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사 - 칼라하리 사막의 !쿵족 여성 이야기
마저리 쇼스탁 지음, 유나영 옮김 / 삼인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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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색 표지의 커다랗고 순박해보이는 눈동자를 가진 한 여인의 소박한 미소가 나를 바라본다. 구슬목걸이와 스카프로 멋을 낸 검은 여인...그 여인의 눈매가 어쩌면 동양의 눈매를 닮았다는 저자의 말이 나를 강하게 끌어당긴다.

이 책은 칼라하리 사막의 !쿵족 여성인 [니사]이야기를 중심으로 쓰여진 책이다.

저자 마저리 쇼스탁은 남편과 함께 1969년부터 1971년까지 남서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의 도베지역에서 사는 !쿵족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쿵 언어를 배우고 인류학적 현지조사를 하였다. 머저리는 특히 !쿵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조사하였는데, 주로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된 조사의 결과가 바로 이 책으로 묶여져 나온 내용이다.

 많은 인류학자들이 !쿵족에 주목하는 이유는 우선 이들이 지구상에 몇 남지 않은 수렵채집 사회의 일원이며, !쿵족의 유전적 다양성과 특유의 흡기음이 포함된 광범위한 음역의 언어로 미루어 이들이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인류의 가장 오래된 조상의 직계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쿵족은 오랜 전통을 지닌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착취하지 않고 놀라울 정도로 성 평등을 이루며 함께 살아간다.(그러나 아무래도 여러 가지 요소로 미루어 보아 !쿵족 또한 남성들이 우세한 위치에 있는 거 같다). 현대의 다른 수렵채집 사회들도 비슷하게-적어도 대부분의 농경․유목사회보다 훨씬-높은 수준의 성 평등을 이루고 있음을 볼 때, 선사시대 동안 성별 간의 관계가 대개 오늘날 !쿵족의 모습과 비슷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는 현대의 우리 사회에 좋은 교훈이 되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맹하고 순진해 보였던 표정의 영화속의 ‘부시맨’을 기억하고 있다. ‘부시맨‘이라는 호칭은 !쿵족을 포함한 산족을 경멸하듯이 부르는 문명사회의 사람들이 쓰는 용어라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진짜사람’이라는 뜻의 ‘준/트와시’라고 서로를 부른다. 따라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부시맨'이 아니라 '준/트와시'인 것이다.




 마저리 쇼스탁은 !쿵족 여성들과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어린 시절이나 부모에 대한 느낌, 배우자에 대한 사랑, 질투, 결혼 후에도 사랑이 유지되는지, 그들의 꿈은 무엇인지, 나이 드는 것이나 죽음을 두려워하는지 등 인간 생활의 보편적인 부분에 관한 궁금증과 !쿵족 여성의 삶에 관한 여성학적 호기심을 풀어내고자 했다. 대체적으로 그 민족만이 지니는, 그리고 통용되는 관습적인 부분을 제외한다면 여성으로서 타고난 본능이나 감수성에 의한 것은 우리네 삶속에서 같은 여성들끼리 솔직하게 나누는 대화와 특별히 달라보이지는 않았다.(단, 우리네 대화가 온갖 형식을 벗어던진 채 나눈 대화라는 전제하에)

가족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점,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가족, 남편, 친구라는 것, 가장 힘든 고통은 배우자, 부모, 자식을 잃는 것, 어린시절 소꿉놀이의 모습, 혼외정사에 대한 견해.등 많은 부분에서 우리와 비슷한 행동양식과 동질의 감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토록이나 모습이 다르고 사는 곳이 떨어져 있음에도 말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치유의식무라는 의례에서 나타나는 주술사의 행동이나 그 과정이 우리의 무당과  너무도 흡사하여 더 관심있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어쩌면 인간은 신의 이름을 빌어 영혼을 치료하고 육신을 치료하지만, 누구나 기꺼이 혹독한 수련을 거치면 스스로 치료할 수 있는 주술의 힘을 갖는지도 모른다. !쿵족은 남성의 절반이, 여성은 3분의 1이 주술사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백인 특권층의 자의식이나 자기성찰과 함께 !쿵족 사람들과의 어긋나는 지점과 다시 만나는 관계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주면서 최대한 솔직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이 얼마만큼 객관적인 내용인지는 증명할 다른 방법이 책을 읽고 있는 현재 별달리 없어 보이나, 우리는 문명사회 백인의 시선도 아닌 그렇다고 오로지 !쿵족의 입장도 아닌 한 개인인 준/트와시 로서 개별 문화를 존중해주는 마음자세를 견지한 채 이 책을 읽어나가면 좋을 거 같다.




