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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무선 제작)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인생은 운7 기3‘이란 말이 있다.
내가 가진 기운보다 소위 적절한 타이밍과 운빨이란 것이 우리 삶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
인류문화사를 다룬 최고 명저 중 한권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 책을 읽고나면 그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노력과 열정, 선한 마음으로 살면 복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믿으며 살아온 사람들을 힘 빠지게 만드는
말이지만 이 책은 700페이지 가까운 분량 속에서 아주 분명하게 주장하고 있다.
잘난 척 하지 말라고, 너희가 잘 사는 건 잘나서가 아니라 요행히 다른 사람들보다 운이 아주 좋았던 거라고.
반대로 빈국의 국민들에겐 힘 빠지는 말이지만 어차피 그 나라에서 태어난 이상 당신들의 가난과 불평등은
이미 결정되어 있던 것이니 어쩔 수 없다는 것.
어찌 보면 열받는 주장이지만 엄청난 분량의 통계와 자료들을 통해 그의 논리는 객관적으로 제시되어 있고, 읽는동안 어쩔 수 없이 수긍과 인정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20여년 전에 쓰여진 이 책이 아직까지도 인류문화사적으로 최고의 책 중 한권으로 인정받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저자가 세계의 국가간 발전 불균형의 원인을 생물학적 민족 차이가 아닌 대륙간의 조건에 따른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처음 이 책이 나왔을 무렵까지만 해도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유전학이나 생물학적인 원인에서 비롯된다는 설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학설을 보란듯 뒤집으며 특히 백인우월주의까지 만들어낸 대륙간 발전 불균형의
원인이 다름 아닌 지리적 위치와 그로 인한 여러 현상들에서 기인한 것일 뿐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결론을 내린 것.
한마디로 ‘너희 백인들 잘난척 하지마! 그 땅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니들은 그저 찌질이였을거야‘라는 빅엿을 먹인 셈이니 당시 이 책이 서방 국가들에 준 충격은 익히 짐작 되고도 남는다.
그러니 책이 출간된 후 적지않은 반발과 수많은 반론들이 제기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을 터.
하지만 많은 반론들은 이 책의 일부 내용에 의문을 제기하는 수준에 그쳤고, 수많은 통계와 자료, 여러 장르에 걸친 저자의 해박한 지식으로 중무장한 이 책의 주장은 점차 문화인류학적으로 중요한 학설임을 인정받게 된다.
명저로서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에게 읽혔고 앞으로도
더 많은 이들에게 읽히게 될 이 책의 시작은 아주 단순한 질문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어느날 저자의 뉴기니 원주민 친구가 물은 ‘왜 우리(아프리카인들)는 너희(백인들)처럼 발전하지 못한걸까?‘라는 궁금증.
그 질문을 두고 두고 떠올리던 저자는 결국 그 답을 직접 찾기로 했고, 그렇게 시작된 책은 이제 전세계인들이 읽는 중요한 문화인류학 도서가 된 것이니 학자로서 사소한 질문도 놓치지 않는 예리함과 답을 찾기위한 엄청난 노력과 집요한 열정은 정말 놀랍고 존경스럽다.
엄청난 양의 통계와 수치들, 각 분야의 해박한 지식을
근거로 한 여러 논리와 주장들이 펼쳐지지만 결국 저자가 이 책을 통해 하고있는 이야기는 단순명료하다.
‘위도가 같아 기후와 토양이 비슷하며 동서로 연결된 지형에 장애물도 없는 유럽대륙이, 남북으로 연결되어 서로 다른 기후와 풍토를 지닌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대륙보다 문화나 식량의 전파와 확산이 더 빠르고 농경의 발달을 시작으로 더 부유한 국가를 이룩할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것.
물론, 이러한 지리적인 특성만으로 발전의 차이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일찌기 서양보다 훨씬 빠른 발전으로 풍요로운 제국을 이루었던 중국의 경우, 오히려 통일로 한명의 지도자가 오랜 세월 통치했던 것이 그들에겐 유럽에 뒤쳐지는 이유가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국가로 분열되어 경쟁하던 유럽은 바로 그 경쟁이 서로를 더욱 발전시켜 부강한 대륙이 될 수 있었지만, 한명의 지도자가 모든 권력을 쥐고있었던 중국은(모든 지도자가 옳은 결정만을 하는 것은 아닌만큼) 견제나 경쟁을 통한 상호발전을 할 수가 없어 필연적으로 뒤쳐지고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
대륙간 발전 불균형에 대한 이런 기본 전제를 바탕으로, 저자는 인류역사의 흐름 속에서 총과 균, 쇠로 대변되는 무기와 병균, 문명의 발달이 그 불균형을 어떻게 심화시켜 왔는지를 수많은 통계와 자료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이 그의 이론을 수긍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솔직히 너무 많은 통계와 자료들은 독서를 버겁게 만들 지경이라 굳이 이렇게.. 라는 생각까지 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탄탄한 근거를 모으고 제시하는 그의 집요함과 수많은 학문적 지식으로 무장한 그의 해박함과 치밀함은 감탄을 넘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고작 160여명의 스페인 군대가 숫적으로 우세한 잉카인들을 물리치고 병균을 퍼뜨려 잉카제국을 결국 멸망 시킨것과,
자급자족 하며 욕심 없이 소박하게 살아온
모리오리족이 마오리족에게 몰살 당해 멸종 됐지만 그 두 종족의 조상은 같은 폴리네시안으로 다른 지역에
정착해 사는동안 각기 다른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종족으로 변화 되었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결국 저자의 주장대로 강대국과 약소국의 불균형은
생물학적 원인이 아닌 지리적 요인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 책은 지리적으로 불리한 땅에서 태어난 이들에게 적지않은 실망감과 박탈감을 느끼게 만들고, 출생 시점부터 결정되어 평생동안 지워질 운명의 굴레에 대한 억울함도 느끼게 만들지만 부정하거나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서 중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한 채 강대국의 알력싸움이라는 태생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가진 우리나라도 어쩔수 없는 불리함을 극복하고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위상을 갖기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를 고민하며 함께 노력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일 것이다.
초반에는 엄청난 지리적 설명과 통계, 수치들의 압박감에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아 힘들었지만
전반적으로 어려운 문장이 없는데다 이해를 돕는 역사적 사례들은 재미있고 흥미로워 쉽게 읽힌다.
구매후 쉽게 읽히지 않는 초반부를 극복하지 못해 다시 책장에 넣어두길 두차례, 세번만에 결국 완독을 하고 보니 역시 오랜 시간동안 명저로 인정 받으며
수많은 독자들의 지지를 받고있는 책에는 그만한 이유와 가치가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게다가 서문에서부터 드러나는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한국에 대한 호감과 관심, 한글의 우수성과 우리나라의 지리적 중요성을 높이 인정하는 그의 친한 성향은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책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를 갖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출간 된 지 20년도 넘은 이 책이 끊임없이 읽히고 회자
되며 인문학적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 해준다.
인류학적으로 중요한 명저 또 한권을 독파 했다는 뿌듯함과 함께 두꺼운 책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며
독서력도 성장하는 기분.
이 책의 두께와 초반의 어려움으로 포기할까 고민중인 독자분들이 있다면 조금만 참고 끝까지 완독 하시기를 진심으로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