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의 사랑학
목수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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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터넷에서 자전거녀와 자전거남의 만남이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우연히 공원에서 자전거를 매개로 해서 스친 남녀가 서로를 잊지 못해 인터넷 공간에 글을 남겼는데, 각자의 글을 본 누리꾼들이 둘을 연결시켜 주자며 여기저기 퍼나른 결과, 서로 만나게 되었고 결국 연인으로까지 발전된 이야기가 누리꾼들의 열렬한 성원과 부러움속에 회자되었었다.

언뜻 운명적인 인연으로 읽혀질 만큼 나름 극적인 그들의 만남이 이토록이나 젊은 청춘들을 열광시킨 것은 그만큼 이 사회가 우리 청춘들에게 자연스런 연애를 즐길 만한 낭만적인 환경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반증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봤다.

 

'누군가를 사랑함으로 인해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그래도 사랑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 사랑없이 무료한 날들이기보다는 고통의 바닷속일지라도 사랑으로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삶이 훨씬 낫다'..라는 말을 금언처럼 가슴에 품고서 살아온 날들이 내 젊은 날의 초상이다.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마속까지 정치적인>이라는 매우 도발적인 제목으로 처음 만났었던 저자 목수정은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라는 새로운 삶의 형태(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로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었다. 그녀의 외모 또한, 도발적이면서도 지적인 그러면서도 묘하게 여성적인 모습으로 충분히 매력적이어서 독특한 성과 함께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이번에 두번째로 그녀가 선택한 주제는 바로 <야성의 사랑학>이다. 처음 제목을 접하고는 참, 그녀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문체는 날카롭고 전투적이면서도 적확하고 거침이 없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섬세한 감성을 건드려 주기도 하여 개인적으로 외모와 마찬가지로 매우 호감이 간다.

처음의 책에서 그녀가 주장했던 사회적 편견을 뛰어넘으라는 메시지는 <야성의 사랑학>에서도 고대로 이어진다. 우리는 본능마저도 외면한 채, 짝짓기의 기본인 사랑이라는 감정까지도 타인의 시선속에서 재단되는 것을 거부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음을 그녀의  시선을 통해 깨닫게 된다.

어쩌면 일찍이 이미 간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인정을 한다는 사실이 두려워서 세상의 시선과 타협하고 있었을 뿐.

좌파적 시선, 혹은 페미니즘적 견해라고 쉽게 치부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사랑의 야성학>을 읽는 내내 들었다.

 

대학이 직장인 이유로 20대 젊은이들을 나는 날마다 대하고 산다. 그들 속으로 들어가지 않은 채 밖의 테두리에서 보아온 20대의 모습은  왠지 나의 청춘과는 조금 다른 풍경을 그려내는 것 같다. 어쩌면 <야성의 사랑학>에서 목수정님이 언급한 것처럼 외환위기라는 엄청난 경험을 한 이후로 사람들은 가치관의 대변혁을 가져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낭만적인 사랑보다는 조건에 더 집착하는 20대 초반의 여대생들의 모습은 제 아무리 화장과 명품옷으로 치장해도 아름답지 않았다. 펄펄 뛰는 싱싱한 생선처럼 살아 있는 야성의 본능은 과연 우리 시대에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서로를 존중하는 양성 평등의 사랑이 점점 사라져가는 사회를 저자는 다양한 주제를 예로 들어가면서 매우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거대한 정치논리, 경제논리, 가부장적 제도, 기득권의 이해 등등..바야흐로 사랑불능의 사회가 갈수록 팽배되어가는 것은 그녀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한국사회에서 제2의성 여자로 40여 년만 살아온다면 누구나 통감하는 내용들이 일목요연하게 그녀의 입을 통해 정리되어 있어, 그 동안 딸, 여학생, 여자, 주부, 엄마, 직장맘으로 살아오면서 느꼈던 다양한 나의 분노들이 그녀를 통해 위무받는 느낌은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내가 느꼈었던 의문과 분노와 체념과 타협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고, 더군다나 나의 탓은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난 그녀에게 강렬한 동지의식까지 느꼈다.

대학의 문을 들어서는 신입생들에게 교양필독서로 꼭 읽혀주고 싶은 책으로 손꼽고 싶을 지경이다.

<야성의 사랑학>이라는 제목에서 처음 기대했던 것은 조건이 아닌 순수한 본능에 충실한 사랑학 개론쯤을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는 '사랑'이라는 주제는 너무도 광범위하다. 남녀간의 사랑뿐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인류적 사랑, 나 자신에 대한 사랑, 자연에 대한 사랑 등..

