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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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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단 한번도 실망해 본 적이 없는 작가다. 이 번에는 장난기까지 넘쳐서 자칫 말장난이나 가벼운 농지거리에 빠질 위험도 있었지만 역시 김연수 답게 작가의 농담들은 그의 문장들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고 있다. 작가가 소설은 문장이다 라는 주장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듯이 그의 문장들은 제목만으로는 잠을 부르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소설가의 일 을 소설이란 어떻게 작가는 일관되게 무엇 보다는 어떻게 를 물고 늘어 지고 있다 써야 하는 지를 개성적이고 흥미롭게 풀어 가고 있다.

 

소설가가 소설을 쓰려면 무조건 쓰고 또 고쳐 써야 한다. 그리고 나서 생각해야 한단다. 생각을 먼저 하고 나서 쓰고자 하면 평생 생각만 할 것이며 그러다간 생각이 정리 되기는커녕 서로 엉켜서 소설가의 본업인 쓰다는 막상 시작도 하지 못하고 소설가의 일은 끝나고 말 것이다. 그러면서 그런 일은 비평가들에게나 어울린다고 은근히 아니 대놓고 조롱한다. 그의 조롱은 다음의 인용에서 정점을 찍는다.

 

비평가들이란 하렘의 환관과 같다. 매일 밤 그곳에 있으면서 매일 밤 그 짓을 지켜본다. 매일 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지만, 그 자신은 그걸 할 수 가 없다. (중간 생략) 매일 지켜보면서도 그걸 할 수가 없다면, , 무척 슬프겠다. 사랑하는 재능을 확인한 뒤에야 사랑에 빠지는 사람도 있을까? 그러니까 사랑에 빠진 젊은 소설가여, 매일 그걸 해라.”  P31

 

나 역시 내 한끼 식사를 포기할 다른 사람들은 별 것 아닌 것일지 몰라도 나한테 한끼 식사는 내 모든 것을 주는 것과 다름 없다 정도로 그의 불순(?) 한 조롱과 야유에 온 몸으로 찬동한다. 비평가들이랍시고 어려운 말들이나 나열하면서 작가들을 평가하는 것들을 보고 있자면 훈수를 넘어서 당장이라도 자신들이 소설이라고 쓸 양인가 싶은 데 제발 그런 오버는 좀 참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가끔은 작금의 신경숙 사택 어린 시절 좋아했던 작가라 씁쓸하지만…… - 같이 작가들의 파렴치한 표절을 잡아내는 실적도 올리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나라면 1명의 평범한 소설가라도 10명의 훌륭한 비평가들과는 바꾸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야구를 좋아하는데, 넥센의 박병호 물론 평범한 선수를 예로 드는 것이 문맥상 맞겠지만 평범한 선수의 예를 실명으로 들 수는 없는 일이다. - 선수를 허구연, 하일성 (물론 이미 은퇴하신 것 같긴 합니다만), 뭐 다수의 해설가들과 트레이드 할 미친(?) 야구팬이 있겠냐는 뭐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문장이 곧 소설이라는 그의 소설론에 맞게 풍부한 의미의 단어를 정확하게 사용하는 것이 소설가의 일이라는 주장에, 소설가가 쓸데없이 생소하고 어려운 의미의 단어를 사용한다고 불평하는 독자들에게 오히려 사전을 찾아 보라는 그의 독설(?)까지 더해지니 처음에는 뭔가 뜨악 한 반감이 생겼지만 작가의 그럴듯한 문장에 뭐라고 반박할 여지가 없다 보니 두 손 들고 투항 할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이래서 문장이 중요하긴 하나 보다. 그리고 또 한가지 문장에서 서술어사용이 제일 중요하다는 지적에 완전히 공감하고 완전히 가슴 아팠다. 지금도 나는 서술어의 깊은 늪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으니 말이다.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옆으로 많이 빠져 버렸지만 애초부터 그의 생각을 정리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당연히 평가는 언감생심이며 배움이 나의 몫이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동의하지 못하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나는 김수연 작가와 같은 꿈을 꾸었고, 같은 좌절을 경험했기에 그의 문장들에 감정이 흔들린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를 욕한대도 나만은 욕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감정이입이란 그런 것이다. 이성적이지도 않고, 논리적이지도 않다. 그건 마치 사랑 같은 것이다. 몸으로 느껴지는 것이지, 머리로 설명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리고 한 달 뒤, 나는 지난 일을 생각하다가 불쑥 눈물을 흘리고 했는데, 정말이지 그건, 사랑을 잃은 느낌 같았다. P164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시라면 김연수 작가의 [소설가의 일]을 꼭 읽어 보시라 말씀 드리고 싶다. 난 한번 읽은 책은 다시는 읽지 않지만 이 책은 꼭 여러 번 찾아 읽어 볼 요량이다. 소설가가 쓴 소설론이 결과물에 대한 경험적 비평인 반면, 한 번도 제 손으로 인물 하나 사건 하나 만들어 창조해 내지 못한 비평가들의 소설론에는 당최 믿음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냥 작가의 인상 깊었던 몇 문장을 인용하는 것으로 미래의 독자 분들의 선택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바람뿐이다. 대부분 직접 작가의 글을 그래도 인용한 문장이지만 나 자신이 좀 정리하고 짜깁기하고 풀어 쓴 것도 있으니 따로 인용된 페이지를 표기하지는 않았다.

