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영혼, 책을 만나다 - 김영아의 독서치유 에세이
김영아 / 삼인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선택하다 보면 미리 가졌던 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아쉬움으로 남는 책이 있는가 하면,

별 기대없이 무심하게 넘겼던 책속에서 보석을 발견한 것처럼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 책들이 있다.

<아픈 영혼, 책을 만나다>, 이 책이 내게는 그런 보석같은 책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상은 차라리 치료가 쉽다. 눈에 보이는만큼 원인이 분명하니까, 그에 따른 적절한 처방도 가능하다.

그러나, 내면에 깊이 입은 상처는 쉽지 드러나지 않아 치료하지 못한 채 깊은 무의식너머로 숨겨진 채 곪아가기 마련이다.

곪아진 상처는 먼 훗날 더 큰 상처로 터져나와 한 개인의 삶, 전체를 흔들어 버리곤 한다.

특히, 어린 시절에 받은 트라우마는 그 이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삶의 원형을 변형시키고 굴절시킨다.

우리는 음악이나 미술 등으로 심리치료를 시도하는 방법이나 각종 문화센터 프로그램을 많이 접해 왔다.

근래에 논리논술과 함께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책을 통한 독서치유의 방법은 이제 서서히 그 첫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저자는 마음이 아픈 영혼들과의 책을 통한 교류를 통해 심리상담의 한 방법으로서 독서치료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책의 주 내용은 문화센터에서 총 8회 과정으로 개서로딘 '독서로 치유하는 내 안의 그림자'프로그램의 진행과정을 서술해 놓고 있다.

총 15장으로 나뉘어 각각의 사연들을 담아내고 있는데, 그 과정중에 자신의 상처와 정면으로 부딪혀내는 내담자가 있는가 하면, 중도에 포기해 버린 채 중단하는 경우도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런가 하면 한번도 자신이 갖고 있는 그늘에 대해서 주의깊게 들여다 보지 않다가, 다른이의 치유과정(책과 프로그램동료들)을 지켜보면서 미처 몰랐던 자신의 상처와 대면하기도 한다.

 

나 또한, 그동안 책을 통해 위안받은 기억은 셀 수 없이 많다. 그것이 내 오랜 책읽기의 이유이기도 하니까.

그 중에서도 20대 후반에 존재의 부정으로까지 이어졌던 실연의 상처를 서영은의 소설로 극복했던 기억이 대표적으로 생각난다.

그 당시 소설속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고통을 통하여 내 상처를 가감없이 들여다 보게 됨으로써 서서히 그 상처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과정을 '상처의 객관화'과정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내담자들과 함께 읽은 책은, 김중미<괭이부리말 아이들>, J.M.바스콘셀로스<나의 라임오렌지나무>, 김경집<나이듦의 즐거움>,야마나카 히사시<내가 나인 것>,가브리엘 루아<내 생애의 아이들>,로버트 뉴튼 펙<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황선미<마당을 나온 암탉>,김진세,이경수<마흔의 심리학>,장영희<문학의 숲을 거닐다>,오가와 요코<박사가 사랑한 수식>,김형경<사람풍경>,김정현<아버지>,신경숙<외딴방>,공지영<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금이<유진과 유진>,도스또예프스키<죄와벌>등이다.

그러나, 어디 이 책 뿐이겠는가. 이 외에도 우리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자아는 이 책들 외에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상처는 그대로 두면 너무나 아프지만 이를 승화시키면 다른 영혼을 치유하는 데 귀하게 쓰일 수 있다"(헨리 나우웬)

어차피 혼자 살아가는 인생이라고 자조하면서 고독에 몸부림치지 말고, 그 삶에는 분명히 '연대'라는 함께 하는 기쁨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랭보의 시처럼 "상처없는 영혼이 어디 있"겠는가...

