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의 사랑학
목수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얼마 전 인터넷에서 자전거녀와 자전거남의 만남이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우연히 공원에서 자전거를 매개로 해서 스친 남녀가 서로를 잊지 못해 인터넷 공간에 글을 남겼는데, 각자의 글을 본 누리꾼들이 둘을 연결시켜 주자며 여기저기 퍼나른 결과, 서로 만나게 되었고 결국 연인으로까지 발전된 이야기가 누리꾼들의 열렬한 성원과 부러움속에 회자되었었다.

언뜻 운명적인 인연으로 읽혀질 만큼 나름 극적인 그들의 만남이 이토록이나 젊은 청춘들을 열광시킨 것은 그만큼 이 사회가 우리 청춘들에게 자연스런 연애를 즐길 만한 낭만적인 환경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반증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봤다.

 

'누군가를 사랑함으로 인해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그래도 사랑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 사랑없이 무료한 날들이기보다는 고통의 바닷속일지라도 사랑으로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삶이 훨씬 낫다'..라는 말을 금언처럼 가슴에 품고서 살아온 날들이 내 젊은 날의 초상이다.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마속까지 정치적인>이라는 매우 도발적인 제목으로 처음 만났었던 저자 목수정은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라는 새로운 삶의 형태(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로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었다. 그녀의 외모 또한, 도발적이면서도 지적인 그러면서도 묘하게 여성적인 모습으로 충분히 매력적이어서 독특한 성과 함께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이번에 두번째로 그녀가 선택한 주제는 바로 <야성의 사랑학>이다. 처음 제목을 접하고는 참, 그녀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문체는 날카롭고 전투적이면서도 적확하고 거침이 없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섬세한 감성을 건드려 주기도 하여 개인적으로 외모와 마찬가지로 매우 호감이 간다.

처음의 책에서 그녀가 주장했던 사회적 편견을 뛰어넘으라는 메시지는 <야성의 사랑학>에서도 고대로 이어진다. 우리는 본능마저도 외면한 채, 짝짓기의 기본인 사랑이라는 감정까지도 타인의 시선속에서 재단되는 것을 거부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음을 그녀의  시선을 통해 깨닫게 된다.

어쩌면 일찍이 이미 간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인정을 한다는 사실이 두려워서 세상의 시선과 타협하고 있었을 뿐.

좌파적 시선, 혹은 페미니즘적 견해라고 쉽게 치부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사랑의 야성학>을 읽는 내내 들었다.

 

대학이 직장인 이유로 20대 젊은이들을 나는 날마다 대하고 산다. 그들 속으로 들어가지 않은 채 밖의 테두리에서 보아온 20대의 모습은  왠지 나의 청춘과는 조금 다른 풍경을 그려내는 것 같다. 어쩌면 <야성의 사랑학>에서 목수정님이 언급한 것처럼 외환위기라는 엄청난 경험을 한 이후로 사람들은 가치관의 대변혁을 가져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낭만적인 사랑보다는 조건에 더 집착하는 20대 초반의 여대생들의 모습은 제 아무리 화장과 명품옷으로 치장해도 아름답지 않았다. 펄펄 뛰는 싱싱한 생선처럼 살아 있는 야성의 본능은 과연 우리 시대에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서로를 존중하는 양성 평등의 사랑이 점점 사라져가는 사회를 저자는 다양한 주제를 예로 들어가면서 매우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거대한 정치논리, 경제논리, 가부장적 제도, 기득권의 이해 등등..바야흐로 사랑불능의 사회가 갈수록 팽배되어가는 것은 그녀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한국사회에서 제2의성 여자로 40여 년만 살아온다면 누구나 통감하는 내용들이 일목요연하게 그녀의 입을 통해 정리되어 있어, 그 동안 딸, 여학생, 여자, 주부, 엄마, 직장맘으로 살아오면서 느꼈던 다양한 나의 분노들이 그녀를 통해 위무받는 느낌은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내가 느꼈었던 의문과 분노와 체념과 타협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고, 더군다나 나의 탓은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난 그녀에게 강렬한 동지의식까지 느꼈다.

대학의 문을 들어서는 신입생들에게 교양필독서로 꼭 읽혀주고 싶은 책으로 손꼽고 싶을 지경이다.

<야성의 사랑학>이라는 제목에서 처음 기대했던 것은 조건이 아닌 순수한 본능에 충실한 사랑학 개론쯤을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는 '사랑'이라는 주제는 너무도 광범위하다. 남녀간의 사랑뿐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인류적 사랑, 나 자신에 대한 사랑, 자연에 대한 사랑 등..

그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유롭게 열정적인 사랑을 통해서 인간성을 회복하라는 것,

기쁨이 충만한 그래서 행복을 만들어가는 주체적인 삶을 누리라는 것. 그러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기꺼이 투쟁도 불사해야 한다는 것.나의 삶은 나 자신이 지켜야 한다는 것.그것만이 황폐해져가는 일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의 기쁨과 환희를 가슴에 안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많은 부분에서 나는 그녀의 생각에 동의하고 또한 실천하고자 한다.

일테면, 딸아이에게는 굳이 결혼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네가 컸을 때 쯤이면 세상이 조금은 달라질지 모른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고 싶다면 경제적 독립을 해야 한다. 엄마가 있는 힘껏 협조할께.

아들아이에게는 책임감있는 성을 누려야 한다. 여성의 의견을 존중해라. 의식주에 대한 기본적인 문제는 니 손으로 해결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피임관련 콘돔에 대한 얘기까지도 나는 아이들에게 책임감있게 얘기해주고 있다.

비록 한국사회에서 견뎌내야 할 편견으로 인해 힘이 들더라도 난 우리 아이들이 자기자신 그대로 자유와 사랑을 주체적으로 누리면서 살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다만, 우리 아이들에게 성인까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 진한 안타까움이 있을 뿐,

목수정님이 살고 있는 프랑스의 문화적 국격만큼 우리나라의 국격이 올라갈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기에 그녀의 삶의 공간이 너무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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