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력 사전 - 사마천의 생각수첩
김원중 지음 / 글항아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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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이고, 그 안의 인간의 세상사 또한 옛것이나 지금이나 그 중심을 뚫고 지나가는 핵심은 동일하다.

 

가치관의 혼돈을 가져오는 작금의 시대에 동시대의 현자들이 건네주는 말이 위로와 격려가 될 때도 있지만,

고전에서 말해주는 함축된 지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은 마음이 요즘 들어 부쩍 든다.

요란하지 않고, 직설적이지 않으면서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무릎을 치게 하는 번쩍이는 글들.

내가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사마천의 사기야 우리가 춘향전이나 심청전같은 고전을 자세히 읽지 않고서도 마치 읽은 것처럼 느끼듯, 사마천의 사기 또한 중국의 역사서로서 최고봉을 차지한다는 사실쯤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함에도 사마천이 궁형의 치욕속에서 역사서를 서술해냈다는 가십거리식의 내용 외에는 딱히 아는 것이 없었다.

시대의 흐름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난세다 보니, 다시 사마천의 역사를 통찰하는 시각이 부각되어서인지 여러 출판사에서 다양한 기획으로 그의 책이 나오는 것을 보며 걔 중에 한권 정도는 필히 만나보리라 다짐하던 중, 이 책이 나와 역사적 인연이 닿게 되었다.

부제가 사마천의 생각수첩이라고 적혀 있듯이, 말 그대로 사마천이 살아있다면 일상에서 지혜를 발휘해야 할 대목에서 수첩을 꺼내어 그 아이디어를 적듯이, 바로 그렇게 간략하지만 핵심내용은 충실하게 담은 읽기 편한 책이다.

총 36장으로 구분되어(투시, 차이, 통찰, 의지, 발분, 경청, 설득, 성패, 승부, 결단, 섭리, 인과, 수신, 교유, 직분, 처신, 겸양, 처세, 안분, 인품, 초탈, 인재, 명철, 명예, 예법, 포용, 소통, 안목, 치도, 법치, 책략, 경제, 군신, 현군, 민심, 세태) 처세의 규범에 따라 담아낸 내용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삶이라는 전쟁속에서 하나의 야전교범처럼 활용할 수 있는 콤팩트한 사마천의 [사기]의 현대적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장강처럼 흐르는 사기의 세계에서 3백여편의 명언을 뽑아 그 명언이 나온 역사적 배경과 간취할 만한 통찰력을 현대적 사유 속에 담아내었다.

 

실행에 힘쓰는 것은 인에 가깝고, 묻기를 좋아하는 것은 지에 가까우며,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용에 가깝다.[평진후.주보열전]

인자한 사람은 묵묵히 실천해서 본을 보이고, 호기심이 많은 사람은 지혜롭게 된다. 그리고 용기를 내는 사람은 스스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다.(76P)

 

경험이든 이론이든 어느 하나를 맹신하면 반드시 패망하게 되어 있다. 이론이라는 것이 경험이 쌓여서 만들어진 것이고, 이 이론에 의해 다시 경험이 쌓이는 연쇄이기 때문이다.인간의 앎이라는 것도 이론과 경험을 연관시켜 가며 만들고 허무는 일련의 과정에 다름 아니다.(78P)

 

위의 글은 그 많은 명언 중에서 요즈음 내가 천착하고 있는 어떤 고민에 대한 답을 준 글이다. 마냥 엉클어져 어지럽기만 하던 마음 한 자락을 단순하고 명쾌하게 정리해줬다.