 

15명의 상처입은 영혼들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 하면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치유되지 않은 내 아픔과도 만나는 시간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의 치유과정에서 같이 울 수 있었고.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상담자들의 용기있는 고백은 나에게도 위로와 힘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내담자와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상담자인 저자에게도 같은 경험으로 존재했다.

나 혼자 다져오고 승화시켜 왔던  삶의 방향이 그들이 치유해가는 과정과 비슷했지만, 혼자여서 외로웠고 잘 살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이 책속의 여러 모습들은 내 모습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고 격려해 주고 있었다. 무의식속에서 곪아갔던 내 외로움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상처가 이해받은 느낌이다.

책을 읽은 동안, 떠오르는 주변의 지인들이 있다. 그들에게 이 책을 꼭 만나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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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타라
조정은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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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생전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수필집이다. 제목이 주는 느낌이 예사롭지 않음에도 선뜻 집어들지 못한 것은 아마도 그 탓이 제일 크지 않았을까.

10여년 전에는 에세이스트사에서 출간되는 수필잡지도 정기적으로 구독했고, 나름 이름이 알려진 수필가의 책도 간간히 만나보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삶을 관조하는 듯한 필자의 인격의 격조를 드러내는 그런 수필이 더이상 매력적으로 가슴에 와 닿지를 않았다.

현재 두 어깨로 견뎌내고 있는 삶의  다채로운 공격은 그런 느낌의 수필로는 더이상 위로를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점점 내게서 멀어진 수필.

그런 수필의 세상을 낯선 작가의 숨결로 오랜 만에 접하게 되고, 난 아주 큰 위안을 얻었다.

 

구도의 길을 포기하면서까지 서로를 원한 인연, 그리고 이룬 그들의 가정. 어느날 담배의 쓴 맛과 함께 찾아온'부도'의 무게. 저자는 비록 움막같은 집이지만, 사랑이 가득한 가정을 지키기 위하여 바람부는 세상속으로 아침이면 길을 나선다.

세상은 돈으로 사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산다는 친정어머니의 말을 깃발처럼 휘날리며 용감하게 뛰어들어간 세상은 저자에게 그리 호락호락하게 그 부드러운 속살을 보여주지 않았다.

 

에스컬레이터 청소부,,보석상 매니저 일로 가족의 생계를 꾸려내던 현실같지 않던 나날, 몽유병자처럼 꿈 속 세상을 부유하던 어느 날 그녀는 문득 내리는 눈송이를

보고 깨닫는다.

“그 작은 눈송이가 바람에 자기를 전부 내맡기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옹골차게 견디고 있는 것을.  그저 바람에 내맡긴다면 바람은 순식간에 눈송이를 가루로 부서뜨릴 것이었다. 내 몸은 저 무수한 눈송이 중에 한 송이 눈과 다르지 않다....... 그것을 타라.  성난 파도가 뱉어 내는 한 방울을 포말을 타듯이, 지축을 흔들며 용트림하는 폭포의 물줄기로부터 튀어 오르는 작은 물방울 하나를 잡아타듯이 그것을 타라, 타라, 타라, 타라. ” (49p)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뒷목을 세게 치는 느낌이다. 그것은 감동이자 깨달음이다. 아, 그렇구나.....<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같은 그녀다. 파도처럼 , 폭포처럼, 바람처럼 들이치는 삶의 무게에 결코 꺾이지 않고 내일의 태양을 굳게 믿는 그녀,

'겨울밤의 문풍지처럼 울어대는 고독의 비명에 가위눌리고 희망보다 발 빠른 절망이 포승줄을 던지며 따라와도' 여전히 꿈을 꾸는 그녀는 이제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이다.

