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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에서 살아남기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이수연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죽음 뒤의 세상을 상상해 본적이 있나?
악한 사람은 죽은 뒤에 지옥불에 떨어질것이라고, 그래서 착하게 살아야만 한다고 하도 세뇌당하듯 살아왔는데, 그래서 그런지 <저승에서 살아남기>란 제목을 들었을때, 역시나... 지옥불 속에서 살아남는데 어떤 방도가 있나보구나.. 하고 생각해버렸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전혀 다르다. 오히려 그동안 종교들이 주장해온 지옥과 천국 따위, 저승에는 없다. 오히려 주인공의 입을 빌려 그렇게 세뇌시키는 종교를 이렇게 비판하기도 한다.
“ 신앙인이란 사람들이 이미 지상에서부터 천당에 갈 사람과 지옥에 갈 사람으로 나누는 걸 보면 난 구역질이 납니다.”
“ 당신들에게 종교는 약자들을 당신들 앞에 무릎 꿇게 하는 권력 행사의 수단입니다. ” (p245-6)
지나가던 여자의 종아리를 훔쳐보다가 죽게 된 ‘나’는 그렇게 망자들이 사는 세상, 저승에 다다른다. 보통 생각하기로 우리는 몸에서 빠져나온 영혼 상태로 높이 높이 떠올라 다른 차원의 천국이나 지옥에 갈 심판을 받는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그저 영혼 상태로 지금 살고 있는 세상 속에 섞여 사는 두 번째 삶을 시작하는 것일 뿐이다. 산 자는 죽은 자를 볼 수 없지만, 그들은 우리를 볼 수 있다. 다만 우리의 삶에 개입할 수 없을 뿐이다. 그 곳에는 “ 예수” 님이 세계를 돌며 순회 설교를 하신단다. 유명한 사람이든, 그렇지 않던, 빈부의 격차도 없고, 그저 더불어 살게 되는 두 번째 삶이라니... 거기다가 가고 싶은 곳은 생각만 하면 갈 수 있다. 심지어 우주에도!
죽음 뒤의 세상이 이 정도만 하다면 왠지 두렵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죽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그런 죽음 뒤의 두 번째 삶이 평탄하려면 지금 이순간, 이승에서의 삶이 충실히 채워져야하고, 더불어 지적 능력을 잘 키워놔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없는 사람은 죽자마자 그냥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 두 번째 삶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아, 역시 어렵군. 그래도 어쨌든 지금 첫 번째 삶보다 두 번째 삶은 훨씬 자유롭고, 수월하며, 자신의 선택에 따라 살 수 있는 매력적인 삶이다.
이런 저승을 상상하다니... 대단하다. 그럴 듯하고, 무엇보다 마음에 든다. 원래 천국에서 띵까띵까하며 편안한 삶을 살게되길 바라지 않아서 그런가? 내가 죽어도, 아끼는 사람들 틈에서 살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족하다는 생각이다.
사람에게 희망만 있으면 산다더니, 왠지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다 싶다. 그저 소설일 뿐이지만, 죽은 뒤에 심판을 받지 않아도 되고, 사람들 틈에서 다시 살 수 있다는 이런 생각만으로도 즐거울 수 있다니...
<저승에서 살아남기>는 죽음 뒤를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누군가가 심어준 천당과 지옥 말고, 내가 생각한 죽음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을까? 하고 꼭 생각해 보았으면 싶다. 믿는대로 이루어지리라, 는 왠지 이런 때에도 적용될 듯 싶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