 

이렇게 이 책은 소제목을 살펴서 현재 봉착하고 있는 문제의 해답을 얻고자 한다면 원하는 부분을 먼저 읽어도 좋고, 또 가방 속에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아무 곳에서나 펼쳐 읽어도 좋은,  하지만 그 내용만은 결코 가볍지 않은 곁에 가까이 두고 읽기에 딱 맞춤인 책이다. 삶의 기로에서 늘 마주치는 선택이라는 문제는 여전히 깊은 고민속에 우리를 사유하게 한다. 더군다나 갈수록 다양해지는 사회구조속에서 혼란스러운 가치관으로 인해 자신이 서야 할 곳의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을 때, 내가 정녕 가야 할 길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안개속을 헤매는 기분일 때, 사마천이 말해주는 처세술을 통한 통찰력을 살짝 엿봄으로써 조금쯤은 위로와 한줄기 지혜의 빛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이고, 그 안의 인간의 세상사 또한 옛것이나 지금이나 그 중심을 뚫고 지나가는 핵심은 동일하기'  에 사마천이 말해주는 옛 사람들의 일화속에 나오는 경구들은 지금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통해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부딪히는 다양한 세상을 보는 힘을 길렀을 뿐 만 아니라, 결코 세상것에  미혹하지 않는다는 그 불혹을 넘긴 지 오래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삶의 향방에 의혹을 갖고 있는 마음밭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 본 유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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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속의 과학 - 과학자의 눈으로 본 한국인의 의식주
이재열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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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이라는 단어가 주는 운치스러움과  과학이라는 단어가 주는 딱딱함의 조합이 묘한 매력을 준다.

우리것, 우리 문화에 대한 평소의 관심은 대학에서 생명과학을 가르치는 과학자의 눈으로 본 한국인의 의식주, 라는 부제가 일면 새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서구에서 수입된 현대 과학을 담장 밖의 과학이라고 한다면, 전통 문화 속에 농익어 온 조상들의 지혜와 지식을 담장 속의 과학이라고 하여 저자는 우리네 담장이 지니는 의미(담장은 너와 나를 구분하는 지점이기도 하지만, 담장의 높이를 낮게 하여 서로를 건너다볼 수 있게 함으로써 폐쇄적이지 않고 닫혀있으면서도 끝이 아닌 열린 지점이라고 해석)를 확대 해석하여 담장속의 과학과 담장 밖의 과학이 만나야 한다는 전제하에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삶의 지혜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로써 과학과 인문학을 조금씩 합쳐 보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고 한다.

 

내용의 전개는 의식주의 순서가 아닌 주식의의 순서로 전개되고 있다. 지난 시절 우리 생활 속에 담겨 있던 의식주의 문화를 돌아보며 그 안에 담긴 과학적인 가치를 분석해 나가면서 우리 생활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멋과 아름다움은 과학 지식과 정보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더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부에서는 마음속에 품은 집이라는 주제로 온돌의 과학성, 우수성, 고샅길의 추억, 공동체적 삶의 여유, 사랑채의 역할, 대청마루, 조왕신, 창문과 창호지, 마당이나 뒤곁에 심은 나무의 종류 등, 막연히 풍습으로만 여겨왔던 거, 언뜻 미신으로 치부되어왔던 내용들이 알고 보니 매우 과학적인 원리에 의해서였다는 것을 조상들이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혜를 활용했음을 들려준다. 마음속에 품은 집,은 세 파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으로서 나에게는 어린시절 자랐던 고향과 너무도 똑같은 집의 모습이어서 읽는 기분이 남달랐다. 추억속의 집이다.

2부에서는 우리 몸을 채우는 먹을거리에 대한 내용으로서 김치와 장에 대한, 그 발효음식의 가치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김치의 우수성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늘상 먹던 우리나라 사람들이야 유전인자에 인이 박혀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음식의 하나이지만, 김치의 우수성은 과학적으로 이미 외국에서 더 알려져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대표적인 음식으로서 자리를 차지한 지 오래이다. 각종 유산균, 젖산 등 김치가 가지고 있는 영양의 가치는 익히 알고 있었던 사실임에도 과학자가 설명해주는 김치를 만들기까지 조상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혜들은 실로 감탄스럽지 않을 수 없다. 완벽한 음식중에서도 으뜸이라고 자부하고 싶을 정도이다.

3부에서는 우리를 감싸안는 옷이라는 주제로 잿물을 이용한 빨래에 대한 고찰 및 색깔있는 옷의 역사와 천연염색의 우수성, 자연으로부터 얻은 우리만의 옷감에 대한 전망등에 대해서 다루어주고 있다.

