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할 땐, 책 - 떠나기 전, 언제나처럼 그곳의 책을 읽는다
김남희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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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방점이 찍혀있는 제목을 읽고 그저 여행 가서 읽었던 책 얘기려니, 가벼운 추측으로 책을 펼쳤다.
다 읽고나니 ‘여행은 몸으로 읽는 책이고, 책은 앉아서 하는 여행‘이란 저자의 서문이 이 책을 가장 적확하게 표현 해주는 문장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책에는 여행과 책이라는, 저자의 삶에서 결코 뗄 수 없고 어쩌면 가장 중요한 그 두가지의 이야기가 풍성하게 담겨있다.
세계일주를 위해 퇴사하고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그녀의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중요했던, 혹은 잊지못할 책 스물 네권과 그 여행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어느날은 책 속의 어떤 문장을 읽다가 열병처럼 앓게된 그리움을 안고 낯선 도시로 무작정 떠나고, 예상과 너무나 달랐던 고통스런 여행지에서 뒤늦게 그곳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만들어준 책과 사람을 만나고, 지구와 사람과 동물에 무지했던 저자에게 더 넓은 시각과 깊은 이해와 바꿀 수 없는 사랑을 심어준 낯선 길위의 방랑과 수많은 책들과 함께 한 시간들..
그저 여행 가면 읽기 좋은 책 몇권을 소개받으려는
얄팍한 기대로 집어든 책 속 곳곳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감동과 반성과 무지에 대한 자각으로 마음이 울컥했고, 마지막 장을 넘긴 후에도 오래 남은 여운으로 인해 생각을 멈추기가 쉽지 않았다.
저자처럼 여행을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특히 혼자 자유롭게 떠나는 무계획의 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해온 나는 어떤 여행자일까?
지금까지 난 어떤 여행을 해온 것일까?
여행을 하면서 만난 도시와 사람과 경험으로 인해 지구와 생명들을 폭넓게 사랑하게 되고 점점 더 조심스러워졌으며, 그래서 이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 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었다는 저자를 보며 그저 사치스럽지 않게 소박한 여행을 해왔음에 만족해온 나의 여행이 부끄러웠고 반성이 밀려왔다.
여행이든 책이든 그것을 통해 꼭 뭔가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좋은 방향으로의 발전을 이루어야만 가치 있는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여행과 책을 좋아하는 사람중의 한명으로서
오래오래 안전하고 행복하게 여행하고싶은 나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더 올바르고 건강한 여행,
나의 발길이 닿은 그 땅에 사는 모든 생명들을 존중하고 해를 끼치지 않는 여행, 더불어 나의 삶도 그 여행과 책들을 통해 조금이나마 더 선해지고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여행과 독서를 통해 이룰수 있는 최고의 선이 아닐까?

