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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보트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11월
평점 :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사는 게 재미없었다. 살아 있어도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좋은지, 왜 더 살아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p84)
- 이게 현실이야.
- 나는 현실을 살고 싶어. 엄마는 현실을 살고 있지 않잖아. (p228)
'하느님의 보트' 란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
책의 제목을 보면서 도대체 그 의미가 무엇일지 궁금했었다. 그렇다고 책을 다 읽은 지금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더 큰 의문이 들 뿐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 하느님의 보트'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보다 '하느님의 보트에 탄 그녀들이 도달한 그 곳이 어디였는지' 가 더 궁금하다.
'그녀'는 엄마이다. 소우코라는 영리한 딸을 가진.
엄마인 그녀는 벌써 몇 년째 떠돌고 있다. 짧게는 몇 개월, 길어봐야 일, 이년 정도만 한 곳에 머무르고 적응이 되려고 할 무렵에는 언제나 떠나야만 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믿음은 이랬다. 소우코를 있게 해준 그 사람이, 아침이면 해가 떠오르듯 반드시 자기가 어디에 있든 찾아내 만나러 올 것이라는 것. 그래서 계속 떠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녀는 그것만 믿고 있다. 소우코는 어렸기 때문에 엄마의 믿음을 그저 따를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믿음이 깨지게 된 것은 시간이 지나 성장해버린 딸, 소우코의 말 때문이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녀의 믿음은 그리 단단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느님의 보트’는 그녀와 딸의 시선을 번갈아 보여준다. 한번은 엄마의 마음을, 한번은 딸의 마음을 엿보다 보면 양쪽의 서로 다른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그녀가 질기게 붙잡고 있는 뼈까지 으스러져 버릴 것 같은 사랑보다 두발을 딛고 당당히 살아가려고 하는 소우코의 현실이 더 공감이 된다.
그래서였을까?
그녀의 상태가 너무도 불안정하여 나는 그녀가 그를 만났다는 결말을 믿을 수가 없다.
이것이 꿈일까. 아니면 죽어가는 그녀가 만들어낸 환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소우코를 기숙사에 보내고, 믿음을 잃어버린 사람의 자포자기한 심정이 그녀에게서 보였다고나 할까. 저자가 보여주는 결말을 나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그녀에게 가장 적합한 결말이었지만 '현실이 행복한 결론만 내놓지는 않음'을 알고 있는 내게 이것은 현실적인 결말이 아니었다.
사랑만 가지고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사랑만이 세상의 전부라는 건 거짓말이다.
그렇지만 녹록치 않은 현실 속에 사랑이 없다면 살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사랑과 현실이라는 주제를 내밀며 나에게 ‘당신의 생각은 무엇입니까?’라고 당당히 묻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