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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한 보통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어렸을 때 생각이 났다.
어렸을 때를 떠올리면 이상하게 누군가의 집에 놀러가서 꼭 그집 가족이 된 것처럼 느긋하게 지내던 기억이 난다. 같이 밥을 먹거나 눕듯이 편하게 앉아 책을 읽거나 그 집 형제들과 같이 게임을 하거나... 그랬었다. 특히나 초등학교때 친했던 친구네 집은 형제가 일곱이나 됐다. 아들을 낳기 위해서였다고 하던데, 남자 아이가 있었던가, 없었던가... 기억은 없고, 재밌게 놀았던 기억만 난다. 언니들이 많아서 참 좋겠다... 이런 생각을 했었던 것도 같다.
<소란한 보통날> 속의 미야자카 가족은 모두 여섯명이다. 부모님과 세 명의 딸, 한 명의 아들이다. 소요, 시마코, 고토코, 리쓰 중에 이야기를 끌어 나가는 사람은 셋째 딸 고토코이다. 고토코의 입장에서 보면 약간은 무뚝뚝한 아빠와 감수성 넘치는 엄마, 두 명의 언니, 남동생이 있는 거였다. 가족이 많다는 것에 우선 부러움이 생긴다.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크고 나니 형제가 많아 북적거리는 집안이 왠지 부러워진다. 미야자카 가족은 소박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조용한 듯 하지만 ‘멋진’ 삶이다. 각각의 구성원들이 서로의 삶을 구속하지도 않고, 존중할 줄 알며 서로 배려하고 마음 속 깊이 믿음이 가득한 집이다.
음, 심지가 굳은 집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심지가 굳은 집이었기에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엄마의 경우 ‘마음이 있는 곳’ 이 중요하기 때문에 “ 그러니까 만에 하나 네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 갔다면, 그때는 꺼리낄 것 없이 그 사람 품으로 가거라. ” (p47)라고 스스럼없이 아이들에게 말해줄 정도이다.
아빠는 자신의 확신이 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 신경 쓸 것 없다” 며 가족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런 든든한 부모님을 두고 소요, 시마코, 고토코, 리쓰는 자유분방하게, 그러면서도 예의바르게 자란다.
누군가의 집을 훔쳐보는 기분은, 하지만 그것이 미야자카 가(家)일 경우에는 죄짓는 듯한 꺼림칙함이 아니라 소소한 행복감이 차오르게 한다. 이들의 공간에 들어간다는 것은 세상에 나와 어떤 짓을 하며 살았건 간에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하는 기분을, 고향집에 돌아간 탕아의 기분을 갖게 한다.
잔잔하게 다가와 포근하게 마음을 감싼다.
괜찮아, 네 뒤엔 우리가 있어! 라고 말해주는 듯 하다.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소란한 듯 하지만 보통날의 연속이다. 보통날인 듯 하지만 언제나 소란한 축제날 같기도 하다. <소란한 보통날>은 단순하게도 복잡하게도 해석되는 인생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누군가의 가족을 보면서 나의 지나간 시절 속을 채우던 친구의 가족, 나의 가족의 모습을 새삼 되돌아보게 한다. 무난한 하루하루를 보낸 듯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분명 그 시절은 행복했었다.
미야자카 가족과 함께 하는 건 분명 따스했던 그 시간을 떠올리게 하면서 지금의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즐거운 추억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