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 악남 이야기
이경윤.정승원 지음 / 삼양미디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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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로 인간 본성의 시원을 규정하고자 한다.

그러나, 나는 이 중 그 어느 하나에 지지를 보내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은 그 안에 선함과 악함이 공존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주어진 상황과 환경, 그리고 교육에 의해서 밖으로 표출되거나 더 고양되어지는 성격이 있을 뿐이라고 결론을 내릴 뿐.

 

그러나, 이 책과의 만남을 계기로 나의 생각을 아무래도 수정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세계 악남이야기>는 동서양의  20인의 난세의 영웅으로 불리면서도 동시에 희대의 악남으로도 평가받는 사나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느 영역에도 포함되지 않은 채 가히 상상을 넘어서는 악남들의 이야기는 너무도 잔혹하기 이를 데 없어서 너무도 충격적이다.

대체적으로 영웅으로 칭해질 만큼 위대한 업적을 남긴 자질을 소유한 자라도 권력이라는 무소불위의 방망이를 갖게 되면, 추악한 인간의 본능을 드러내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악남, 이라는 명칭은 보통 악인, 이라는 명사에서 악녀, 라는 단어를 생성하였고, 그 단어의 대척점에서 악남, 이라는 용어를 이 책에서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까 악인이라는 단어에는 이미 악남을 내포하고 있지만, 더 강조하기 위하여 따로 '악남'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 거 같다. 이를 테면, 시인이라는 명칭에서 특별히 여류시인, 이라는 명칭으로 여성시인을 구별하듯이 말이다.

악남들이 처음부터 악남의 행태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권력이라는 힘을 가졌을 때 그들 내면에 깊이 잠자고 있던 악랄한 본성이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모습으로 표출되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어린 시절에 겪지 말아야 할 일을 겪음으로써 깊은 마음에 내상을 갖게 된다. 인격이 형성되는 어린 시절에 보호와 사랑으로만 둘러싸여 정서적 안정속에서 성장하여할 그들이 그 시절에 받은 상처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는 성인이 된 이후의 그들의 삶을 악남의 길로 굴절된 인생길을 걷게 하고 마는 것이다. 

 

20여명의 악남들의 행동양식을 살펴보다 보니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그것은 그들이 공통적으로 신의 위치로까지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면서부터 잔혹하면서도 끔찍한 공포정치를 펼쳤다는 사실이다.

덧붙여,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그 잔혹성이 그들의 업적을 이루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20세기를 대표하는 레닌, 체 게바라, 마오쩌둥 세계 3대 혁명가중에서 유일하게 마오쩌둥만이 악남으로 소개되고 있다는 점과, 세계 3대 정복자인 알렉산더 대왕, 칭기즈칸, 나폴레옹은 모두 악남으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악남들은 그들이 속한 민족이나 국가로부터는 영웅으로, 정치적으로 그들에게 반대적인 위치의 사람에게는 악남으로 불리는 것을 볼 때,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비록 그 시각을 배제한다 치더라도 여러 자료와 사진, 그림등을 통해서 회자되는 그들의 행태는 우리네 보통 사람들과는 분명 매우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들도 분명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잊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인간의 욕심이 그 끝을 모를 때, 인간이 그 얼마나 잔혹해 질 수 있는지, 인간의 존엄과 위엄이 그야말로 얼마나 헌신짝처럼 버려질 수 있는지 우리는 똑똑히 역사를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씁쓸하게도 여기에 소개된 20여명의 영웅이자 희대의 악남들은 변함없는 진리 하나를 몸소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다.

그것은 스스로 신이 되고자 했고, 신선처럼 살고자 했으나 그들이 그것들을 누리기 위하여 제거했던 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결국은 죽음 앞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는 그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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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면 열리리라 - 율도국 테마시집 2 기도시집 (치유의 기도)
김율도 외 지음 / 율도국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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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에는 다양한 형태의 모습이 존재한다.

가톨릭 계통의 여학교를 나오기도 했고, 청소년 시절에는 기독교에 깊이 심취하였으며, 마음이 시끄럽고 혼란스러울 때면 가까운 산사를 저절로 찾아들기도 하였다.

하얀 미사포 머리에 쓰고서 성모상 앞에서 손모으던 소녀를 기억하며, 아직 해가 뜨지 않는 어둑한 새벽길을 걸어서 교회예배당 종소리를 벗삼아 십자가 앞에 무릎 꿇었던 나의 모습도 떠오른다.

