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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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비가 내리고 난 후 하늘 가득 아름다운 다리를 만들어 주던 무지개는 환상의 세계를 꿈꾸게 해주던 징검다리였다.

고무줄 놀이를 하다가, 또는 팔방놀이를 하다가 문득 무지개를 발견하면 갈래머리 계집애들은 '와, 무지개다' 소리치며 우르르 골목길을 내달리곤 했었다.

한없이 한없이 달리다 보면 저 산 너머 무지개가 시작되는 지점에 동화속의 공간처럼 꽃과 과자가 넘치는 그런 멋진 마을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마을에 대한 꿈은 나이를 먹고 자라나면서 점점 사라졌다.

그러나, 요시모토 바나나는 내게 그런 마을을 선물해 주었다. <무지개>에는 어린 시절 내가 꿈꾸었었던 그런 환상의 마을이 이 지구위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여주었다.

 

보라보라섬에서 투어여행을 하고 있는 나, 에이코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에이코는 <무지개>라는 타이티안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바로 그 레스토랑의 오너와 사랑에 빠지고, 불행히도 그 오너는 곧 남의 아이를 출산할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속에 있던 에이코는 휴가를 얻어 타이티를 여행한다. 타이티는 바로 그 오너에게 아주 중요한 곳이며, 그곳의 사람들은 그를 모두 기억한다. 타이티를 너무도 사랑했던 오너의 흔적을 여기저기서 만나면서 에이코는 자신의 고민에 방점을 찍게 된다. 레스토랑 일을 매우 사랑하고 좋아했던 에이코, 오너를 매우 존경하고 좋아했던 에이코, 남편의 기일 때마다 타이티를 찾아노는 노부인에게서 오너에 대한 얘기, 사랑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선 에이코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에이코에게서 나는 나를 보고 있었다. 타이티 섬 한가운데 방갈로에서 차를 마시면서 인생을 즐기고 있는 나, 사는 것은 사실 뭐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뭔가 꼭 위대한 것을, 대단한 것을 이루어내야 하는 것이 아닌 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좋아하는 사람과 같은 공기를 마시며 차 한잔 앞에 두고 대화할 수 있다면 그게 충분히 자족하는 삶이 아니겠는가. 미래의 내 모습을 노부인에게서도 발견한다. 나도 훗날 방황하는 젊은 청춘들에게 그런 따뜻하고도 지혜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소설의 전개와 함께 하는 Masumi Hara의 그림 14장은 질박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이 타이티 하면 대표적으로 연상되던 화가 고갱의 그림에서 느꼈던 것과 흡사하게 다가온다. 무릇 예술이라는 것은 서 있는 그 땅의 기운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 주는 거 같다.

 

소설이 주는 느낌, 따뜻하고 몽환적이면서도 안온한 느낌의 평화스러움, 무념무상 속에서 즐기는 여유, 한가로움. 자연스러움.

그런 전반적인 느낌들이 가슴에 남아 있다. 굳이 줄거리의 흐름이라든가, 등장인물에 대한 세세한 분석이 필요하지 않는 느낌.

그것은 에이코의 사랑의 방식이 조금 낯설어서이기도 하다. 유부남인 직장상사와의 사랑의 결말은 편안하고도 아늑한 느낌으로 읽어가다가 조금은 당혹스러운 기분을 느끼게 할 만큼 뜻밖의 내용이기도 했다. 그래도 뭐, 이국의 작가가 쓴 것이니까. 살짝 고교 때 심취했던 하이티로맨스풍의 소설이 연상되기도 했지만, 소설이 주는 전반적인 분위기가  좋아서 그 부분의 생경스러움을 상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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