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의 전설 : 동양편
아침나무 지음 / 삼양미디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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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라고 하면 어른, 아이 할 거 없이 이야기 좋아하는 자라면 누구나 흥미를 보일 만한 소재거리다.

더군다나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전설은 흥미요소 뿐 만 아니라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의 근간을 밝혀 주는 것이자 민족의 가치관과 사상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에 읽는 의미도 더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전설따라 삼천리, 전설의 고향 등 드라마의 소재로도 자주 등장하는 전설은 그러나, 신화와 전설이 혼재해서 수록되어 있어 순수하게 전설만을 모아 놓은 책은 그 동안 쉽게 만날 수가 없었기에, 이번 삼양미디어에서 세계의 신화, 몬스터에 이어서 세계의 전설을 기획한 것은 참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하겠다.

얼마 전에 세계의 신화를 읽었건만, 언뜻 전설과의 차이점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저자는 이 둘 사이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기술해놓고 있다.

'신화가 삶의 철학을 이야기한다면 전설은 그 민족에 내재된 문화를 이야기한다. 신화가 자연의 이치를 이야기한다면 전설은 그 민족 고유의 가치관을 이야기한다'

 

<세계의 전설 - 동양편>에서는 우리나라의 전설 외에도 중국, 인도, 일본, 몽골, 그리고 동남아시아로 묶여서 말레이시아, 미얀마,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그리고 이집트.아라비아 전설, 아프리카의 전설에 대해서 실어놓고 있다.

우리나라 전설은 그래도 익숙하겠거니 하고 읽어보았으나, 생전 처음 접해보는 전설이 다수 실려 있어 새로웠다. 귀주대첩으로 유명한 강감찬 장군이 여우의 자손이라는 전설은 여우에 대한 우리 민족의 인식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었다. 귀신을 부리는 비형랑, 선덕여왕을 사랑한 지귀 등은 그래도 인지도가 있는 전설이지만, 삼두구미, 삼족구 등은 새로운 전설상의 캐릭터로 다가왔다. 서양에서는 달이 인간의 얼굴을 닮았다고 하지만 동양에서는 달 속에 토끼가 살고 있다고 믿었는데, 그와 관련한 인도전설이 전해져 온다. 배고픈 거지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토끼를 기려 인드라 신이 달속에 토끼 모습을 새겨놓았다는 전설은 앞으로 보름달을 보면서 이웃사랑을 생각해보는 계기로 작용하게 될 거 같다.

같은 동양권이면서 서로의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중국과 일본의 전설은 우리나라 전설과 유사한 부분이 보이기도 했다.

아프리카의 전설중 거북이와 아난시 이야기는 이솝우화의 여우와 학의 이야기가 연상되기도 하였다.

전설은 많은 부분에서 이렇듯 훗날 각종 문화콘텐츠(동화, 영화, 만화캐릭터 등 영상물)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한권의 책을 만남으로써 동양의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여행을 통해 감성풍부한 문화적 교양을 쌓는 시간이 되어 주었다. 이제 내 앞에 놓여진 <세계의 전설- 서양편>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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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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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비가 내리고 난 후 하늘 가득 아름다운 다리를 만들어 주던 무지개는 환상의 세계를 꿈꾸게 해주던 징검다리였다.

고무줄 놀이를 하다가, 또는 팔방놀이를 하다가 문득 무지개를 발견하면 갈래머리 계집애들은 '와, 무지개다' 소리치며 우르르 골목길을 내달리곤 했었다.

한없이 한없이 달리다 보면 저 산 너머 무지개가 시작되는 지점에 동화속의 공간처럼 꽃과 과자가 넘치는 그런 멋진 마을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마을에 대한 꿈은 나이를 먹고 자라나면서 점점 사라졌다.

그러나, 요시모토 바나나는 내게 그런 마을을 선물해 주었다. <무지개>에는 어린 시절 내가 꿈꾸었었던 그런 환상의 마을이 이 지구위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여주었다.