그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유롭게 열정적인 사랑을 통해서 인간성을 회복하라는 것,

기쁨이 충만한 그래서 행복을 만들어가는 주체적인 삶을 누리라는 것. 그러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기꺼이 투쟁도 불사해야 한다는 것.나의 삶은 나 자신이 지켜야 한다는 것.그것만이 황폐해져가는 일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의 기쁨과 환희를 가슴에 안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많은 부분에서 나는 그녀의 생각에 동의하고 또한 실천하고자 한다.

일테면, 딸아이에게는 굳이 결혼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네가 컸을 때 쯤이면 세상이 조금은 달라질지 모른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고 싶다면 경제적 독립을 해야 한다. 엄마가 있는 힘껏 협조할께.

아들아이에게는 책임감있는 성을 누려야 한다. 여성의 의견을 존중해라. 의식주에 대한 기본적인 문제는 니 손으로 해결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피임관련 콘돔에 대한 얘기까지도 나는 아이들에게 책임감있게 얘기해주고 있다.

비록 한국사회에서 견뎌내야 할 편견으로 인해 힘이 들더라도 난 우리 아이들이 자기자신 그대로 자유와 사랑을 주체적으로 누리면서 살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다만, 우리 아이들에게 성인까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 진한 안타까움이 있을 뿐,

목수정님이 살고 있는 프랑스의 문화적 국격만큼 우리나라의 국격이 올라갈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기에 그녀의 삶의 공간이 너무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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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의 염소들
김애현 지음 / 은행나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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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많고 많은 동물중에서도 유독 자신과 인연이 닿는 동물이 한가지쯤은 따로 있다.

내게 있어선 그것이 바로 '염소'다.

시골에서 성장하면서 쉽게 만나볼 수 있었던 친근한 가축이기도 했었지만, 무엇보다도 내 탄생년도가 바로 염소해였던 것이다.

요즘은 양띠로 많이 지칭되지만, 우리 자랄 때는 원숭이띠도 잔나비띠라고 했고, 양띠도 쉽게 염소띠라고들 말했었다.

그러니까, 염소는 곧 나이기도 했던 것이며, 바로 그것이 내게는 처음 대하는 낯선 작가의 책인 <과테말라의 염소들>에 끌린 이유라면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신춘문예 등단이라는 것은 작가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저 하늘의 별같은 의미인데, 그 어렵다는 신춘문예 삼관왕에 빛나는 이력이 저자의 첫 장편에 대한 궁금증을 더 크게 했다.

과테말라의 염소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계의 수단이 되는 아주 중요한 살림이었다. 우리에게는 육고기와 엑기스로 유용한 염소가 과테말라에서는 젖을 얻는 귀한 가축이었던 것이다.

얼마 전에 관람했던 이은미 콘서트에서 굶주림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에 붉은 염소 보내기 희망릴레이가 진행되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렇듯, 염소는 누군가에게는 생을 이어가는 아주 절실한 수단이 되기도 한 것이다.

이 소설에서도 염소는 같은 의미로 나타난다. 염소가 직접적으로 '나'와 '엄마'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테말라의 한 광장에서 염소젖을 파는 호세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나'와 '엄마'의 관계를 풀어가는 단초를 얻게 된다.

서울의 한 병원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와 과테말라의 한 광장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교차되어 전개되면서 우리는 이 소설의 결말이 어떻게 진행될 지 깨닫게 된다.

두 살 때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채, 다큐작가로 자리를 잡은 엄마와 살아가는 '나', '나'는 늘 엄마의 정에 굶주려 있다고 생각하며  때때로 엄마의 사랑의 순도를 의심하기도 한다.

십년 된 친구들과 '나'는 정작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채, 오늘도 전전긍긍하며 시간을 흘려보내다.

'나'는 문득 개그맨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친구들의 비웃음을 뒤로 한 채 오디션에 임하지만, 엄마의 교통사고 소식에  몇 분을 남겨두고 발길을 돌리고 만다.

혼수상태인 엄마는 중환자실에서 깨어날 줄 모르고, 위로하러 찾아온 친척들과 친구들의 입을 통해서 '나'는 알지 못했던 엄마의 얘기를 듣는다. 단선적으로 나와 엄마와의 관계속에서만 재단하려 했던 모습을 다른 이들과의 대화속에서 새롭게 엄마의 삶을 이해하게 된 나. 나는 결국 엄마가 원하는 삶의 모습은 바로 이것이리라 굳게 믿으며 실행하고자 한다.

