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묻다
송은일 지음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언젠가부터 고향마을에 낯선 얼굴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농어촌문제가 현실화되면서 장가들지 못한 실한 농촌의 일꾼들이 그들의 짝을 조선족,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여인들에게서 찾은 것이다,

2년 전부터 고향집 바로 이웃에 19살 먹은 캄보디아 소녀가 마흔줄의 총각에게 시집을 왔다.

처음에는 적응을 못하고 울기만 한다고 그 집 어르신이랑 이런 소식을 전해주는 고향사람들의 걱정이 컸다. 지난 여름에 들른 고향집에서는 비록 까만 얼굴의 이국적인 모습이지만,

밝은 얽굴로 옥수수를 수확하는 ‘앵미’를 만날 수 있었다. 앵미가 적응하기까지, 우리 사회에 속하기까지 한마을이 공동으로 앵미를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같이 했다.

송은일의 [사랑을 묻다]는 위와 같은 나의 간접적 경험에서 선택하게 된 책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이중적인 의미의 묻다라는 글자는 한권을 다 읽는 동안 사랑이 과연 무엇인지를 묻는 것인지, 아니면 가슴 한켠에 묻어두는 의미인지 계속 생각하게 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조선족 처녀 부용은 꽃다운 나이 스무 살에 희망이라곤 없는 현재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돈 삼천만원에 지적장애인인 남 겸의 우렁이각시가 된다. 7~10월에 길가변이나 울타리주변에 피는 분홍색의 꽃인 부용, 이 부용꽃는 비록 무궁화과에 속하기는 하나, 무궁화는 아니다. 조선족 최부용이 뿌리는 한국인이나 지금은 중국인이듯이 말이다. 무궁화꽃처럼 기개있는 의미의 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모란이나 작약처럼 농염하지도 않은 부용꽃, 남겸의 동생인 남면이 부용을 바보형의 부인으로서 선택하게 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너무 자아가 강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예뻐서 그 어여쁨이 위험이 되지도 않는, 그래서 모든 것이 허울뿐이지만 남씨 상암공파 종가의 큰며느리자리이자 삼백여 년을 이어온 하백당의 안주인으로서 조용히 살아줄 여자 말이다.

이 소설에는 세가지 모습의 사랑의 이야기가 있다.

첫째는 최부용과 그의 남편 남겸, 그리고 어린시절부터의 친구인 고영라. 이들 셋이서 만들어내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결국은 사랑이 아닌 ‘동화’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그 동화라는 감정은 불안정한 이 시대에 어딘가에 강력히 소속되고 싶은 열망인 것이다.

같이 어울리다, 라는 사전적 의미의 동화. 부용은 아마도 남겸의 아내가 되어 유서깊은 하백당의 안주인으로서 자부심을 지키고, 진짜 한국인으로서 살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고영라는 행랑채 어린시절부터 봐왔던 하백당의 모습, 그 일원이 되고 싶었던 마음이 남겸에게 사랑이라는 형태로 드러난 것은 아닐까. 아무리 돈이 많아도 채워지지 않는 기품, 문화적 자부심 등을 남겸과의 관계를 통해서 얻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남겸은 정상인이 아니었기에 부용에게는 학습된 우렁각시로서의 남편, 그리고 고영라에게는 학습된 성인남자로서의 역할로 정상인에 동화되고 싶은 것은 아닌가. 오로지 학습으로만 얻어지는 남겸의 인생이었으니까.

과연 이러한 감정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들은 진정 사랑을 한 것인가. 본래의 의미로 물었을때 난 이들 셋이 진정한 사랑은 처음부터 저 편 어딘가에 묻은 채, 그들의 삶속에서 다른 가치를 추구한 걸로 이해했다.

‘ 처음에 부용은 하백당이 지닌 무게가 사람을 돈으로 살 수도

있는 부에 있다고 여겼다. 하백당을 유지하는 힘이 돈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금전이 있어 가능한 지속이지만 그보다 더 큰 힘이 이 집 사람들이

지닌 자부심에 있다는 건 최근에 느꼈다. 오래된 집은 스스로

그윽하고 현무할 수도 있었다. 그리하여 집안사람들에게 천생인 듯

자부심을 갖게 하고, 그 모든 어우러짐을 지키게 하고,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은연중에 동조한다는 걸 차츰

깨달아 가는 중이었다. 고영라가 갖고 싶었던 게 무엇인지도

그래서 이해하게 되었다. 고영라는 하백당을 깨놓고 싶은 듯

몸부림쳤지만 사실은 이 집에 동화되고 싶었던 것이다.’ (p243)

그런가 하면, 정치가로서의 원대한 꿈을 꾸고 있던 남면, 늘 형을 지키느라 어릴 적부터 일찍 철이 들어버린 남면은 인생을 늘 계획대로 살아왔다. 그리고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 그러나 이사람에게도 묻어둔 사랑의 불씨가 있었으니, 그것은 연수원 동기인 강혜근이다. 둘은 서로가 우정이 아닌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겼다는 것을 인지하지만, 남면의 정치적 야심 때문에 불쑥 치솟는 사랑을 언제나 묻어버린다.

마지막 사랑의 모습은 하백당의 제일 웃어른인 할머니 홍인덕과 남면의 처조부이자 하백당 행랑에서 태어나 일생을 걸쳐 하백당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린 조수평씨와의 관계이다.

홍인덕과 조수평은 어쩌면 사랑과 실리를 모두 쟁취한 사람들이다. 예전의 가치관으로 볼 때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아씨와 하인과의 관계임에도 이들은 그들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고도 평생을 함께 했다. 그 결과 조수평은 완벽히 홍인덕을 자신의 여자로 할 수 있었고, 하백당까지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중심은 결국 하백당이다. 평생에 걸쳐서 공을 들여야만 얻어낼 수 있는 자부심인 것이다.

' 날 때부터 천생인 듯 몸에 익히고, 온갖것을 감내하고 공들이며

지켜야만 가능한 것, 그렇게 만들어지는 자부심이었다.

그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고, 욕심낸다고 금세 제 것이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p270)

이 소설은 언뜻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읽어가다 보면 사랑은 그저 표면적인 얼굴의 한 구성일 뿐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그리고 다문화정이 많아지고 있는 우리 사회현실에서 종래까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소설인 것이다.

이 작가의 소설은 처음 대했지만, 그리고 구성면에서 약간의 아쉬움도 있었지만, 색다른 소재로 인해서 읽는 즐거움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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