 

보라보라섬에서 투어여행을 하고 있는 나, 에이코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에이코는 <무지개>라는 타이티안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바로 그 레스토랑의 오너와 사랑에 빠지고, 불행히도 그 오너는 곧 남의 아이를 출산할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속에 있던 에이코는 휴가를 얻어 타이티를 여행한다. 타이티는 바로 그 오너에게 아주 중요한 곳이며, 그곳의 사람들은 그를 모두 기억한다. 타이티를 너무도 사랑했던 오너의 흔적을 여기저기서 만나면서 에이코는 자신의 고민에 방점을 찍게 된다. 레스토랑 일을 매우 사랑하고 좋아했던 에이코, 오너를 매우 존경하고 좋아했던 에이코, 남편의 기일 때마다 타이티를 찾아노는 노부인에게서 오너에 대한 얘기, 사랑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선 에이코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에이코에게서 나는 나를 보고 있었다. 타이티 섬 한가운데 방갈로에서 차를 마시면서 인생을 즐기고 있는 나, 사는 것은 사실 뭐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뭔가 꼭 위대한 것을, 대단한 것을 이루어내야 하는 것이 아닌 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좋아하는 사람과 같은 공기를 마시며 차 한잔 앞에 두고 대화할 수 있다면 그게 충분히 자족하는 삶이 아니겠는가. 미래의 내 모습을 노부인에게서도 발견한다. 나도 훗날 방황하는 젊은 청춘들에게 그런 따뜻하고도 지혜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소설의 전개와 함께 하는 Masumi Hara의 그림 14장은 질박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이 타이티 하면 대표적으로 연상되던 화가 고갱의 그림에서 느꼈던 것과 흡사하게 다가온다. 무릇 예술이라는 것은 서 있는 그 땅의 기운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 주는 거 같다.

 

소설이 주는 느낌, 따뜻하고 몽환적이면서도 안온한 느낌의 평화스러움, 무념무상 속에서 즐기는 여유, 한가로움. 자연스러움.

그런 전반적인 느낌들이 가슴에 남아 있다. 굳이 줄거리의 흐름이라든가, 등장인물에 대한 세세한 분석이 필요하지 않는 느낌.

그것은 에이코의 사랑의 방식이 조금 낯설어서이기도 하다. 유부남인 직장상사와의 사랑의 결말은 편안하고도 아늑한 느낌으로 읽어가다가 조금은 당혹스러운 기분을 느끼게 할 만큼 뜻밖의 내용이기도 했다. 그래도 뭐, 이국의 작가가 쓴 것이니까. 살짝 고교 때 심취했던 하이티로맨스풍의 소설이 연상되기도 했지만, 소설이 주는 전반적인 분위기가  좋아서 그 부분의 생경스러움을 상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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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꿀벌의 세계 - 초개체 생태학
위르겐 타우츠 지음, 헬가 R. 하일만 사진, 최재천 감수, 유영미 옮김 / 이치사이언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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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내가 태어나서 자란 마을에는 유난히도 벌들이 많았다.

햇살이 따뜻하게 부서지는 봄날이면 허공 위로 윙윙~ 날아다니는 벌의 날개짓 소리가 익숙해서 정답게 느껴질 정도였다.

노오란 호박꽃에 들어 있는 벌 또한 얼마나 자주 봤었는지..

아마도 생각해보면 우리집으로부터 몇 개의 골목을 지나 뒷산 바로 밑에 자리를 잡은 소꿉동무의 집이 양봉을 해서 더 많았을 지도 모른다.

가벼운 심부름을 하기 위해 친구집의 대문 가까이라도 갈라치면 요란스러워지는 벌들의 날개짓소리. 낯선 사람이 오는 것을 벌들이 눈치채고 소리는 내는 것이었다.

처음에야 공포스러워서 대문밖에서 머뭇거리면 친구의 가족 중 누군가가 나와줘서 내 볼일을 마치곤 했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대문안으로 살며시 발을 들여 놓을 수 있게 되었고 마당 한 켠에 놓인 벌통 몇 개를 볼 수 있었다. 벌들의 움직임을 신기한 눈으로 가만히 들여다보던 어린 나의 모습이 기억 저편에서 떠오른다.

 

<경이로운 꿀벌의 세계>는 제목에서도 이미 충분히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지만, 생물학자로 이름난 최재천님이 감수했다는 부연설명에 기꺼이 읽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었다.