소설을 빌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산다는 것의 의미, 살아가는 이유, 삶의 존엄성, 정도가 아니었을까?

 

과거에도 그랬듯이 헤어지는 일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슬프고 아픈 일일 것이다.이 소설이 그걸 재밌고 즐겁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조금이나마 덜 슬프고 덜 아프길 바라는 마음이었단 것도.그거면 충분하다.-작가의 말 중에서-

 

나는 아직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느낌의 영원한 헤어짐을 경험해보진 못했다. 사람이 극도로 슬픈 상황에 직면했을 때는 오히려 눈물이 나오지 않고 담담하다고들 한다. 작가는 바로 담담한 상황, 혹은 아직 이별의 상황을 절실히 깨닫지 못한 채,  삶도 죽음도 아닌 상황이 종료되기를 기다리는 시간에 대해서 들려주고 있는 거 같다. '나'는 얼마동안 시간이 흐른 다음(소설 이후) 혼자에게 주어진 공간과 시간을 지나오며 문득 문득 엄마라는 존재의 부재를 일상의 곳곳에서  절실히 깨닫게 되고 그 순간마다 가슴으로부터 토해지는 슬픔을 맘껏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의 이십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정작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삶속에서 '나' 또한, 엄청난 사건을 겪어내면서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는 계기가 되어 줄 것이며, 그녀의 삶이 더 성숙되어질 것이라고 믿어본다.

특별한 사건의 전개 없이도 소설은 참 빨리 읽혔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바탕에 깔아두고도 이십대만의 발랄한 표현이 돋보이는 문장은

잠깐씩 그 암울한 분위기를 잊게 하는 힘이 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미처 하지 못했던 것, 그것은 바로 과테말라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세계전도를 찾아보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매우 익숙했지만, 그래도 정확한 지점을 알지 못했던 한 나라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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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객의 맛있는 인생 - 소소한 맛을 따라 세상을 유랑하는
김용철 글 사진 / 청림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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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가까운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맛집에 대한 내용이 화제로 떠오른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 함께 했던 친구들은 그 동안 딱히 맛집을 찾아다닌다던가, 나름 미식에 대한 기준이 확고했다던가 하는 치들도 아니었건만,
화제가 이상하게 그렇게 흐른 것이다.
내심 나는 다양한 직업군의 친구들이 모였기에 숨겨진 맛집에 대해서 알게 되겠구나, 기대를 했었는데..
한 친구의 호텔음식에 대한 얘기를 시작하자 마자, L호텔이 낫다거니, S호텔이 더 맛있다거니 하면서 서로 음식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보다는 자신들이 가봤던 혹은 누리는 호텔이라는 문화에 대한 것을 자랑하기에 급급하는 대화가 되고 말았다.
아뿔싸..아쉽게도 맛집에 대한 담론은 결국 돈자랑으로 귀결되고 말았고, 그 자리는 이내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파장되어 버렸다.
요리책은 다양한 형태로, 일테면 장소에 적합한 혹은 재료별로 중점을 두는 책들을 여러 권 만나봤었다. 주부라면 요리책에 관심을 가지지 않기란 좋아하는 요리를 눈앞에 두고서 외면하기 어려운 것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이기에 필요에 의해서 한권 정도는 누구나 들춰보기 마련이다.
얼마 전 네이버 블로거로 유명한 황교익님의 <미각의 제국>이라는 요리 관련 에세이집을 만나봤었다.
황교익님은 요리보다는 요리가 되기 전 식재료의 대한 심도깊은 다채로운 이야기를 그 책에 담아냈었는데, 우리나라 요리에 대한 역사와 식재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새로히 다지는 계기가 되어주었었다.
이번에는 맛객 김용철님(이분 또한 다음블로거로 유명하시다)의 요리에세이는 굳이 황교익님의 책과 비교하자면, 원론적인 담론보다는 요리와 관련지어지는 세상살이의 속내에 대한 이야기를 맛을 찾아나서는 발길따라 담아내고 있어 사람내음이 더 진하다는 점이 다른 거 같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공유한 저자에 발길을 따라 가다 보면, 맛을 찾아나서는 길이 곧 추억여행의 길과 만나게 되고, 우리가 기억하는 맛은 곧 추억이 맛이며, 맛을 즐기고자 하는 삶의 지향점은 이내 소중한 추억을 잊지 않고자 하는 마음과 같음을 깨닫게 된다. 하나의 맛에는 지난 세월이 묻어 있으며, 그 세월을 함께 한 가족, 친구, 이웃의 이야기가 담겨있기에 우리는 그 맛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맛객의 발자취는 바로 우리에게 그러한 사실을 이야기해주며, 그 내용은 잔잔하게 가슴을 울린다.
그의 발길은, 사람사는 맛이 있는, 우리네 맛이 있는, 그리움의 맛이 있는, 별미, 진미가 있는, 자연의 맛이 있는, 세계인의 맛이 있는 곳을 향한다. 그의 발길을 함께 하다 보면, 우리에게 음식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음식에도 정형화된 궁합론이 있지만, 저자는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시도는 맛에 대한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다고 이야기한다. 흔히 거론되는 별미나 누구에게나 공인도 맛, 혹은 손가락에 꼽혀지는 환상의 조합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화려하고 진귀한 맛보다 자기만의 맛을 찾아내는 것, 바로 그것이 음식이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행복이라고 역설한다. 심히 공감이 되는 부분이다.
 