많은 부분에서 우리네 정서와 비슷함을 느끼기도 하고, 혹은 문화의 차이로 인한 이질성속에서 또 다른 지혜를 얻기도 하며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도 하였으나, 저자의 고백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니사’의 삶과 내가 살아온 삶속에 가로놓여진 문화적 심연의 깊이는 너무 커서 소화하기 어려운 부분도 상당했다. 그러나 누가 옳고 또한 누가 그르다고 할 수 있겠는가. 문화란, 그 개별성을 당연히 긍정하고 인정해야 할 영역인 것을.

다만, 모닥불과 담요와 커피만 있으면 어느 곳에서든지 자유로운 삶이 가능한 ‘니사’의 영혼이 책과 함께 하는 동안만은 몹시 부러웠음을 고백한다.

마지막으로 언급하자면 이 책은 인류학 민족지로서 오늘날까지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특히 미국에서는 대학 학부생들의 수업 교재로 널리 읽히고 있다고 하니, 인류학에 관심이 있는 자라면 한번쯤 읽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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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 - 500년 조선사를 움직인 27인의 조선왕, 그들의 은밀한 내면을 파헤친다!
강현식 지음 / 살림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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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절의 역사를 다룬 책 중에는 유독히도 조선에 관한 것들이 많다.

그것은 아마도 가장 현재와 근접한 왕조이고, 그런 만큼 사료도 많이 남아 있을 것이고, 또한 왕조의 역사가 길기에 그 내용도 풍부해서 일 것이다. 이에 조선왕조실록과 유사한 책들은 시중에 많이 나와 있어 이미 여러 번 그 형식을 달리 하여 접해봤기에 새삼스레 그 내용이 궁금할 것은 없었다.

다만, 요즘 들어 부쩍 관심이 가던 심리학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조선왕조를 들여다보았다고 하니 호기심이 급 당기지 않을 수 없었다. 받아본 책은 얼굴 없이 곤룡포 차림의 임금 사진(아무래도 세종같음)을 바탕에 깐 채 8송이의 국화 중 유독 한송이만 빨간색인 국화가 표지 중심에 자리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여기서 잠깐 책표지에 대해서 언급하자면 요즘은 책표지 색으로 약간 탁한 황금색을 사용하는 것이 대세인가 보다..이전에 읽은 책 중에도 두권이 이 색을 사용했는데..이 색이 주는 느낌은 고급스러우면서도 클래식하고 무게있어 보인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니 두권의 책이 마침 클래식관련음악서적과 역사서적이다. 흠. 근데. 이 책도 바로 그 색을 바탕색으로 사용했다. 곤룡포의 곤색과 어울러져 상당히 고급스럽다..맘에 든다. 잠깐 얘기가 옆으로 샜다. 다시 원점으로 가보자.

이 책의 저자는 <구나 가갈 수 있는 리학을 꿈꾸는 이>라는 그래서 누다심, 이라는 필명으로 심리학의 대중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심리학 글쓰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비록 역사학자가 쓴 책은 아니지만,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하여 역사를 기술하고 심리적으로 해석하려고 노력한 책으로서 어떠한 배경 지식을 갖고 있는지, 어떠한 기대를 하고 있는지, 어떠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독자에게 다가가지는 무지개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움과 다양성이 주는 재미가 상당하여 순식간에 독파해버린 책이기도 하다.




조선왕조는 신권중심의 나라를 만들기 위한 신하와 왕권 중심의 나라를 만들기 위한 왕들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그 많은 사건과 이야기들이 생겨났다고 간단하게 정리해볼 수 있다.

