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소설은 참으로 오랜만에 읽어본다.
오래전에 양귀자님의 '원미동 사람들'을 읽어보고는 거의 처음이지 싶다.
'원미동 사람들'은 도시개발을 살짝 비껴간 변두리 도시인들의 소박하고 공동체적인 삶을 그려낸 것이라면, 배명훈님의 '타워'는 우리네 서민들의 시각으로는 그야말로 남의 얘기로만 느껴지는 사람살이를 날카롭게 풍자한 소설이다.
처음에 이 책을 보고 떠오른 것은 영화 '타워링'이었다. 당연히 이 책과 영화는 구체적인 연관성은 없다. 비슷한 단어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 뿐.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어떤 느낌 하나는 소설 '타워'와 영화 '타워링'은 같았다. 어떤 한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 모습의 단면을 첨예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말이다.
지상 최대의 마천루인 '빈스토크'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그곳에서 일어나는 기상천외한 사건들을 보면서 독자들은 누구나 2009년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들여다 볼 것이다. 빈스토크는 '잭과 콩나무'에 나오는 콩줄기를 의미한다. 높이 2,408m, 674층, 인구 50만의 도시이자, 하나의 국가이다. 빈스토크의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상위 10%의 계층을 의미하기도 하며, 탑도시인 빈스토크는 넓게는 대한민국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좁게는 다양한 군상들이 서로 더 잘 살겠다고 복닥거리며 살아가는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풍자한 바벨탑이기도 하다. 바벨탑은 모두가 알다시피 그 탑을 짓는 도중에 서로 소통되지 못하는 다른 언어들로 인해 결국 완성하지 못한 채 미완으로 남는다. 빈스토크의 주위로는 674층을 올려다보기만 하는 단지 주변국으로만 표현되는 나라들이 나온다. 주변국 사람들이 빈스토크의 일원이 되기는 매우 어렵다. 저소공포증을 앓기도 하는 토착민외에는 자원입대라든가, 인턴사원으로 들어간 다음 일정하게 가산점을 얻어야만 시민권을 신청할 자격이 주어지는 방법이 있을 뿐.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 또한 그다지 다르지 않다. 서울과 단지 '지방'으로 나뉠 뿐...서울을 제외하고는 지방 8도의 개별적인 의미나 존재가치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마치 소설에서처럼 국경이 가로막혀 건널 수 없는 이방국처럼 우리가 느끼는 서울과 지방사이에 놓여있는 경계선은 너무도 뚜렷하기만 하다.
<동원 박사 세 사람>, < 자연예찬>,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엘리베이터 기동연습>,<광장의 아미타불>,<샤리아에부합하는>의 총 6편의 연작소설은 각 편에 등장하는 사람이나 어떤 사건이 읽는 순간 현실의 어떤 한 사람이나, 사건이 연상이 될 정도로 딱 지금의 한국 사회를 풍자했다. 예를 들면, 일상화된 부정부패, 표현의 자유, 이념 논쟁, 미사일 위기, 광장의 정치, 부동산 문제 등...누구나 알 수 있는 이슈들.(저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 적극 부정하고 있다. 유머러스하게)
현재의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은 때로는 실제가 맞나, 할 정도로 믿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소설 <타워>는 가상의 리얼리즘 소설이다. 소설에서는 현안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으며, 너와 나로 나뉘는 이분법이 아닌 더 포괄적으로 고민해보고 공감할 수 있는 해법(연대, 희망, 열정)을 끈기있게 모색하고 있다.
이 소설의 전반적인 느낌은우선 재미있고 기발하여 통쾌하다...이 모든 것이 직접적이지 않고 무한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살짝 비틀어서 표현되었다.. 어디 마음 편하게 숨쉴 구멍 하나 여유롭지 않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머감각이라는 것을 말해주듯이 말이다. 소설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연작소설 <타워>는 저자의 첫 소설집으로서, 통찰력을 갖춘 상상력과 날카로운 풍자, 능청맞은 유머감각이라는 저자의 최대 강점이 모두 녹아 있다. 배명훈의 작품은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행운이다. 그의 첫 소설집에 대한 만족도는 '궤도 위에서 잠든 신에게 도달하기 위한 일생일대의 모험'을 그린 저자의 첫 장편소설 또한 기대하게 한다. 어서 출간되길 고대해본다. 그의 이름, 석자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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