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 라이프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표지의 그림이 예사롭지 않다. 자세한 세밀화같은데, 트릭 아트인가보다. 책 속에 정확하게 그림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적어놓질 못했다. 사람들은 모두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그 계단은 계속 같은 방향으로 원처럼 이어져 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소설은 그림과 닮았다. 사건이 전개되어 가고 있는데, 마지막까지 읽고 보면 둥글게 서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역시 이사카 고타로.

지난번 마왕도 그렇고, 끝까지 진득하게 책을 읽어야만 전체적인 모양이 파악되는 구조이다. 잘 엮여져 있다. 흠. 좋아.

“ 불경기, 불경기하고 요란을 떨어대지만, 이렇게 오래 지속된다면 그게 이 나라의 표준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아이가 시험에서 한 번 만점을 받았어도 그 다음에 계속 50점이라면 그게 아이의 실력인 거지. 옛날에 어쩌다 승승장구했다고 해서 언제까지고 그러리라고 착각하는 바보들의 나라에는 미래가 없어. ” (p8)

“ 나이는 상관없어. 다시 말해 미래란 그런 거야. 찾아내는 거라고. 먹구름 속을 걸어서는 미래가 저절로 다가오진 않네. 자네도 잘 생각해 보는게 좋을 거야. ” (p114-5)

“ 천재가 발견하는 건 항상 법칙이지. 다카하시 씨는 알고 있었어. 세상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고, 사람이 어떤 원리로 행동하고 살아가는가를 알고 있었던 거지. 사건도 마찬가지야. 한눈에 범인이나 범죄의 법칙을 간파하는 거야. ” (p236)

“ 그럴듯한 얘기 아냐? 인간은 더더욱 그래. 몇십 년이나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고 똑같은 일을 계속하며 살아. 원시동물도 질려버리는 그런 반복을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 알아? ‘인생이란 다 그런거지, 뭐’ 라고 그렇게 받아들여. 이상하지. 인생에 대해 뭘 안다고 그렇게 단정하고 받아들이는지 난 모두 이해가 안 가.” (p272)

나와 두 청년, 어느 한쪽이 더 훌륭한 것도 아니다. 인생을 앞서 달릴 것인가, 뒤에서 걸을 것인가의 차이는 있어도, 어느 쪽이 더 훌륭한가의 차이는 없다. 어느 쪽도 훌륭하지 않으니, 그냥 부딪쳐야 한다. (p360)

“ 벽에 부딪쳤다고 본인이 착각하고 있는 것뿐이야. 사람은 모두 똑같아. 이를테면, 사막에 선을 그어놓고, 그 선 위에서 안 벗어나려고 벌벌 떨고 있어. 사방이 모래인데, 아무데나 자유롭게 걸어가면 될 것을 선을 넘으면 죽기라도 할 것처럼 떨어.” (p422) 

소신을 가지고 좀도둑을 하고 있는 구로사와는 어찌보면 작가의 모습인 듯 하다. 물론 모든 인물들이 작가가 하고픈 말을 내뱉고 있겠지만, 특히나 구로사와의 모습은 어째 작가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세상에 대해 명쾌하게 정의내리는 인물들의 말 하나하나가 내 마음에 와닿는다. 점점 암울해져가는 듯하더니 맨 마지막, 그래도 어떤 희망 한자락을 남겨주어 고맙기까지 하다. 어이구, 뭘 이런 배려를..,

그러면서 묻고 싶어진다. 당신의 이런 결말을 정말 믿어도 되나요?

당신도 믿고 있나요? 그러면서 왜 그리 싸늘한 시선을 버리지 못하는건가요......

작가는 정말 희안하다. 이렇게 대중적인 소설 안에 어떻게 인생을 녹여버릴 수 있는지 궁금하다. 쌀쌀맞은 인물들이 벌이는 사건 앞에서 인생을 생각하게 만들다니.

작가의 능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아, 이번 작품에서는 미래를 말하는 허수아비가 나온다. <오듀본의 기도>라는 작품을 떠올리셨다면, 맞다 그거다. ^^ 여전히 책 속에 다른 작품의 인물을 이야기한다. 찾아내는 재미도 여전. 글솜씨도 여전. 세상에 대한 시니컬한 시선이 좀 거슬리긴 하지만, 반박할 수가 없는걸 뭐. 하여튼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 읽기는 계속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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