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상속
키란 데사이 지음, 김석희 옮김 / 이레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상실의 상속,이라니..얼마나 절망적인 말인가.

처음 이 제목을 접하고 표지가 주는 어두운 느낌을 만났을 때 가슴이 쿵! 내려앉을 정도로 무서운 전율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그 전율감은 책을 받아봤을 때 그 부피만큼이나 나의 마음을 짓눌렀다. 그러나 6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과는 달리 의외로 책은 쉽게 읽혔다.

이 이야기는 1986년 즈음의 인도 서벵골주의 칸첸중가의 봉우리가 바라다 보이는 칼림퐁 주변의 '초오유'라는 저택을 중심으로 쓰여져 있다. 이 저택에는 영국에서의 젊은 날을 간직한 퇴직판사와 그의 혼혈손녀 사이, 그리고 요리사와 뮤트라는 개가 살고 있다. 그리고 이집에는 주기적으로 사이의 가정교사이자 나중에 연인이 되는 네팔계 지안이 방문한다. 소설은 안개가 짙은 어느날 밤 소년병으로 무장한 강도들에게 총과 음식을 강탈당하는 판사의 굴욕으로 시작된다.  또 하나의 무대는 무관심을 '자유'라고 부르는 미국 뉴욕이 그 배경이다. 그 뉴욕에는 요리사에게는 미래의 희망이자 현 삶의 목적인 그의 아들 '비주'가 오로지 그린카드를 목적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불법체류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야기의 흐름은 의외로 단순하다. 초오유의 일상과 뉴욕의 하루하루, 그리고 판사가 가끔 회상하는 영국에서의 굴욕과 영광의 삶, 등이 교차적으로 전개되며 이야기를 끌어간다. 시대상황은 고르카민족해방전선이 네팔계 인도인의 독립을 위해 무장봉기하여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그동안 인도에 대해서는 정신만 강조되는 지식 외에는 다른 어떤 정보도 갖지 못한 나는 이 책을 통해 소소한 인도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잔재미와 여러 부족간의 문제, 다양한 종교상의 문제, 계급간의 문제, 등 새로운 모습을 심도있게 알게 되어 유익한 시간이었다. 저자는 어둡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군데군데 생동감있는 표현과(예를 들면, 뱃속에 생쥐가 펄쩍 펄쩍 뛰어다니는 듯한 허기, 차갑고 단단한 근육같은 강물 등)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삽입하여 잠시 마음의 무거움을 잊게 해주기도 했다.




역사란 이런 식으로 움직였다. 천천히 세워진 것이 순식간에 불타버리고,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 속에서 앞뒤로 도약하고, 젊은이들은 해묵은 증오에 휩쓸렸다. 삶과 죽음 사이의 공간은 결국 측정할 수도 없을 만큼 작았다.(493P)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상실을 많이 겪게 된다. 그런 상실감은 삶을 지혜롭게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절망감으로 이끌기도 한다.

이야기의 대단원에 주인공들이 만나는 상실들은 너무나 그들의 삶속에서 차지하는 큰 부분이기에 가슴이 먹먹하다. 사이가 사랑했던 지안의 위선, 판사가 가족의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개 '뮤트'의 실종, 이제는 편지를 통해서도 미국의 아들과 연락이 안되는 요리사의 절망, 무엇보다도 어리둥절할 정도로 어이없고 기가 막힌 '비주'의 상실,,,은 과연 미래를 꿈꾸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소설은 '손을 내밀어 진실을 따기만 하면 되었다'라고 이야기를 맺고 있지만 과연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그 진실은 영원불변한 것인가? 책을 덮고 나서도 많은 질문이 내 안을 맴돈다.

 

이 이야기의 시대적 상황인 1986년 즈음의 나는 대학에 첫발을 디디며 그야말로 청운의 꿈을 키웠던 시절이다.

1980년대는 우리나라가 어떤 상황이었던가..민주화의 물결이 전국의 대학가와 민주시민들의 의식을 깨우고, 또한 그 결실을 어느 정도 맺은 시대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흘러버린 오늘 이 시간 2008년의 우리 사회가 발디딛고 서 있는 지점을 생각해 본다. 지나간 80년대에 캠퍼스에서 거리에서 최루가스를 마셔가며 꿈꿨던 우리의 희망찬 미래,,그 미래를 자꾸만 생각해 보게 된다. 그 미래는 이제 눈앞에 펼쳐지는 듯 하더니 어느새 저 멀리 가버리고 만다. 이 책의 제목이 자꾸만 머릿속을 휘젓는 느낌.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의 머리와 가슴을 잿빛으로 짓눌러왔던 느낌들...청운의 나의 꿈이 상실이라는 단어와 자꾸만 조우하는 것 만 같은 기분..이제는 희망이라는 말을 섣불리 내뱉고 싶지 않아진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난 뒷맛이 참으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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