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의 염소들
김애현 지음 / 은행나무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세상에 많고 많은 동물중에서도 유독 자신과 인연이 닿는 동물이 한가지쯤은 따로 있다.

내게 있어선 그것이 바로 '염소'다.

시골에서 성장하면서 쉽게 만나볼 수 있었던 친근한 가축이기도 했었지만, 무엇보다도 내 탄생년도가 바로 염소해였던 것이다.

요즘은 양띠로 많이 지칭되지만, 우리 자랄 때는 원숭이띠도 잔나비띠라고 했고, 양띠도 쉽게 염소띠라고들 말했었다.

그러니까, 염소는 곧 나이기도 했던 것이며, 바로 그것이 내게는 처음 대하는 낯선 작가의 책인 <과테말라의 염소들>에 끌린 이유라면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신춘문예 등단이라는 것은 작가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저 하늘의 별같은 의미인데, 그 어렵다는 신춘문예 삼관왕에 빛나는 이력이 저자의 첫 장편에 대한 궁금증을 더 크게 했다.

과테말라의 염소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계의 수단이 되는 아주 중요한 살림이었다. 우리에게는 육고기와 엑기스로 유용한 염소가 과테말라에서는 젖을 얻는 귀한 가축이었던 것이다.

얼마 전에 관람했던 이은미 콘서트에서 굶주림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에 붉은 염소 보내기 희망릴레이가 진행되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렇듯, 염소는 누군가에게는 생을 이어가는 아주 절실한 수단이 되기도 한 것이다.

이 소설에서도 염소는 같은 의미로 나타난다. 염소가 직접적으로 '나'와 '엄마'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테말라의 한 광장에서 염소젖을 파는 호세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나'와 '엄마'의 관계를 풀어가는 단초를 얻게 된다.

서울의 한 병원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와 과테말라의 한 광장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교차되어 전개되면서 우리는 이 소설의 결말이 어떻게 진행될 지 깨닫게 된다.

두 살 때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채, 다큐작가로 자리를 잡은 엄마와 살아가는 '나', '나'는 늘 엄마의 정에 굶주려 있다고 생각하며  때때로 엄마의 사랑의 순도를 의심하기도 한다.

십년 된 친구들과 '나'는 정작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채, 오늘도 전전긍긍하며 시간을 흘려보내다.

'나'는 문득 개그맨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친구들의 비웃음을 뒤로 한 채 오디션에 임하지만, 엄마의 교통사고 소식에  몇 분을 남겨두고 발길을 돌리고 만다.

혼수상태인 엄마는 중환자실에서 깨어날 줄 모르고, 위로하러 찾아온 친척들과 친구들의 입을 통해서 '나'는 알지 못했던 엄마의 얘기를 듣는다. 단선적으로 나와 엄마와의 관계속에서만 재단하려 했던 모습을 다른 이들과의 대화속에서 새롭게 엄마의 삶을 이해하게 된 나. 나는 결국 엄마가 원하는 삶의 모습은 바로 이것이리라 굳게 믿으며 실행하고자 한다.

소설을 빌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산다는 것의 의미, 살아가는 이유, 삶의 존엄성, 정도가 아니었을까?

 

과거에도 그랬듯이 헤어지는 일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슬프고 아픈 일일 것이다.이 소설이 그걸 재밌고 즐겁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조금이나마 덜 슬프고 덜 아프길 바라는 마음이었단 것도.그거면 충분하다.-작가의 말 중에서-

 

나는 아직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느낌의 영원한 헤어짐을 경험해보진 못했다. 사람이 극도로 슬픈 상황에 직면했을 때는 오히려 눈물이 나오지 않고 담담하다고들 한다. 작가는 바로 담담한 상황, 혹은 아직 이별의 상황을 절실히 깨닫지 못한 채,  삶도 죽음도 아닌 상황이 종료되기를 기다리는 시간에 대해서 들려주고 있는 거 같다. '나'는 얼마동안 시간이 흐른 다음(소설 이후) 혼자에게 주어진 공간과 시간을 지나오며 문득 문득 엄마라는 존재의 부재를 일상의 곳곳에서  절실히 깨닫게 되고 그 순간마다 가슴으로부터 토해지는 슬픔을 맘껏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의 이십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정작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삶속에서 '나' 또한, 엄청난 사건을 겪어내면서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는 계기가 되어 줄 것이며, 그녀의 삶이 더 성숙되어질 것이라고 믿어본다.

특별한 사건의 전개 없이도 소설은 참 빨리 읽혔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바탕에 깔아두고도 이십대만의 발랄한 표현이 돋보이는 문장은

잠깐씩 그 암울한 분위기를 잊게 하는 힘이 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미처 하지 못했던 것, 그것은 바로 과테말라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세계전도를 찾아보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매우 익숙했지만, 그래도 정확한 지점을 알지 못했던 한 나라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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