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잔의 차
그레그 모텐슨.데이비드 올리비에 렐린 지음, 권영주 옮김 / 이레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파키스탄,이라는 나라는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짤막한 기사들로 인해 부정적인 이미지와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의 인권에 대해서는 무지막지한 나라라는 인식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세잔의 차'가 의미하는 내용에 끌려서 선택한 이 책은 참 많은 것을 나에게 가르쳐 줬다.

그레그 모텐슨이라는 한 남자의 인생에서 아이들을 향한 순수한 열정과 따듯한 마음, 인간관계를 맺는 자세, 타문화에 대한 배려, 겸손한 자세, 극한 상황에서도 결코 잃지 않았던 열정과 강인한 정신,을 감동적으로 배우기도 하였지만, 단편적으로는 파키스탄이나 아프카니스탄의 상황, 그 곳 사람들의 풍습, 그리고 탈레반의 구성에 대한 이해,  미국의 자세, 이슬람문화권에 대한  지식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 참 반가왔다.

그 동안 파키스탄, 이라는 나라에 대한 나의 편견은 바로 무지에서 온 것이고, 또한 그 무지가 현재 가난이 되물림되고 있는 파키스탄의 현 상황의 원인이기도 한 것이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그곳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선교사의 삶을 살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레그는 어린 시절을 광활하고도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보냈다. 성장배경은 이후 그레그의 삶에 알게모르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지구의 오지에 학교를 짓겠다는 그의 꿈은 이미 어린 시절에 예비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장 사랑했던 여동생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서 파키스탄 북부 지역의 키라코람 산맥의 최고봉인 K2등반을 계획하나, 실패하고 조난당한 그레그를 히말라야 아래의 협곡 사이에서 척박한 삶을 살아가는 코르페 마을 부족들이 구조해 준다. 한 달 동안 정성스런 보살핌을 받고 몸을 회복한 그레그는 그 마을 촌장에게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겠다고 한다. 그들이 요구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닌 바로 학교였다. 1만 2천달러만 있으면 학교 하나를 지을 수가 있다고 하여 샌프란시스코에 돌아온 그레그는 병원 야간근무를 자원하며 그 돈을 모으기에 힘쓴다. 또한, 후원금을 모집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맨 처음 보낸 580통의 편지는 이후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기적들을 만들어내는 단초가 되어 준다. 작은 산간마을의 학교 하나를 짓는 사업이 점차 늘어나게 되어 78곳에 학교를 짓게 되고 3만명의 아이들이 그 혜택을 보게 된 사실을 우리는 쉽게 기적, 이라는 단어로 그의 히말라야에서의 삶을 간단하게 의미지어 버리지만, 그러나 그레그 모텐슨의 삶은 단순히 기적이라고 부를 수 만은 없다. 그의 삶은 통째로 목숨을 건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처음 기부자인 장 회르니 박사같은 지원자도 많았지만, 그만큼 그의 뜻을 오해하거나 이용할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레그는 탈레반에 납치되어 8일이나 구금되기도 했고, 일부 이슬람 성직자들은 그레그의 교육사업이 코란에 위해된다고 선포하기도 했다. 하물며 그레그의 조국인 미국에서조차도 보수주의자들은 그레그의 교육사업을 반대하며 협박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녀들에게만큼은 이 지독한 가난을 물려주고 싶어하지 파키스탄과 아프카니스탄의 부모들의 순수한 열의와 그레그의 강력한 의지는 이 모든 장애를 이겨내고 지금도 교육사업은 계속 추진되고 있다.   

 

인도 캘커타에서의 선교사업을 수행했던 테레사수녀를 존경해왔던 그레그.  테레사수녀 못지 않게 검소하고 욕심없이 아이들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그레그의 삶은 미국의 영웅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뿐 만 아니라, 갈수록 물질화되어가는 현재의 자본주의 사람살이에 꼭 필요한 정신이자 모습이었다. 그레그의 제2의 고향의 촌장이자 정신적인 대부인 하지 할리는 "발티 사람과 한 잔의 차를 함께 마시면 이방인이고, 두 잔의 차를 함께 마시면 영예로운 손님이 되고, 세 잔의 차를 함께 마시면 가족이 된다" 라며, 모텐슨에게 세 잔의 차를 함께 마시라고, 서두르지 말고 학교를 짓는 것 못지않게 관계를 맺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라고 말해 준다. 이 메시지는 타자화되어가는 사회구조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진정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진정한 교육의 가치는 학교를 짓는 것 못지 않게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문화적 자세에도 있는 것이다.

 

파키스탄의 아이들은 암흑처럼 캄캄한 무지에서 깨어나 사람답게 살기 위한 필요성에 의해 강력히 교육을 받고자 한다. 따라서, 한권의 노트와 한 자루의 연필도 너무 소중하게 눈 반짝이며 받아드는 아이들의 모습은 마치 물을 빨아들이는 솜처럼 그렇게 공부에의 순수한 열망으로 가득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기적같은 한 산악인의 아름다운 삶 속에서 우리의 교육현실이 저절로 돌아봐 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도 모른다. 타인보다 더 잘 살기 위해서 받는 교육, 단지 사회속에서 도태되지 않게 위해서 아무런 꿈도 없이, 적성과 희망도 없이 아침부터 밤 늦은 시간까지 무거운 책가방에 시달리는 아이들.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보다는 먼저 차 한 잔을 건넬 줄 아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배우기보담은 경쟁과 비교만을 배우는 우리 아이들의 교육현실이 너무 슬프기만 하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배우지 못한 채 일등만을 향하여 달려가는 교육현실은 2007년도의 아프카니스탄 피랍같은 사건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 속에서 알게 된 이슬람문화권의 사람들은 우리가 편견을 가지고 대했던 '테러'와 동의어로 다가오던 그 사람들이 아니었다. 기독교신앙의 관점으로, 우리네 문화의 우수성만을 전제로 한 그 사람들을 대한 우리의 자세는 당시의 사건을 일으킨 자들을 옹호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미국의 정치적인 렌즈를 통해서만 이슬람문화권을 접하는 우리의 자세를 수정할 필요성은 있는 것이다. 어쩌면 모텐슨의 기적이 우리나라 교육현실에서 더 강력히 필요하단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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