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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 원고지를 앞에 둔 당신에게
금정연 지음 / 어크로스 / 2017년 6월
평점 :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읽은 후부터 독서에 관한 책은
늘 선호 도서 목록의 상위에 올라오게 되었다.
책을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고 그 책을 통해 무엇을 느꼈을까?
다른 사람들의 ‘독서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것은 비밀일기를 훔쳐보는 것처럼 언제나 흥미진진하고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건, 그때까지 세상에 있는줄도 몰랐던 좋은 책들을 알게 된 순간의 흥분과 설레임.
잡문같은 가벼운 독서감상이든 꽤나 진지하고 예리한 비판이 첨부된 서평이든, 남다른 글솜씨와 시각으로 소개된 책들은 당장 사서 읽어보고싶은 욕망을 통제불능 수준으로 마구 샘솟게 만들었으니까.
저자가 여러 매체에 기고했던 책들의 서평을 모아 만든 이 책 속에도 그런 책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어떤 책은 저자의 생생하고 웃픈 생활 에피소드에 묻혀 존재감도 없이 이야기가 끝나버리고,
다른 책은 거의 안드로메다급으로 아무 관련도 없는
이야기 속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가 허무하게 사라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나면 저자가 읽었다는 그 책들이 읽고싶어 제목을 검색하고 장바구니에 담고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좋은 책을 대상으로 서평을 쓴다는 건 얼마나 큰 용기와 자신감이 필요한 일일까?
그저 책을 읽고 난 감상을 일기처럼 끄적이는 수준인 나에게 ‘서평‘이라는 방식으로 책을 이야기하는 건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저자 금정연은 서문에서부터 책들에 대한 존중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막 대하겠다는 식의 선언과 함께, 형식도 일관성도 없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책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럴싸한 책 속 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각 책의 서평을 책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놓는데,
주로 마감 앞에 초조하면서도 게으른 서평가로서의 자신의 일상을 책의 스토리 혹은 주제와 결부시켜 웃픈 자기성찰을 하거나,
각 책의 전개 방식을 보란듯 대놓고 빌어와(편지나 수필 혹은 일기 등) 그 책을 해부하는데 이용하며,
어떤 방식을 차용하든 모든 서평의 핵심 키워드는
유머다.
사실 유머만큼 개인적 취향에 좌우되는 것도 없기에 나와 비슷한 코드가 아니라면 그 유머는 독서를 방해하거나 거슬리게 하는 치명적 단점이 될 뿐일텐데, 다행히 저자의 유머는 내 취향과 잘 맞는 편이었고,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에게도 꽤 잘 먹히는 쪽일거라고 생각한다.
유머감각은 타고나지 않으면 후천적 연마로는 절대 향상될 수 없다고 믿기에, 가끔씩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오게 만드는 저자의 유머감각엔 약간의 질투와 부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그렇다고 무조건 유머를 무기로 한 가벼운 서평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서평만 읽어봐도 감히 읽겠다는 욕심조차 내선 안될것 같은 책도 있고, 나라면 읽다가 벌써 포기하고 던져버렸을 것 같은 난해한 책들에 대해서도 꽤나
집요하고 성실한 태도로 진지한 서평을 하고있다.
개인적으로는 스스로를 거침없이 디스하는 듯한 태도로 책들을 샅샅이 드러내고 해부하는, 조금 낯설지만 감탄스러운 유머감각과 평이한듯 예리한 달필의 글솜씨로 포장된 재기발랄한 서평이
기대만큼 많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
하지만, 며칠전 읽었던 이슬아 작가의 서평에 이어
또다른 낯설지만 신선한 서평을 발견한 즐거움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독서였음은 인정.
그의 서평들이 아직도 여러권 남아있다는 사실이
정말 다행스럽고, 다음엔 또 어떤 책들과 유머를 만나게 될 지 아주 많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