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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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단편들이 연결되어 있어 때로는 반가웠지만 때로는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소설 제목 처럼 '우리' 모두는 비슷하지만 단 하나의 '나' 가 있듯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고독과 슬픔은 비슷해 보이지만 서로가 느끼는 무게와 정도는 모두 다른 것처럼 말이다.  각 단편들을 내 나름대로 정리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게 없어 보인다. 대게 이럴 경우는 소설이 인상적이지 않아서 마지못해 성의를 표하기 위함이나 소설을 읽고 나서 내 감정과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것을 포기하는 경우 둘 중에 하나인데 은희경의 <눈송이>  는 후자에 해당한다. 은희경은 일정 수준 이상의 소설을 담보하는 몇 안되는 작가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다. 충분히 만족한다.

 

1.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남해안 소도시의 절친 소녀 안나와 루시아는 대학 입시 학원을 다니니 위해 상경한다.

루시아는 어린 시절 서울에서 살았었고 고모도 서울에 살고 있어 서울 생활에 별 어려움이 없었으나 안나는 대도시의 크기에 압도되어 이방인 특유의 고독감과 동시에 마음에 친구 루시아에 대한 질투심과 열등감이 커지고 둘 사이에는 보이지 않지만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쳐지기 시작한다. 특히 자신이 먼저 마음에 두었으나 루시아의 남자가 되어 버린 요한과의 예기치 못하게 찾아온 둘 만의 1976년 크리스마스 이브에서 안나는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자신이 넘을 수 없는, 자신은 미래에도 이방인일 수 밖에 없다는 체념과 두려움에 갑자기 닥쳐오는 요의를 참지 못하고 달아나 버린다. 화장실을 찾아 헤 메이다 어느 빌딩 계단에서 참지 못하고 싸버려 흘러내리는 소변은 이방인의 치욕과 수치로 끝까지 안나가 살아갈 길을 따라올 기색이다. 하지만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그것을 지상에 영원히 닿지 못할 것이다.” (p42)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 나만의 눈송이가 먼저 땅에 닿으면 게임에 진다고 하니 영원히 닿지 않는 것은 긍정적인 미래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설상 그게 아니더라도 난 그렇게 믿고 싶다. 아니 믿어야만 한다.

 

2.     프랑스의 초급과정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공사로 사방에서 흙먼지가 날리는 삭막하고 황량한 신도시 분당이 아닐까? – 에서 여자는 아버지의 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남자와 신혼생활을 시작 하지만 그녀의 삶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낯선 땅에 날아 들어온 외래 식물처럼 흙에 쉽게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녀는 불안정하고 위태로워 보인다. 하지만 그녀가 호프집에서 끝까지 무너져 내리지 않은 이유는 배속의 아가 때문 일 것이다. 프랑스어 공부를 해야 해요라는 뜬금 없이 뱉어 버린 비현실적이고 생뚱 맞은 말 한 마디에서 그녀의 희미하지만 자신의 삶을 결코 방치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느껴진다. 엄마는 - 곧 엄마가 될 테니까 - 자신의 영역만큼만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는 바이올렛을 키움으로써 자신의 새 삶에 대한 적응에 한발짝 더 다가간다. 엄마가 깨달은 것처럼 첫째는 시간이 걸리고 둘째는 혼자 해야 한다는 것만 잊지 말기로 하자.

 

3.     스페인 도둑

 

신도시가 또 배경이다. 이제는 신도시 2세 들이다. 그들한테는 신도시가 고향인 셈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신도시는 여전히 타지와 다를 바가 없다. 9년 동안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완을 기다리는 것은 이혼한 아버지와의 짧은 동거와 입대를 해야 한다는 무미 건조한 현실뿐이다. 2002년 월드컵 스페인과의 8강 시합을 같이 보던 학교 동창 소영은 아직도 완에 대한 감정을 간직하고 있지만 완은 소영의 존재 자체를 어렴풋이 기억할 뿐이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눈이 순간적으로 마주 치지만 택시정류장의 완은 소영을 알아보지 못한 채 버스 정류장으로 가고, 버스를 타고 가던 소영은 완을 알아보고 택시 정류장으로 뛰어 간다. 이렇게 그들의 길은 엇갈리며 앞으로도 둘은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4.    T아일랜드의 여름 잔디밭

 

이제는 신도시가 아닌 타국의 낯선 도시에서의 이방인의 고독과 서글픈 적응을 이야기 한다. 소설 속의 엄마가 타국 생활에서 살아 남기 위해 선택한 방식은 일부러 불행한 기억,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긁어 모으면서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어차피 인생은 고독하니까.” 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달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엄마의 변화가 짜증이 났겠지만 아들도 크고 나서는 길고 아름다웠던 그 여름 날 한 번도 엄마와 같은 편이 되어주지 않아 미안해서 하는 말이다” (p147) 처럼 엄마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5.     독일 아이들만 아는 이야기

 

역시 주인공의 부모는 사이가 좋지 않고 주인공은 고향을 떠나 낯선 도시 여기서는 서울 에서 힘들게 살아 간다. 이 글의 주제는 용기 라 하고 싶다. 잃어 버린 목도리를 찾지 못해 갑작스럽게 배우기 시작 한 목도리 뜨개질에서 이원은 자신이 실패하지 않은 인생이며 아직도 자신에게는 기회가 있음을 믿게 된다. 이제는 태현의 지적처럼 문 손잡이를 완전히 돌리고 자신의 집으로 자신 있게 들어가는 이완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녀에게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가장 밝고 힘이 나는 소설이다.  

 

 

6.     금성녀

 

이 책에 수록된 소설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단편이다. 유리와 마리 할머니는 자매 사이로 동생 마리에게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던 언니 유리가 76세에 갑자기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 진다. 언니의 죽음을 받아 들이는 마리의 첫 반응은 뜨끔하고 부끄럽지만 그게 현실이다.  

 

늙어 갈수록 눈물을 현실에서는 말라버렸고 대신 드라마와 영화를 볼 때면 언제인지도 모르게 흘러 나왔다” (p188)

 

<금성녀>의 완규는 <스페인 도둑>에 등장하는 완과 동일 인물이 아닌가 싶다. 이 둘은 미국 유학 생활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9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 왔고 잠깐 동안 아버지와 살다가 입영통지서를 받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외할아버지가 결혼을 반대 했고 외활아버지의 유산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갈 수 있었고 엄마가 바이올렛을 화분에 키웠다는 기억은 <프랑스어 초급 과정> 의 엄마와 태아를 떠오르게 한다. 마지막으로 마리가 회상하던 오빠 완규 엄마의 아버지 네 이웃집의 대문 앞에서 연신 발을 구르고 있었던 소녀 부분에서는 소름이 돋으면서<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의 안나의 얼굴이 겹쳐지는 것은 나만의 망상일까? 정확한 연결 고리를 꼭 집어 말할 수 는 없지만 각 단편들은 느슨하게나마 서로 연결되어 있고 특히 캐릭터와 플롯을 서로 공유하고 있음에는 틀림 없다.  불친절하고 어렵겠지만 마리의 마지막 생각에서 나만의 정답 들을 찾아 보도록 하자.

 

 

"그동안 많은 시간이 흘러갔고 숱한 비밀들이 밝혀졌다. 밤하늘의 수 많은 별자리는 여전히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들을 품고 있지만 그중에는 아주 먼 곳에서 이미 사라져버린 별도 있을 것이다."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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