세 단락으로 나누어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의식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기후와 풍토에 가장 적합하고 적절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점점 서구화되어가고 있는 우리네 삶에서 오로지 우리것만을 고집할 수는 없기에 우리의 의식주에 담겨 있는 조상의 지혜와 과학적인 가치를 온고지신의 자세로 연구개발하여 새롭게 미래를 창조해나가자는 것이다.

 

과학자의 눈으로 본 한국인의 의식주, 라고 해서 조금은 딱딱한 글을 예상했으나, 의외로 한편의 에세이를 읽는 듯 쉬이, 그러면서도 편안히 읽히는 책이다. 과학적인 지식을 드러내는 부분도 전체적인 글의 분위기가 옛추억을 떠오르게 해서인지 부담스럽지가 않다. 따라서 과학자의 글이라기 보다는 생활풍속연구가의 글처럼 다가오는 우리 생활풍속문화사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의식주의 세 부분의 비중이 고루 배분되어 있지 않고, 저자가 말하고 싶은 부분이 더 강조되기도 하고, 어느 부분은 간략하게 서술되어 건너뛰기도 한 점이 그것인데, 앞에서 언급한대로 학술서라고 생각하지 않고 에세이 정도로 생각한다면 즐거운 책읽기가 가능할 것이다.

더불어, 우리생활문화에 대한 더 상세하고 많은 정보를 원한다면 저자가 친절하게도 뒷부분에 참고문헌을 기술해 놓았으니 참고해도 좋을 거 같다.

 

마을에서 도시로 생활의 중심이 변화하면서 의식주의 여러 가지 조건들이 경제 논리에 따라 단순화, 획일화, 대형화되고 있는 이 시대는 편리함만 추구하면서 생명의 기운과는 점점 멀어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정작 살고 싶은 삶은 앞뒤로 시원하고 맑은 바람 드나드는 대청마루가 있는 , 아침마다 하루를 여는 부지런한  마당 싸리비질 소리에 눈을 뜨고, 겨울이면 처마에 고드름이 달리며 기름 먹인 노오랗고 따듯한 장판에서 몸을 녹이고, 부엌옆  장독대에는 봉선화가 줄지어 피어 있고, 뒤꼍 텃밭에는 탐스런 작약도 흐드러지고, 마당 한 귀퉁이에는 푸성귀가 자라는 탱자나무 울타리너머 동구밖이 훤히 보이며 집둘레는 대나무가 휘돌아 둘러쳐진 내 어린 시절의 공동체적 삶의 방식과 오순도순한 사람살이가 지닌 멋과 여유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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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2
미우라 시온 지음, 윤성원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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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온 세상에 봄이 온 지가 꽤 되었는데도 연일 쏟아지는 격무와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생활과 나의 생각은 매너리즘에 빠져 허우적거리고만 있었다.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때맞춰 나타난 그 제목에서도 열정이 느껴지는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는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그리고 미우라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따뜻한 청춘소설, 이 책은 자연스레 나의 지난 날을 떠올리게 했다. 내 찬란했던 청춘의 꿈과 희망과 그리고 고통까지도.

 

우리 어렸을 때는 오리, 십리 걸어서 학교다니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개넘고 산넘어서 학교에 다니던 이웃마을 친구들이 있었지만, 학교가 있던 소재지에 살았던 나는 중학교에 입학하고서야 걸어서 통학하는 고통과 즐거움을 알았다.

읍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하루에 다섯번 다니는 버스는 등학교시간에는 맞지가 않아 우리 동네 아이들은 4Km되는 거리를 걸어서 다녔다.  아침일찍 교복에 책가방을 들고서 함께 모여서 재잘재잘 걷다보면 그 먼길이 순식간에 다 걸어버려 어느새 교문에 도다르곤 했다..언젠부터 모여서 가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하면서 각자 나선 등교길...그 등교길을 40분에 걸려서 걸었었다. 그리고도 힘든 줄을 몰랐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기억은 바로 십리길을 나 혼자의 생각에 리듬에 맞춰서 걸었던 등교길의 추억이었다.

