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세상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렸을 때 아빠의 차를 타고 한강을 지나다 보면 쓰레기가 높이 쌓여 있는 곳이 있었다, 고 기억된다. 난지도. 서울의 쓰레기를 모두 버리는 곳이었다. 그랬었는데 어느 순간인가 그곳이 공원이 되어버렸다. 아름다운 공원을 보고 있자면 아무도 예전 그 쓰레기 매립지를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오랜만에 나도 책을 통해 ‘난지도’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그런 곳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었다.

<낯익은 세상>은 난지도에 살았다는 이름없이 별명으로 불리던 아이들과 쓰레기 속에서 희망을 찾던 어른들의 이야기이다. 아마도 그 시절엔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냄새나고 위험하기만 한, 쓰레기 더미를 헤쳐야만 살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얼굴이 찌푸려지고, 설마하며 믿기 힘들고,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다. 텔레비전에서 본 우리나라가 아닌 인도였나? 그 곳의 쓰레기 산에서 사는 사람들 얘기를 보는 것처럼 무덤덤하다. 우리도 그 쓰레미 더미에서 헤쳐 나온게 몇 십년 되지 않을텐데... 우리는 벌써 그 시절을 잊었다. 시치미 뚝 떼고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의 얘기처럼 받아들인다. 이미 나부터.

저자는 ‘낯익은 세상’이라며 우리의 과거 모습을 들이밀지만, 나는 ‘낯선 세상’이라며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건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세상의 이야기예요. 몰라요.

하지만 그런 식으로 잊혀져 간 것이 얼마나 많을까? 사람은 물론이요, 건물이며 모든 것이 낡고, 냄새나고,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철거되고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결국엔 잊혀진다.

내가 난지도를 잊었던 것처럼. 난지도 뿐 아니라 어린 시절의 친구도, 추억도 잊고 사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책을 읽으면서 기분이 가라앉고 조금 우울해지기까지 하는 건 그네들의 힘들고 억척스럽지만 불투명한 미래를 담보로 한 삶 때문이 아니라, 내가 잊었던 기억이 다시 떠올라서일 것이다. 지금은 잊었지만 한때 나의 전부였던 추억들 때문에 조금 감상적인 기분이 되어버렸다.

덤덤한 듯 차분하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잔잔하게 다가와 그 안으로 나를 푹 끌어들였다.

원래 황석영 작가의 작품에 대해 항상 별로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작품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쉽게 빠져 나올 수 없는 분위기... 이걸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작가의 질문이 마음에 남는다.




내 속에 그게 정말 아직도 살아 있는 거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