저자의 여행의 양은 인생의 양과 비례한다고 이 책에서 이야기한다.
그의 말을 조금 인용해 보자면, 다양한 맛의 여행은 이 또한 인생의 양과 비례하는 것이 아닐까.
깊어가는 가을날, 삶이 담긴 요리를 하는 한갓진 시골 구석의 식당 한켠( 이 책에 소개된 곳, 그 어디라도)에서 인생의 맛을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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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탐험 이야기 - 새로운 세상을 연 탐험가들의
안나 클레이본 지음, 이안 맥니 그림, 안혜원 옮김 / 진선아이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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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탐험이라는 단어에 설레던 시절이 우리에겐 누구나 있었다.

세상에 대한 맹렬한 호기심과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모험심으로 충분히 대처가 되던 꼬맹이 시절.

그때는 탐험가들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사람들로만 여겨졌었다.

아이들 책을 잘 만드는 진선아이에서는 새로운 세상을 연 탐험가들의 이야기들을 위대한 , 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세상에 내놓았다.

하드커버인 첫 장을 넘기면 양페이지 가득 펼쳐진 세계전도에 이 책에서 소개될 탐험의 흔적이 표시되어 있어 본문을 접하기 전부터 가슴을 뛰게 한다. 또한, 모험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삽화들은 아이들로 하여금 책에 대한 흥미를 높여준다.

800년경부터 시작된 바이킹의 탐험의 역사는 이후 마르코 폴로의 그 유명한 중국기행이 이어지고, 아프리카 해안가 탐험, 모로코의 탐험가 이븐 바투타의 세계 여행, 그리고 신대륙 발견이라는 업적(?)으로 유명한 콜럼버스의 북아메리카 탐험 등...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하는 여러 탐험가들의 삶을 이 책 속에서 만나볼 수가 있으며, 그들의 삶을 통해 탐험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우리는 경험하게 된다.

새로운 땅을 여행한다는 것은 때로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것들과의 마주침이며, 내가 가진 사고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경험이 되기도 한다. 이 책 속의 탐험가들은 비록 처음에는 많은 부를 거머쥐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새로운 땅을 향하지만, 그 이면에는 세상에 대한 강한 긍정의 마음이 투영된 모습이 담겨 있기도 하다.

새로운 땅에서 목숨이 위태로운 모험을 하기도 하고, 그 땅의 주인에게 환대를 받기도 하며, 때로는 거친 파도, 자신안의 괴물, 전투, 냉혹한 날씨들과의 싸움으로 지치기도 하지만, 탐험가로서의 삶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그들의 정신이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있게 한 것이 아닌가 한다.

개인적으로 발견하다, 탐험하다, 라는 용어 사용에 있어서 이긴 자, 가진 자, 살아남은 자의 관점이 아닌 (보통은 서구 유럽중심의 사고) 또다른  관점의 시각이 매우 아쉬웠다.