 

100M달리기는 언제나 공포였다. 선생님의 출발호각소리를 기다리는 심정은 늘 가슴이 쪼그라드는 느낌이었고, 달리는 도중에는 넘어지지나 않을까 공포스러웠다. 같이 달리는 친구와의 거리가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은 기분은 내가 달리기를 제일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당연히 기록도 별로다. 허들이나 배구, 뜀틀넘기, 배드민턴 그리고 오래매달리기는 늘 우수한 점수를 받았는데, 유독 달리기는 다리짧은 나에게는 아킬레스건이었다. 그러나, 고등학교때 생긴 오래달리기는 예외였다. 이 책에 나오는 하코네역전경주에서는 속도도 중요했지만, 오래달리기는 포기하지 않는 자세와 끈기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이건 자신있었다. 그리고 너끈히 완주를 해내면서 달리기에 대한 콤플렉스를 치유할 수 있었다.




이십대 중반 어느해 12월 말에 지리산 등반에 나섰다. 새해 첫날 천왕봉에서 새해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나선 산행길. 장터목에서 추위와 바람과 싸우며 잠들지 못한 채 날을 꼬박 세운 채, 함께 산을 지켰던 사람들. 각자 가슴에 품었던 소망들은 비록 달랐을지라도 그 소망이 더할나위 없이 간절했을 것은 당연지사..낯선 이들까지도 친구로 느껴졌던 그 밤이 생각난다. 새벽 4시에 산을 타기 시작했다. 사위는 조용하고 칠흑같기만 한데, 한치 앞도 안보이는 산길을 앞사람의 발자국을 표시삼아 한 발 한 발 목표를 향해갔던 막막했던 시간. 그리도 드디어 1등도 꼴등도 없이 모두 천왕봉에 올라서 붉게 떠오르던 태양을 향해 마주섰던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 기억을 만났다.




자꾸만 기억속에서 줄지어서 나오는 기억들이 내게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

대학 3학년때 가졌던 영호남화합도보대행진도 생각난다. 4일에 걸쳐서 하루에 80리씩 걸었던 시간들. 잊고 있었던 아주 세세한 느낌과 상황, 기분까지 생생히 살아나는 시간을 가졌다. 낙오되지 않고 완주해냈을 때의 그 가슴 가득 차오르던 환희, 자부심. 세상이 두렵지 않았던 시간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에서 나오는 10명의 선수들은 바로 어제의 나와 다름 없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들이 갖고 있는 상처, 영광, 우정, 희망, 가족, 꿈 등은 우리가 살아오면서 한번씩은 고민하고 겪어왔던 문제이다. 하코네역전경주를 통해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간세대학의 육상부 선수들. 지독한 고통을 인내한 뒤에 맞이하는 각자가 성취해내는 환희는 이들을 하나로 묶어낸다. 하코네역전경주는 비록 단 이틀에 걸쳐서 치러지지만, 1년 동안 준비해오면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그들의 모습은 달리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담아낸 인생의 여러 단면을 표현한 축소판이라고 볼 수 있다.

하코네역전경주는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완성될 수 없다.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고, 조심스러운 마음이나 자존심도 대던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된다. 하지만 달리는 동안은 혼자여서 타인의 생각이나 인간관계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자신의 마음과 마주할 수 있다. 취향도, 살아온 환경도, 달리는 속도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달린다는 고독한 행위를 통해 한순간 서로의 마음과 마음이 통하고 이어지는 기쁨을 알게 해주었다. 마치 우리네 인생처럼 말이다. 인생은 홀로 나와 마주하며 끝없이 달리는 외로운 길, 그러나 우리네 삶은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코네역전경주처럼 말이다.