역성혁명으로 새 왕조를 연 태조 이성계의 심리를 양가감정을 통해서 조명한 것은 매우 신선했으며, 세조가 단종에게서 왕권찬탈을 한 것이 사실은 단종의 선위가 자발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훗날 사가들이 세조의 왕위 계승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왕권 강화에 대한 반발을 그런 식으로 표현했다는 해석은 새롭게 안 사실이면서도 매우 놀랍다. 많은 사람들은 자세한 내막을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입장에 따라서 판단한다. 그러면서 자신과 비슷한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 감정이입을 하기도 하며 보는 관점과 해석에 따라 객관적인 사실이 때로는 전혀 다른 주관적인 사실로 변질되기도 한다고 심리학에서 보는 왕조실록은 말해준다.

드라마에서는 폐비 윤씨를 그렇게도 모질게만 대한다고 생각했던 인수대비가 개인적으로 참 안쓰러운 여인네로 이해되기도 하니, 심리학이 주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참으로 크다.

책은 이렇게 문정왕후와 명종을 조명하고, 선조와 광해군을 해석하기도 하며, 의심이 결국 나라의 굴욕으로까지 이어진 인조에 대해서, 마음이 공허한 나르시시스트 절대군주 숙종에 대해서, 억울함이 낳은 패륜 영조와 사도세자, 의존적 성격이 불러온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투쟁 고종, 등을 새롭게 이야기한다.




이렇게 심리학적으로 접근해 보면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나 사건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그 내용들이 다 온당한 것은 분명히 아니다. 이해와 용서는 다르니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있지만, 때로는 몸에 맞지 않는 자리로 인해 그 얼마나 많은 풍파가 생기는가.

역사에는 만약에...~했더라면, 식의 가정이란 있을 수 없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자꾸만 만약에 그때 이랬더라면, 이라는 식의 커다란 아쉬움이 생겨나는 것 또한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미 지나가버린 왕조는 그런다 치고, 책에서 배운 교훈대로 우리 아이들을 잘 훈육해야겠단 유익한 생각을 해본다. 누가 알겠는가. 장래 내 아이들이 이 나라의 큰 기둥으로 자리하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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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읽는 4컷 철학교실
난부 야스히로 지음, 아이하라 코지 그림, 한영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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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읽는 4컷 철학교실]의 원형은, ‘윤리’ 수업에 쓸 부교재로 제작한 소책자였다고 한다. 일본의 천재만화가인 아이하라 코지의 만가에 난부 야스히로의 글이 결합하여 철학의 세계를 이해하기 쉽고 접근하기 용이하게 그려냈다고 한다. 아이하라 코지는 개그라는 것이 상식을 부수는 것에서 생기는 표현이어서, 개그만화가는 상식을 절대시하지 않고, 오히려 비판적인 태도로 이런저런 각도에서 보려고 하는 점이 바로 철학이 취하는 태도와 비슷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에 전반적으로 흐르고 있는 철학의 기조는 인생의 답을 찾아내는 것에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 자체에 의의가 있다는 관점에서 풀어가고 있다.

4컷 만화에서 ‘히로시’와 ‘돼지씨’는 28화로 구성된 작품속에서 살아가는 의미를 질문하며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고 있다. 히로시가 돼지씨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해 돼지씨가 히로시 나름의 대답을 ‘부정’하는 식의 두사람의 관계를 이어가는 책의 흐름은 소크라테스가 제자 플라톤을 필두로 한 아테네의 젊은이들에게 무지(無知)의 지(知)를 깨닫게 한 ‘문답법’과 상통한다. “삶의 의미란?” 이라는 근본 명제에 여러 각도에서 답을 내보려고 하는 히로시에게 돼지 씨는 즉시 적확한 반응을 보이며 그 모순을 깨닫게 한다. 그러한 만화의 전개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리는 위대한 철학자들의 사상을 만나게 된다. 만화로 이루어진 교실장면이 끝나는 지점에 여러 철학자나 인용되었던 아티스트, 영화 등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되어 있고, 이어서 만화교실에 대한 철학적 풀이가 뒤따른다. 크기도 손안에 들어오게 작고, 중고등학교시절 “나는 왜 사는가?” 에 강력한 의문을 갖고 인생의 해답을 모색하려는 시기의 아이들에게 유쾌하나 경박하지 않은 좋은 철학책이 되어줄 것 같다.

