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영혼, 책을 만나다 - 김영아의 독서치유 에세이
김영아 / 삼인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선택하다 보면 미리 가졌던 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아쉬움으로 남는 책이 있는가 하면,

별 기대없이 무심하게 넘겼던 책속에서 보석을 발견한 것처럼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 책들이 있다.

<아픈 영혼, 책을 만나다>, 이 책이 내게는 그런 보석같은 책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상은 차라리 치료가 쉽다. 눈에 보이는만큼 원인이 분명하니까, 그에 따른 적절한 처방도 가능하다.

그러나, 내면에 깊이 입은 상처는 쉽지 드러나지 않아 치료하지 못한 채 깊은 무의식너머로 숨겨진 채 곪아가기 마련이다.

곪아진 상처는 먼 훗날 더 큰 상처로 터져나와 한 개인의 삶, 전체를 흔들어 버리곤 한다.

특히, 어린 시절에 받은 트라우마는 그 이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삶의 원형을 변형시키고 굴절시킨다.

우리는 음악이나 미술 등으로 심리치료를 시도하는 방법이나 각종 문화센터 프로그램을 많이 접해 왔다.

근래에 논리논술과 함께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책을 통한 독서치유의 방법은 이제 서서히 그 첫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저자는 마음이 아픈 영혼들과의 책을 통한 교류를 통해 심리상담의 한 방법으로서 독서치료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책의 주 내용은 문화센터에서 총 8회 과정으로 개서로딘 '독서로 치유하는 내 안의 그림자'프로그램의 진행과정을 서술해 놓고 있다.

총 15장으로 나뉘어 각각의 사연들을 담아내고 있는데, 그 과정중에 자신의 상처와 정면으로 부딪혀내는 내담자가 있는가 하면, 중도에 포기해 버린 채 중단하는 경우도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런가 하면 한번도 자신이 갖고 있는 그늘에 대해서 주의깊게 들여다 보지 않다가, 다른이의 치유과정(책과 프로그램동료들)을 지켜보면서 미처 몰랐던 자신의 상처와 대면하기도 한다.

 

나 또한, 그동안 책을 통해 위안받은 기억은 셀 수 없이 많다. 그것이 내 오랜 책읽기의 이유이기도 하니까.

그 중에서도 20대 후반에 존재의 부정으로까지 이어졌던 실연의 상처를 서영은의 소설로 극복했던 기억이 대표적으로 생각난다.

그 당시 소설속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고통을 통하여 내 상처를 가감없이 들여다 보게 됨으로써 서서히 그 상처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과정을 '상처의 객관화'과정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내담자들과 함께 읽은 책은, 김중미<괭이부리말 아이들>, J.M.바스콘셀로스<나의 라임오렌지나무>, 김경집<나이듦의 즐거움>,야마나카 히사시<내가 나인 것>,가브리엘 루아<내 생애의 아이들>,로버트 뉴튼 펙<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황선미<마당을 나온 암탉>,김진세,이경수<마흔의 심리학>,장영희<문학의 숲을 거닐다>,오가와 요코<박사가 사랑한 수식>,김형경<사람풍경>,김정현<아버지>,신경숙<외딴방>,공지영<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금이<유진과 유진>,도스또예프스키<죄와벌>등이다.

그러나, 어디 이 책 뿐이겠는가. 이 외에도 우리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자아는 이 책들 외에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상처는 그대로 두면 너무나 아프지만 이를 승화시키면 다른 영혼을 치유하는 데 귀하게 쓰일 수 있다"(헨리 나우웬)

어차피 혼자 살아가는 인생이라고 자조하면서 고독에 몸부림치지 말고, 그 삶에는 분명히 '연대'라는 함께 하는 기쁨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랭보의 시처럼 "상처없는 영혼이 어디 있"겠는가...

 

15명의 상처입은 영혼들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 하면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치유되지 않은 내 아픔과도 만나는 시간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의 치유과정에서 같이 울 수 있었고.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상담자들의 용기있는 고백은 나에게도 위로와 힘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내담자와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상담자인 저자에게도 같은 경험으로 존재했다.

나 혼자 다져오고 승화시켜 왔던  삶의 방향이 그들이 치유해가는 과정과 비슷했지만, 혼자여서 외로웠고 잘 살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이 책속의 여러 모습들은 내 모습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고 격려해 주고 있었다. 무의식속에서 곪아갔던 내 외로움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상처가 이해받은 느낌이다.

책을 읽은 동안, 떠오르는 주변의 지인들이 있다. 그들에게 이 책을 꼭 만나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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