 

글쓰기의 기본은 이 세계와 인간이 세부 정보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일부터 시작한다

 

전체 원고 오분의 일이 되는 지점 이전에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주인공이 건너간 다리를 불태운다는 사실만 기억하면 된다”. 그러니까 플롯 같은 건 생각하지 말고 불타는 거리를 건너갈 때까지 일단 토고 (초고)부터 쓰자.”

 

결국의 소설의 대사란 진부한 욕망의 말들 달리 표현하면 뜨거운 날 것들 = 손이 오그라드는 것들 을 은폐하기 위해 참신한 분장으로 표현하는 데 1차적인 목표가 있고, 그 다음으로 캐릭터를 완성시키는 데 2차적인 목표가 있는 셈이다.”

 

수 많은 감정 중에 소설에서는 오직 하나의 감정이 특출 나게 중요하다. 그건 바로 절망 (혹은 좌절) 이다.”

 

좌절과 절망이 소설에서 왜 그렇게 중요하냐면, 이 감정은 이렇게 사람을 어떤 행동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설가란 정확한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리라. 소설가는 휘청거리다지벅거린다를 구분 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새롭게 쓴 내용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텍스트, 문장, 형식, 미문이 중요한 것이다. 새로 쓸 수 있는 건 오직 문장뿐이다 그러므로 많이 써야 한다.”

 

소설을 쓰겠다면 생각하지 말자. 쓰고 나서 생각하자.”

 

인생 문제의 대부분은 자꾸만 과거 속에서 살려고 하거나, 현재에 일들을 모르거나, 미래를 알려고 할 때 일어나는 법이다.”

 

위대한 소설은 쓸 수 없는 것을 쓰는 것이다.”

 

è  하지만 우선 쓸 수 있는 걸, 정확하게 쓰는 것부터 시작한다.

è  한국어 문장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서술어다

è  문장을 손 불 때는 서술어 부분을 최대한 줄이는 일부터 시작한다.

è  명확성과 정확성을 위해 ~ / ~하다 를 최대한 줄인다.

è  감각적 정보로 문장을 바꾸되 귀찮아 죽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계속 쓰고, 또 쓴다.

 

플롯을 짜고 캐릭터를 완성시킬 때는 물론 감정이입이 가장 중요하지만, 막상 소설의 문장을 쓸 때는 감정이 아니라 감각이 이입되어야 한다.”

è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질 수 있는 단어들로 문장을 쓰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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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필립 K. 딕 걸작선 12
필립 K.딕 지음, 박중서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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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으로 더 유명한 소설이다. [블레이드 러너]를 본지가 하도 오래돼서 모든 내용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어렴풋하게나마 단편 적인 기억의 퍼즐들을 맞춰 보면 영화는 소설에서 소재와 모티브를 차용했을 뿐 내용과 구성은 소설과는 다른 차별성을 보인다.

