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은의 잭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하얀 눈이 쌓여 있고 가족 단위의 관광객이 많이 찾는 신게쓰 고원 스키장.

평화로움과 행복감만으로 가득차 있어야 할 이 곳이 한 장의 메일로 인해 온통 긴장감이 넘쳐 흐르는 장소가 되어 버렸다. 스키장 운영을 담당하는 경영자들에게 온 한장의 메일에는 지구 온난화의 책임을 물으며 3천만엔을 준비하여 넘겨 주지 않으면 스키장에 묻어놓은 폭탄을 터트리겠다는 협박을 하고 있었다. 경영자와 스키장의 안전을 책임지는 쿠라타사이에 진위 여부를 두고 설전이 벌어지지만 신용할 수 없는 협박으로 스키장 수입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경영자의 입김이 더 셌기 때문에 이 요구는 받아들여지고 만다. 패트롤 요원 중 네즈는 상사인 쿠라타의 부탁으로 이러한 사정을 알게되고 소위 '몸값'을 전달하는 사람이 된다. 그러나 첫번째  '몸값'이 전해졌음에도 '매장자'라 스스로를 칭하는 범인은 폭탄을 묻지 않은 슬로프 몇개만을 알려주고 정확한 장소를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두번째 협박 메일과 함께 또다시 투숙객의 안전을 담보로 한 위협이 가해진다. 이어지는 세번째 협박.

 

스키장 폭파 위협이라는 큰 줄기의 이야기를 두고 스키장과 연계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해지는데, 투숙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패트롤 요원, 키리바야시, 네즈, 에루, 그리고 다른 부서의 타쓰미, 스키장에 보드를 타러 왔다가 이러한 소동에 휩싸이는 여자 크로스 선수 치아키와 그의 사촌들, 일년 전 불의의 사고로 인해 아내이자 엄마를 잃은 이리에 부자까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이 큰 소동에 휩싸이게 된다. 일년 전 벌어졌던 사고로 인해 폐쇄 구역이 되어버린 호쿠게쓰 지역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도 덧붙여진다.

과연 이들은 범인에게서 스키장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백은의 잭>은 그동안 <용의자 X의 헌신>이나 <백야행>등의 작품을 읽어왔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라면 조금 어색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싶은 책이다. 작가의 전매 특허와 같았던 범인에 대한 동정심 유발을 통한 공감을 이 책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흔히 범인에게 잡힌 인질이 범인에게 동화되는 현상을 말하는 '스톡홀롬 증후군'을 얻게 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의 범인들은 하나같이 사연이 있고, 쉽게 동화되도록하는 슬픈 인물이었는데, 그러한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큰 사건을 바탕으로 잔가지를 치듯 작은 사건들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이야기가 전개된다. 작가가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사실을 잊고 그냥 읽어나간다면 재밌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스노보드, 혹은 스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푹 빠지게 될 것같은 자세한 묘사와 속도감은 이 작품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범인과의 추격전 뿐 아니라 선수와 같은 패트롤 요원들과 그들의 눈을 피해 속도를 즐기는 스키어들과 스노보더들의 쫓고 쫓기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은 아슬 아슬한 묘미가 넘쳤다.

마지막 범인의 윤곽을 붙잡아 뒤를 쫓는 네즈와 에루 앞에 모습을 드러낸 범인에게는 기막힌 사연이 숨어 있었는데, 사실 이 결과를 예측했던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은 생각이 든다.

쉴새없이 전개되는 이야기에 푹 빠져 읽고 말았지만, 그래도 조금 아쉬움이 남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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