일년에 한번 이상은 반드시 낯선 나라로 여행을 가고싶고, 가능하다면 한국이 아닌 다른 곳과 내나라에서 번갈아 사는 삶을 꿈꾸고 기도하는 나에게 이 책은 단순히 책과 여행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었다.
어떤 마음으로 길을 떠나고 세상을 바라보고 기억해야 하는지, 순례자와 방랑자와 구도자 모두의 마음으로 해야하는 가볍지만은 않은 여행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깊이 공감하게 해준 책.
그저 까불고 잘 웃는 인상 좋은 친구인줄만 알았는데
친해지고 보니 깊은 사고와 바른 의식으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나를 늘 감동하게 만들고 더 좋은 사람으로 살기위해 깊이 사고하게 해주는 고마운 친구를 알게된 기분이랄까.
책에 관한 책들은 여지 없이 그렇지만, 이 책도 역시
저자가 언급한 모든 책들에 엄청난 흥미와 호기심을 느끼게 되었고(심지어 이미 읽었던 책들도 다시 읽고싶어졌다), 결국 또 구매목록만 더 늘었다는 건
함정. ㅜㅜ
좀 더 가볍게 살기로 하고 정기적으로 책들을 과감하게 정리하리라 굳게 결심했지만, 이 책은 꽤 오래 보관도서 책장 쪽에 꽂혀있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고싶은 이 갑작스런 충동과 뜨거운 열망도 오랫동안 나를 괴롭힐 듯한 예감.
그래도 읽게 되어서 정말 감사하고 반가웠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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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샐린저 탄생 100주년 기념판)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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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것들은 진짜 문제야‘
2000여년 전의 이집트 벽화에도 이런 낙서가 쓰여있었다고 한다.
이 책을 읽는동안,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그 낙서가 다시 떠올랐다.
어느 시대에나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부르는 10대 혹은 성장기 아이들은 기성세대의 눈에 그저 이유도
없는 일탈 혹은 반항을 하는 골칫덩이들일 수밖에 없나보다, 하는 생각으로.
하지만, 자신을 온통 사로잡고 있는 불꽃같은 감정의 정체도 원인도 모른채 그저 그 감정만이 일생에서 가장 소중하다 믿고있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아이들에겐 어떤 말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일 터.
그곳에서 빠져나온 뒤에야 자신이 지나온 어둠의 터널이 끝났음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그저 지나보면 안다는 가벼운 말로 치부하기에 그시절의 우리들은 너무 뜨겁고 아프지 않았던가.

20세기 영미 명작소설 중 한권으로 꼽히는 ‘호밀밭의 파수꾼‘은 학교에서 퇴학 당한 고교생 홀든 콜필드가 집으로 갈 용기가 나지않아 방황하는 3일간의 모습을 통해 누구나 지나온 바로 그시절, 10대의 이유없는 불안과 혼란을 섬세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작가인 셀린저의 자전적 이야기라서인지 주인공인 홀든이 기숙사를 떠나는 순간부터 겪게되는 심리적 혼란과 분노, 불안과 공포 등의 감정 변화가 너무나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묘사되어있다.
그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물론 학교도) 온통 가식적인 위선과 허세, 불의한 욕망으로 가득차 있으며, 단 한사람도(심지어 존경했던 선생님조차도) 정상적인
롤모델이 되어주지 못하는 서글픈 현실일 뿐이다.
원칙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따라 자유롭게 작문을 하는 학생에게 탈선을 외치며 낙제점을 주고,
친구의 목숨까지 빼앗는 폭력에도 관대한 학교와,
탐욕으로 다른 이들을 속이고 고통을 주는데 익숙한 어른들,
속내를 감춘채 이기적인 욕망으로 서로를 탐색하고
이용하려는 남자들과 여자들..
어른들의 눈에는 퇴학 당해 학교에서 쫓겨난 홀든이
낙오자로 보이겠지만, 위선과 허세에 사로잡혀 이기적인 욕망만 쫒는 그들이야말로 홀든에겐 혐오스러운 존재들이다.
하지만 홀든은 먼 곳으로 떠나 사라지고자 했던 마음을 접고 집으로 돌아와 치료를 받게 되는데, 그를 현실로 돌아오게 만든 것은 이미 세상을 떠난 동생 엘리와 한참 어린 막내 여동생 피비의 존재다.
결국 아이를 구원하는 것은 아직 세상에 물들지 않은, 더 어린 아이들 뿐인 것일까.

얼핏 보기에 주인공 홀든은 룸메이트부터 학교 안의 모든 동급생들을 혐오하고 증오하며,
나이를 속이고 담배와 술을 즐기는데 주저함이 없는
일탈 청소년이다.
어른들에게 공손하지도 고분고분 하지도 않으며,
마주치는 모든 이들을 무시하고 불평불만에다 욕까지 입에 달고 산다.
세상의 잣대로 보자면 의심의 여지 없이 골칫덩이 문제아라고 할 수 있겠지만,
학교를 떠난 순간부터 자신이 혐오 한다던 단점 투성이 친구들을 보고싶어하고,
자살한 친구와 먼저 떠난 동생을 기억하고 아파하며, 우연히 마주친 수녀님들께 더 많이 기부하지 않은 것을 자책하고,
한참 어린 여동생의 부탁에 가출을 포기하고 마는 여린 마음의 소유자다.
유난히 반항적이고 불만 투성이인 홀든의 모습은
어쩌면 다른 이들보다 훨씬 더 섬세하고 착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세상은 분명 선한 사람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지만,
섬세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좀 더 살기 힘들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니까.

