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속의 과학 - 과학자의 눈으로 본 한국인의 의식주
이재열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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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이라는 단어가 주는 운치스러움과  과학이라는 단어가 주는 딱딱함의 조합이 묘한 매력을 준다.

우리것, 우리 문화에 대한 평소의 관심은 대학에서 생명과학을 가르치는 과학자의 눈으로 본 한국인의 의식주, 라는 부제가 일면 새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서구에서 수입된 현대 과학을 담장 밖의 과학이라고 한다면, 전통 문화 속에 농익어 온 조상들의 지혜와 지식을 담장 속의 과학이라고 하여 저자는 우리네 담장이 지니는 의미(담장은 너와 나를 구분하는 지점이기도 하지만, 담장의 높이를 낮게 하여 서로를 건너다볼 수 있게 함으로써 폐쇄적이지 않고 닫혀있으면서도 끝이 아닌 열린 지점이라고 해석)를 확대 해석하여 담장속의 과학과 담장 밖의 과학이 만나야 한다는 전제하에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삶의 지혜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로써 과학과 인문학을 조금씩 합쳐 보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고 한다.

 

내용의 전개는 의식주의 순서가 아닌 주식의의 순서로 전개되고 있다. 지난 시절 우리 생활 속에 담겨 있던 의식주의 문화를 돌아보며 그 안에 담긴 과학적인 가치를 분석해 나가면서 우리 생활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멋과 아름다움은 과학 지식과 정보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더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부에서는 마음속에 품은 집이라는 주제로 온돌의 과학성, 우수성, 고샅길의 추억, 공동체적 삶의 여유, 사랑채의 역할, 대청마루, 조왕신, 창문과 창호지, 마당이나 뒤곁에 심은 나무의 종류 등, 막연히 풍습으로만 여겨왔던 거, 언뜻 미신으로 치부되어왔던 내용들이 알고 보니 매우 과학적인 원리에 의해서였다는 것을 조상들이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혜를 활용했음을 들려준다. 마음속에 품은 집,은 세 파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으로서 나에게는 어린시절 자랐던 고향과 너무도 똑같은 집의 모습이어서 읽는 기분이 남달랐다. 추억속의 집이다.

2부에서는 우리 몸을 채우는 먹을거리에 대한 내용으로서 김치와 장에 대한, 그 발효음식의 가치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김치의 우수성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늘상 먹던 우리나라 사람들이야 유전인자에 인이 박혀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음식의 하나이지만, 김치의 우수성은 과학적으로 이미 외국에서 더 알려져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대표적인 음식으로서 자리를 차지한 지 오래이다. 각종 유산균, 젖산 등 김치가 가지고 있는 영양의 가치는 익히 알고 있었던 사실임에도 과학자가 설명해주는 김치를 만들기까지 조상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혜들은 실로 감탄스럽지 않을 수 없다. 완벽한 음식중에서도 으뜸이라고 자부하고 싶을 정도이다.

3부에서는 우리를 감싸안는 옷이라는 주제로 잿물을 이용한 빨래에 대한 고찰 및 색깔있는 옷의 역사와 천연염색의 우수성, 자연으로부터 얻은 우리만의 옷감에 대한 전망등에 대해서 다루어주고 있다.

세 단락으로 나누어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의식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기후와 풍토에 가장 적합하고 적절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점점 서구화되어가고 있는 우리네 삶에서 오로지 우리것만을 고집할 수는 없기에 우리의 의식주에 담겨 있는 조상의 지혜와 과학적인 가치를 온고지신의 자세로 연구개발하여 새롭게 미래를 창조해나가자는 것이다.

 

과학자의 눈으로 본 한국인의 의식주, 라고 해서 조금은 딱딱한 글을 예상했으나, 의외로 한편의 에세이를 읽는 듯 쉬이, 그러면서도 편안히 읽히는 책이다. 과학적인 지식을 드러내는 부분도 전체적인 글의 분위기가 옛추억을 떠오르게 해서인지 부담스럽지가 않다. 따라서 과학자의 글이라기 보다는 생활풍속연구가의 글처럼 다가오는 우리 생활풍속문화사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의식주의 세 부분의 비중이 고루 배분되어 있지 않고, 저자가 말하고 싶은 부분이 더 강조되기도 하고, 어느 부분은 간략하게 서술되어 건너뛰기도 한 점이 그것인데, 앞에서 언급한대로 학술서라고 생각하지 않고 에세이 정도로 생각한다면 즐거운 책읽기가 가능할 것이다.

더불어, 우리생활문화에 대한 더 상세하고 많은 정보를 원한다면 저자가 친절하게도 뒷부분에 참고문헌을 기술해 놓았으니 참고해도 좋을 거 같다.

 

마을에서 도시로 생활의 중심이 변화하면서 의식주의 여러 가지 조건들이 경제 논리에 따라 단순화, 획일화, 대형화되고 있는 이 시대는 편리함만 추구하면서 생명의 기운과는 점점 멀어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정작 살고 싶은 삶은 앞뒤로 시원하고 맑은 바람 드나드는 대청마루가 있는 , 아침마다 하루를 여는 부지런한  마당 싸리비질 소리에 눈을 뜨고, 겨울이면 처마에 고드름이 달리며 기름 먹인 노오랗고 따듯한 장판에서 몸을 녹이고, 부엌옆  장독대에는 봉선화가 줄지어 피어 있고, 뒤꼍 텃밭에는 탐스런 작약도 흐드러지고, 마당 한 귀퉁이에는 푸성귀가 자라는 탱자나무 울타리너머 동구밖이 훤히 보이며 집둘레는 대나무가 휘돌아 둘러쳐진 내 어린 시절의 공동체적 삶의 방식과 오순도순한 사람살이가 지닌 멋과 여유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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