책 서문에서 부탁한대로 그야말로 마음 편하게 읽었다. 처음에는 뜨악했던 책의 전체적인 모양새가 다 읽고 나니 생각보다 유익하고 마음에 남는 게 많다.

어깨 너머로 넘겨다 본 “빵 잘 먹을게”라는 돼지의 말이 너무 웃긴다며 계속해서 책을 욕심내는 딸아이의 나이가 이제 7세라고 볼 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이 책의 제작 동기는 성공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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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사
세계역사연구회 지음 / 삼양미디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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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이 살아온 그 발자취에 대해서 말해주는 역사는 어느 누구나 관심이 가고 흥미로운 주제일 것이다.

나 또한 학창시절 가장 자신있어 한 과목 중에 하나가 바로 이 과목이었고, 대학에까지 가서도 전공을 하고자 했으나, 부득이한 사유로 다른 전공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아픈 기억도 있다. 그러나 그런 애정과는 별개로 나의 역사, 그 중에서도 특히 세계사에 대한 지식은 언급하기 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일천하다. 아마도 심도있게 인식하지 못한 채 오로지 흥미 위주로만 역사를 대한 나의 자세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철학이나, 미술, 그리고 클래식 같은 새로운 분야에 대한 공부를 하고자 하여도 세계사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내지 못하는 나의 취약한 지식으로는 어려움이 많았기에 늘 세계사 공부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던 중 만난 이 책은 그랬기에 더 반가웠다.

더군다나 제목도 맞춤으로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사] 라고 하질 않는가.

삼양미디어에서 상식 시리즈물로 내놓은 것 중의 하나인 이 책은 1. 문명의 발상, 2. 고대 문명의 발원, 아시아, 3. 아메리카와 이슬람, 4. 중세유럽, 5.근대 유럽, 6.근세 유럽의 변화와 아메리카의 발전, 7. 근대 아시아와 아프리카, 8. 두 차례의 세계대전, 9. 급변하는 세계 등 9단락으로 나누어 비록 세세하게 다루지는 못했으나 세계사 전체를 아우르기에는 부적함이 없게 서술하고 있다. 또한 그 방대한 양을 소화하기 위해 각종도표와 자료사진, 익숙한 그림 등을 첨부하여 시대순이 아닌 사건, 주제별로 기술되어 이해를 돕고 있기에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가 있었다. 학교를 다니던 시절 줄줄줄 외워가며 무리하게 머릿속에 집어넣었던 세계사의 흐름을 이 책 한권을 통해 재정립할 수 있었던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미처 학교에서 다루지 못한 부분까지도 알게 된 방대한 지식들,,이 정도의 내용이 상식에 해당되는 세계사라니..참으로 상식의 범위는 넓기도 하단 생각도 해본다.




독일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자본론]에서 인류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로 보았는데, 이 시각은 이 책을 읽는 동안 많은 부분에서 깊이 공감하게 한다.

어찌 보면 동물들의 약육강식의 싸움과 하등 다를 것이 없는 우리 인간의 역사였음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역시 역사란 철저히 승자위주의 기록임을, 그러나 조금씩이나마 온 인류의 평등을 향하여 발전되어 왔음을 기억해야겠다.(500페이지의 분량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언급된 내용은 10페이지가 채 못됨)

앞으로는 그 동안 돌아보지 않았던 국제정세에 더 많은 주의와 관심을 기울여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지금 이 순간도 역사는 흐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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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상속
키란 데사이 지음, 김석희 옮김 / 이레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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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상속,이라니..얼마나 절망적인 말인가.

처음 이 제목을 접하고 표지가 주는 어두운 느낌을 만났을 때 가슴이 쿵! 내려앉을 정도로 무서운 전율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그 전율감은 책을 받아봤을 때 그 부피만큼이나 나의 마음을 짓눌렀다. 그러나 6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과는 달리 의외로 책은 쉽게 읽혔다.