호젓한 산사를 찾아 대웅전, 삼신전, 등 사찰 구석구석을 사유와 깊은 성찰 속에 돌아보는 발걸음 또한 기도의 다른 이름임에 분명하리라.

사기 그릇  한가득 깨끗한 정한수 담아 장독대에 올려 놓고 달을 향해 손 모으던 간절안 모성 또한 기도의 정수이리라.

 

<기도하면 열리리라>는 율도국 테마시집 두권째에 해당하는 기도시 묶음집으로 첫번째의 '위로와 격려'에 이어 '치유의 기도'라는 주제를 가지고 담아냈다.

강은교, 이해인, 김소엽, 도종환, 서정윤, 김옥진 등의 이미 많이 알려진 시인들과 아직은 무명인 시인들, 그리고 헤르만 헤세 등외국시인들의 작품까지 주옥같고 아름다운 시어들이 가득한 시들이 우리의 마음을 가지런히 해준다.

문학의 여러 형태 중에서 시가 가지는 특성이 가장 '기도'의 형식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시를 다루는 사람들, 시인들은 일상속에서 가장 많은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도란 무릇, 신과 나누는 대화이다.

여기에 소개되는 시인들은 특별히 어떤 한 종교색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볼 때, 기도하는 마음이란 그 어떤 절대자를 향한 겸손하고도 깊은 믿음속에서 펼쳐지는 사랑의 고백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 1부에서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서정적 기도시'라는 소제목으로 국내외 유명시인들의 보석같은 기도시를 담아내고 있다.

제 2부에서는 '상황별 구하는 기도'라는 소제목으로 일상을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고통스러움, 슬픔, 인간의 희노애락과 관련한 모든 어려움속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도를 묶어놓고 있다.

제 3부에서는 '사람을 위한 기도'라는 소제목으로 세상속에서 다양한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결국은 선과 사랑을 추구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엮어내었다. 

 

마지막으로 책 앞머리에 엮은이가 안내해주는 '기도 시집 사용법'을 소개해 보겠다.

1. 기도가 이루어질거라 믿어라.

2. 조용한 곳에서 소리내어 읽어라

3. 횟수는 10번 이상 시를 암송하듯, 주문 외우듯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

4.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읽고 외워라.

5. 잠자기 전에 기도하라.

6. 기도문을 가지고 다녀라

7. 모여서 하면 더 큰 힘이 나올 것이다.

8. 행동을 조금씩 기도 내용대로 수정하라.

9. 보이는 곳에 기도문을 직접 써서 붙여놓아라.

10. 기도가 이루어진 후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1에서 10까지 읽어 보면 과연, 그럴 거 같다, 라며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언뜻 자기계발서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자기암시적인 내용과 많이 흡사한 부분도 느껴지지만, 구석구석 우리네 일상속의 어려움속에서 숨통을 제대로 틔여줄 거 같은 이 시들을 필요한 때에 적절히 활용한다면 이 책의 제목대로 '기도하면 열리리라'를 체험할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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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걷다 노블우드 클럽 4
존 딕슨 카 지음, 임경아 옮김 / 로크미디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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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미스터리 작가!

역사 미스터리 장르의 개척자!

불가능 범죄의 대가!'

 

존 딕슨 카를 수식하는 다양한 표현들이다.

'당신이 존 딕슨 카를 모른다면 마땅히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밤에 걷다> 표지를 둘러싸고 있는 표지에 박힌 문구가 나를 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바야흐로 여름이다.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고, 휴가지를 떠올리며 여행을 계획하는 시간속에 침입해 들어오는  미스터리한 세계의 강렬한 유혹. 그야말로 미스테리 소설이 가장 각광받는 계절이 드디어 온 것이다.

 

일부러 일과가 모두 끝난 늦은 밤, 그리고 가족들이 모두 꿈나라로 향한 시간에 <밤을 걷다>를 펼쳐 들었다.

책을 읽고 있던 침대의 뒤로는 검은 세상을 향해 창이 열려져 있었다. 이 책을 읽는 준비는 이제 완벽했던 것이다.

<밤에 걷다>는 존 딕슨 카의 기념비적인 데뷔작이다. 이 책을 발표하고 큰 호평을 받아 그는 본격적으로 미스터리 작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따라서, 존 딕슨 카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나, 전혀 알지 못한 사람은 누구나 이 책을 먼저 읽어야 할 필요성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소설을 전반적으로 감싸고 있는 음산한 분위기는 유럽의 고풍스러운 대저택이나 당시 풍습과 함께 어우러져 매혹적인 미스터리물로서 그야말로 손색이 없다.