책 속 가득 접사사진과 함께 상세히 설명되어지는 꿀벌 군락의 세계는 과연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 꿀벌 군락은 시공간의 물질과 에너지를 경영하는 자연의 가장 놀라운 신비다-

첫장에 기록된 벌춤 연구의 세계적인 석학이자 뷔르츠부르크 꿀벌 연구팀의 멘토인 마틴 린다우어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설명은 이 책에 대한 신뢰가 기대치를 한껏 높여준다.

여름날 수업중간에 창문을 통해 들어온 벌 때문에 소란해졌던 기억, 꿀벌통 입구에서 여러 꿀벌들이 한 꿀벌에게 집중 공격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던 꿀벌이었는데 용케도 공격당하는 꿀벌이 자기네 꿀벌이 아니라고 했던 친구의 말, 주변에 여러 종류의 꽃들이 만개해 있었건만 유독 한가지 꽃에만 꿀벌들이 날아들었던 기억, 한마리의 꿀벌에 여러 꿀벌들이 뭉쳐있었던 기억 등...이런 기억들은 책을 읽는 동안 깊은 물속에서 수면위로 떠오르듯 내 깊은 무의식속에서 그렇게 표면위로 떠올랐다. 무심코 지나쳤던 벌들의 그런 행동이나 모습들이 다 과학적이면서도 놀라운 꿀벌들의 생태원리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하나 하나 꿀벌의 세계를 알아가는 과정은 그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경이롭다는 표현 외에는 달리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을 뿐 만 아니라, 지극히 전문적인 서적임에도 불구하고 그 경이로운 세계를 접하는 기쁨에 지루한 줄도 모르고 읽었다.

 

저자는 꿀벌 초개체가 그냥 척추동물도 아닌 우리와 같은 포유동물이라고 주장한다. 저자가 규명해주는 꿀벌의  낮은 번식률, 젖과 로얄젤리의 유사성, 그리고 벌집이라는 '사회적 자궁', 일정한 체온 유지(우리 인간과 비슷하다), 그리고 꿀벌들의 집단지성등이 과연 그럴 법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책에는 꿀벌의 상세한 생활모습, 짝짓기, 식생활, 유전자와 벌집의 구조와 만들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기능에 이르기까지 꿀벌의 모든 것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꿀벌에 대해서 많은 것을 규명해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꿀벌이 환경을 만들어나가는데 환경 형성자로서 어느 정도 중요한지는 꼭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다음은 꿀벌이 우리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서술한 내용이다.

-꿀벌이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 데 얼마나 공헌을 하는지는 점차 밝혀지고 있다고 한다. 꿀벌이 목초지의 식물다양성을 만들어내기에 꿀벌이 있음으로 우리가 먹는 쇠고기의 질이 향상된다고 한다.

-온대 기후 지역에 꿀벌이 없으면 날로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자원의 효율적인 관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한다. 현대 농업에서 꿀버로가 인간은 서로 상호의족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꿀벌의 건강 상태는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 상태의 지표로 기능한다.

-꿀벌은 생의학 기초 연구에 중요한 단초를 많이 제공한다. 꿀벌의 타고난 면역 체계는 생의학적 기본 질문을 연구하는 데 탁월한 도움이 되며, 인간을 위해서도 중요한 인식을 제공한다.

 

꿀벌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약 600만 개나 되던 미국의 벌통이 2005년에는 240만개로 감소했다고 한다. 세계 식량의 3분의 1이 곤충의 꽃가루받이에 의해 생산되며 그 곤충의 임무의 80%를 꿀벌이 담당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꿀벌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면, 인간은 그로부터 4년 정도밖에 생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 아인슈타인의 말은 새겨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구의 생태와 경제를 위해 지구상에 꿀벌이 건강하게 존속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따라서 양봉의 실제와 연계하여 지속적으로 꿀벌에 대한 다방면의 기초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물리학적, 분자생물학적 연구 방법을 활용하여 미지의 꿀벌의 세계에 대한 비밀을 파헤쳐야 할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저자는 꿀벌을 돕는 일이 우릴 스스로를 돕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주변의 꿀벌들이 요즘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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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벌써 친구가 됐어요 - 한지민의 필리핀 도네이션 북
한지민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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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다니던 교회에서 주말이면 '자림원'이라는 곳으로 봉사활동을 나갔었다.

