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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포크너 - 에밀리에게 바치는 한 송이 장미 외 11편 ㅣ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
윌리엄 포크너 지음, 하창수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11월
평점 :
윌리엄 포크너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동시대를 살아 온 미국의 대문호라고 알고 있다. 백과사전을 찾아 보니 두 작가의 활동한 시기가 거의 정확하게 일치한다. 우연이겠지만 현대문학에서 출판 한 세계문학 단편선에서 헤밍웨이와 포크너를 계속해서 만났다.
두 작가는 노벨문학상을 받을 정도로 대중적으로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은 대 작가들이지만 두 작가 모두 나한테만은 별로 였다. 이유는 두 작가가 너무나 미국적인 소재와 정서에 고정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헤밍웨이가 사냥과 전쟁을 소재로 상대방 (자연일 수도 있고 세상일 수 있다) 도전하고 정복하려는 거칠고 투박한 남성성 - 마초라고 하자 - 이 인간의 태생적인 모든 것인양 거들먹 거리는 것이 거슬렸고 헤밍웨이와는 다르게 이성적이고 겸손한 문체는 마음에 들었지만 노예해방에 반대했던 남부에게 면죄부를 주는 듯한 착한 백인과 우둔한 유색인종 - 흑인과 인디언 - 이라는 이분법은 시대적인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윌리엄 포크너의 딱 그만큼의 그릇만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리고 [곰]은 단편집에 실리기에는 분량이 너무 길다고 생각한다. 앞선 단편을 읽다가 [곰]을 만나고 나서 나의 독서 흐름은 완전히 무너졌고 그 후로는 모든 문장들이 지루하고 실증이 나버렸다. [곰]은 문학동네에서는 독자적인 소설로 출판 된 것으로 아는데 응당 그런 대접을 받아야 했다고 생각한다.
위대한 작가들은 내가 살아보지 못했던 시대를 이야기 하더라도 마치 내가 그 시대를 경험 해 본 것처럼 거부감이난 생소함 없이 자연스럽게 캐릭터나 플롯에 몰입하도록 한다. 위대한 작가들에게는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세계관과 이를 표현하는 뛰어난 문장력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단편들만을 보고 평가하자면 헤밍웨이와 포크너는 미국이라는 지리적 조건과 1930~40년대의 시대적 한계를 넘어서는 수준은 아니다. 앞에서 너무 미국적이어서 거슬린다고 이야기 한 것이 바로 이를 두고 말함이었다. 물론 두 거장의 다른 훌륭한 장편들은 읽어 보지도 않고 두 단편선 만을 읽고 내린 성급한 결정이겠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든 두 작가를 다시 만나는 날이 언제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다시 만나지 않아도 크게 아쉬울 것은 없어 보이니 다행이라고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