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만드는 소년 - 바람개비가 전하는 치유의 메시지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폴 플라이쉬만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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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린 시절에 수수깡대로 바람개비를 만들어 본 기억이 있다.

우리는 팔랑개비라고 흔히 불렀었다.

가을이면 완성된 바람개비를 앞으로 쭉 내밀고선 골목을 뛰어다녔다.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혹은 가르며 돌아가던 바람개비..

팽글팽글 돌아가는 바람개비를 보며 마음까지 가벼워지고 즐거워졌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이처럼 바람개비와 소년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듯이 이 책은 한 소년의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초록표지와 손 안에 쏘옥 들어오는 작은 크기의 책이 산뜻하지만, 책 속의 내용은 쉽게 읽히기는 하나 그 내용까지 가벼운 것은 아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마음 안을 가득 채우는 느낌은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줄거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허영기 있으며 자기중심적인 십 대 소년 브렌트는 새로 전학간 학교 친구의 파티에서 속으로 좋아했던 여자애에게 공개적으로 심한 모욕을 당한다. 분노와 모욕감으로 얼룩진 브렌트는 술기운을 빌어 차를 몰고 귀가하던 길에 자살을 시도하나, 오히려 뒤따르던 차속의 동양계 여학생 '리'만 죽이고 만다. 혼란스러운 감정속에 어쩔 줄 모르던 브렌트는 소년원 대신 리의 엄마를 만나 리가 생전에 좋아하던 바람개비를 미국의 네 귀퉁이에 세워달라는 부탁을 받고 속죄여행을 떠난다. 부모의 곁을 떠나 처음으로 홀로 여행을 하며 리의 모습이나 리의 이름을 새긴 바람개비를 만드는 과정속에서 브렌트는 자신이 리의 생명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녀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영혼이 바람개비를 통해 살아간다는 사실을 서서히 받아들인다. 또한 브렌트는 여행속에서 끊임없이 사색하고,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종래에서 자신이 선택한 세상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찾아가는 놀라운 성장을 하게 된다.

한편, 브렌트가 만든 바람개비들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서로 다른 네 사람의 삶에 잔잔한 기쁨과 깨달음을 선사한다. 메인 주에서는 무엇에든 신중하지만 지금껏 남자친구를 사귀어본 적이 없던 열다섯 살 소녀 '스테프'가 바람개비를 통해 남자 친구를 만나고, 마이애미에서는 삶에 지친 푸에르토리코인 거리 청소부가 바람개비를 보고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 그리고 워싱턴 주에서는 한국에서 입양된 소년에게 사라 장같은 위대한 음악가를 기대하며 바이올린 연습을 강요하던 엄마가 바람개비를 통해 무슨 일이든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가 하면 샌디에이고에서는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았지만 지금은 죽음을 눈앞에 둔 할머니를 돌보는 우울한 소녀가 할머니와 함께 바람개비를 보며 희망을 얻는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바람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좀 봐.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강력해. 우리들 생각처럼 말이야. 한 번의 생각은 쓸데없는 생각 같지. 다시 한 번 생각하면

인생에 소망이 생기는 법이야.” (p40)




"그 바람개비들은 우리나라의 네 끝단에 세워주길 바란다. 리는 가고 없지만 전국 방방곡곡에서 그 애를 통해 사람들이 기쁨을 누리도록 말이야, 우리 애가 늘 간직했던 그 미소를 네가 직접 만드는 거야."(p62)




우리가 행한 모든 일은 - 선하든, 악하든, 무심하든-보이지 않는 곳으로 물결치듯 퍼져나간다, 후세에, 자신을 둘러싼 이야기는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 문득 궁금해졌다.(p103)




“……사람들은 매우 선해. 지나가는 모든 이들에게 기쁨을 주려고 저 바람개비를 만든 그 사람처럼 말이야. 사람들은 선해. 물론 독일인들도 그렇고. 나쁜 기억이 차오를 때면,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여기 이 바람개비를 보러 오곤 했지. 바로 이것이, 다른 건 필요 없단다, 죽기 전에 내가 꼭 기억하고 싶은 거란다. 이게 할미가 너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란다. 너에게는 배움이 허락되지 않니. 할머니는 늙었다. 대신 나에게는 가르침이 허락될 테지.” (p163)