 

<그것을 타라>는 여느 수필들과는 여러 부분에서 다르다. 마치 단편소설을 묶어 놓은 거 같기도 하고, 드라마의 줄거리를 풀어놓은 것 같기도 한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는 평소에 수필이 12매의 한계에 묶여 있다는 것에 심한 불만이 있었다고 한다. 소설이 장편서사가 가능하다면 수필 또한 장편서사사 가능치 않겠느냐는 문제제기인 것이다. 또한, 기존의 수필이 주로 '말하기' 수필의 형태를 띠고 있다면 그녀의 수필은 '보여주기'수필의 전형을 말해주면서 이 수필집을 통해 연작으로 장편수필 쓰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것을 타라>에는 그녀의 개인적인 삶을 연작식으로 풀어내고도 있지만, 다양하고 개성있는 등장인물을 등장시키고, 또 그들의 갈등구조를 만들어내면서 생동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로 수필의 진화를 꾀하고 있다. 그만큼 수필이라는 문학장르에 대한 그녀의 사랑과 자부심을 짐작하게 하며, 또한 그녀가 현재 에세이스트사의 편집장이라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저자는 우람하게 자라 하늘을 가득 안고 햇살을 온 몸으로 받고 있는 큰나무만 의미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부드러운 바람, 따스한 햇살, 새들의 지저귐, 영롱한 아침이슬이 주는 환희는 큰나무의 그늘아래서 낮게 자라는 작은 나무나 풀꽃들에게도 똑같이 주어지는 축복이라고. 넘쳐나는 활자의 풍요속에 문자로 만들어진 문학이라는 분야, 그 안에서도 맘가는대로 쓰는 수필이라는 장르는 어쩌면  자신이 쓴다는 것에 행복을 느끼고 그 의미를 갖는다면 그뿐이라고 말한다. "왜 모든 애벌레는 나비가 되어야 하냐?"는 아들의 질문에 대한 답일지도 모른다. 

 

여고시절 읽었던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서>에 나오는 글귀가 자꾸 떠올라 옮겨 본다.

"고통의 바로 한가운데에는 아무리 심한 고통도 와닿지 않는 피안지대가 있다. 그리고 그곳엔 일종의 기쁨이 자리잡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아프고도 기뻤다. 그리고 행복했다. 여러 대목에서 자꾸만 눈물이 터졌다. 결국 내가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자기가 가고 싶어하는 길로 간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면서도 진정 강한 사람(여성)은 그 불행에 맞서 자신에게 솔직하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결단력 있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책날개에 나와 있는 사진 속 저자의 옆모습이 참 곱다. 여린 얼굴선을 훑다가 몇오라기 보이는 흰머리카락에 시선이 잠시 머문다. 훈장같다

오래전 그녀와 같은 고통으로 삶의 나락에 떨어졌었던 기억. 그 기억속의 '나'를 이 책을 통해 치유한다. 더불어 그녀와 나, 우리의 삶에  '일종의 기쁨'이 끝까지 함께 하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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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갈나무 투쟁기 - 새로운 숲의 주인공을 통해 본 식물이야기, 개정판
차윤정.전승훈 지음 / 지성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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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니, 뭐랄까 ...깊은 숲속에서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매이다 마침내 햇살 한줌 발견해내곤 나의 가야할 길을 찾아낸 느낌이라고나 할까?
숲의 밖에서 막연히 나무들에게 갖고 있던 나의 인식, 예를 들면 평화로워 보인다는 생각, 숲속에 있으면 아늑하다는 생각들이  얼마나 좁은 시야안에서의 느낌과 해석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우리네 삶의 각박함과 치열함이 멀리 시선을 두어 식물들에게서 평화와 안식을 구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밖에서 보던 거와는 달리 식물 또한 동물과 마찬가지로 아니 그보다 더 치열하고 첨예하게 그들만의 생을 살아오고 앞으로의 생도 격렬한 투쟁속에서 이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이 한권의 책을 통해서 알았다.