 

소설은 '나'라는 인물의 시점에서 쓰여졌다. 어느날 아버지의 오랜 친구인 "파리를 관할하는 법원의 고문이자 경시청 총감인 앙리 방코랭"에게서 전보가 온다.  거기에는 '위험이 기다리고 있는데, 관심 있나'라는 문구만이 적혀 있었다. 소설은 그렇게 시작한다.

그 위험은 다름 아닌 스포츠맨에 보 사브르(잘생긴 검객)에 대중의 우상인 라울 드 살리니 공작이 살해위협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바로 살리니 공작과 결혼을 앞두고 있는 아름다운 루이즈 부인의 전남편인 로랑의 협박이다. 그리고 로랑은 루이즈 부인과의 이혼 후 정신병원에서 탈출하여 성형수술을 통해 완벽하게 새로운 누군가로 태어나 그 행적이 묘연하다.

공작과 루이즈 부인과 결혼식을 한 당일, 케 드 도쿄 근처에 위치한 최신식 레스토랑인 페넬리 가게에서 살리니 공작은 머리가 잘린 채 살해된다. 그 장소에는 살리니 공작이 들어가서 죽어나온 그 방문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던 방코랭 총감 일행이 있었고. 그 문 외에는 어느 곳도 범인이 그 방을 나갈 통로는 없었다. 그리고 그 방안에는 누구도 숨어 있지 않았다.

과연 누가 살리니 공작을 죽인 것인가. 과연 로랑은 그 날 그 레스토랑 안에 있던 사람들 중 누구로 변신한 것인가.

발코랭 총감의 추리와는 별개로 '나' 또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독자는 '나'의 시점을 따라서 한 사람을 의심할 즈음, 그 사람이 살해된다. 결론적으로 이 책에서는 총 세사람의 죽음이 목격된다.

추리소설을 많이 읽어본 독자라면 혹은 존 딕슨 카를 잘 알고 있는 독자라면 이야기의 전개를 따라 그 주변의 인물중에서 범인을 짐작해낼 수 있을 것이다. 추리소설을 다독하지 않은 나로서는 번번히 예상을 빗나가기만 하는 소설의 전개가 당혹스러웠다.

물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코랭 경감이 독자에게 드러내지 정보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것은 그만큼 최고의 트릭 추리 작가로 불리는 존 딕슨 카의 저력임에 틀림없다.

1927년에 쓰여진 이 작품은 마약, 성형수술, 희곡, 팬싱 등 다양한 소재와 어울러져 독자의 흥미를 자극한다.

현대의 독자가 읽기에도 충분히 매력적인 <밤에 걷다>를 깊어가는 여름밤에 한번 만나보시라고 권한다.

 추리소설의 재미에 빠지다 보면 찜통같은 더위쯤은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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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영혼, 책을 만나다 - 김영아의 독서치유 에세이
김영아 / 삼인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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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선택하다 보면 미리 가졌던 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아쉬움으로 남는 책이 있는가 하면,

별 기대없이 무심하게 넘겼던 책속에서 보석을 발견한 것처럼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 책들이 있다.

<아픈 영혼, 책을 만나다>, 이 책이 내게는 그런 보석같은 책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상은 차라리 치료가 쉽다. 눈에 보이는만큼 원인이 분명하니까, 그에 따른 적절한 처방도 가능하다.

그러나, 내면에 깊이 입은 상처는 쉽지 드러나지 않아 치료하지 못한 채 깊은 무의식너머로 숨겨진 채 곪아가기 마련이다.

곪아진 상처는 먼 훗날 더 큰 상처로 터져나와 한 개인의 삶, 전체를 흔들어 버리곤 한다.

특히, 어린 시절에 받은 트라우마는 그 이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삶의 원형을 변형시키고 굴절시킨다.

우리는 음악이나 미술 등으로 심리치료를 시도하는 방법이나 각종 문화센터 프로그램을 많이 접해 왔다.

근래에 논리논술과 함께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책을 통한 독서치유의 방법은 이제 서서히 그 첫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저자는 마음이 아픈 영혼들과의 책을 통한 교류를 통해 심리상담의 한 방법으로서 독서치료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책의 주 내용은 문화센터에서 총 8회 과정으로 개서로딘 '독서로 치유하는 내 안의 그림자'프로그램의 진행과정을 서술해 놓고 있다.

