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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책들과의 만남 (양장본)
데이비드 덴비 지음, 김번.문병훈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언제부터 내 이리 책에 욕심이 많았는지 헤아려 본다.
아무래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카페활동을 하면서부터인 거 같다. 그전에는 나도 책을 꽤 읽는 축에 속한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카페에서 만나는 회원들의 모습은 정말 경이로울 정도였다.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책에 대해서도 서로 자유로히 토론하는 모습하며 하루가 멀다하고 소장하고 있는 책에 대한 소개까지...나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게 된 계기가 되어주기도 했다.
아마도 그래서였던 거 같다.
회원들이 소장한 책은 나도 갖고 있어야 할 것 같고, 쉽게 만날 수 없는 책들(예를 들면, 비싸다거나 필수구비책이거나, 절판된 책이거나)을 보면 그저 갖고야 말겠다는 다짐만으로도 내머리속은 다른 생각이 들어설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해서 내 책장을 장식하고 있는 책은 어느새 꽤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기꺼이 읽을 수 있는 책, 소화가 가능한 책, 내 기호에 맞는 책 위주로 구입했던 나에게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하여 아직도 읽지 못한 책이 수두룩하건만, 가끔씩 책장만 쳐다봐도 배가 부른 기분은 또 무어란 말이냐..ㅠㅠ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 이 책은 보자마자 욕심이 났다. 처음에는 목차만 보고도 그 깊이에, 그 넓이에 기가 눌려 얼른 마음을 접었었다. 그러나 책 제목은 이상하게도 내 뒷목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고, 나는 과감히 욕심을 부려버리고 말았다.
처음 손에 받아들고서 이리 쓸어보고 저리 쓸어보면서 어찌나 뿌듯해했던지. 언젠가부터 고전에 대해서 새로운 계기를 갖고자 했었다.
제대로 코스를 밟아서 섭렵해 봐야지, 하는 각오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을 터.
7년 전, 둘째 아이를 낳고 난 후, 나의 정체성에 대해서 급격히 회의가 들어 갑자기 계획에 없던 대학원을 진학하게 되었다. 일과를 마친 후에 야간에 수업을 받으면서 학문에 대한 인식욕을 불태웠던 그 시절은 요즘도 가끔 추억속에서 꺼내보면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에 한줄기 바람처럼 싱그러운 위로가 되어주곤 한다. 학부시절에도 그렇게 해보지 못했던 공부에의 열망으로 하루하루가 배움에의 환희로 가득했던 그 시절. 그 때 했던 공부가 바로 지금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인문학'이다.
밤을 도와 동료들과 교수님과 원탁으로 둘러앉아 토론에 토론을 거듭했던 시간, 돌이켜보면 너무도 어설프고 부족했던 우리들이었지만,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을 읽는 내내 나는 행복했던 시절이 자주 떠올랐다.
하여 책의 난이도와는 별개로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행복했음을 전제한다.
감히 이 책의 저자를 나의 경우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저자 또한 [뉴욕]지 영화평론가로서 사회적으로 안정된 처지였지만 왠지 가슴 한 구석 스산하고 허전한 마음을 알 수 없어(저자는 이를 중년의 위기, 또는 정체성의 위기라고 했다)'위대한 책들'을 읽기로 결심하고 컬럼비아대학에서 2학기동안 '인문학'과 '현대문명'을 수강하게 된다. '인문학'은 문학의 고전을, '현대문명'은 정치.철학 사상의 고전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일년 동안 두 과목을 수강하면서 거론된 텍스트들을 읽고 학생들과 교수들과 토론하면서 얻은 결과나 느낌을 이 책에 담아내었다.
이 책은 시간을 가로지르는 저자의 모험을 쫓아 다음의 장들을 연속적으로 읽든가, 아니면 흥미나 즐거움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어떤 순서로 읽어도 무방하다. 사실 순서없이 그저 꽂히는 텍스트에 따라서 읽어도 관계없다. 그야말로 공부하듯이 책을 대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맨 뒷페이지의 색인까지 합하여 960페이지에 달하는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은 그야말로 대장정이었다.
대장정에는 모험도 당연히 따르니, 고전의 중요성과 보편성으로 인하여 제목의 익숙함에(생전 처음 들어보는 목록도 있었다)자신있게 뛰어들었다가막상 그 내용으로 들어가보면 매우 낯설어 부족한 나의 기본기를 절감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지 않았다. 마치 수업에 임하듯이, 그나마 있던 용기와 자신감을 잃지 않기 위하여 익숙하면서도 나름 만만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으로부터 시작하여 제목이라도 익숙한 것, 그 다음으로 내용을 얼추 알 듯도 한 것, 마지막으로 처음 대해보는 것 순서로 저자의 수업에 동참했다.
컬럼비아대학의 수업 풍경이나 토론의 자세, 그리고 교수방법의 다양성 등을 엿볼 수 있는 쏠쏠한 재미가 있어 원전을 알지 못하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충분히 상쇄할 수 있었다. 저자의 수시로 등장하는 풍성한 개인 일상사에 대한 부분도 재미를 더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저자의 수업에 동참하면서 미디어 시대에 문학이 갖는 존재 의의, 교육의 본질적 의미, 그리고 독서의 본질적인 즐거움인 고독한 황홀함 등에 대해 나름 사유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인문학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여기저기서 호들갑이지만, 결코 이대로 사라질 학문은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다. 사람살이에 꼭 필요한 학문이 바로 사람인자가 들어가는 학문, 인문학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말이다.
또한 인문학에 필수전제되어야 할 독서목록이 있으니 바로 그것은 불멸의 고전임은 두 말할 나위 없다.
이 책에 거론되는 고전만큼이라도 꼭 일독해봐야겠다는 당찬 다짐을 해 본다. 그 후에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을 기필코 다시 시도해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