 

신갈나무 투쟁기는 10년 전에 출판되었을 당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신갈나무의 투쟁적 삶은 독자들에게 나무와 자연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갖게 해준 계기가 되어 주었다. 그동안 자연과학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 수준은 향상되었고, 그에 따라 이번 개정판을 내면서 신갈나무 자체에 대한 해석과 숲 생태계와의 유기적 관계를 더 확실하게 조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신갈나무 투쟁기>의 부제목은 '새로운 숲의 주인공을 통해 본 식물이야기'이다.

한반도의 대표적인 수목을 꼽아보라고 하면, 우리의 대부분은 금새 소나무를 떠올릴 것이다.

소나무는 이 땅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해 온 나무이기도 하지만, 소나무의 위용과 그 자태, 향기, 여러가지 유용한 쓰임새는 나무의 대표로서 손색이 없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산야 어느곳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우리 인간과 가장 가깝고도 친근한 나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우리나라 산에서 언젠가부터 점점 사라져가는 소나무를(물론, 이유 또한 이 채겡 나와 있다) 대체하고 있는 새로운 숲의 주인으로서의 신갈나무의 전 생을 조명하고 있다.

신갈나무 투쟁기에는 신갈나무의 도토리 시절부터 숲의 진짜 주인이 되는 어른나무까지의 성장기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주인공인 신갈나무에 관련된 내용 뿐 만 아니라, 그의 사촌들인 굴참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등의 참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들과 신갈나무의 영원한 적수인 소나무,  그리고 그 주변 식구들, 나무에 기생하는 지의식물등...목본식물과 초본식물에 이르기까지 각종 주조연급의 식물들이 총출연하는 가히 식물백과사전이라 할 만 하다.

 

반의인화한 신갈나무의 입장에서 봄,여름,가을,겨울에 각각 어떻게 살아내는가에 대한 성장일대기를 100년에 걸쳐서 그려내고 있는데, 우리네 인생사에서 깨닫게 되는 철학적인 메시지를 나무의 생에서도  배울 수 있다는 점은 매우 매력적이다. 또한, 지은이부부가 직접 찍은 사진 200여 장에 담긴 식물의 사계와 일생은 생명의 드라마를 더욱 생동감 있게 그려내고 있어 마치 삼림욕이라도 하고 난 듯 독서후 느낌이 상쾌하다.

 

철저하게 나무의 관점에서 쓰여진 이 책을 통해 들여다본 신갈나무의 일생을 보면서 내 삶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는다.

작은 도토리가 얼어붙은 땅을 헤집고 싹을 틔우기까지의 지난한 인내의 고통, 잎을 만들어내는 정성, 줄기를 키우고, 뿌리를 깊이 내리고, 꽃을 피우고, 마지막으로 열매를 만들어 내기까지 단 한순간도 그저 순순히 되는 법이 없는 나무들의 치열한 삶을 보면서 막연히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면서 정신적인 위무를 갈구했던 나의 자세를 돌아본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그동안 나무로부터 피상적인 위안을 구했던 자세에서 그들의 삶을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마음으로, 지구라는 별에서 같이 동행하는 생물로서의 구체적인 위안을 구하는 친구의 자세를 가져본다. 지금 내 사무실 창 밖 나무들의 손짓들이 다른 날보다 더 가깝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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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
배명훈 지음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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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은 참으로 오랜만에 읽어본다.

오래전에 양귀자님의 '원미동 사람들'을 읽어보고는 거의 처음이지 싶다.

'원미동 사람들'은 도시개발을 살짝 비껴간 변두리 도시인들의 소박하고 공동체적인 삶을 그려낸 것이라면, 배명훈님의 '타워'는 우리네 서민들의 시각으로는 그야말로 남의 얘기로만 느껴지는 사람살이를 날카롭게 풍자한 소설이다.

처음에 이 책을 보고 떠오른 것은 영화 '타워링'이었다. 당연히 이 책과 영화는 구체적인 연관성은 없다. 비슷한 단어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 뿐.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어떤 느낌 하나는 소설 '타워'와 영화 '타워링'은 같았다. 어떤 한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 모습의 단면을 첨예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말이다.