달리는 것에 대한 이 마음이 사랑과 흡사한 것이라면.....사랑이란 그 얼마나 일방적이고 보답 받지 못하는 것일까?'하고 가케루는 생각했다. 한번 매혹되면 아무리 애를 써도 빠져나오지 못한다. 좋고 싫은 것도, 득실도 초월하여 단지 끌려들어간다. 행선지도 알지 못한 채 깜깜한 어둠에 집어삼키지는 별들처럼. 힘들어도, 괴로워도,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어도 달리기를 그만둘 수는 없다.(1권 279P)




마치 신년 벽두에 눈앞에서 펼져지고 있는 역전경주 실황을 보는 것처럼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인 스토리는 읽는 동안 나를 참 행복하게 했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마흔을 넘긴 나에게  꿈을 잃지 않고, 정직한 방법으로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은 신선한 샘물이자 자극제가 되어 주었다. 잊고 있었던 패기 가득했고 푸르렀던 나의 청춘을 떠오르게 해 주었다. 그래, 이것이야..사는 것은 바로 이들처럼 최선을 다하는 것에 그 의미가 있는 거야.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잖아. 그 길에는 우리가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숱하게 우리를 절망케도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건 그것에 굴하지 않는 용기, 희망을 품는 것,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는 삶을 완성하는 것..바로 그것이지. 

고통스러워도 앞으로 나아가는 힘. 자신과의 싸움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힘, 눈에 보이는 기록이 아닌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끈기였다(2권 p171)




이제야 기나긴 겨울과 그 추위를 견뎌내고 드디어 잎을 피워내는 산야의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들은 곧 찬연한 빛깔의 꽃을 피워낼 것이다. 우리는 그 꽃의 우열을 결코 가릴 수 없다. 왜냐하면 그 꽃의 빛깔과 크기는 다 각양각색으로 자기의 성질에 맞게 최선을 다해서 피워냈기 때문이다. 내게 주어진 삶을 뜨겁게 사랑해야겠다. 다시 투지가 솟는다. 나만의 삶을 완성해야지. 나의 청춘은 지금부터다. 

선택받지 못해도 달리기를 사랑할 수는 있다. 억누를 길 없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마음은 달리기라는 행위 자체가 품고 있는 고독과 자유처럼 내 속에서 반짝반짝 빛난다. 그것을 가질 수 있었으니.언제까지고  그것은 남아 있을 것이니 이제 됐다.(2권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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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어디 가?
장 루이 푸르니에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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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깝게 지내는 지인중에 한의사로 일하고 있는 친구가 한 명 있다.

나와 가족이 아프지 않는 이상, 각자 살기 바빠서 얼굴은 자주 못 보고 한번씩 전화통화나 또는 때되면 건강을 묻는 안부문자 정도 날리는 사이다. 그런데, 이 친구가 바로 소아마비 장애인이다..그것도 중증의 매우 심한...

이 친구는 학창시절을 엄마의 등에서 지냈다고 한다. 고등학교까지 엄마의 등에 업혀서 등하교를 했다고 하며, 자기 한 몸은 어떻게든 건사하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공부하여 한의대를 가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대학에 비해 한의대에는 학년마다 유독 다리가 불편한 학생들이 많았다. 다행히도 학창시절부터 이웃을 생각하며 올곧게 살았던 친구는 아름다운 첫사랑과 결혼도 했으며 슬하에 자매를 두고 한 가정의 가장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 뿐 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각종 봉사활동이나 기부활동 또한 활발히 하고 있다. 나는 이 친구를 그런 활동중에 알게 되었다. 이 친구는 사실 여타 장애인들에 비하면 아주 축복받은 경우에 해당한다. 그래도 일상에서 부딪히는 소소한 불편함은 생각보다 많다. 거리낌없이 즐겁게 대화할 장소라도 찾을라치면 턱이 없는 1층에 위치한 찻집이나 집에서 만남을 가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변에 장애인들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이 친구와의 인연으로 장애인에 대한 생각의 지평이 넓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사회는 정말 많은 부분에서 장애인들이 살아가기에 하루하루가 전쟁같은 나날임을 깨닫기도 한다.

 

여러 책들 중에서 이 책을 고른 이유는 하늘이 무너지는 경험에 비유한 장애아를 형제로 둔 저자의 다음과 같은 말 때문이었다.

