이겠지만 각자의 정도와 방식의 차이는 있을 망정 우리 모도는 과거에도 사랑했고 현재도 사랑하고, 미래에도 사랑 할 것이다.

 

"나는 창가에 서서 기다렸다. 아직은 그대로 있어야 한다는 걸, 바깥으로 눈길을 향하고 바깥을 내댜봐야 한다는 걸 알았다. 볼 것이 남아 있는 동안은."                                                                        [풋내기들] p413

 

  

이제 휴가 시즌이다. 바싹 조여서 책을 읽어야 할 듯 싶다. 직접 보고, 듣고, 맡고, 맛 보고, 느낄 용기가 없으니 다른 사람의 감각을 빌려서라도 나를 채우고자 함이 과한 욕심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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