 

개인적 취향으로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가 원작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 앞으로 [안드로이드]로 줄여거 표기 - 보다 더 좋다. [안드로이드] 입장에서서는 항상 [블레이드 러너]와 비교되는 것이 억울하고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소설 [안드로이드]는 인류의 디스토피아적 미래의 탁월한 묘사와 인간과 동일한 외모에다 인간보다 더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있지만 감정이입 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인조인간 안드로이드라는 탁월한 설정을 빼고는 솔직히 나로서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는 소설이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가 소설과는 다르게 안드로이드를 인간의 정체성과 혼돈성에 대한 상징물로 재창조하면서 안드로이드에 대한 비중을 높인 것은 탁월한 장르적 해석으로 생각되며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의 희생물인 안드로이드의 인간에 대한 복수와 용서는 룻서 하우어가 열연한 로이 바티의 장대빗속에서의 Retirement 명장 면으로 기억된다. 

 

 

물론 [안드로이드] 대중소설로서 다른 여러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SF소설 장르에 아직도 익숙치 않은 나로서는 필립 K. 딕 걸작선을 11권이나 읽었는데도 이 장르의 매력에 빠지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이제 한권만 남았는데 다 읽거 나서는 중고서점에 팔아야 할지를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다른 작품에서도 언급한적이 있지만 작가 필립 K. 딕의 상상이나 꿈 장면은 순수한 창조물이라기 보다는 약물에 의지한 환각이라는 인상이 강해 아직도 불편하고 가끔은 역하다. [안드로이드]에서의 감정이입 장치는 마약 및 약물과 다르지 않다. 물론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에서 인류는 안드로이드와 다름없이 감정이나 공감능력의 부족으로 감정이입 장치 마약이 틀림없다 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묵시론적 세계관으로 [안드로이드]를 해석 하기에는 설정 이외에 다른 소절적 장치 플롯 사건의 질서있는 배열과 구성 이 빈약하고 아예 없다시피 하다.

 

 

만약에 특수인 닭 대가리 이라는 참신하고 독창적 의미를 가지지만 인간안드로이드의 중간 어디엔가 존재하는 모호한 위치를 가진 이지도어에게 더 큰 역할을 주었으면 [안드로이드]에서의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비유와 해석이 더 풍성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특수인은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열성적 인간이지만 반대로 안드로이드에게도 연민을 가지고 기꺼이 도움을 주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우성적 인간이다. 물론 머서교와 융합이라는 환상에 의존하는 나약한 존재이지만 안드로이드의 머서교의 허구성 폭로에도 불구하고 잠시 동안의 혼란감과 자괴감을 극복하고 안드로이드들의 아무런 감정적 동요없이 거미의 다리를 자르는 잔인한 행동을 보고 자신의 위치를 바로 찾아가는 이지도어야말로 매력적이고 개성 있는 캐릭터에 틀림 없다.

 

하여튼 [안드로이드]는 내 몸에 맞지 않아 다시는 꺼내 입을 것 같지 않지만 그래도 버리기에 뭐한 애매한 옷 같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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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헤밍웨이 - 킬리만자로의 눈 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하창수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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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와의 첫 만남이었다. 물론 [노인과 바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킬리만자로의 눈]등을 어린 시절에 KBS ‘토요명화’, ‘명화극장’, MBC ‘주말의 명화에서 본 적이 있지만 소설 원작은 처음이었다. 헤밍웨이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서 인지 아니면 내 독서적 취향 문제인지 나는 그의 단편들에서 공통적으로 반복되는 특징들이 낯설고 불편 했다.

 

첫째, 사냥과 낚시의 스펙타클은 전혀 감동적이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난 사냥도 낚시를 해 본적도 없고 관심도 없는 터라 그의 사냥과 낚시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역동적인 서사는 나에게는 지루하고 과장된 남성상의 허장성세일 뿐이었다. 불행하게도 그의 주특기라고 알려져 있는 전쟁을 소재로 하는 [병사의 고향], [아주 짧은 이야기], [다른 나라에서] 등의 단편들도 소재만 전쟁을 다루고 있을 뿐 전쟁의 상처나 인간성의 파괴, 또는 그러함에도 피어나는 희망과 사랑과 같은 주제와는 거리가 먼 별다른 기억이나 인상이 남지 않는 범작들이었다.    