“나의 두 아들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니까요. 나는 아이들이 읽을 수 없는 책을 선물한 셈이지요.”

 

친구는 부모님이 건강한 세 아들을 낳은 후 마지막에 낳은 막내가 중증의 소아마비가 걸렸을 때 그 절망스럽고 끔찍히도 불행했던 감정을 갖게 한 것에 대한 불효했다는 마음을 늘 갖고 있는 것을 알았기에 친구가 떠오르면서 자연스레 이 책에 손이 가게 되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후회라는 태도나 거만함 없이 장애의 문제를 블랙 유머와 따듯한 감동의 필체로 그려내고 있다. 처음에 손수건까지 준비하며 만반의 준비를 하고 읽기 시작한 나는 읽는 동안 시종일관 나의 감정은 웃음과 절망사이를 오가면서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저자에게 정말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고마운 마음이 솟구쳤다. 자신의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는 저자를 보면서 그렇게도 저자가 원하던 그 평범함이 바로 내가 가진 행복임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내 아이의 대한 넘치는 사랑으로 인한 자랑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된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한 나를 반성하는 시간이 되어주기도 했다. 저자가 마튜와 토마를 위해서 썼다는 이 책은 정작 그 천사들은 비록 읽지 못한 채 나에게 온 것이지만, 부모로서의 마음가짐과 장애아에 대한 인식을 새로히 점검해보는 진정 귀한 시간이 되어주었다.

 

 처음에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 툭! 하고 책 사이에서 무엇인가가 떨어졌다. 예쁜 사람이 그려져 있는 책갈피였다. 이게 뭐지? 하면서도 읽는 내내 즐겁게 활용했는데, 다 읽고 나니 그 아름다운 세사람은 마튜, 토마, 그리고 아빠의 모습이라는 걸 알았다. 마음에 오래 남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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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잔의 차
그레그 모텐슨.데이비드 올리비에 렐린 지음, 권영주 옮김 / 이레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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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파키스탄,이라는 나라는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짤막한 기사들로 인해 부정적인 이미지와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의 인권에 대해서는 무지막지한 나라라는 인식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세잔의 차'가 의미하는 내용에 끌려서 선택한 이 책은 참 많은 것을 나에게 가르쳐 줬다.

그레그 모텐슨이라는 한 남자의 인생에서 아이들을 향한 순수한 열정과 따듯한 마음, 인간관계를 맺는 자세, 타문화에 대한 배려, 겸손한 자세, 극한 상황에서도 결코 잃지 않았던 열정과 강인한 정신,을 감동적으로 배우기도 하였지만, 단편적으로는 파키스탄이나 아프카니스탄의 상황, 그 곳 사람들의 풍습, 그리고 탈레반의 구성에 대한 이해,  미국의 자세, 이슬람문화권에 대한  지식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 참 반가왔다.

