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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5 - 2부 1권 ㅣ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5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 얘기를 하재믄... 세월이 약이라등가? 인간이 미렌한 겐가 모릅지. 사램이 사는데 너무 서두르느응 거 앙입매. 다아 지나간 일이랑이. ” (p149)
“ 세월이 긴데 뭘 그리 서두르시오. ” (p183)
(서희의 생각) ‘내 돈이 아까워 군자금을 아니 낸 건 아니었소. 당신네들에게 협력을 한다면 나는 내 희망을 버려야 하는 게요. 나는 원수의 힘을 빌려 원수를 칠 것이요. ......
나는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별했을 뿐이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른바 내가 써야 할 군자금을 마련하는 일이오. 충분히 마련되는 그날 나는 돌아갈 것이오. 그리고 싸울 것이오. 내 원수하고, 섬진강 강가에 뿌린 눈물을. 내 자신에게 한 맹세를 나는 잊지 않을 것이오. ‘ (p215)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얼마나 큰 약점인가. 절망에서의 탈출 뒤에 온 희열이란 또 얼마나 서글픈 찰나인가. (p340)
토지 5권에서는 미묘한 서희와 길상의 신경전을 보는 재미가 있다. 두 사람이야 애가 탈수도, 혹은 너무도 싫은 시간이 될 수도 있겠지만 서로를 향한 애정 혹은 애증의 감정이 용정에서 극에 달하고 있는 것이다. 서희는 이미 길상을 정혼 상대로 마음을 정한 눈치지만, 그것을 모르는 길상은 양반이 아니라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더욱 애가 탈 뿐이다.
토지를 읽으면서 나는 긴 호흡의 삶을 생각하게 되었다.
언제나 2년, 3년 후라는 짧은 기간의 미래만을 생각하고 살아가는데, 서희를 통해 그리고 여러 인물들을 통해 나는 천천히 흘러가는 긴 세월을 조금이나마 가늠해본다. 서둘러봤자 긴 세월을 놓고 봤을때는 별것 아닌 것이 되버리는 시간을 이제사 깨닫는다.
긴 호흡의 이야기는 이런 깨달음을 주는 듯 하다. 긴 장편 소설을 읽다보면 한권짜리 소설은 단편같은 기분이 들 정도이다. 한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정말 다양한 일을 겪으며 험난한 고비를 거쳐 나가야 함을 알게 된다. 불에 타서 모든 것을 잃고 난 후에도 사람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것인가보다.
긴 이야기의 1/4을 읽었다. 그런데도 소설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간다는 점이 대단하다 싶다. 토지가 왜 명작인지, 책을 읽어나갈수록 알 것 같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