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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라수마나라 1
하일권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7월
평점 :
우선, 책값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불평이 아니라 우리나라 만화책의 가격이 점점 오르고 있구나, 싶었다. 심야식당을 권당 7,500원에 구입하면서도 우와, 놀랐는데 이 책은 가격이 11,500원이어서 진심으로 우와, 하고 놀라버렸다. 하지만 책의 내용이 그만큼의 값을 한다면 뭐 괜찮다. 모든 창작품에 관해서는 적절한 가격이 지불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많은 부분이 작가의 이익으로 돌아간다면 더 열심히, 더 좋은 작품을 내놓을테니까 말이다.
만화가 하일권이라는 사람을 알게 된건 사실 얼마되지 않았다. 웹툰이라는 장르에 익숙하지 않았고, 좀 미안한 말이지만, 식객이나 꼴과 같은 만화 외에 우리나라 만화를 그다지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가지 신문에 실리는 만화는 좀 보는데, 그 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작품은 거의 없다. 노골적으로 야하거나, 관심 주제가 아니란 이유로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일권 작가에 대해 알게 된 건 출판사 카페에 가입하고 나서였다.
카페에 올려진 <삼봉이발소> 몇 화를 보곤 너무 마음에 들었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풍기고 있는 묘한 분위기, 음 아직까진 뭐라고 딱 꼬집어 표현할 수 없는 그 분위기가 끌린다.
많은 것을 말하고 있지 않지만,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착, 가라앉고 진중해져 버린다.
<삼봉 이발소>에서도 학교 내에서 소외받고, 가정 내에서도 상처입은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더니, 이 책 <안나라수마나라>에서도 빚지고 도망친 아버지를 둔 자매, 윤아이, 유이, 일등으로 내몰려 일등 외에는 모르는 나일등, 그리고 세상에 그런 사람 꼭 하나 있는 못된 아이, 하나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꼬르륵, 배에서 나는 소리만 어떡해했음 좋겠는 윤아이. 구멍난 스타킹이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이 신어야 하고, 마술사가 되고 싶지만, 마법을 믿지 않는다. 살아갈 일이 너무 큰 짐이기 때문이다. 현실이 너무 고되어 환상을 믿을 수 없다. 너무도 좋은 분이라 믿었던 아르바이트 햄버거 가게 사장은 가불을 미끼로 찝적대려고 하고,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준 아버지 친구는 아이와 유이 자매에게 협박을 일삼는다. 그런 어른들만 만나온 아이가 마술사를 믿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 마술사는 아이의 눈에는 그저 실패한 어른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마술사는 그런 아이 곁에 머물며 그녀에게 마술을 보여준다. 슬프기도, 기괴하기도, 행복하기도 한 그런 마술을 말이다.
<삼봉이발소>에 비해 작품이 더 세련되어졌다. 빠져들 것 같은 아름다운 주인공들은, 남자 작가의 것이라기엔 너무 예쁘다. 흑백의 건조한 그림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체적으로 작품에 정성이 가득하다. 꾹꾹 눌러 또박또박 정성들인 글씨처럼, 마지막으로 혼신의 힘을 불어넣은 것처럼. 책을 펼치면 마술처럼 책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1권이 끝났을 땐 하아- 하는 한숨부터 절로 나온다. 어서 빨리 마술 속으로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말 하는거.. 어떨지 모르겠지만, 책값은 하나도 아깝지 않다. 어떤 마술을 보여줄지, 아이와 마술사는 어떻게 될지 앞으로의 전개가 너무 궁금하다.
참 오랜만에 기대되는 책 하나 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