그의 마음 속에서는 자신이 만든 네 개의 바람개비가 하나의 거대한 작품이 되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듯했다. 이 세상 역시 바람개비와 같다. 보이지 않게 연결된 무수한 부품들이 숨겨진 크랭크축과 연결봉들을 통해 행동에서 행동으로, 지구 이곳에서 저곳으로, 수 세기에 걸쳐 이어진다.(p191)




이렇게 소년이 만든 바람개비는 생각의 씨앗이 되기도 하고, 미래의 소망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생명의 호흡이 되기도 하고, 소원을 날려 보내는 티벳의 깃발이 되기도 한다.

소년이 만든 바람개비는 이제 미국 전역뿐 만 아니라, 태평양을 건너 한국의 자그마한 도시에 살고 있는 나에게도 따뜻한 바람을 몰고 오는 것을 느낀다. 무의식속에 숨어있던 작은 상처까지도 치유하는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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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박사 석주명에게 배우는 몰입 고정욱 선생님이 기획한 어린이 인성 개발 동화 2
박현수 지음, 김정혜 그림, 고정욱 기획 / 뜨인돌어린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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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박사 석주명에게 배우는 [몰입]!!

이 책은 어린이 인성 개발 동화로서 ‘평범한 나’를 ‘최고의 나’로 바꾼 인물들을 통해

어린이들이 지닌 무한한 재능과 숨은 가능성을 일깨워 주는 동화이자 일종의 자기 계발서라고 할 수 있다.

나비 박사 석주명이야 너무도 유명해서 굳이 새로 읽어봐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지만,

이 책에서는 나비박사 석주명이 어떻게 학문에 다가가고, 그 학문에 어떤 모습으로 열정을 쏟았는지

그의 인생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몰입, 이라는 열쇠로 풀어 놓고 있다.

엄마들이 아이를 집에서 교육시킬 때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아이가 공부하는 그 순간에 집중하지 않고

산만하게 군다는 사실이다.

대체적으로 보면, 여자아이는 차분하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에, 사내아이들은 넘치는 혈기를 어쩌지 못해

자꾸만 엉덩이를 들썩이며 다른 것에 호기심을 보이기 일쑤다.

석주명의 학문적 일생을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요소요소마다 석주명으로부터 온 편지글을 통해 친근하게

아이들의 학습동기를 유발하고, 토막글로 아이들에게 잘 알려진 뉴턴, 이소연, 아인슈타인, 히로나카 헤이스케, 올레, 아르키메데스, 안철수 등의 몰입의 예를 들어 아이들이 기대하는 삶과 일치시키는 방법으로 왜 몰입이 필요한가,

몰입은 어떤 힘을 가졌는가를 자연스럽게 끄집어내는 서술방식이 참 매력적인 책이다.

석주명이 동경유학시절에 어떻게 해서 나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는가부터, 영국왕립학회지에 조선나비를 소개하게 되기까지  오로지 나비에만 몰입해서 무릎이 깨지고, 끼니를 거르며, 또한 낭떠러지에서 굴러 떨어지는 일까지 겪으면서 연구해 낸 그의 놀라운 업적을 보면서 왜 내가 자랄 때는 이러한 좋은 안내서가 없었는지 참으로 아쉽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이 책에 완전히 몰입된 결과다...

이제 우리 아이가 이 책을 통해  몰입의 매력을 깨닫게 되기를 간절히 바래보면서 아이에 대한 더 새로운 꿈을 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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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범의 파워 클래식 1 -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고 아무도 시도하지 못했던 신 클래식 강의
조윤범 지음 / 살림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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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콰콰쾅....콰콰콰쾅..