 

둘째, 출판사 현대문학 편집의 문제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닉 애덤스가 주인공인 작품들이 두서없이 수록 되어 있어 독서에 혼선을 주어 작품에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되었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역자 후기를 보고 나서야 우리 시대’ (In Our Time)라는 연작 소설의 주인공이 닉 애덤스라는 것을 알게 되니, ‘우리 시대의 모든 작품들이 수록 된 것인지, 아니면 몇몇 단편만 발췌하여 실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작품들의 연관적 구성이 무시되어 있어 독자가 닉 애덤스가 등장하는 단편들을 연작 소설로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 책에서 기억에 남는 단편을 뽑자면 [천 달러 지폐 오십 장] [와이오밍 와인], 그리고 [노름꾼, 수녀, 라디오] . [천 달러 지폐 오십 장]은 도박의 검은 돈이 오가는 권투 시합에서 노쇠한 권투선수의 심리적 갈등과 위기에 대처하는 기지가 돋보이는 작품이며 [와이오밍 와인]은 마지막 주인공의 대사 어젯밤에 갔어야 했어가 모든 것을 말해 주는 작지만 긴 여운과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노름꾼, 수녀, 라디오]는 개인적으로 최고로 뽑고 싶은 단편으로 인간의 욕망 여기서는 아편이라고 하는 것들 들을 고찰하면서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연민과 동시에 인간의 나약함을 극복하는 혁명에도 지지를 보내는 철학적 담론이 담겨 있는 수작이다.  

 

혁명은 아편은 아니지, 라고 프레이저 씨는 생각했다. 혁명은 정화야. 그것을 유예할 수 있는 것은 폭정뿐이고, 아편들은 혁명의 전후에 나타나는 거야. 그의 생각은 명료했다. 너무도 명료했다.”

                                                                                                         [노름꾼, 수녀, 라디오} p426

 

하지만 주인공 프레이저에게 아편 (욕망)을 거스를 이유도 의지도 없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는 술을 한잔 마시며 라디오를 켤 것이었다. 조용히. 들릴락 말락 하게

                                                                                                        [노름꾼, 수녀, 라디오} p427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지 모르겠지만 프레이저의 인민들은 왜 마취되지 않고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겁니까?” 의 질문 처럼, 다시 말해 마취는 아편을 수술은 혁명을 의미한다고 볼 때 인간의 욕망을 무시하거나 인위적으로 억합하는 혁명은 가능하지도 또한 옳지도 않다는 것이 이 작품의 주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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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지음, 김정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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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설임에는 틀림 없다. 하지만 연애와 결혼이라는 주제, 그것도 인간의 본능과 욕망과는 한참 거리가 먼, 고마움과 존경, 배려의 너무 착한 사랑은 내 취향이 아니다. 물론 재치 넘치는 위트와 발랄한 지성으로 대표되는 주인공 엘리자베스의 근대적 여성성이 참신하고 매력적이었지만 그녀 혼자만으로 5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또한 [오만과 편견]은 서로 다른 사회/경제적 계급관계의 남녀 사랑에서 피할 수 없는 갈등과 오해, 하지만 종국에는 잘생긴데다 부자이기까지 한 남자를 차지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전형적인 신데렐라식 로맨스 소설의 플롯을 가지고 있다. 로맨스 소설의 기본적인 플롯이 전체적으로 가독성에서 있어서는 장점이겠지만 진부한 사건 전개와 반전 없는 행복한 결과는 이 소설의 태생적인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속 인물들 - 말할것도 없이 엘리자베스의 대사 - 의 대화에서 제인 오스틴의 소설가로서의 재능은 빛나지만 그 역시 무한 재생 반복되다 보니 그녀의 톡톡튀던 매력은 무디어지고 나중에는 더운 여름 날 김이 다 빠진 미적지근한 사이다를 넘기는 고역이 되 버린다.     

