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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우선은 시원, 시원스러운 문체에 있다. 마음에 안들어? 그럼 말어, 라고 내뱉을 수 있는 단호함과 자신감, 이야기가 어디로 튈지 모르겠는데서 오는 두근두근함 등을 작품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재밌는 책이 그러하듯이 괜히 저녁에 읽기 시작하면 안되는 것이다. 한번에 주욱 책을 읽어줘야지 중간에 쉬고 그러면 안되는거였다. 하지만, 이 책의 경우 그런 한번 쉬는 호흡조절의 시간이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2/3까지 읽었는데도 도대체 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 아니, 하고 싶은 말은 알겠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 전개를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떠나질 않았기 때문이다. 그려서 과감히 책을 덮고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다시 나머지를 읽는데, 아, 하는 느낌이 왔다. 그렇구나. 그래서 그런 말을 했구나. 그래서 준야가 마왕이겠구나...
형제의 이야기다. 형인 안도의 이야기가 먼저 나오고 5년 뒤의 설정으로 동생 준야의 이야기가 나온다. 안도의 이야기에는 화자가 안도였지만, 준야의 이야기는 준야와 결혼한 시오리가 화자이다. 다른 사람과 다른 특이한 능력을 지닌 형제의 이야기. 그렇지만 그런 ‘특이한 능력’이란게 사실은 혼자만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고 두체의 지배인은 말했다. 안도의 경우 30보 이내의 ‘복화술’이었고, 준야의 경우는 1/10의 확률 안에서는 꼭 이기는 능력이었다. 형제가 가진 이 능력은 대체 무슨 일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을까.
“ 정치인들은 사명감과 책임감이 희박하고 국민들은 나태하고 제멋대로죠. 나라가 망해도 자신만은 살 수 있을 거라고 국민들은 물론이요 정치인들까지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나는 국민들을 위해, 국민들이 우리 정당을 선택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p45)
“ 지금 이 나라의 국민들이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지 아십니까? 텔레비전과 컴퓨터 앞에 앉아 거기서 흘러나오는 정보나 오락을 끝없이 바라보고만 있을 뿐입니다. 죽을 때까지 평생 그런 식으로 멍청하게 사는 거죠. 밥 먹는 것도 목욕도 일도 연애도 생각 없이 그냥 할 뿐이에요. 그렇게 자각 없이 무위도식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주제에 인생은 짧다고 한탄합니다. 어떻게 하면 편하게 앉아서 이득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것만 궁리하죠. 권리만 주장하고 참을 줄은 몰라요. 불평불만만 많은데다가. 나는 그런 것들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p47)
“ 정치인이 기를 쓰고 궁리하고 있는 것은 정치가 아닌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나는 묻고 싶습니다. 그것이 올바른 국가의 모습인가 하구요. (p49)
총리 후보로 선거에 출마한 이누카이 후보의 말이다. 안도의 그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서 ‘무솔리니’의 파시즘을 보고 있었다.
“ 잘난 놈들은 약아빠졌으니까 조심해야 된다는 것.” (p250)
“ 헌법은 개정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국민들도 각오를 해줘야겠습니다. 어찌 되든 관심 없다거나 나와는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나중에 후회하게 됩니다. (중략) 나를 믿지 마세요. 잘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선택하세요. 당신들이 하고 있는 것은 검색이지 사색이 아닙니다. ” (p297)
여전히 정치를 논하면서 정치인 뿐 아니라 국민적 책임을 중시하는 그의 말투 역시 그대로였다. 아니 지금보다는 좀 더 젊은 때여서 뭐랄까 희망적이고 배려가 엿보인다고 할까.
요즘의 작품은 음... 살짝 꼬여있어서 비꼬는 느낌을 받고, 역시 어쩔수 없는 나라라니깐, 하는 포기의 느낌도 묻어나는데 말이다.
그나저나 이사카 고타로의 책을 읽으면, 꼭 일본의 일만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나라나 이나라나 정치인들은 비슷한가보다. 국민성도 어째 좀 비슷해 보인다. 작품 속 인물이지만 젊고 기존의 정치인들과는 다른 이누카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흥미가 생겼다. 그런 사람이 우리나라 정치계에도 혜성처럼 나타난다면 어떨지... 하는 상상까지 했을 정도다.
아, 작품 속에서 작가의 다른 작품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사신 치바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고, 언급하는 메뚜기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하여튼 별라별 재미를 작품에 다 넣고 있다. 그래서 이 작가의 작품은 놓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