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뉴스에서 내년도 최저 임금이 타결되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올해보다 260원 올라 4,580원이 될거라고 한다. 이렇게 말하면 솔직히 실감이 되질 않는다. 그래서 계산을 해보았다. 만약 하루 6시간 근무하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한달 25일 일한다고 하면 한달에 70만원도 안되는 돈을 받는다는 얘기였다. 오, 이런 세상에...

그런 우울한 뉴스를 보다가 내 방에 들어와 책을 집어 들었다. 조지 오웰의 <1984>

그런데, 책은 더 우울하다. 조지 오웰은 예언가인가, 뭐 틀린 구석이 없다. 그래서 이 책이 명작인가보다. 그가 묘사하는 미래 세계는 암울하기 그지 없는데, 누군가가 상상해낸 그 암울한 미래를 오차없이 그대로 살고 있는 거라 생각하니 더 암울해진다.

하루키의 <1Q84> 때문에 이 소설이 더 궁금했다. 누군가의 뮤직 비디오에, 누군가의 영화에 묘사되거나 인용되어 언제나 이야기되어지는 소설 <1984>를 이제사 읽었다.

우선 떠오르는 건 이 책은 적어도 <숨쉬러 나가다>보다 훨씬 재밌다는 것이다. 1948년에 1984년을 상상하며 쓰여진 책인데, 그러니까 어찌보면 공상과학, 미래 소설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텐데, 현재의 모습과 참으로 유사하다. 상상이 현실이 되었다고 할까.

‘빅 브라더’가 호시탐탐 개인을 엿보고 있는 살벌한 미래 세상. 사람들은 서로를 감시하고, 특히나 아이들은 당이 시키는대로 불온한 기운이 있는 사람은 부모라해도 고발부터 하고 보는 그런 시대이다. 그런 시대에 윈스턴 스미스가 있다. 진리부 건물 사무실에서 타임스 기사 등 과거를 빅 브라더의 입맛에 맞게 수정하며 살고 있는 사람이다. 무산층이 아닌 푸른 제복을 입는 당원이다. 하지만 열성 당원도 아니고, 빅 브라더를 마음 속으로 의심하며 무산층 노동자들에게만 희망이 있다 믿는 어찌보면 반역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사랑한다’고 고백해 오는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줄리아.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고 적당히 즐기며 살고 있는 요령 좋은 여자이다. 그녀와 몰래 연애를 하면서 스미스는 당에 대항하는 비밀 조직에 가담하고 싶어한다. 금세 발각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위태 위태한 삶을 지탱해 나가던 스미스에게 결국 파멸이 찾아온다.

자유란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이다. 그 자유가 허락된다면 그 밖의 모든 것은 여기에 따른다. (p103)

고통에 대해 바랄 것은 오직 한 가지 뿐인데 그것은 고통이 멈추는 것이다. (p292)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무산층 노동자들에게만 있었다. ’

불안하고 섬뜩하고 폐쇄적이며 무기력한 미래의 이야기는 유려하게 진행된다. 그러다 가끔 툭 튀어나온 돌처럼 이물감이 느껴지는 단어, 표현이 있는데, 이것은 작가가 일부러 사용한 신어이다. 책 맨 뒤에는 부록으로 ‘신어의 원리’가 담겨 있는데, 책 속에서는 신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신어를 창조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말을 없애는 작업’ 이라고. 사고의 폭을 좁히기 위해서 그런 단어를 만들어 사용토록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내뱉는 말에도 이렇게 여러 가지 정치적인 의미를 우겨넣는 ‘빅 브라더’ . 매일 매일 살아가는 데 지쳐 빅 브라더에게 반항하지 못하고 그저 순종하는 사람들의 모습. 반역을 꿈꿨지만 철저히 파괴되어 버리는 스미스와 줄리아.

무섭다.

‘신어’ 가 한단어 안에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고,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되는 것처럼 이 책은 마치 그것처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가끔씩 툭 던지듯 문장 하나가 마음에 와서 콕 박히는 경우도 있다. 그런 칼같은 문장 몇 개 때문에 살짝 섬뜩해지기도 했다.

<1984>는 지금까지도 계속 어딘가에서 인용되고 있기 때문에라도 아무래도 두고 두고 생각날 소설이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