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밤 세계문학의 숲 4
바진 지음, 김하림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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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고전 혹은 세계 문학을 읽는 것, 특히 올바르게 읽는 법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책을 읽는 방법이 따로 있는 것도, 무엇보다 ‘올바르게’ 읽는 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번번히 읽는 책마다 힘들어 포기하기만 하여 어떻게 하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내용을 가진 책이 ‘세계 문학’이라고 하는 것인지, 고전은 왜 어렵다 느껴지는 것인지 궁금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좀 더 가까이>라는 책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 책을 제대로 읽고 싶다면 작가가 왜 그 책을 썼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고전의 공통점은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

그래서 이 책 < 차가운 밤>을 읽으면서 시대상에 주목하고, 인물들의 갈등이 왜 생겼는지 주의깊게 보며 책을 읽었다. 그렇게 조금 더 주의하며 책을 읽어나갔더니 확실히 읽는게 수월했다. 예전처럼 읽기 싫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차가운 밤>의 시대적 배경은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여 항일전이 한창인 때에서부터 일본이 패전을 선언한 때까지이다. 전쟁의 기운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작은 도시까지 퍼져 오느냐 마느냐 때문에 항시 불안한 시절이다. 정전이 자주 있고, 경보가 수시로 울려서 방공호로 피신을 해야하는 일이 잦았다. 주인공 왕원쉬안에게는 아내 청수성과 어머니, 아들 샤오쉬안이 있었다. 교정일을 하며 근근히 살고 있고 항시 적은 돈 때문에 불안하다. 아내인 청수성은 은행에서 일을 하며 남편보다 더 요령있게 즐겁게 살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런 며느리가 불만인 시어머니는 항시 왕원쉬안에게 불만을 터뜨린다. 아들인 샤오쉬안은 통학하는 것이 힘들다며 학교 근처 친구네 집에서 신세를 지며 가끔 집에 들린다.

소설은 왕원쉬안이 아내가 어머니와 다툰 후 집을 나가버린 것에 대해 내면의 심정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고부간의 갈등은 극에 달해 있었고, 두사람은 서로를 헐뜯고 나가라고 하며 왕원쉬안을 괴롭게 한다. 결말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의 갈등은 평행선을 이루고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와중에 그에게 병이 생긴다. 각혈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병을 놓고도 아내와 어머니는 한의사와 양의사 중 어떤 의사를 데려올지로 다툰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왕원쉬안. 하지만 그는 병에 대해서도, 인간 관계에 관해서도 우유부단하기 그지 없다. 소설 속의 왕원쉬안은 언제나 갈등만 하고 결단은 내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는 사이 아내는 회사 발령을 받았다며 혼자 란저우로 갈지 말지에 대해 고민이 시작된다.

주인공들은 모두 대학 교육까지 마친 지식인들이지만, 소설 속에서 끝없이 고민을 한다. 병 때문에 고민하고, 떠날지 말지에 대해 고민을 하고, 보낼지 말지에 대해 고민을 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에서는 항시 선택보다는 회피를 택했다. 특히 왕원쉬안은 더욱 그랬다. 그래서 결국 그를 찾아온 것은 불행뿐이었다. 그녀 역시 그녀의 상황에서 도피한 것과 마찬가지였지만, 어찌보면 더 나은 삶을 선택하였다고도 볼 수 있다. ‘날아라 날아’ 마음 속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고 우연히 발견한, 그녀와 비슷해 보이는 책 속의 삶은 결국 불행만을 초래할 뿐임을 알고 자신은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며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그 시절에도, 현재의 시선으로도 나는 그녀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처지에서 가장 최선의 방법을 선택한 것이 뭐가 잘못이란 말인가.

세사람의 끝없는 의견 충돌과 갈등을 보고 있으면 마치 한편의 연극을 보고 있는 듯하다. 작은 공간 안에서 세 명의 성격 분명한 인물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어려운 시절이나, 지금 현재나, 중국이나 한국이나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물론 저자는 그런 여자의 입장을 중요시한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나는 우선 청수성의 끝없는 고민에 대해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차가운 밤, 온기가 필요했던 그녀에게 손을 내밀고 싶을 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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