 

지상 최대의 마천루인 '빈스토크'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그곳에서 일어나는 기상천외한 사건들을 보면서 독자들은 누구나 2009년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들여다 볼 것이다. 빈스토크는 '잭과 콩나무'에 나오는 콩줄기를 의미한다. 높이 2,408m, 674층, 인구 50만의 도시이자, 하나의 국가이다. 빈스토크의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상위 10%의 계층을 의미하기도 하며, 탑도시인 빈스토크는 넓게는 대한민국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좁게는 다양한 군상들이 서로 더 잘 살겠다고 복닥거리며 살아가는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풍자한 바벨탑이기도 하다. 바벨탑은 모두가 알다시피 그 탑을 짓는 도중에 서로 소통되지 못하는 다른 언어들로 인해 결국 완성하지 못한 채 미완으로 남는다. 빈스토크의 주위로는 674층을 올려다보기만 하는 단지 주변국으로만 표현되는 나라들이 나온다. 주변국 사람들이 빈스토크의 일원이 되기는 매우 어렵다. 저소공포증을 앓기도 하는 토착민외에는 자원입대라든가, 인턴사원으로 들어간 다음 일정하게 가산점을 얻어야만 시민권을 신청할  자격이 주어지는 방법이 있을 뿐.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 또한 그다지 다르지 않다.  서울과 단지 '지방'으로 나뉠 뿐...서울을 제외하고는 지방 8도의 개별적인 의미나 존재가치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마치 소설에서처럼 국경이 가로막혀 건널 수 없는 이방국처럼 우리가 느끼는 서울과 지방사이에 놓여있는 경계선은 너무도 뚜렷하기만 하다.

 

<동원 박사 세 사람>, < 자연예찬>,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엘리베이터 기동연습>,<광장의 아미타불>,<샤리아에부합하는>의 총 6편의 연작소설은 각 편에 등장하는 사람이나 어떤 사건이 읽는 순간 현실의 어떤 한 사람이나, 사건이 연상이 될 정도로 딱 지금의 한국 사회를 풍자했다.  예를 들면, 일상화된 부정부패, 표현의 자유, 이념 논쟁, 미사일 위기, 광장의 정치, 부동산 문제 등...누구나 알 수 있는 이슈들.(저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 적극 부정하고 있다. 유머러스하게)

 

현재의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은 때로는 실제가 맞나, 할 정도로 믿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소설 <타워>는 가상의 리얼리즘 소설이다. 소설에서는 현안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으며,  너와 나로 나뉘는 이분법이 아닌 더 포괄적으로 고민해보고 공감할 수 있는 해법(연대, 희망, 열정)을 끈기있게 모색하고 있다.

 

이 소설의 전반적인 느낌은우선 재미있고 기발하여 통쾌하다...이 모든 것이 직접적이지 않고 무한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살짝 비틀어서 표현되었다.. 어디 마음 편하게 숨쉴 구멍 하나 여유롭지 않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머감각이라는 것을 말해주듯이 말이다. 소설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연작소설 <타워>는 저자의 첫 소설집으로서, 통찰력을 갖춘 상상력과 날카로운 풍자, 능청맞은 유머감각이라는 저자의 최대 강점이 모두 녹아 있다. 배명훈의 작품은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행운이다. 그의 첫 소설집에 대한 만족도는 '궤도 위에서 잠든 신에게 도달하기 위한 일생일대의 모험'을 그린 저자의 첫 장편소설 또한 기대하게 한다. 어서 출간되길 고대해본다. 그의 이름, 석자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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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우울하게 하는 것들
발레리 위펜 지음, 유숙렬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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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현재 나는 우울증에 걸려 있지는 않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울증에 걸릴 확률 또한 그다지 높지 않다.

그런데, 왜 이 책을 선택했냐고요?