그 동안 파키스탄, 이라는 나라에 대한 나의 편견은 바로 무지에서 온 것이고, 또한 그 무지가 현재 가난이 되물림되고 있는 파키스탄의 현 상황의 원인이기도 한 것이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그곳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선교사의 삶을 살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레그는 어린 시절을 광활하고도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보냈다. 성장배경은 이후 그레그의 삶에 알게모르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지구의 오지에 학교를 짓겠다는 그의 꿈은 이미 어린 시절에 예비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장 사랑했던 여동생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서 파키스탄 북부 지역의 키라코람 산맥의 최고봉인 K2등반을 계획하나, 실패하고 조난당한 그레그를 히말라야 아래의 협곡 사이에서 척박한 삶을 살아가는 코르페 마을 부족들이 구조해 준다. 한 달 동안 정성스런 보살핌을 받고 몸을 회복한 그레그는 그 마을 촌장에게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겠다고 한다. 그들이 요구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닌 바로 학교였다. 1만 2천달러만 있으면 학교 하나를 지을 수가 있다고 하여 샌프란시스코에 돌아온 그레그는 병원 야간근무를 자원하며 그 돈을 모으기에 힘쓴다. 또한, 후원금을 모집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맨 처음 보낸 580통의 편지는 이후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기적들을 만들어내는 단초가 되어 준다. 작은 산간마을의 학교 하나를 짓는 사업이 점차 늘어나게 되어 78곳에 학교를 짓게 되고 3만명의 아이들이 그 혜택을 보게 된 사실을 우리는 쉽게 기적, 이라는 단어로 그의 히말라야에서의 삶을 간단하게 의미지어 버리지만, 그러나 그레그 모텐슨의 삶은 단순히 기적이라고 부를 수 만은 없다. 그의 삶은 통째로 목숨을 건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처음 기부자인 장 회르니 박사같은 지원자도 많았지만, 그만큼 그의 뜻을 오해하거나 이용할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레그는 탈레반에 납치되어 8일이나 구금되기도 했고, 일부 이슬람 성직자들은 그레그의 교육사업이 코란에 위해된다고 선포하기도 했다. 하물며 그레그의 조국인 미국에서조차도 보수주의자들은 그레그의 교육사업을 반대하며 협박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녀들에게만큼은 이 지독한 가난을 물려주고 싶어하지 파키스탄과 아프카니스탄의 부모들의 순수한 열의와 그레그의 강력한 의지는 이 모든 장애를 이겨내고 지금도 교육사업은 계속 추진되고 있다.   

 

인도 캘커타에서의 선교사업을 수행했던 테레사수녀를 존경해왔던 그레그.  테레사수녀 못지 않게 검소하고 욕심없이 아이들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그레그의 삶은 미국의 영웅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뿐 만 아니라, 갈수록 물질화되어가는 현재의 자본주의 사람살이에 꼭 필요한 정신이자 모습이었다. 그레그의 제2의 고향의 촌장이자 정신적인 대부인 하지 할리는 "발티 사람과 한 잔의 차를 함께 마시면 이방인이고, 두 잔의 차를 함께 마시면 영예로운 손님이 되고, 세 잔의 차를 함께 마시면 가족이 된다" 라며, 모텐슨에게 세 잔의 차를 함께 마시라고, 서두르지 말고 학교를 짓는 것 못지않게 관계를 맺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라고 말해 준다. 이 메시지는 타자화되어가는 사회구조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진정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진정한 교육의 가치는 학교를 짓는 것 못지 않게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문화적 자세에도 있는 것이다.

 

파키스탄의 아이들은 암흑처럼 캄캄한 무지에서 깨어나 사람답게 살기 위한 필요성에 의해 강력히 교육을 받고자 한다. 따라서, 한권의 노트와 한 자루의 연필도 너무 소중하게 눈 반짝이며 받아드는 아이들의 모습은 마치 물을 빨아들이는 솜처럼 그렇게 공부에의 순수한 열망으로 가득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기적같은 한 산악인의 아름다운 삶 속에서 우리의 교육현실이 저절로 돌아봐 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도 모른다. 타인보다 더 잘 살기 위해서 받는 교육, 단지 사회속에서 도태되지 않게 위해서 아무런 꿈도 없이, 적성과 희망도 없이 아침부터 밤 늦은 시간까지 무거운 책가방에 시달리는 아이들.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보다는 먼저 차 한 잔을 건넬 줄 아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배우기보담은 경쟁과 비교만을 배우는 우리 아이들의 교육현실이 너무 슬프기만 하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배우지 못한 채 일등만을 향하여 달려가는 교육현실은 2007년도의 아프카니스탄 피랍같은 사건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 속에서 알게 된 이슬람문화권의 사람들은 우리가 편견을 가지고 대했던 '테러'와 동의어로 다가오던 그 사람들이 아니었다. 기독교신앙의 관점으로, 우리네 문화의 우수성만을 전제로 한 그 사람들을 대한 우리의 자세는 당시의 사건을 일으킨 자들을 옹호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미국의 정치적인 렌즈를 통해서만 이슬람문화권을 접하는 우리의 자세를 수정할 필요성은 있는 것이다. 어쩌면 모텐슨의 기적이 우리나라 교육현실에서 더 강력히 필요하단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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