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벌써 친구가 됐어요 - 한지민의 필리핀 도네이션 북
한지민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고등학교 시절 다니던 교회에서 주말이면 '자림원'이라는 곳으로 봉사활동을 나갔었다.

그곳은 정신박약아나 지체아동들을 수용한 시설이었는데, 간식과 간단한 놀잇거리를 준비하여 토요일 한나절을 함께 지내다 돌아오곤 했었다.

처음 그곳을 방문했을 때, 우르르 우리 일행을 향해 뛰어오던 그 아이들을 어쩔 수 없이 껴안으며 속으로는 몹시 당황스러워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덩치는 나만한 아이들이 무조건 엄마,라고 부르며 달려들던 모습이 처음에는 소통하지 못하는 공포를 느껴졌었다.

일대일로 짝을 지어 놀던 중, 내 짝인 아이에게 내가 준 과자를 다 먹었냐고 물으니, 맑은 눈을 반짝거리며 바지춤을 두드리더니 이내 바지를 내리고 속옷의 가장자리에 넣어서 돌돌 말아 보관했음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을 때, 또르르 흘린 내 눈물이 아이의 천진함에 감동받은 눈물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아이를 가엾어한 마음이기도 했음을 안다. 우리가 떠나올 때마다, 아쉬움과 포기의 빛이 깃들어 있던 눈빛들, 그 눈빛들이 지금도 생각난다.

그 때의 기억은 가정과 직장일에 치이는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늘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어 언젠가는, 언젠가는 그곳을 다시 찾으리라는 다짐으로만 나를 위한 변명을 하곤 했는데, 그 다짐들도 허공에 흩어져 버린 지 오래라서 이제는 부끄럽기만 하다.

연예인들의 사회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은 어제, 오늘이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유난히 돋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김장훈, 차인표, 신애라, 션, 정혜영, 최강희, 장나라,등 우선 떠오른 사람을 열거해 본다. 그 중에서도 가슴에 남아 있는 사람은 언젠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라는 책까지 발간했던 김혜자님인데, 그녀의 연기야 말할 것이 없지만, 책 속에서 드러나는 그녀의 따듯하고도 고운 마음에 정말 흠뻑 반해버렸었다. 서민적인 우리나라 대표어머니상이라는 이미지와는 별개로 그녀의 삶이 상당히 그 시대에는 선택받은 삶이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손에 물 하나 묻히지 않고 살아왔던 그녀가 어찌 그리 절절하게도 소외계층에 대해 깊은 공감을 하는지. 참, 놀랍고도 감동스러웠던 기억이 새록하다.

<우리 벌써 친구가 됐어요>의 배우 한지민이 주는 감동 또한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그 동안 드라마속에서 보여졌던 그녀의 모습이 딱! 실제 그녀인 것마냥 순수하고 착하고 따듯하고 바르고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김혜자님의 책이 주는 감동과는 또 다른 감동을 이 책을 통해서 맛보았고, 어찌 보면 필리핀에서의 4박 5일 동안의 단순한 기록에 불과한 얇은 책이지만, 행간에서 느껴지는 순수하고 솔직하고 해맑은 나눔들은 읽는 동안 나의 영혼까지 충분히 맑게 해주는 묘한 힘이 있었다.

한지민과 또 내가 좋아하는 작가 노희경, 그리고 그 외의 일행들이 필리핀에서 가장 오지 마을인 해발 2,900미터가 넘는 끼땅락산의 협곡 중 2,005미터쯤에 위치해 있는 알라윈을 찾아가 그 곳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함께 노래하고 율동하고 춤추고 게임을 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나눈 4박 5일간의 생생한 기록이 한 권의 책속에  칼라풀한 사진기록과 함께 가득 담겨져 있다. 전혀 꾸미지 않은 담백하고 솔직한 기록은 그들의 행복해하는 마음까지 그대로 전이되어 읽는 독자로 하여금 저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마치 한지민과 같이 그녀의 마음자리를 따라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연예인들이 외국에 나가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어린이들과 찍은 사진들을 신문잡지를 통해 볼 때마다  과연 그들이 어떤 일들을 하고 왔을까? 궁금한 적이 있었는데, 아침부터 저녁 잠들기까지 아주 세세하게 그 곳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 그려져 있어서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바쁜 일정에 시간을 내어, 그리고 거기에다 깊은 마음까지 나누어 함께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오히려 그녀는 '고맙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라고 말한다.

"봉사라는 것이 꼭 숨어서, 남들 모르게 해야만 의미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리고 나보다 못 가진 사람을 도와주고 나눠주는 것만이 봉사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가진 것을 '나누고 교감하는 것'아닐까요? 120p

한지민의 말에 깊이 공감갔던 구절이다. 우리보다 문명의 발달이 떨어지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 끼니를 고구마로 연명하는 사람들, 이지만, 소박하고 따듯한 자연과 함께 사는 해맑은 알라윈 사람들에게서 우리가 받아온 것이 더 많다.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기쁨이 된다면 이것이 진정한 나눔의 봉사가 아니겠는가.  한지민의 말은 봉사의 깊은 의미를 다시 한번 깨우쳐주는 현장체험속에서 우러난  말인 것이다.

 

참으로 세상에는 배우 한지민처럼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더 나아가 생활속에서 그 마음을 실천하는 사람, 또한 많다.

이 책을 통해 세계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고 또한 실천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본다.

돈만이, 이익만이 우선시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언제난 마음 한 켠에 뭔가 채워지지 못한 갈급하는 욕망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 그 마음을 차분히 눌러주고 채워주는 평화가 있었다.

기억에 오래 남는 배우가 되어 사회사업을 하고 싶다는 한지민님의 꿈이 꼭 이루어져 오드리 햅번, 안젤리나 졸리 같은 '스타폴리티션'을 보여주길 기대해본다.

한지민님. 당신을 배우로서, 예비사회사업가로서 오래 기억할게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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