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타임스 - 21세기 코믹 잔혹 일러스트판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하나자와 겐고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내게 배달된 <모던타임스>를 받아보곤 그야말로 허걱!~~~~ 했다.

이건 뭐 두꺼워도 너무 두꺼웠다. 640여페이지에 달하다니.

더군다나 나는 무지몽매하게도 지은이 이사카 코타로에 대해서는 "이자"도 모른 채 그저 인기도에 편승하여 신청한 책이었던 것이다.

아, 마지막으로 또 하나 있다. 날 당황스럽게 한 이유가..그것은 바로 표지와 책의 설명을 잘못 이해한 나의 오해. 즉 만화책으로 알고 신청한 것이었던 것이다...흑!

책을 한번 잡으면 늦어도 삼일안에도 다 읽는데, 이 책은 이상하게도 일주일에 걸쳐서 읽게 되었다. 그러나, 오해는 마시라. 그것은 이 책이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이 책이 두꺼웠다는 단지 그 이유 하나 때문이다. 밤마다 쪼개서 읽어도 별 무리없이 이해가 되기도 했거니와 이야기의 진행 또한 자연스러웠던 것이다..나눠서 읽어도 되게 말이다.

나중에 다 읽고 나서 뒷부분의 작가의 말을 보니 만화 잡지에 연재했던 장편소설을 가필, 수정하여 단행본으로 묶어낸 것이라고 한다. 우연치 않게도 나의 독서방식이 참 절묘했음을 깨달았다. 비록 1년여동안의 연재분을 단 일주일만에 읽기는 했지만.

<모던타임스>는 '지금껏 단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새로운 오락 만화소설의 탄생!'이라는 설명에 부합할 만큼 나의 독서인생에는 매우 색다른 소설이었다.

읽는 동안에도 어, 이게 뭐지? 이런 류의 소설이 있었네. 내가 왜 이걸 읽지? 이 작가는 대체 뭐야? 다른 사람들은 이 작가를 잘 안단 말이지? 즐겨 읽는단 말이지? 흠...이런 생각을 주기적으로 하며 읽었을 만큼, 평소에 선호했던 소설류와는 거리가 한참은 먼 그런 류의 소설이었다. 그래도 처음의 걱정과는 달리 무난하게 힘들이지 않고 덧붙여 상당히 흥미롭게 다 읽어냈다. 그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낸 것과는 달리 이 책이 주는 물음에 생각보다 깊은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세상에 맞설 용기가 있는가?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모르는 문제에 부딪혔을 때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검색을 한다.

"인터넷에는 방대한 정보가 돌아다니지. 자유롭고 손쉬우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인터넷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도 있지."

"사람들은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보다는 재미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반응해. 진실처럼 보이기만 하면 되는 거지. 자네가 아무리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해도 소동은 가라앉지 않아.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지. 왜냐하면, 재미있으니까"312p

인간은 정보로만 이루어진 것이 결코 아닌데, 우리는 정보로 기호화된 것들을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판단한다. 바로 이러한 판단으로 인해, 인터넷 악플러들로 인한 연예인들의 자살, 최근의 박재범군 같은 사태가 일어나는 것이다.

한사람의 일생을 거론할 때, 이력서에 나열되는 내용처럼 몇줄의 중요한 사건으로만 그 사람으로 설명한다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 사실 그 사람의 일생의 진정한 의미는 몇줄로 드러나지 않았던 어제와 오늘이 별달리 다를 것 없었던 소박한 일상, 즉 작은행동과 대화 하나하나가 소중한 바로 거기에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이 책에서 저자와 동명의 소설가로 나오는 주인공의 친구인 이사카 코타로의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평범한 샐러리맨인 와타나베에게 어느날 아내 가요코가 오카모토 다케루를 고용해 끔찍한 수법으로 와타나베의  불륜을 조사한 것부터 시작해서 와타나베 주위에는 이해하기 힘들고 섬뜩한 일들이 일어난다. 그야말로 유쾌함이라고는 손톱만큼도, 평화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다.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일들이 뻔뻔한 얼굴로 당연하다는 듯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고탄다 선배의 갑작스런 실종, 동료 오이시의 성폭행범 누명, 이어지는 상사의 자살, 와타나베 불륜상대자의 실종, 오카모토 다케루의 집 방화 사건까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연달아 발생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풀기 위하여 현대의 이기인 인터넷의 '검색'이라는 기능을 십분 활용하여 점점 그 무엇인가 거대하고 특별한 것에 접근하게 되는데, 정작 그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실체를 두고 이 사건들의 의문점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현상들을 고민해보고 규명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독자 또한 그들과 함께 지금 발 디딛고 살고 있는 지점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고민해 보게 된다.  국가의 의미, 인터넷, 검색, 진실, 정보 조작, 가진자, 권력, 정치조직,  인간의 기계화, 등이 그 고민의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것들이다.

편리성와 이윤만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의 시스템은 인간들로 하여금 도의나 윤리가 아닌 욕망과 이익이라는 두 바퀴로만 전력 질주하는 눈먼 짐승이게 한다.

"시스템이 복잡해지고 그 효과가 거대해지면 인간에게서는 전체를 상상하는 힘이 깡그리 사라져. 가령 그 '거대한 효과'가 끔찍한 일이라고 치자. 수백만 명을 가스실에서 죽이는 거라 치자고. 그 경우, 세분화된 작업을 맡은 사람에게서 사라지는 것은 '양심'이야"(232p)

 

이 책을 읽는 동안 현 정부의 상식적이는 않는 행태들이 절로 떠오르며 국가의 목적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쩌면 국가의 목적이 국민의 생활을 지키는 것도, 복지나 연금을 관리하는 것도 아닌 오로지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움직인다는 말이 유독 가슴 섬뜩하게 박힌다. 처음에 코믹 잔혹 소설로 흥미롭게만 접근했던 소설이 의외의 결과로 이어지게 된 것이 조금은 당혹스럽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소설이 가지는 의미가 마음에 남는다.

 

저자는 소설 속 이사카 코타로의 입을 빌어 우리에게 말해준다. 소설이란 건, 수많은 사람의 등을 떼밀어 행동하게 만드는 도구가 못 된다는 것을, 다만, 한 사람 한 사람의 몸에 스며들 뿐이라는 것을. <모던타임스>를 통해서 저자가 우리에게 요구했던 용기는 아마도 '못본 채 눈감지 않고 맞설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거 같다.

더불어 [독재자]의 채플린이 한 말을 떠올려보며 우리 인류의 미래에 변함없는 희망을 가져본다.

"사람들이여, 절망하지 마시오. 탐욕이 초래한 황폐도, 인류의 발전을 두려워하는 마음도, 독재자의 죽음과 함께 소멸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