아무리 클래식에 문외한이라 하여도 갑자기 울려퍼지는 굉음으로 시작하는 베토벤의 운명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화를 걸었을 때 신호대기음 대신 나오는 음악이 비발디의 '사계'라는 것, 이 또한 매우 익숙해서 모르는 자 적을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 음악들은 잘 안다. 그러나 불행히도 딱 거기까지다. 클래식에 대해서는 그러니까, 음악의 선율과 작곡가를 연결시키는 정도의 음악적 소양 뿐이라는 것이다. 클래식을 즐긴다는 것은 어쩌면 내게는 다른 세상의 일들로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음악을 듣는 기호도 바뀐다고 했던가..최근 들어 슬슬 클래식에 관심이 생겼다. 기존에 삶을 즐겨왔던 나의 방식이 약간의 새로움을 필요로 했다. 이것은 인생을 즐기는 나의 방식에 공백이라고 생각되는 감정적인 부분이 존재하고, 또 그 빈 공간을 메워주는 작품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클래식 즐기기였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가치가 있는 비밀들은 마치 클래식이라는 성에 다 감추어져 있는 거 같았다.

클래식에 관련된 책은 사춘기시절 접했던 [슈만과 클라라]라는 책이 처음이었고, 올 초에 사봤던 금난새의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이 그 두 번째 책이었다.
그런가 하면, 굳이 직접 찾아서 접한 클래식 음반으로는 첫 월급을 탔다며, 선물을 사주겠다는 친구에게 모차르트와 브람스의 음반을 요구했던 기억과 태교하면서 들었던 모차르트의 음악이 다인 거 같다.

이제 세 번째로 접하는 [조윤범의 파워클래식]은 본격적으로 내심 즐겨보고자(너무 빠른가?) 인터넷으로 그가 거론하는 음악을 찾아 들어가면서 읽느라 시일이 꽤 걸렸다.
그동안 옆에서 언제쯤이면 자기에게 차례가 올려나 눈 껌벅이며 기다렸던 지난날의 성악도인 남편에게 도움도 받아가면서 말이다.
이 책의 저자인 조윤범은 '음악계의 괴물'이라는 별명을 가진 바이올리니스트이자 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의 리더다. 이 책의 제목과 같은 [조윤범의 파워클래식]이라는 예당아트TV의 강의쇼는 클래식 음악계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으며, 같은 제목의 칼럼으로도 한국일보에 연재되었다.
작곡가와 음악에 대해서 시대적 배경에 흐름에 따라서 자세히 설명해주는 이 책은 현악사중주곡을 중심으로 쓰여졌는데,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 1장은 너무 빠르지 않게 바로크에서 고전파까지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을 다루고 있고.
제2장은 빠르고 유쾌하게 낭만파 시대 슈베르트, 멘델스존, 슈만, 브람스, 차이코프스키, 러시아 5인조, 그리그, 스메타나, 드보르자크의 음악을 들려준다.
제3장은 감정을 담아 느리게 근대음악인 드뷔시, 라벨, 야나체크, 코다이, 코른골트의 음악을 소개하고
제4장은 힘차고 웅장하게 현대음악인 버르토크, 쇼스타코비치, 쇤베르크, 스트라빈스키, 윤이상을 말한다.
익숙하고 다정한 이름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그리고 낯선 이름이 있지만, 클래식의 역사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으라고 권해주고 싶다.

조윤범이 추천해주는 곡들은 비록 제목은 몰랐어도 막상 들어보면 아, 할 정도로 귀에 익은 음악들도 많았다. 그 동안은 음악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었기에 한동가리로 그저 클래식이구나, 하고 넘겨버렸던 곡들이 이 책을 통해 자세한 내용을 즉, 음악의 탄생배경, 음악의 스토리, 음악이 주는 느낌 등을 소개받고 나서 들어보면 무미했던 음악들이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그 느낌을 나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싶다.
현악기로 연주되는 음악의 선율은 내 온 몸을 휘돌아 몸통은 악기요, 멜로디는 손가락 활이 되어 내 온 몸 구석구석 신경줄을 강하게 따로는 부드럽게 피치카토한다, 라고.

이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여전히 머리 속은 복잡하고도 비슷해 보이는 기호와 번호들로 뒤죽박죽이다. 한 세상을 여는데, 그리고 그 낯선 세상을 여행하는데 있어서 단 한번으로 어찌 다 안다고 할 수 있으랴.