위선으로 가득한 세상을 향한 청소년기의 반항과
혼란을 사실적인 묘사로 공감하게 만든 저자의 글솜씨도 감탄스러웠지만, 무엇보다 이 소설에 높은 점수를 주고싶은 부분은 쉽게 읽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뛰어난 문장력만큼이나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이야기를 무겁게 만들지 않는 놀라운 유머감각이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고 정확히 필요한 위치에 놓여 독서의 즐거움을 배가시켜주는 유머 한스푼의 힘은
정말 감탄스럽다.
호밀밭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호해주는 파수꾼이 되고싶다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희망을 가진 홀든이
부디 더 상처받지 않고 그 바람대로 살게 되기를..
이 시대의 모든 홀든이 세상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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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 원고지를 앞에 둔 당신에게
금정연 지음 / 어크로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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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독서일기를 읽은 후부터 독서에 관한 책은
늘 선호 도서 목록의 상위에 올라오게 되었다.
책을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고 그 책을 통해 무엇을 느꼈을까?
다른 사람들의 ‘독서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것은 비밀일기를 훔쳐보는 것처럼 언제나 흥미진진하고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건, 그때까지 세상에 있는줄도 몰랐던 좋은 책들을 알게 된 순간의 흥분과 설레임.
잡문같은 가벼운 독서감상이든 꽤나 진지하고 예리한 비판이 첨부된 서평이든, 남다른 글솜씨와 시각으로 소개된 책들은 당장 사서 읽어보고싶은 욕망을 통제불능 수준으로 마구 샘솟게 만들었으니까.

저자가 여러 매체에 기고했던 책들의 서평을 모아 만든 이 책 속에도 그런 책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어떤 책은 저자의 생생하고 웃픈 생활 에피소드에 묻혀 존재감도 없이 이야기가 끝나버리고,
다른 책은 거의 안드로메다급으로 아무 관련도 없는
이야기 속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가 허무하게 사라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나면 저자가 읽었다는 그 책들이 읽고싶어 제목을 검색하고 장바구니에 담고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좋은 책을 대상으로 서평을 쓴다는 건 얼마나 큰 용기와 자신감이 필요한 일일까?
그저 책을 읽고 난 감상을 일기처럼 끄적이는 수준인 나에게 ‘서평‘이라는 방식으로 책을 이야기하는 건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저자 금정연은 서문에서부터 책들에 대한 존중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막 대하겠다는 식의 선언과 함께, 형식도 일관성도 없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책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럴싸한 책 속 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각 책의 서평을 책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놓는데,
주로 마감 앞에 초조하면서도 게으른 서평가로서의 자신의 일상을 책의 스토리 혹은 주제와 결부시켜 웃픈 자기성찰을 하거나,
각 책의 전개 방식을 보란듯 대놓고 빌어와(편지나 수필 혹은 일기 등) 그 책을 해부하는데 이용하며,
어떤 방식을 차용하든 모든 서평의 핵심 키워드는
유머다.
사실 유머만큼 개인적 취향에 좌우되는 것도 없기에 나와 비슷한 코드가 아니라면 그 유머는 독서를 방해하거나 거슬리게 하는 치명적 단점이 될 뿐일텐데, 다행히 저자의 유머는 내 취향과 잘 맞는 편이었고,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에게도 꽤 잘 먹히는 쪽일거라고 생각한다.
유머감각은 타고나지 않으면 후천적 연마로는 절대 향상될 수 없다고 믿기에, 가끔씩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오게 만드는 저자의 유머감각엔 약간의 질투와 부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그렇다고 무조건 유머를 무기로 한 가벼운 서평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서평만 읽어봐도 감히 읽겠다는 욕심조차 내선 안될것 같은 책도 있고, 나라면 읽다가 벌써 포기하고 던져버렸을 것 같은 난해한 책들에 대해서도 꽤나
집요하고 성실한 태도로 진지한 서평을 하고있다.
개인적으로는 스스로를 거침없이 디스하는 듯한 태도로 책들을 샅샅이 드러내고 해부하는, 조금 낯설지만 감탄스러운 유머감각과 평이한듯 예리한 달필의 글솜씨로 포장된 재기발랄한 서평이
기대만큼 많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
하지만, 며칠전 읽었던 이슬아 작가의 서평에 이어
또다른 낯설지만 신선한 서평을 발견한 즐거움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독서였음은 인정.
그의 서평들이 아직도 여러권 남아있다는 사실이
정말 다행스럽고, 다음엔 또 어떤 책들과 유머를 만나게 될 지 아주 많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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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
김하나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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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다가 갑자기 울컥하게 되는 당황스런 순간이 있다.
저자의 고통이나 감정에 깊은 공감이 될 때나,
스토리에 푹 빠지게 만드는 상상 이상의 아름다운 문장이 주는 감동에 휩싸이는 순간,
그리고 이 책처럼 그저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뿐임에도 마음 가득히 차오르는 울림으로 생각과 마음이 저절로 차올라 크게 공명할 때.