그곳은 정신박약아나 지체아동들을 수용한 시설이었는데, 간식과 간단한 놀잇거리를 준비하여 토요일 한나절을 함께 지내다 돌아오곤 했었다.

처음 그곳을 방문했을 때, 우르르 우리 일행을 향해 뛰어오던 그 아이들을 어쩔 수 없이 껴안으며 속으로는 몹시 당황스러워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덩치는 나만한 아이들이 무조건 엄마,라고 부르며 달려들던 모습이 처음에는 소통하지 못하는 공포를 느껴졌었다.

일대일로 짝을 지어 놀던 중, 내 짝인 아이에게 내가 준 과자를 다 먹었냐고 물으니, 맑은 눈을 반짝거리며 바지춤을 두드리더니 이내 바지를 내리고 속옷의 가장자리에 넣어서 돌돌 말아 보관했음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을 때, 또르르 흘린 내 눈물이 아이의 천진함에 감동받은 눈물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아이를 가엾어한 마음이기도 했음을 안다. 우리가 떠나올 때마다, 아쉬움과 포기의 빛이 깃들어 있던 눈빛들, 그 눈빛들이 지금도 생각난다.

그 때의 기억은 가정과 직장일에 치이는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늘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어 언젠가는, 언젠가는 그곳을 다시 찾으리라는 다짐으로만 나를 위한 변명을 하곤 했는데, 그 다짐들도 허공에 흩어져 버린 지 오래라서 이제는 부끄럽기만 하다.

연예인들의 사회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은 어제, 오늘이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유난히 돋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김장훈, 차인표, 신애라, 션, 정혜영, 최강희, 장나라,등 우선 떠오른 사람을 열거해 본다. 그 중에서도 가슴에 남아 있는 사람은 언젠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라는 책까지 발간했던 김혜자님인데, 그녀의 연기야 말할 것이 없지만, 책 속에서 드러나는 그녀의 따듯하고도 고운 마음에 정말 흠뻑 반해버렸었다. 서민적인 우리나라 대표어머니상이라는 이미지와는 별개로 그녀의 삶이 상당히 그 시대에는 선택받은 삶이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손에 물 하나 묻히지 않고 살아왔던 그녀가 어찌 그리 절절하게도 소외계층에 대해 깊은 공감을 하는지. 참, 놀랍고도 감동스러웠던 기억이 새록하다.

<우리 벌써 친구가 됐어요>의 배우 한지민이 주는 감동 또한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그 동안 드라마속에서 보여졌던 그녀의 모습이 딱! 실제 그녀인 것마냥 순수하고 착하고 따듯하고 바르고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김혜자님의 책이 주는 감동과는 또 다른 감동을 이 책을 통해서 맛보았고, 어찌 보면 필리핀에서의 4박 5일 동안의 단순한 기록에 불과한 얇은 책이지만, 행간에서 느껴지는 순수하고 솔직하고 해맑은 나눔들은 읽는 동안 나의 영혼까지 충분히 맑게 해주는 묘한 힘이 있었다.

한지민과 또 내가 좋아하는 작가 노희경, 그리고 그 외의 일행들이 필리핀에서 가장 오지 마을인 해발 2,900미터가 넘는 끼땅락산의 협곡 중 2,005미터쯤에 위치해 있는 알라윈을 찾아가 그 곳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함께 노래하고 율동하고 춤추고 게임을 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나눈 4박 5일간의 생생한 기록이 한 권의 책속에  칼라풀한 사진기록과 함께 가득 담겨져 있다. 전혀 꾸미지 않은 담백하고 솔직한 기록은 그들의 행복해하는 마음까지 그대로 전이되어 읽는 독자로 하여금 저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마치 한지민과 같이 그녀의 마음자리를 따라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연예인들이 외국에 나가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어린이들과 찍은 사진들을 신문잡지를 통해 볼 때마다  과연 그들이 어떤 일들을 하고 왔을까? 궁금한 적이 있었는데, 아침부터 저녁 잠들기까지 아주 세세하게 그 곳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 그려져 있어서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바쁜 일정에 시간을 내어, 그리고 거기에다 깊은 마음까지 나누어 함께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오히려 그녀는 '고맙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라고 말한다.