나는 절대음감도 훈련에 의해서 얻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데 실제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P240)




태어날 때부터 내 뇌세포의 한 부분, 또는 내 심장이나 신경줄 깊이 클래식에 대해 감응하는 유전인자가 박혀있었다면 모를까, 역시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즐길 수 있는 것은 클래식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클래식을 도전의 대상이 아닌 좀 더 쉽게 다가가는 자세로 즐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클래식이라는 비밀의 성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찾기 위한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성과는 충분하며, 클래식을 도전의 대상이 아닌 좀 더 쉽게 다가가 즐기고자 하는 자세가 그 열쇠가 아닐까, 하는 설레고도 조심스러운 추측을 해본다.

마지막으로 "처음부터 어떤 음악을 좋아할지 쉽게 결정하지 마세요. 점점 나이가 들면 비로소 이해되는 음악이 많다", 라고 한 코다이의 말이 유난히 가슴이 남는다.




옥의 티) 이 책에는 미망인이라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 아직 죽지 않은 자,라는 뜻을 지닌 이 단어는 남편이 죽으면 따라서 순장하는 풍습과 연관이 되어져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서양의 위인전에 많이 나오는 단어인데, 저자는 미망인이라는 수식어를 굳이 붙여야 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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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묻다
송은일 지음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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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고향마을에 낯선 얼굴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농어촌문제가 현실화되면서 장가들지 못한 실한 농촌의 일꾼들이 그들의 짝을 조선족,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여인들에게서 찾은 것이다,

2년 전부터 고향집 바로 이웃에 19살 먹은 캄보디아 소녀가 마흔줄의 총각에게 시집을 왔다.

처음에는 적응을 못하고 울기만 한다고 그 집 어르신이랑 이런 소식을 전해주는 고향사람들의 걱정이 컸다. 지난 여름에 들른 고향집에서는 비록 까만 얼굴의 이국적인 모습이지만,

밝은 얽굴로 옥수수를 수확하는 ‘앵미’를 만날 수 있었다. 앵미가 적응하기까지, 우리 사회에 속하기까지 한마을이 공동으로 앵미를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같이 했다.

송은일의 [사랑을 묻다]는 위와 같은 나의 간접적 경험에서 선택하게 된 책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이중적인 의미의 묻다라는 글자는 한권을 다 읽는 동안 사랑이 과연 무엇인지를 묻는 것인지, 아니면 가슴 한켠에 묻어두는 의미인지 계속 생각하게 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조선족 처녀 부용은 꽃다운 나이 스무 살에 희망이라곤 없는 현재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돈 삼천만원에 지적장애인인 남 겸의 우렁이각시가 된다. 7~10월에 길가변이나 울타리주변에 피는 분홍색의 꽃인 부용, 이 부용꽃는 비록 무궁화과에 속하기는 하나, 무궁화는 아니다. 조선족 최부용이 뿌리는 한국인이나 지금은 중국인이듯이 말이다. 무궁화꽃처럼 기개있는 의미의 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모란이나 작약처럼 농염하지도 않은 부용꽃, 남겸의 동생인 남면이 부용을 바보형의 부인으로서 선택하게 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너무 자아가 강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예뻐서 그 어여쁨이 위험이 되지도 않는, 그래서 모든 것이 허울뿐이지만 남씨 상암공파 종가의 큰며느리자리이자 삼백여 년을 이어온 하백당의 안주인으로서 조용히 살아줄 여자 말이다.

이 소설에는 세가지 모습의 사랑의 이야기가 있다.

첫째는 최부용과 그의 남편 남겸, 그리고 어린시절부터의 친구인 고영라. 이들 셋이서 만들어내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결국은 사랑이 아닌 ‘동화’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그 동화라는 감정은 불안정한 이 시대에 어딘가에 강력히 소속되고 싶은 열망인 것이다.

