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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 - 1부 1권 ㅣ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 찢어 죽이고 말려 죽일테야!”
어린시절 보았던 드라마 <토지> 속 어린 서희가 서릿발같은 표정으로 내뱉던 이 말은 아직도 기억난다. 꽤 열심히 드라마를 봤던 것 같은데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이 부분뿐인걸 보면 어지간히 충격적이었나보다. 아니면 워낙에 명장면인지라 두고두고 회자되었기에 기억하는건지도 모르겠다.
<토지>
한국작가가 남긴 이 오롯한 역사적인 대작을 앞에 두고 있자면 저절로 주눅부터 든다. 그 안에 녹아있는 한많은 민족의 기록을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겁부터 난다. 완간 소식을 들은 그 순간부터 <토지>는 인생의 숙제가 되었다. 꼭 풀어야할 매듭같이도 느껴졌다. 그 때가 언제인지 모르지만 노인들이 항시하는 말처럼 “ 내 죽기전에 꼭!” 읽어야 할 책이 되었다. 미루고 미루다 드디어 때가 왔다. 지금이 아니면 안되는 것이다. 지금 또 미루면 그 때는 정말 죽기 전 따위는 없을 것 같았다. 전 21권. 대장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토지 1권은 말 그대로 시작이었다. 이야기는 평사리 한가위 풍경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곳에서 질곡의 세월을 이어가고 있는 인물을 보여준다. 시간은 흘러가다 다시 뒤돌아가기도 하지만 여전히 흘러간다. 인물들이 한명씩 등장하고, 그들에게 성격, 말투, 몸짓을 부여하여 생생한 이웃이 되게 한다. 일제 강점하의 시간. 왜인들과 그들에게 빌붙어 한 몫 챙기려는 사람들, 양반의 수탈, 힘든 시간 속에서도 하루하루 삶을 이어가는 농민들. 그 시간 안에는 역사가 녹아 있었다. 사람들과 시간을 묘사하는 작가의 말투는 단호하고, 그러면서도 정감넘친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긴장되고 조마조마하다. 마치 시한폭탄이 터지기전, 폭탄을 응시하고 있는 기분이랄까. 이런 긴장감이 21권까지 이어진다면 그것도 두렵기만 하다.
그래도, 1권을 읽고나니 왠지 잘했다고, 나를 칭찬해주고 싶어진다. 역시, <토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일생에 한번은 꼭 읽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은 2권. 서희의 아버지 최지수가 갑작스레 인간 사냥을 나선다고 한다. 도대체 속에 무엇을 담고 있는 인물인지 아직 가늠되지 않는다.
얼른 2권을 펼쳐들어야겠다.
이 책은 소설 이외 아무것도 아니다. 한 인간이 하고 많은 분노에 몸을 태우다가 스러지는 순간순간의 잔해다. 잿더미다. 독자는 이 소설에서 울부짖음도 통곡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소설일 따름. 허구일 뿐이라는 얘기다. 진실은 참으로 멀고 먼 곳에 있었으며 언어는 덧없는 허상이었을 뿐이라는 얘기다. 마찬가지로 진실은 내 심장 속 깊은 곳에 유폐되어 영원히 침묵한다는 얘기도 되겠다. (토지 서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