총 15장으로 나뉘어 각각의 사연들을 담아내고 있는데, 그 과정중에 자신의 상처와 정면으로 부딪혀내는 내담자가 있는가 하면, 중도에 포기해 버린 채 중단하는 경우도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런가 하면 한번도 자신이 갖고 있는 그늘에 대해서 주의깊게 들여다 보지 않다가, 다른이의 치유과정(책과 프로그램동료들)을 지켜보면서 미처 몰랐던 자신의 상처와 대면하기도 한다.

 

나 또한, 그동안 책을 통해 위안받은 기억은 셀 수 없이 많다. 그것이 내 오랜 책읽기의 이유이기도 하니까.

그 중에서도 20대 후반에 존재의 부정으로까지 이어졌던 실연의 상처를 서영은의 소설로 극복했던 기억이 대표적으로 생각난다.

그 당시 소설속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고통을 통하여 내 상처를 가감없이 들여다 보게 됨으로써 서서히 그 상처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과정을 '상처의 객관화'과정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내담자들과 함께 읽은 책은, 김중미<괭이부리말 아이들>, J.M.바스콘셀로스<나의 라임오렌지나무>, 김경집<나이듦의 즐거움>,야마나카 히사시<내가 나인 것>,가브리엘 루아<내 생애의 아이들>,로버트 뉴튼 펙<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황선미<마당을 나온 암탉>,김진세,이경수<마흔의 심리학>,장영희<문학의 숲을 거닐다>,오가와 요코<박사가 사랑한 수식>,김형경<사람풍경>,김정현<아버지>,신경숙<외딴방>,공지영<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금이<유진과 유진>,도스또예프스키<죄와벌>등이다.

그러나, 어디 이 책 뿐이겠는가. 이 외에도 우리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자아는 이 책들 외에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상처는 그대로 두면 너무나 아프지만 이를 승화시키면 다른 영혼을 치유하는 데 귀하게 쓰일 수 있다"(헨리 나우웬)

어차피 혼자 살아가는 인생이라고 자조하면서 고독에 몸부림치지 말고, 그 삶에는 분명히 '연대'라는 함께 하는 기쁨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랭보의 시처럼 "상처없는 영혼이 어디 있"겠는가...

 

15명의 상처입은 영혼들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 하면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치유되지 않은 내 아픔과도 만나는 시간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의 치유과정에서 같이 울 수 있었고.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상담자들의 용기있는 고백은 나에게도 위로와 힘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내담자와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상담자인 저자에게도 같은 경험으로 존재했다.

나 혼자 다져오고 승화시켜 왔던  삶의 방향이 그들이 치유해가는 과정과 비슷했지만, 혼자여서 외로웠고 잘 살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이 책속의 여러 모습들은 내 모습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고 격려해 주고 있었다. 무의식속에서 곪아갔던 내 외로움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상처가 이해받은 느낌이다.

책을 읽은 동안, 떠오르는 주변의 지인들이 있다. 그들에게 이 책을 꼭 만나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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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타라
조정은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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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수필집이다. 제목이 주는 느낌이 예사롭지 않음에도 선뜻 집어들지 못한 것은 아마도 그 탓이 제일 크지 않았을까.

10여년 전에는 에세이스트사에서 출간되는 수필잡지도 정기적으로 구독했고, 나름 이름이 알려진 수필가의 책도 간간히 만나보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삶을 관조하는 듯한 필자의 인격의 격조를 드러내는 그런 수필이 더이상 매력적으로 가슴에 와 닿지를 않았다.

현재 두 어깨로 견뎌내고 있는 삶의  다채로운 공격은 그런 느낌의 수필로는 더이상 위로를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점점 내게서 멀어진 수필.

그런 수필의 세상을 낯선 작가의 숨결로 오랜 만에 접하게 되고, 난 아주 큰 위안을 얻었다.

 

구도의 길을 포기하면서까지 서로를 원한 인연, 그리고 이룬 그들의 가정. 어느날 담배의 쓴 맛과 함께 찾아온'부도'의 무게. 저자는 비록 움막같은 집이지만, 사랑이 가득한 가정을 지키기 위하여 바람부는 세상속으로 아침이면 길을 나선다.

세상은 돈으로 사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산다는 친정어머니의 말을 깃발처럼 휘날리며 용감하게 뛰어들어간 세상은 저자에게 그리 호락호락하게 그 부드러운 속살을 보여주지 않았다.