이 이야기는 1986년 즈음의 인도 서벵골주의 칸첸중가의 봉우리가 바라다 보이는 칼림퐁 주변의 '초오유'라는 저택을 중심으로 쓰여져 있다. 이 저택에는 영국에서의 젊은 날을 간직한 퇴직판사와 그의 혼혈손녀 사이, 그리고 요리사와 뮤트라는 개가 살고 있다. 그리고 이집에는 주기적으로 사이의 가정교사이자 나중에 연인이 되는 네팔계 지안이 방문한다. 소설은 안개가 짙은 어느날 밤 소년병으로 무장한 강도들에게 총과 음식을 강탈당하는 판사의 굴욕으로 시작된다.  또 하나의 무대는 무관심을 '자유'라고 부르는 미국 뉴욕이 그 배경이다. 그 뉴욕에는 요리사에게는 미래의 희망이자 현 삶의 목적인 그의 아들 '비주'가 오로지 그린카드를 목적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불법체류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야기의 흐름은 의외로 단순하다. 초오유의 일상과 뉴욕의 하루하루, 그리고 판사가 가끔 회상하는 영국에서의 굴욕과 영광의 삶, 등이 교차적으로 전개되며 이야기를 끌어간다. 시대상황은 고르카민족해방전선이 네팔계 인도인의 독립을 위해 무장봉기하여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그동안 인도에 대해서는 정신만 강조되는 지식 외에는 다른 어떤 정보도 갖지 못한 나는 이 책을 통해 소소한 인도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잔재미와 여러 부족간의 문제, 다양한 종교상의 문제, 계급간의 문제, 등 새로운 모습을 심도있게 알게 되어 유익한 시간이었다. 저자는 어둡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군데군데 생동감있는 표현과(예를 들면, 뱃속에 생쥐가 펄쩍 펄쩍 뛰어다니는 듯한 허기, 차갑고 단단한 근육같은 강물 등)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삽입하여 잠시 마음의 무거움을 잊게 해주기도 했다.




역사란 이런 식으로 움직였다. 천천히 세워진 것이 순식간에 불타버리고,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 속에서 앞뒤로 도약하고, 젊은이들은 해묵은 증오에 휩쓸렸다. 삶과 죽음 사이의 공간은 결국 측정할 수도 없을 만큼 작았다.(493P)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상실을 많이 겪게 된다. 그런 상실감은 삶을 지혜롭게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절망감으로 이끌기도 한다.

이야기의 대단원에 주인공들이 만나는 상실들은 너무나 그들의 삶속에서 차지하는 큰 부분이기에 가슴이 먹먹하다. 사이가 사랑했던 지안의 위선, 판사가 가족의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개 '뮤트'의 실종, 이제는 편지를 통해서도 미국의 아들과 연락이 안되는 요리사의 절망, 무엇보다도 어리둥절할 정도로 어이없고 기가 막힌 '비주'의 상실,,,은 과연 미래를 꿈꾸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소설은 '손을 내밀어 진실을 따기만 하면 되었다'라고 이야기를 맺고 있지만 과연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그 진실은 영원불변한 것인가? 책을 덮고 나서도 많은 질문이 내 안을 맴돈다.

 

이 이야기의 시대적 상황인 1986년 즈음의 나는 대학에 첫발을 디디며 그야말로 청운의 꿈을 키웠던 시절이다.

1980년대는 우리나라가 어떤 상황이었던가..민주화의 물결이 전국의 대학가와 민주시민들의 의식을 깨우고, 또한 그 결실을 어느 정도 맺은 시대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흘러버린 오늘 이 시간 2008년의 우리 사회가 발디딛고 서 있는 지점을 생각해 본다. 지나간 80년대에 캠퍼스에서 거리에서 최루가스를 마셔가며 꿈꿨던 우리의 희망찬 미래,,그 미래를 자꾸만 생각해 보게 된다. 그 미래는 이제 눈앞에 펼쳐지는 듯 하더니 어느새 저 멀리 가버리고 만다. 이 책의 제목이 자꾸만 머릿속을 휘젓는 느낌.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의 머리와 가슴을 잿빛으로 짓눌러왔던 느낌들...청운의 나의 꿈이 상실이라는 단어와 자꾸만 조우하는 것 만 같은 기분..이제는 희망이라는 말을 섣불리 내뱉고 싶지 않아진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난 뒷맛이 참으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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