이 책은 유기동물을 구조하고 보호하는 단체인 카라에서 유기동물들과 결연을 맺고 후원중인 작가들이 자신이 키우고 있는 반려동물과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와 동일한 생명으로서 소중한 가치를 지닌 동물들에 대해 함께 생각 해보자고 따뜻하게 권하는 책이다.
한번도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은 없지만 인간에게 양식으로 제공되기 위해 태어나고 길러지는 많은 동물들에게 죄책감을 갖고 살아왔기에 책 속의 모든 이야기는 나를 부끄럽게 했고, 잘 알지못해 오해와 무지로 살아온 시간들이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얼마전에 읽었던 한나 아렌트의 책에서 무사유가 얼마나 악한 것인지 공감했지만 나 역시 동물에 대한 의식에선 제대로 사유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에.
이세상에 가치 없이 태어나는 생명은 없다.
무슨 권리로 인간들은 동물을 가축화 하고 그들의 자유를 빼앗으며 심지어 그들의 존재를 우리의 양식과 소유물로 당연하게 인식하는 것인가?
약자의 권리와 동등한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예전과는 달라지고 있다지만, 동물을 소유나 양식으로 여기고 생명으로서 존중하지 않는 시각은 여전한 것이 사실이다.
사람이 먼저라는 말, 사람 중에도 약자가 많은데 동물에게까지 신경써야 하냐는 사람들의 주장이 많은
이들에게 동의를 얻고 타당하다 인정 받는다.
하지만, 생명의 가치에는 순위도 경중도 없으며, 사람이든 동물이든 더 약하고 소외된 존재에 대한 관심과 배려, 보호는 결국 지구상의 모든 생명들을 더 안전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최선이자 최고의 방법이다.