 

에스컬레이터 청소부,,보석상 매니저 일로 가족의 생계를 꾸려내던 현실같지 않던 나날, 몽유병자처럼 꿈 속 세상을 부유하던 어느 날 그녀는 문득 내리는 눈송이를

보고 깨닫는다.

“그 작은 눈송이가 바람에 자기를 전부 내맡기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옹골차게 견디고 있는 것을.  그저 바람에 내맡긴다면 바람은 순식간에 눈송이를 가루로 부서뜨릴 것이었다. 내 몸은 저 무수한 눈송이 중에 한 송이 눈과 다르지 않다....... 그것을 타라.  성난 파도가 뱉어 내는 한 방울을 포말을 타듯이, 지축을 흔들며 용트림하는 폭포의 물줄기로부터 튀어 오르는 작은 물방울 하나를 잡아타듯이 그것을 타라, 타라, 타라, 타라. ” (49p)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뒷목을 세게 치는 느낌이다. 그것은 감동이자 깨달음이다. 아, 그렇구나.....<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같은 그녀다. 파도처럼 , 폭포처럼, 바람처럼 들이치는 삶의 무게에 결코 꺾이지 않고 내일의 태양을 굳게 믿는 그녀,

'겨울밤의 문풍지처럼 울어대는 고독의 비명에 가위눌리고 희망보다 발 빠른 절망이 포승줄을 던지며 따라와도' 여전히 꿈을 꾸는 그녀는 이제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이다.

 

<그것을 타라>는 여느 수필들과는 여러 부분에서 다르다. 마치 단편소설을 묶어 놓은 거 같기도 하고, 드라마의 줄거리를 풀어놓은 것 같기도 한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는 평소에 수필이 12매의 한계에 묶여 있다는 것에 심한 불만이 있었다고 한다. 소설이 장편서사가 가능하다면 수필 또한 장편서사사 가능치 않겠느냐는 문제제기인 것이다. 또한, 기존의 수필이 주로 '말하기' 수필의 형태를 띠고 있다면 그녀의 수필은 '보여주기'수필의 전형을 말해주면서 이 수필집을 통해 연작으로 장편수필 쓰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것을 타라>에는 그녀의 개인적인 삶을 연작식으로 풀어내고도 있지만, 다양하고 개성있는 등장인물을 등장시키고, 또 그들의 갈등구조를 만들어내면서 생동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로 수필의 진화를 꾀하고 있다. 그만큼 수필이라는 문학장르에 대한 그녀의 사랑과 자부심을 짐작하게 하며, 또한 그녀가 현재 에세이스트사의 편집장이라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저자는 우람하게 자라 하늘을 가득 안고 햇살을 온 몸으로 받고 있는 큰나무만 의미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부드러운 바람, 따스한 햇살, 새들의 지저귐, 영롱한 아침이슬이 주는 환희는 큰나무의 그늘아래서 낮게 자라는 작은 나무나 풀꽃들에게도 똑같이 주어지는 축복이라고. 넘쳐나는 활자의 풍요속에 문자로 만들어진 문학이라는 분야, 그 안에서도 맘가는대로 쓰는 수필이라는 장르는 어쩌면  자신이 쓴다는 것에 행복을 느끼고 그 의미를 갖는다면 그뿐이라고 말한다. "왜 모든 애벌레는 나비가 되어야 하냐?"는 아들의 질문에 대한 답일지도 모른다. 

 

여고시절 읽었던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서>에 나오는 글귀가 자꾸 떠올라 옮겨 본다.

"고통의 바로 한가운데에는 아무리 심한 고통도 와닿지 않는 피안지대가 있다. 그리고 그곳엔 일종의 기쁨이 자리잡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아프고도 기뻤다. 그리고 행복했다. 여러 대목에서 자꾸만 눈물이 터졌다. 결국 내가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자기가 가고 싶어하는 길로 간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면서도 진정 강한 사람(여성)은 그 불행에 맞서 자신에게 솔직하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결단력 있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책날개에 나와 있는 사진 속 저자의 옆모습이 참 곱다. 여린 얼굴선을 훑다가 몇오라기 보이는 흰머리카락에 시선이 잠시 머문다. 훈장같다

오래전 그녀와 같은 고통으로 삶의 나락에 떨어졌었던 기억. 그 기억속의 '나'를 이 책을 통해 치유한다. 더불어 그녀와 나, 우리의 삶에  '일종의 기쁨'이 끝까지 함께 하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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