"봉사라는 것이 꼭 숨어서, 남들 모르게 해야만 의미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리고 나보다 못 가진 사람을 도와주고 나눠주는 것만이 봉사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가진 것을 '나누고 교감하는 것'아닐까요? 120p

한지민의 말에 깊이 공감갔던 구절이다. 우리보다 문명의 발달이 떨어지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 끼니를 고구마로 연명하는 사람들, 이지만, 소박하고 따듯한 자연과 함께 사는 해맑은 알라윈 사람들에게서 우리가 받아온 것이 더 많다.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기쁨이 된다면 이것이 진정한 나눔의 봉사가 아니겠는가.  한지민의 말은 봉사의 깊은 의미를 다시 한번 깨우쳐주는 현장체험속에서 우러난  말인 것이다.

 

참으로 세상에는 배우 한지민처럼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더 나아가 생활속에서 그 마음을 실천하는 사람, 또한 많다.

이 책을 통해 세계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고 또한 실천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본다.

돈만이, 이익만이 우선시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언제난 마음 한 켠에 뭔가 채워지지 못한 갈급하는 욕망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 그 마음을 차분히 눌러주고 채워주는 평화가 있었다.

기억에 오래 남는 배우가 되어 사회사업을 하고 싶다는 한지민님의 꿈이 꼭 이루어져 오드리 햅번, 안젤리나 졸리 같은 '스타폴리티션'을 보여주길 기대해본다.

한지민님. 당신을 배우로서, 예비사회사업가로서 오래 기억할게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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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타임스 - 21세기 코믹 잔혹 일러스트판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하나자와 겐고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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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게 배달된 <모던타임스>를 받아보곤 그야말로 허걱!~~~~ 했다.

이건 뭐 두꺼워도 너무 두꺼웠다. 640여페이지에 달하다니.

더군다나 나는 무지몽매하게도 지은이 이사카 코타로에 대해서는 "이자"도 모른 채 그저 인기도에 편승하여 신청한 책이었던 것이다.

아, 마지막으로 또 하나 있다. 날 당황스럽게 한 이유가..그것은 바로 표지와 책의 설명을 잘못 이해한 나의 오해. 즉 만화책으로 알고 신청한 것이었던 것이다...흑!

책을 한번 잡으면 늦어도 삼일안에도 다 읽는데, 이 책은 이상하게도 일주일에 걸쳐서 읽게 되었다. 그러나, 오해는 마시라. 그것은 이 책이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이 책이 두꺼웠다는 단지 그 이유 하나 때문이다. 밤마다 쪼개서 읽어도 별 무리없이 이해가 되기도 했거니와 이야기의 진행 또한 자연스러웠던 것이다..나눠서 읽어도 되게 말이다.

나중에 다 읽고 나서 뒷부분의 작가의 말을 보니 만화 잡지에 연재했던 장편소설을 가필, 수정하여 단행본으로 묶어낸 것이라고 한다. 우연치 않게도 나의 독서방식이 참 절묘했음을 깨달았다. 비록 1년여동안의 연재분을 단 일주일만에 읽기는 했지만.

<모던타임스>는 '지금껏 단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새로운 오락 만화소설의 탄생!'이라는 설명에 부합할 만큼 나의 독서인생에는 매우 색다른 소설이었다.

읽는 동안에도 어, 이게 뭐지? 이런 류의 소설이 있었네. 내가 왜 이걸 읽지? 이 작가는 대체 뭐야? 다른 사람들은 이 작가를 잘 안단 말이지? 즐겨 읽는단 말이지? 흠...이런 생각을 주기적으로 하며 읽었을 만큼, 평소에 선호했던 소설류와는 거리가 한참은 먼 그런 류의 소설이었다. 그래도 처음의 걱정과는 달리 무난하게 힘들이지 않고 덧붙여 상당히 흥미롭게 다 읽어냈다. 그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낸 것과는 달리 이 책이 주는 물음에 생각보다 깊은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세상에 맞설 용기가 있는가?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모르는 문제에 부딪혔을 때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검색을 한다.