 

 

몇 년 전에 [오만과 편견]을 시공사 버젼으로 읽었던 것 같은데 펭귄 클랙식의 [오만과 편견]이 내용도 더 충실하고 번역도 더 훌륭한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서의 최고의 기쁨이자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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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반양장) - 지금 우리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 교과서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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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은 출판계의 블루칩이다. 아무리 대중서라고 하더라도 경제학이라는 녹녹치 않은 주제를 담고 있는 책이 출판되자 마자 항상 베스트셀러 리스트 1-2위에 오른 다는 것은 '장하준' 이 일단은 훌륭한 저술가라는 것을 대중이 인정한다는 중거이다. 물론 장하준이 훌륭한 경제학자인가? 라는 문제는 그의 동료들이나 논할 수 있는 일이므로 나와 같은 비전문가가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장하준이 훌륭한 저술가라고 평가받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그의 뱅뱅 돌리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이대(?)는 '장하준'표 거침없는 필체, 단순 명료한 정의와 풍부한 자료에 근거한 확실한 논증과 쉬운 설명을 '장하준' 브랜드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본주의'와 '시장' 이라는 단어를 동일시하지 않는다. 장하준은 시장을 맹신하는 신고전주의 학파에 명확한 반대 의사를 표시한다. 이 책의 여러 장에서 자유방임주의적 시장의 병폐를 막기위해서는 규제와 원칙의 주체로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는 자신의 주장을 굳이 숨기려 들지 않는다. 물론 이 책이 경제학 개론서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어 직접적인 그의 경제학 이론이나 분석이 두드러져 보이지는 않으나 그의 기본적인 경제학적 관점을 파악하는 데 걸림돌이 될 정도는 아니다.

 

 

나 역시  장하준의 자본주의 - 좁게는 시장 - 실패를 예방 또는 치유하는 수단으로 정부 개입과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의 그럴듯한 논리에 놀아나 자본가들의 부의 축적과 세습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일반 노동자 또는 시민들에게는 상대적 부의 상실과 결핍을 가져와 종국에는 소득의 양극화만 심화시키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신자유주의 시장론자 또는 신고전주의 경제학파들의 소위 "대기업 및 부유층의 소득이 증대되면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져 경기가 부양되고, 전체 GDP가 증가하면 저소득층에게도 혜택이 돌아가 소득의 양극화가 해소된다는 논리다" - 이상 네이버 시사상식 사전에서 발췌  - 라는 낙수효과 (Trickle Down Effect)는 전혀 역사적으로나 통계적으로 입증된 적이 없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부유층의 소득 증대는 선순환적으로 투자나 소비를 진작하고 고용을 창출하기는 커녕 그들의 보유 이윤으로 그대로 축적될 뿐이다. 특히 지금처럼 미래가 불투명한 상태애서 대기업이나 부유층 같은 기득권 세력은 오히려 미래의 위험애 대비해 초과이윤을 비생산적인 현금성 자산으로 축적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기형적인 구조의 과열된 금융 자본주의의 폐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규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장하준이 현대 경제학이 '개인'을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이기적인 '소비자' 로만 보는 관점을 비판하면서 '생산'에 초점을 맞춘 '노동자'로서의 새로운 관점에서 '고용'의 중요성을 설파한 것은 신선하고 설득적인 논리 전개였다.

 

 

마지막으로 한치의 주저함 없이 '경제학은 정치적 논쟁'이라고 주장하는 장하준의 배포와 배짱이 이 책의 모든것을 말해준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는 경제학은 가치 판단이 배제된 엄격한 자연과학이라고 점잖 빼고 거짓말 해대는 신고전주의 학파와 그글을 신봉하는 우둔한 자들을 뜨끔하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PS 물론 무엇을 하든 기계적으로 1번만을 찍어대는 대한민국 무뇌증 환자들이 이해하기는 어려운 책이다. 자신의 지적 능력 부족을 항상 사상의 불온성으로 몰아 붙이는 마녀사냥에 익숙한 환자들에게 책은 때로는 독약이 될 수도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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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시우 2016-09-12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문제는 부자들이나 주장할법한 낙수효과에 대한 주장을 요즘의 소위 귀족노조라는 분들도 주장을 하더라는 말이죠. 본인들이 노동자 임금의 상한선을 올림으로 전체 소비자의 임금을 올리는 투쟁이라나...

1번만 찍어대는 거수기 외에도 여럿이 힘들어할 책일수도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