지금까지의 역사기록이 그러했음에 그 틀이 쉽게 바뀌지는 못하겠지만, 5개대륙이 우리에게 어떤 경로로 지금까지의 역사를 이어왔는가에 대한 궁금증은 탐험가들의 발자취를 통해 알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다만, 많은 내용을 한 권에 담아내다 보니, 아이들이 읽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이미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많이 상실해버린 어른의 눈으로 보았기에 그렇지 느낀 것이 아닐까 하지만, 전반적으로 산만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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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독서계획
클리프턴 패디먼.존 S. 메이저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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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독서는 내 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흔히들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독서,라고 쉽게 대답하지만 막상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정작 나는 취미라고 하기에는 나에게 있어서 책이 가지는 무게가 너무 컸기에 다른 것을 취미라고 말하곤 했었다. (내심으로는 독서는 내게 있어서 생활 그 자체라구요.라는 누구를 향한 말인지도 모른 채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책을 주제로 한 책은 이전에도 다양한 형태와 소재로 많이 출간되었었다.

이를 테면, 우리가 꼭 만나봐야 할 고전이라든가, 평생에 걸쳐서 읽어야 할 시리즈, 혹은 명사들이 추천하는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책들.등.

이번에 연암서가에서 출간된 <평생독서계획>은 이전에 만나본 책과는 좀 많이 다르게 다가온다.

클리프턴 패디먼이라는 낯선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다방면에 재주가 많은 작가, 비평가, 사회자, 독서가였다고 한다. 이 책과 어우러진 이력 중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으니, 출판사 편집장을 거쳐 [뉴요커]의 도서편집자로 일했으며, 50년 동안 '이 달의 책'클럽에서 수석 심사위원을 지낸 경력이 돋보였다.

이번 연암서가의 <평생독서계획>은 저자가 총 네번에 걸쳐서 발간한 '평생독서계획'의 완결판으로서 이번 판에는 동양의 책과 저자들을 소개하고자 공동저자를 영입했다고 한다.

<평생독서계획>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면서 저자 또한, 이 책에 실린 책들을 틈날 때마다 읽고 또 읽으면서 독서의 중요성과 그 가치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평생독서계획>은 "고전을 설명하는 고전", 즉 광대하고 풍성한 세계 문학의 지형을 자세히 안내해 주는 충실한 길라잡이라고 이 책을 설명하고 있다.

동서양 고전 133명의 작가와 잠정적 고전 100선 수록해 놓은 이 책은 해당 작가들에 대해서 2백자 원고지 11~12매에 해당하는 분량의 짧은 논평을 쓰면서도 생애, 대표작, 작품세계의 세 부분을 아주 절묘하게 제시해 놓고 있어 비록 잘 알지 못한 작가일지라도 읽는 재미와 이해를 쉽게 해준다.

또한, 촌철살인식의 간략하면서도 정확한 묘사와 꼭 필요한 내용만을 담고 있으며,(물론, 저자의 의견이 모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다)저자가 느끼기에 작가에 대한 세간의 평가, 혹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아주 명쾌하고 솔직한 언급은 독자로 하여금 통쾌한 기분이 들게 한다.

역자는 <평생독서계획>의 뜻을 1. 이 책에 소개된 133명의 작가들을 평생에 걸쳐 읽으라는 뜻과 2. 이 작가들을 시간을 들여 통독한 다음 그 중에서 특히 가슴에 와 닿는 작가들을 평생에 걸쳐서 재독, 삼독하라는 뜻으로 해석하며 역자는 후자의 뜻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좋은 책은 좋은 친구 한 사람에 필적한다고 평소에 생각해 왔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지혜를 구해야 할 때, 위로를 필요로 할 때, 처음 만나는 상황의 당혹스러움, 그 감정의 혼란스러움, 고난이나 역경을 우리는 책을 통해서 나를 반추함으로써, 나를 이해하고 삶을 배우고 더 나아가 삶을 이해하게 된다.

 

<평생독서계획>에 소개된 작가들은 불행하게도 내가 만나지 못한 작가들이 태반이지만, 감히 계획해 본다.

아직 내게 주어진 생이 충분히 남아 있으니, 이제라도 평생독서계획을 세워도 과히 늦지는 않았으리라.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요? 주변에서 흔히 듣는 질문이다. 어떤 책을 말해주기 이전에 먼저 <평생독서계획>을 꼭 만나보라고 권해줘야겠단 생각이 스친다.

 

클리프턴 패디먼은 '고전은 자기 계발의 도구라기 보다는 자기 발견의 도구이다. 고전을 다시 읽게 되면 당신은 그 책 속에서 전보다 더 많은 내용을 발견하지는 않는다. 단지 전보다 더 많이 당신 자신을 발견한다'라는 아주 멋진 말을 남겼다.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고전을 가까이 하고 읽어야만 하는 이유를 이토록이나 쉽고도 명쾌하게 말해 주는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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