아홉편의 이야기들 하나 하나가 다른 사랑의 빛깔로
마음을 뜨겁게 데우고 눈물을 흘리게 만들며, 깊은 공감과 함께 큰 깨달음을 준다.
책을 통해 이렇게 큰 감동과 깨달음을 느낀것도 꽤 오랜만이었지만,
반려동물들과의 관계를 통해 최고 경지의 사랑을 느끼고 배우며 더없이 행복한 순간을 경험하는 작가들의 이야기에선 또 질투가 날만큼 부러움과 동경을 느꼈다.
‘개들은 왜 인간 따위를 이토록 사랑하는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잠깐의 권태도 변심도 무시도 없이 모든 순간 자신들의 반려인을 지극히 사랑만 하다 떠나는, 그래서 먼저 떠난 그들을 만날 희망으로 고단한 삶을 버틸수 있게까지 해주는 소중한 존재와의 만남이라니..
나도 언젠가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
동물학대를 결사반대하고 유기동물들 이야기만 들어도 마음 아프다 했지만, 나 역시 마음 한켠엔 불우한 아이들, 빈곤국의 국민들을 먼저 도와야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을 진심으로
반성한다.
생명의 가치에는 우선 순위가 없다는 것,
인간들이 매긴 가치 순위로 동물들의 고통을 미뤄두는 잔인함을 더는 용인해선 안된다는 것,
사랑을 하게되면 불편하고 힘든 것들과 마주하게 될 수밖에 없지만, 생명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내게 오는 아프고 힘든 것들은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임을 절대 잊지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 해본다.
일단, 카라의 후원부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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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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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뭔가를 글로 쓴다는건, 그것을 사용하는 것과 비슷해서 결국에는 그것을 망가뜨리게 된다.
생각이 엷어지고 모서리는 닳아서 글로 적어놓은 것들은 결국 희미해지고 사라져버린다. 특히 장소에 관한 글이 그렇다.‘ - p108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올가 토카르추크의 소설 ‘방랑자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의 책을 읽고나면 늘 나의 부족한 독서력과 어설픈 통찰력을 깨닫게 되었기에
망설였으나 책 소개 문구 중 ‘여행 소설‘이란 표현에 혹해 희망을 품고 용기를 내어(?) 구매했다.
하지만, 역시 노벨 수상 작가와 나의 어긋난 감상은 이 작품도 역시 피해가질 못했다.
일단, 무엇보다 이 소설은 내가 기대했던, 우리가 흔히 짐작하는 일반적인 여행소설과는 거리가 멀다.
아니, 그런 여타의 여행소설과 같은 기준에서 분류한다면 이 책은 여행소설이 아니다.
게다가 어찌 보면 소설도 아니다.
백여가지의 이야기가(어떤 이야기들은 고작 한 두페이지 정도일 뿐이다) 각각 독립적으로 혹은 약간의 연관성을 갖고있지만, 모든 작품들이 익숙한 소설적 화법을 쓰고있지 않으며, 어떤 것들은 수필 같기도 하고 편지이기도 하며 때론 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행과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도 많으며 적지않은 이야기들은 무슨 얘기가 하고싶은 건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굳이 이해를 하려는 마음으로 찬찬히 들여다보면 왜 제목이 방랑자들이며, 여행소설이라고 분류 하는지
짐작되는 부분들은 물론 있다.
첫번째 이야기에서 고작 세살 정도인 아기는 어둠이 내릴 무렵의 거리 풍경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가 불현듯 뭔가가 달라지는 순간을 경험한다.
나의 관념을 떠나 다른 시각을 가진 존재가 되는 순간.
찰나에 불과할지라도 그 잠깐의 시간을 저자는 여행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여행중 사소한 말다툼 끝에 차에서 내린뒤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아내와 아들을 찾아 나서는 남자,
잘려버린 다리의 고통에 집착하는 사나이,
신체에 집요하게 천착하는 해부학 박사,
심지어 아무도 없는 빈 방까지..
백편이 넘는 길고 짧은 에피소드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만의 여행을 이야기 한다.
우리가 흔히 여행이란 단어에서 쉽게 떠올리게 되는 낯선 장소로의 여행이 아니라, 각 편의 주인공들이 가지고 있는 자신들만의 어떤 것을 향한 여행이라는 점이 다를 뿐.
어떤 이는 인체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향해,
다른 이는 자신이 버렸다고 생각한 가족을 찾는동안 그들이 자신을 버린것을 깨달으며 그 마음이
변한 이유를 찾기위해 고통 속에 고민을 거듭하고,
또 어떤 이는 사라진 자신의 일부에서 동시에 느껴지는 상실과 고통의 감정에서 진정한 자신의 현재를 알려줄 답을 찾는다.
이 모든 것들이 그들에겐 여행과 같은 것이며, 그런 이유로 ‘여행자들‘이 아니라 ‘방랑자들‘이라고 한 것이 아닐까?
장소의 이동을 목적으로 삼아 외부적 환경을 바꾸는 ‘여행‘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실과 고통의 답을 찾으려는 내적 요구를 따라 떠도는 자들의 이야기이기에.

