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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등척기 - 정민 교수가 풀어 읽은
안재홍 지음, 정민 풀어씀 / 해냄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민족의 성산으로 우리들 가슴속에 화인처럼 아로새겨진 그이름 백두산은 쉽게 가보지 못함으로 인해 더 간절한 마음을 품게 한다.
딱히 백두산에 관련된 책을 만나보지 못하다가 평소 애정을 갖고 있었던 정민교수님의 필체로 만날 수 있다고 하니 급호감이 생겼다.
기존에 안재홍님이 한자로 쓴 기행문을 정민 교수님께서 풀어쓰셨다고 하니, 문장에 대한 두려움을 살짝 누른 채 책을 만나보게 되었다.
'민족은 세계로 세계는 민족으로'에서 가져온 민세라는 호를 사용하는 안재홍님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민세안재홍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의 표현을 빌자면, 그는 비타협, 비폭력, 실천적 저항의 지조를 지키고 행동한 독립운동의 표상이었으며, 그의 [백두산 등척기]는 치열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 기행문이라고 한다. 안중근, 신채호, 윤봉길, 등 널리 알려진 분 외에는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고생하셨던 그 시대의 독립지사들에 대해서 새삼 무지했음을 깨닫는다.
[백두산 등척기]는 1930년 7월 23일 경성역을 출발하여 8월 7일 기차로 북청역을 떠나기까지의 장장 16일에 걸친 기록이며, 그 노정은 원산과 무산을 거쳐 농사동과 신무치, 무두봉을 지나 천지에 오르고, 허항령과 포태리를 경유해 혜산진으로 내려 풍산과 북청을 경유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안재홍님은 총 34회에 걸쳐 당시 부사장으로 있던 <조선일보>에 연재하게 되었고, 그 이듬해에 유성사에서 단행본으로 발간하기에 이르른다. 정민교수님은 34회의 연재분을 총 23장으로 새로 정리했는데, 그 풀어쓰기의 원칙은 내용은 빼거나 보태지 않는다, 한자말은 풀어쓴다, 긴 글은 짧게 끊는다, 구문은 현대어법에 맞게 바꾼다, 에 따라 한 문장도 남김없이 다 바꾸고 하나도 빠진 것 없이 다 실었다고 전제하고 있다.
안재홍님을 비롯한 중심인원 6명과 그 외에도 여러 사람이 동행한 이 여행길은 단지 팔도 유람하는 식의 관광이 아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민족의 앞날을 깊이 고민하는 그런 시간이 되어주었다. 백두산으로 향해 가는 길목에서 이 나라의 과거역사를 되새기며 미래를 생각하는 저자의 마음은 남북으로 분단된 채 긴장된 작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시사해주는 것, 또한 많다.
백두산 상상봉을 오르기 전 , 아침에 정갈하게 몸단장을 하는 저자의 모습은 백두산을 생각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모습을 보며 시대를 아우르는 진한 민족애를 느끼게 되는 거 같다.
지난 여름 8월에 약 20여명의 우리 일행들은 고구려 유적지 탐방 및 백두산 기행에 나서게 되었다. 다른 그 어떤 여행길에서보다 더 흥분되고 설렜었던 이유는 바로 백두산이 그 여정의 한가운데 정점에 있었기 때문임을 부인하지 못한다.
단동을 거쳐, 압록강, 집안, 통화를 지나 백두산으로 향하는 길, 차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은 너무도 익숙해서 이곳이 과연 옛 우리의 땅 고구려가 맞구나, 하는 마음은 참으로 만감이 교차되는 순간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자작나무숲.(안재홍님은 이 책에서 옥으로 빚은 듯한, 이라고 표현한다).
언젠가 1박2일에서 북파로 천지를 올라가는 모습이 방영되었었는데, 아쉽게도 우리 일행은 서파로 천지를 올라가게 되었다. 백두산의 중턱까지는 차로 이동을 하고, 천지까지는 12,000계단을 오르면 되는 비교적 쉬운 코스였다. 차로 올라가는 백두산은 마침 비가 내려서이기도 했지만, 신비롭다 못해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바람에 운무가 꿈결처럼 흩어지기라도 할라치면 살짝 보여지는 풍경은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비경들.
나무들은 초자연의 형상으로 자유로히 서 있고, 수풀들은 짙푸르거나, 희끄무레하거나 모두 그들만의 모습으로 수목들과 어우러진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나무들은 보이지 않고, 고산지대 특유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장한 마음으로 올라선 천지는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우리는 저 짙은 안개 너머로 천지의 물결이 보이기라도 하는 듯, 꼼짝없이 서서 내려다 보았다.
하산하는 길에 금강대협곡, 고산화원, 제자하등을 관광하면서 너도나도 다시 백두산을 찾으리라, 그때는 꼭 이 두발로 등척을 하리라, 우리는 다짐에 다짐을 했었다.
비록, 안재홍님과 내가 올라간 길은 같지 않지만, 그 가는 길에 만났던 풍광은, 그 풍광이 불러온 단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나의 식견과 문장력이 부족하여 담아내지 못했을 뿐. 이 책은 당시 백두산을 다녀오면서 느꼈었던 나의 소회를 다시금 생각나게 해주었다.
안재홍님은 백두산의 아름다운 경치 세 곳을 꼽고 있다. 상상봉과 천지가 첫째이고, 무틀봉 위로 펼쳐진 넓은 전망이 또 하나며, 삼지연의 맑고 고운 호수와 산의 아름다움이 나머지 하나라고 정리한다. 이 중에서 무틀봉 위로 펼쳐진 전망은 꼭 만나보고 싶은 풍광이다.
안재호님은 백두산을 그의 나이 40에 올랐는데,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내 나이를 가늠해보고 있다.
이미 안재홍님의 나이를 훌쩍 넘겼으나, 그 때보다는 영양상태가 좋으니, 앞으로도 몸관리가 우선되어야 할까?
연평도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통일이후의 빛나는 조국의 앞날을 꿈꾸어도 좋을지...
어수선한 요즘에 만난 [백두산 등척기]는 왠지 더 간절하게 다가오는 기행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