같이 어울리다, 라는 사전적 의미의 동화. 부용은 아마도 남겸의 아내가 되어 유서깊은 하백당의 안주인으로서 자부심을 지키고, 진짜 한국인으로서 살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고영라는 행랑채 어린시절부터 봐왔던 하백당의 모습, 그 일원이 되고 싶었던 마음이 남겸에게 사랑이라는 형태로 드러난 것은 아닐까. 아무리 돈이 많아도 채워지지 않는 기품, 문화적 자부심 등을 남겸과의 관계를 통해서 얻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남겸은 정상인이 아니었기에 부용에게는 학습된 우렁각시로서의 남편, 그리고 고영라에게는 학습된 성인남자로서의 역할로 정상인에 동화되고 싶은 것은 아닌가. 오로지 학습으로만 얻어지는 남겸의 인생이었으니까.

과연 이러한 감정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들은 진정 사랑을 한 것인가. 본래의 의미로 물었을때 난 이들 셋이 진정한 사랑은 처음부터 저 편 어딘가에 묻은 채, 그들의 삶속에서 다른 가치를 추구한 걸로 이해했다.

‘ 처음에 부용은 하백당이 지닌 무게가 사람을 돈으로 살 수도

있는 부에 있다고 여겼다. 하백당을 유지하는 힘이 돈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금전이 있어 가능한 지속이지만 그보다 더 큰 힘이 이 집 사람들이

지닌 자부심에 있다는 건 최근에 느꼈다. 오래된 집은 스스로

그윽하고 현무할 수도 있었다. 그리하여 집안사람들에게 천생인 듯

자부심을 갖게 하고, 그 모든 어우러짐을 지키게 하고,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은연중에 동조한다는 걸 차츰

깨달아 가는 중이었다. 고영라가 갖고 싶었던 게 무엇인지도

그래서 이해하게 되었다. 고영라는 하백당을 깨놓고 싶은 듯

몸부림쳤지만 사실은 이 집에 동화되고 싶었던 것이다.’ (p243)

그런가 하면, 정치가로서의 원대한 꿈을 꾸고 있던 남면, 늘 형을 지키느라 어릴 적부터 일찍 철이 들어버린 남면은 인생을 늘 계획대로 살아왔다. 그리고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 그러나 이사람에게도 묻어둔 사랑의 불씨가 있었으니, 그것은 연수원 동기인 강혜근이다. 둘은 서로가 우정이 아닌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겼다는 것을 인지하지만, 남면의 정치적 야심 때문에 불쑥 치솟는 사랑을 언제나 묻어버린다.

마지막 사랑의 모습은 하백당의 제일 웃어른인 할머니 홍인덕과 남면의 처조부이자 하백당 행랑에서 태어나 일생을 걸쳐 하백당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린 조수평씨와의 관계이다.

홍인덕과 조수평은 어쩌면 사랑과 실리를 모두 쟁취한 사람들이다. 예전의 가치관으로 볼 때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아씨와 하인과의 관계임에도 이들은 그들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고도 평생을 함께 했다. 그 결과 조수평은 완벽히 홍인덕을 자신의 여자로 할 수 있었고, 하백당까지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중심은 결국 하백당이다. 평생에 걸쳐서 공을 들여야만 얻어낼 수 있는 자부심인 것이다.

' 날 때부터 천생인 듯 몸에 익히고, 온갖것을 감내하고 공들이며

지켜야만 가능한 것, 그렇게 만들어지는 자부심이었다.

그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고, 욕심낸다고 금세 제 것이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p270)

이 소설은 언뜻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읽어가다 보면 사랑은 그저 표면적인 얼굴의 한 구성일 뿐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그리고 다문화정이 많아지고 있는 우리 사회현실에서 종래까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소설인 것이다.

이 작가의 소설은 처음 대했지만, 그리고 구성면에서 약간의 아쉬움도 있었지만, 색다른 소재로 인해서 읽는 즐거움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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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석의 아이디어
최범석 지음 / 푸른숲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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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멋에 관심이 많았다. 당연히 멋부림에 대해서도 신경을 많이 쓰고 산다.