각 편의 이야기는 독자적으로 시작되었다 끝이 나기도 하고, 한참 뒤에 다른 이야기와 만나기도 하며, 끝이 난줄 알았던 이야기의 다음 과정이 진행되기도 한다.
어떤 이야기 속 사소한 문장이 어느 편의 제목이 되기도 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여행(방랑)을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익숙하지 않은 방식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지만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변주하면서도 결국 인간의 내적 방랑 이야기로 우리들에게 쉽지않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작가의 능력에 내심 감탄이 느껴진다.
결국 작가가 백여편의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에게 건네고픈 말은, ‘당신은 지금 어떤 방랑을 하고 있나요?‘가 아닐까?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다 익숙한 전개방식도 아니고, 소위 재미라고 부를만한 익숙한 미덕도 부족한 까닭에 솔직히 읽기가 그리 쉽진않다.
그래도 중간에 덮고 포기하기엔 다 읽고 난 뒤의 여운이 적지않게 남는 책임은 분명하다.
재미 위주의 쉬운 독서에만 익숙해져 있던 나를 반성하게 해준 책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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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1-01-24 1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신은 지금 어떤 방랑을 하고 있나요?” 아 이렇게 한 문장으로 정리하시다니 ^^ 반가운 흔적 찾아서 메모 남겨요. 바다그리기님이 “나 여기 있었다.”고 적어 두신 흔적을 찾아서!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셔야 해요!

하나 2021-01-24 20:26   좋아요 1 | URL
아, 저조차 저의 하루를 응원하지 못하는 날들이 많은데 - 눈물 버튼 ㅜㅜ 저도 그런 날들이 이어지다가, 다잡다가 그러고 있어요.

바다그리기님께서 매일매일 조금 더 행복하고 기뻐야 한다고 좀전에 그렇게 결정해주셨으니, 정말 그럴 수 있을 거 같고 그러고 싶어지네요 ^^

바다그리기님 마음 넘 따듯해서 매번 말씀 남겨주실 때마다 눈물 핑, 우리 책친구 바다그리기님의 하루는 제가 응원합니당 :)

오늘 밤부턴 조금 추워진다니까 더 따숩게 해서 주무셔요! 🙈

바다그리기 2021-01-24 2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늘 따뜻한 마음 한자락으로 불쑥 제 마음을 흔들어 놓는 하나님!
저도 잊고있었던 제 흔적을 찾아내
이렇게 반가운 인사를 건네주시니 저는 또 이렇게 뭉클한 기쁨을 느낄 수밖에요. ㅎㅎ
저도 하나님이 이 책 읽으신 감상 쓰신 거 읽고 반가웠어요^^
방랑자들은 쉽고 편한 소설 읽기에 익숙해져 있던 제게 쉽지않은 책이었지만 많은 질문을 던져주었고, 하나님같은 친한 이웃님과 이렇게 반가운 인사를 나누게도 해주니 분명 좋은 책이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가 아니라 보내셔야 해요라는 인사가 너무 따뜻해서 감동이예요.
저조차 저의 하루를 응원하지 못하는 날들이 많은데 저의 좋은 하루를 당연한 것처럼 생각 해주시는 마음이 너무 감사해서요.
(잉잉.. 나이 드니 마음의 수도꼭지가 터져버렸나봐요 ㅜㅜ)

언제나 따뜻한 시선과 마음으로 바람직한 방랑만 하실 것같은 저의 책친구 하나님!
하나님도 매일 매일 조금 더 행복하고 기쁘셔야 해요!
제가 좀전에 그렇게 결정 했거든요^^
오랜만의 인사 반갑고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