"인터넷에는 방대한 정보가 돌아다니지. 자유롭고 손쉬우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인터넷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도 있지."

"사람들은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보다는 재미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반응해. 진실처럼 보이기만 하면 되는 거지. 자네가 아무리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해도 소동은 가라앉지 않아.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지. 왜냐하면, 재미있으니까"312p

인간은 정보로만 이루어진 것이 결코 아닌데, 우리는 정보로 기호화된 것들을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판단한다. 바로 이러한 판단으로 인해, 인터넷 악플러들로 인한 연예인들의 자살, 최근의 박재범군 같은 사태가 일어나는 것이다.

한사람의 일생을 거론할 때, 이력서에 나열되는 내용처럼 몇줄의 중요한 사건으로만 그 사람으로 설명한다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 사실 그 사람의 일생의 진정한 의미는 몇줄로 드러나지 않았던 어제와 오늘이 별달리 다를 것 없었던 소박한 일상, 즉 작은행동과 대화 하나하나가 소중한 바로 거기에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이 책에서 저자와 동명의 소설가로 나오는 주인공의 친구인 이사카 코타로의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평범한 샐러리맨인 와타나베에게 어느날 아내 가요코가 오카모토 다케루를 고용해 끔찍한 수법으로 와타나베의  불륜을 조사한 것부터 시작해서 와타나베 주위에는 이해하기 힘들고 섬뜩한 일들이 일어난다. 그야말로 유쾌함이라고는 손톱만큼도, 평화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다.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일들이 뻔뻔한 얼굴로 당연하다는 듯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고탄다 선배의 갑작스런 실종, 동료 오이시의 성폭행범 누명, 이어지는 상사의 자살, 와타나베 불륜상대자의 실종, 오카모토 다케루의 집 방화 사건까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연달아 발생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풀기 위하여 현대의 이기인 인터넷의 '검색'이라는 기능을 십분 활용하여 점점 그 무엇인가 거대하고 특별한 것에 접근하게 되는데, 정작 그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실체를 두고 이 사건들의 의문점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현상들을 고민해보고 규명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독자 또한 그들과 함께 지금 발 디딛고 살고 있는 지점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고민해 보게 된다.  국가의 의미, 인터넷, 검색, 진실, 정보 조작, 가진자, 권력, 정치조직,  인간의 기계화, 등이 그 고민의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것들이다.

편리성와 이윤만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의 시스템은 인간들로 하여금 도의나 윤리가 아닌 욕망과 이익이라는 두 바퀴로만 전력 질주하는 눈먼 짐승이게 한다.

"시스템이 복잡해지고 그 효과가 거대해지면 인간에게서는 전체를 상상하는 힘이 깡그리 사라져. 가령 그 '거대한 효과'가 끔찍한 일이라고 치자. 수백만 명을 가스실에서 죽이는 거라 치자고. 그 경우, 세분화된 작업을 맡은 사람에게서 사라지는 것은 '양심'이야"(232p)

 

이 책을 읽는 동안 현 정부의 상식적이는 않는 행태들이 절로 떠오르며 국가의 목적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쩌면 국가의 목적이 국민의 생활을 지키는 것도, 복지나 연금을 관리하는 것도 아닌 오로지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움직인다는 말이 유독 가슴 섬뜩하게 박힌다. 처음에 코믹 잔혹 소설로 흥미롭게만 접근했던 소설이 의외의 결과로 이어지게 된 것이 조금은 당혹스럽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소설이 가지는 의미가 마음에 남는다.

 

저자는 소설 속 이사카 코타로의 입을 빌어 우리에게 말해준다. 소설이란 건, 수많은 사람의 등을 떼밀어 행동하게 만드는 도구가 못 된다는 것을, 다만, 한 사람 한 사람의 몸에 스며들 뿐이라는 것을. <모던타임스>를 통해서 저자가 우리에게 요구했던 용기는 아마도 '못본 채 눈감지 않고 맞설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거 같다.

더불어 [독재자]의 채플린이 한 말을 떠올려보며 우리 인류의 미래에 변함없는 희망을 가져본다.

"사람들이여, 절망하지 마시오. 탐욕이 초래한 황폐도, 인류의 발전을 두려워하는 마음도, 독재자의 죽음과 함께 소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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