그것은 역자가 페미니스트 저널인 '이프'으 편집위원였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심심치 않게 내 방문을 노크하는 직장동료들 때문이기도 하다.

현대사회는 날이 갈수록 어제와 오늘이 달라지는 다변하는 사회이며, 구성원간의 개인주의가 점차 심화되어가는 사회이기도 하다. 물질만능주의가 횡행하는 흐름속에서 휴머니즘의 가치는 점점 타자화되어 가고 있다.

신문지상에는 젊은 목숨들이 자살을 하는 뉴스가 갈수록 빈번해지고 있다. 자살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요즘들어 유독 더 주목하게 되는 원인 중의 하나가 바로' 우울증'이라는 병이다.

이 병을 현대에 이르러 더 주목하게 되는 것은 바로 현대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점들과 맞물리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주부우울증, 이라는 병명은 있어도 남편우울증이라는 병명은 없듯이, 빈부의 차이나 학식의 유무와도 별개로 여성이 남성보다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두배나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에 주목한 저자는 수년간 우울증 여성들을 치료했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저술했다.

저자는 캐나다 오타와대학교에서 임상심리학과 교수로 20년 넘게 우울증을 연구해왔다. 대부분의 우울증 책은 '여성 우울증'만을 따로 구별하지 않아서 남자와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매우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만나기 때문에 특별히 여성우울증, 을 연구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울증의 원인으로는 유전인가, 호르몬 때문인가, 아니면 사회적 환경 때문인가, 등..의견이 분분하지만, 저자는 우울증의 근본 원인이 인간관계라고 단언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치료했던 네 명의 환자인 세 여성, 즉 리사, 앤, 트레이시를 경우를 통해 여성의 인간관계가 어떻게 우울증으로 변화 발전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또한, 어떤 치유과정을 통해서 그녀들이 건강한 삶을 되찾는가,에 대한 다양한 임상치료방법을 담아놓고 있다.

우울증의 뿌리를 캐내가다 보면, 환자 자신이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치게 되는데, 이것을 '블라인드 스팟'이라고 한다. 바로 이것이 인간관계를 푸는 중요한 열쇠인 것이다.

총 10장으로 구분되어 여성의 어린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부딪히는 모든 상황에서 발생될 수 있는 우울증의 원인이 되는 인간관계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각 장의 말미에는 '나에게 묻는다'라는 질문을 배치하여 현재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가, 에 대한 자기검열을 하게 해준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우울증이라는 사나운 검은개에 목덜미를 물리는 순간을 누구나 겪을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이겨내느냐의 문제인데, 어린 시절에 많은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성장한 사람일수록 그 시기를 이겨내기가 쉽다는 것이다. 또한, 블라인드 스팟이 되는 어린시절을 비록 경험했을지라도 우울증에 걸렸을 때는 반드시 전문가와 상의해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우울증에는 항우울제 복용, 개별 치료, 인지 행동 치료, 과정 경험 치료, 행동주의 부부 치료, 정서 중심 부부 치료, 부부 상담 치료 등 다양한 치료법이 있다. 이 치료법은 모두 다 효과가 있지만, 자신에게 더 잘 맞는 치료법이 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치료법을 사용하든, 먼저 환자 자신이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금연이나  5Kg체중감량의 지난함에 빗대어 우울증 치료의 길은 그보다 더 많은 인내와 노력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원인을 파악하게 되면 그 치료의 방법 또한 절로 알게 된다. 지금 우울증환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알고 있는 것을 당장 실천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변화하고자 하는 사람,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가까이서 도움을 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아주 유용한 책으로서 꼭 권해주고 싶은 필독서이다.

 

덧붙여, 책의 주제와는 별개지만 옮긴이의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에서는 완경, 비혼 등,페미니스트들이 자주 쓰는 단어들이 있어 개인적으로 참 반갑고 즐거운 책읽기였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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