잠들기 전에는 항상 다음날 직장의 상황이나 예상될 나의 기분을 고려하여 머리에서 발끝까지 옷차림을 코디해놓고 잠이 든다.
(물론, 갖고 있는 옷과 액세서리가 별로 없어서 한계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한 주가 시작하는 월요일에는 깔끔한 정장류를 입는다.
화요일은  살짝 긴장을 풀어주는 의미에서 페미닌스타일 위주로 입어준다.
수요일은 느슨해지는 마음을 다잡으려 통통 튀는 산뜻한 옷차림으로 코디한다.
목요일, 이날은 바로 최범석의 디자인이 즐겨하는 빈티지스타일로 출근하는 날이다. 목요일 즈음에 나는 가장 자유롭다. 최범석이 말하길 시간이 쌓여 만들어지는 클래식..그게 바로 빈티지란다.
금요일, 한주의 끝을 정돈하는 마음으로 깔끔하고 단순한 캐쥬얼을 입는다.
누가 봐주지 않아도 이것은 나를 디자인하고 나의 하루를 디자인하는 나의 삶의 방식이다.이렇게 나는 나의 한주를 디자인한다. 그리고 디자인은 즐겁다. 나는 나의 패션을 즐기고 삶을 즐긴다.
이렇게 정리해놓고 보니 내가 아주 굉장한 패셔니스트같은데, 그저 그렇고 그런 평범한 소시민일 뿐이다.
그러나 일상에 무늬를 만들어주고, 내가 누구인지를 표현해주는 패션은 나의 삶에 참으로 중요한 코드다.

32살의 최범석, 낯설다. 그러나, 그의 이력이 심상치 않다.
옷이 좋아 스물 한 살 나이에 동대문에서 원단을 교과서 삼아 디자인을 배우고 자신의 브랜드 'General Idea by Bumsuk"을 설립, 3년 만에 한국인 최초로 파리 프렝땅 백화점, 르 봉 마르셰 백화점등에 '제너럴 아이디어' 매장을 오픈한다. 고졸의 학력으로 오로지 실력으로 서울종합예술학교 교수를 맡다. 대한민국 젊은 남성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패션 디자이너 최범석은 다시 한 번 세계 패션과 만나기 위해, 2009년 뉴욕 컬렉션을 준비중이다.

최범석의 아이디어를 읽은 것은 진짜 즐거웠다. 흥미로왔다.
마치 네이버의 블로그나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를 들여다보고 온 느낌이다.
딱 그렇다. 패션의 아이디어를 제공해주는, 또는 저자의 내밀한 세계, 그의 꿈, 휴식, 일상 등을 각 폴더에 정리해 놓은 것을 이곳 저곳 클릭해서 하나하나 읽어보며 동감하고, 흥미로워하며, 마음에 드는 사진 하나쯤은 내 홈피로 퍼오기도 하는 그런 블로그 놀이 같았다.
겐조, 안나 수이, 루비이통, 샤넬, 구찌, 폴로, 프라다, 랑방 등등의 익숙한 이름을 만나는 즐거움도 좋았지만(이들의 이름으로 된 패션소품이 내게도 몇 개 있다), 에디 슬리먼, 질 샌더, 폴 푸아레, 바스키아 등등 처음 들어보는 패션 디자이너를 만나는 즐거움도 컸다.

얼마 전에 우연히 재방송으로 방송된 강호동의 무릎팍도사를 시청하게 되었다. 그날의 주인공은 이제 막 할리우드로 진출한 '비'였다.
최범석의 아이디어를 읽는 내내 나는 최범석과 그 날의 비가 자꾸만 오버랩되는 것을 느꼈다. 그 둘은 많은 부분에서 비슷했다.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했다는 것, 기존 제도권 출신자들을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하여 그들의 세계에서 인정받은 것, 세계를 활동 무대로 삼은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고한 꿈,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과 그에 따르는 엄청난 노력을 한다는 것. 이미 뉴욕에는 '상아'라는 브랜드로 성공한 가방디자이너 임상아가 진출해 있다.
난 최범석과 비가 미국에서 그들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나온 치열한 그들의 삶이 그러한 믿음을 가능하게 한다. 
최범석, 내게 말을 걸어오는 그의 패션이 좋다.







최범석의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다.

Inspiration 영감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Desiger    프로 디자이너는 자신의 삶을 디자인한다.

Entertain   즐겨야 보인다.

Action      너의 꿈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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